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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45화 (45/272)

045화. 겁 없는 질주(2)

지태는 나이로비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며 사무엘에 대한 자료를 보강했다.

물론 현지 사정에 밝은 기민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컸다.

그 결과 지태는 사무엘 은조로게가 현재 탄자니아 국경과 인접한 지역 어딘가에 은신해 있을 것으로 유추했다.

새 광산이 발견됐다는 바로 그 지역 어딘가.

탄자니아 국경과 인접한 지역을 수소문하거나 뒤지고 다니기 위해서는 일단 몸바사로 넘어가야 한다.

몸바사는 케냐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데 인도양과 면해있는 주요 항구도시이자 해양 관광의 명소이기도 하다.

“괜찮아, 굳이 나올 거 없다니깐. 나 혼자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어.”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내가 그 정도로 인정머리가 없는 놈이 아니거든!”

마침내 나이로비를 떠나 몸바사로 가는 날이다.

기민성은 지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웅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버스터미널까지 따라왔다.

케냐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면 나이로비에서 몸바사까지 약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기민성이 구해준 권총을 소지하고 비행기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냥 심야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뉴 케냐 롯지 거리에는 수많은 버스 회사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며 몸바사행 버스 티켓을 팔고 있었다.

요금은 버스 회사들이 서로 담합한 것처럼 대부분 금액이 엇비슷했다.

케냐 화폐로 천오백 실링이었다.

지태는 케냐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음제 조모 케냐타의 초상이 그려진 천 실링짜리 지폐와 오백 실링짜리 두 장을 주고 밤 10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의 티켓을 구했다.

버스로 넉넉잡아 약 10시간 정도 걸린다 하니 몸바사에는 내일 아침에나 도착할 것이다.

“진짜 보내고 싶지 않은데…….”

기민성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진심 어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게 지태에겐 절대 씨알이 먹히지 않을 소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만큼 걱정이 되어 반복해서 내뱉는 소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잘 간수할 테니까. 그나저나 볼일 마치고 돌아오면 이번엔 진짜로 꼭지가 돌 때까지 한잔하자고!”

“기왕이면 멋진 여자도 하나 소개해줘라! 아직까지 순수총각인 나를 위해서.”

그러니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이다.

기민성이 격려와 응원을 하듯 지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꼭 약속할게. 네놈한테 멋진 여자도 소개해주고.”

지태가 배시시 웃었다.

밉지 않게 눈을 흘긴 기민성이 다시 또 당부를 해왔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아니다. 아무 일이 없더라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전화해라. 알았냐?”

“그래, 알았다. 그럴게.”

조현민의 품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해방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케냐에서 또 다른 시어머니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음 따뜻하고 고마운 착한 시어머니.

지태가 고맙다는 뜻을 담아 활짝 웃었다.

이제 곧 버스가 출발할 시각이다.

“간다. 나중에 보자.”

지태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기민성을 나이로비에 남겨 두고 몸바사행 심야버스에 올랐다.

* * *

생각보다 버스의 상태는 훌륭했다.

심야버스답게 좌석 간격이 넓어서 갑갑하거나 다리에 쥐가 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편하게나마 잠을 청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려고 할 때쯤에야 심야버스는 몸바사에 도착했다.

지태는 가장 먼저 몸바사의 지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것을 손쉽게 구할 곳은 아무래도 관광 안내소가 제격일 거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지만, 시내 관광지도는 부스 밖 게시판 옆에 따로 비치되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지도를 펼쳐 동서남북을 가늠한 다음 아침식사를 해결할 요량으로 시내를 향해 걸었다.

대부분의 식당들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이럴 때는 아침이 빨리 열리고 서민들의 발길이 빈번한 재래시장이 그 대안이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케냐 전통 먹거리로 아쉬운 대로 공복으로 허전한 배를 채운 지태는 항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무엘 은조로게를 찾아 몸바사에 오긴 했지만, 어디에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막막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자기 혼자 뚝 떨어진 것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서 항구 쪽으로 나오면 혹시라도 이곳의 현지사정이라도 귀동냥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순 없었다.

“하아!”

막연한 기분에 절로 한숨이 새나온다.

정국 불안으로 뚝 끊긴 유럽 관광객들, 그중 동양인의 발길은 더더욱 귀해진 요즘이었다.

그런 시국에 불쑥 나타나 항구를 배회하는 지태는 흡사 동물원의 원숭이나 같았다.

지태는 대놓고 힐끔거리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영 거슬리기만 했다.

그래서 지태는 곧바로 항구를 벗어나기로 했다.

생각도 정리할 겸 근처 해변을 두어 바퀴 거닐다가 지태는 돌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지태는 택시기사에게 몸바사 최고의 호텔로 가자고 했다.

실은 그것은 최봉준의 사인이었고 주문이었다.

전처럼 텔레파시를 통해 대놓고 충고를 던져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막함의 실마리를 풀고자 한다면 일단 이곳 몸바사 최고의 호텔로 가보라는 암시 같은 게 불현듯 느껴졌다.

룸미러를 통해 지태를 힐끔 쳐다본 기사는 곧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태의 겉모습으로 주머니의 수준을 가늠하려는 눈치였다.

기사에게 원치 않는 면접을 통과한 지태는 약 20여분 뒤 어느 호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지태를 부유한 관광객 내지는 비즈니스맨으로 보았던 게 틀림없다.

그곳은 아름다운 해변에 인접한 5성급 호텔이었다.

야자수가 정원수처럼 드리워져 있고, 건물 앞에는 인도양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야말로 풍광이 그림 같은 곳이었다.

지태는 일단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 몸부터 뉘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요란한 음악이 밤새 쿵쿵 울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선잠에 들기는 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시간들은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잠깐 눈만 붙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뉘였는데 꽤나 오래 잤던 모양이었다.

깨어 보니 객실의 넓은 통유리 창문 사이로 내비치던 오후의 태양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출출한 배 속을 채우고 다시 몸바사 시내에 나가 볼 생각으로 지태는 방을 나왔다.

아무래도 사무엘 은조로게의 흔적을 뒤쫓기 위해서는 그와 연관된 곳을 찾아가 보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바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석상 몇 군데를 수소문해 보면 뭔가 티끌만한 단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호텔 식당에서 가장 무난한 메뉴인 스테이크로 식사를 대충 마친 지태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먹은 것들을 소화를 시킨 후에 택시를 부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머릿속에서 최봉준이 신호를 보내온다.

누군가 계속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으니 주위를 한번 살펴보라는 거다.

지태는 티 나지 않게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주변을 쓱 훑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뚝 멈췄다.

그곳엔 까만색 슈트를 빼입은 한 사내가 서있었다.

덩치가 프로레슬러의 그것만큼이나 요란한 흑인이었는데 왠지 눈에 많이 익었다.

호텔에 들어와서 체크인을 할 때 우연히 눈이 마주친 적 있는 사내.

워낙 덩치가 큰 탓으로 인상에 깊이 박혔던 사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호텔의 간부급처럼 보였다.

그런데 몰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지태에게 뭔가 색다른 관심이 있다거나, 아니면 경계를 하고 있다는 증거일 터.

지태는 아주 천천히 사내가 서있는 호텔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럴 땐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상황 파악을 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지태는 입가에 미소를 피워 올리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날씨가 참 좋군요!”

“모처럼 평화로운 날씨입니다.”

“혹시 호텔리어?”

“아, 예. 저는 이 호텔의 지배인입니다. 피터라고 불러주십시오, 미스터!”

“나는 한지태라고 합니다.”

“아, 미스터 한! 혹시 재패니즈?”

지태는 떨떠름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놈들은 동양인이면 무조건 일본인인 줄 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격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높아진 지금은 당연히 한국인이냐고 먼저 물어봐줬으면 싶다.

국뽕에 기댄 지태의 개인적 소망은 그랬다.

“한국! 북쪽 말고 남쪽.”

“아, 사우스 코리아!”

그제야 지태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피터는 엄지 척을 해보이며 넘버원을 외쳤다.

‘인마, 이미 버스 지나갔어!’

지태는 속으로 가볍게 냉소를 날렸다.

“조금 있다가 시내에 나갈 일이 있는데 택시 좀 불러 주겠소?”

“그야 물론이죠. 한데 시내엔 무슨 일로 가시는지요?”

지태가 여전히 미소를 그린 채 피터를 돌아보았다.

‘이 새끼가 지금 나를 취조하는 건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그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똑바로 쳐다보자 피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확실히 이놈은 자신에 대한 어떤 정보를 얻어내려 애를 쓰고 있는 게 역력했다.

이럴 땐 살짝 빈틈을 보여 주는 게 좋겠지.

지태는 떡밥을 던지듯 무심하게 내뱉었다.

“보석 시세라든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굴량 같은 것을 좀 알아보려고요.”

“선물용이나 기념품 정도의 보석을 찾는 게 아니시군요?”

피터의 물음에 지태는 긍정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간을 보려고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틀 전 기민성에게 부탁해 큐브 인터내셔널 소속인 것처럼 미리 파두었던 명함이었다.

직위는 거창하게 큐브 본사의 해외투자개발본부 과장으로 해두었다.

“아, 비즈니스맨이셨군요.”

“광산투자 건 때문에 왔어요. 탄자니아를 거쳐 이곳 케냐는 어제 들어왔고.”

“그렇군요. 탄자니아와 케냐 쪽에서 보석을 찾으신다면 아마도…?”

그야 킬리만자로공원 주변에서 유일하게 채굴되는 보석이니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당연히 하나였다.

“차보라이트!”

“아!”

아주 잠시 동안의 대화였지만 피터는 확실히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

“차보라이트라면 제가 잘 아는 지인 중에도 광산개발업자가 한 명 있습니다만. 그리고 참고로 덧붙인다면 얼마 전 그 지인이 엄청난 매장량을 지닌 광산을 또 하나 새로 발굴했고요.”

흠칫.

지태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랐다.

뜻하지 않게 뭔가 걸려들었다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어럽쇼, 이것 봐라?’

이래서 최봉준이 몸바사 최고의 호텔을 찾아가라고 주문을 했던 건가.

피터와의 이 놀라운 만남을 주선하려고?

지태는 속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드러내 놓고 내색하면 안 되었다.

“으음. 그래요?”

지태는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눈길로 피터를 보며 끄덕였다.

피터의 눈빛에서 ‘이놈 잘 하면 걸려들겠구나.’하는 속마음이 읽혔다.

지태는 이쯤에서 한발 뒤로 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너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금물.

뜸이 들기도 전에 솥단지의 뚜껑을 열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지금은 피터의 애를 태우게끔 잠시 뜸을 들일 시간이었다.

“대화 즐거웠습니다. 이제 택시 좀 불러 주시겠어요?”

대화를 급마무리하려 하자 지태의 예상대로 피터는 몹시 당황스럽고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태를 억지로 붙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피터는 일단 고객의 요청이니 저만치에 서있던 벨보이에게 사인을 주며 택시를 부르게 했다.

사실 피터라는 뜻하지 않은 월척을 낚은 이상 지태는 이제 시내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자칫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태는 형식적으로나마 시내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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