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44화 (44/272)

044화. 겁 없는 질주!(1)

하긴 맞는 말이었다.

기민성의 말처럼 이번 일이 손쉬운 일 같았으면 사기 당한 금액을 반띵하자는 지태의 제안을 선우글로벌 측에서 선뜻 받아들였겠는가.

“어떤 놈인데, 선우를 상대로 사기를 친 놈이?”

“사무엘 은조로게라고 예전에 상무부 대외협력국장 출신이라던데?”

“사무엘, 사무엘… 은조로게…? 어!”

기민성은 몇 번인가 놈의 이름을 반복해 되뇌더니 마침내 들어본 기억이 나는 듯 번쩍 고개를 들면서 지태를 쳐다보았다.

“혹시 그놈 광산개발업자 아니냐?”

“너도 들어본 놈이야?”

“그럼, 당연하지. 이쪽에선 은근히 소문난 새끼야. 나름 꽤 실세라는 것 같던데?”

“그럼 찾는 게 좀 수월하려나?”

“무슨 소리야. 내 말은 꽤 유명한 실세니까 포기하라는 건데.”

“유명하니까 찾기가 쉬울 거 아냐. 행적이 쉽게 드러날 테니까.”

“뭘 모르시네, 이 친구가! 놈이 그만큼 거물이라는 얘기잖아. 그건 뒤를 봐주는 데가 많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그놈을 찾으러 다니다가 네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아프리카 땅에 묻힐 수 있다는 뜻도 돼. 아님, 사자 밥으로 던져지던가.”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이곳까지 날아온 지태가 아니었다.

지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을 찾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기민성으로부터 찾아냈다는 게 우선은 더욱 반가울 따름이었다.

지태가 슬그머니 회심의 미소를 짓자 기민성은 그 표정을 보고는 지레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지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며 기민성은 일단 돌아갔다가 퇴근 무렵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지태는 돌아가는 그에게 숙제를 하나 던져줬다.

사무엘 은조로게에 대한 것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모두 취합해서 좀 가져다 달라고 말이다.

기민성은 나중에 수고비를 톡톡히 청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지태는 그가 퇴근할 때까지 피곤에 절은 몸을 좀 누이려고 다시 호텔 객실로 올라왔다.

간단히 샤워만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두 눈은 오히려 멀뚱멀뚱하기만 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지태는 괜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서울은 지금쯤 오후 10시를 조금 넘겼을 것이다.

“흠….”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이 시간에 전화를 해도 되나?

혹시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면 내가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갈등에 갈등을 보태고 있는 지태의 머릿속은 오히려 더 복잡하기만 했다.

“그래, 까짓 거!”

이럴 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속이 편하다.

지태는 결심한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하는 지은의 목소리가 곧 들려왔다.

“전화 받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야하지? 지금 뭘 하고 있기에 이렇게 야한 소리를 내?”

- 헛, 참! 이 아저씨 이제 보니 아주 엉큼하셔. 여기 피트니스야. 나 지금 운동하는 중이라고!

쓰게 입맛을 다신 지태가 무색무취의 음색으로 툭 던졌다.

“그냥 궁금해 할까봐 전화했어. 케냐에 잘 도착했다고.”

- 벌써 보고 싶다는 말을 해주면 어디가 덧나?

“에이, 우리가 어디 그럴 사인가…….”

- 그럼 오래 사귀고 오래 붙어 있어야만 그럴 말을 하는 사이가 되는 거야?

꼬박꼬박 말대꾸다.

그렇다고 싫다는 것은 아니고.

지태의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자꾸 시비를 거는 거 보니까 나랑 통화하기 싫은가 보네. 그만 끊을까?”

- 장난해, 지금? 어휴, 주먹이 운다, 울어. 나 지금 운동 열심히 하는 건 나중에 지태 씨 말 안 들으면 혼내 주려고 그러는 거야. 조심해용!

지은의 호흡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음악 소리도 잦아들었고, 주변에서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온 모양이다.

“내일부터는 바쁠 거야. 어쩌면 전화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고.”

- 아무리 바빠도 잠자리에 들기 전엔 꼭 전화해주기! 알쬬?

“봐서! 그리고 시차 때문에 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지은 씨는 코 골고 이를 박박 갈며 한창 깊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야.”

- 어머, 누가 코를 곤다고 그래? 기가 막혀!

“그거야 나중에 같은 침대 누워서 직접 확인해 보면 되는 거고.”

- 누구 맘대로! 누가 그럴 기회나 준대?

젊은 혈기가 철철 넘칠 나이다.

지은의 애교 어린 목소리를 들으니 지태는 오랜만에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짜릿한 감정에 저절로 몸이 꼬였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이런 걸 들켜선 더더욱 안 될 일이고.

음흉한 늑대 취급을 당하긴 싫으니까.

아니, 두고두고 쪽팔릴 테니까 말이다.

“여하튼 운동 잘 하고 들어가. 갈 때 운전 조심하고.”

- 그래요. 식사 잘 챙기고 몸조심해.

전화가 끊겼다.

낯선 타국에서 느껴지는 호젓한 기분은 조금 풀렸지만, 대신 그 자리를 메꾸고 들어오는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지태의 가슴을 꾹꾹 쑤셔 댔다.

지태는 양손을 깍지 끼어 팔베개를 한 다음 두 눈을 감았다.

지은과 통화했던 여운이 서둘러 사라지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 넣을 생각이었다.

* * *

뷔이익, 뷔이익.

깜빡 잠들었나 보다.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스마트폰의 진동에 지태는 잠에서 깼다.

두어 시간쯤 잤던 모양이다.

벽에 걸린 시계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어, 기 대리! 퇴근했어?”

- 지금 출발하려고.

“그럼 천천히 와. 나도 시간 맞춰서 로비로 나갈게.”

- 그래. 오늘 나한테 술 한 잔 진하게 살 준비하고 기다려.

전화를 끊으며 지태는 씩 웃었다.

술을 진하게 사라고 하는 걸 보니 사무엘 은조로게에 대한 꽤 유익한 정보를 구한 것 같다.

지태는 눈곱을 떼고는 티테이블에 대충 벗어 두었던 옷을 걸쳤다.

“한 대리!”

로비에서 기다린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기민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태를 발견하자마자 손에 든 노란봉투를 흔들며 밝게 웃는 것을 보니 확실히 자료를 구해 나오긴 한 것 같다.

“구해왔구나?”

“그럼 내가 누구냐. 한번 한다면 하는 놈이잖아. 대신 술을 적당히 사면 안 돼. 두 시간 동안 내 입김이 통할만한 인맥이란 인맥은 총동원해서 구한 거니까!”

“공치사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은 영양가가 있는 건지 아닌지 내가 먼저 살펴보자”

지태가 손을 뻗자 기민성이 줄 듯 말 듯 두어 번 놀려댄 다음에야 비로소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니까 아는 술집이 있음 안내해봐.”

“좀 비싼 곳도 괜찮지?”

“이제 창업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다. 아직 벌어놓은 것도 없으니까 적당히 좀 벗겨 먹어.”

“엄살은! 들어보니까 한 건 제대로 했던데, 뭘.”

“사무실 들어가서 그새 내 뒷조사까지 했냐?”

“궁금하잖아. 그래서 본사 쪽 동기들한테 한번 물어봤지.”

기민성은 속없는 사람처럼 어깨까지 흔들어대며 웃었다.

업계에 소문이 쫙 퍼져 있으니 그런 건 굳이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들통이 났으니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적당히 봐줘라. 이거 내가 목숨 걸고 어렵게 벌어온 돈이야.”

“어휴, 엄살은!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내가 설마 네놈한테 술을 사라고 할까. 걱정 마라, 이 형님이 한 턱 쏠 테니까.”

기민성은 셔츠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쏙 뽑아들었다.

아마도 법인카드인 모양이다.

누가 술을 사면 어떠랴.

지태는 호텔을 나와 기민성이 이끄는 대로 졸졸 뒤따라갔다.

의외로 평범한 술집이었다.

겉으로 보아선 볼품없는 허름한 건물에 작은 간판만 달랑 밖에 내걸어둔 그런 곳이었다.

“뭐냐, 여긴?”

괜찮은 술집으로 안내를 하렸더니 이런 곳으로 끌고 와서 하는 소리다.

“야! 술 마시다가 객사할 일 있냐? 사람 많은 곳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위험해. 어찌나 느닷없이 수류탄을 던져대는 놈들이 많은지.”

케냐에 1년 넘게 주재하고 있는 기민성의 말이다.

직접 당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 한마디로 현재 나이로비의 상황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현재 케냐에 있다는 것이 제대로 실감이 났다.

“쫄았어? 크큭! 여긴 안심하고 마셔도 돼. 이런 데까지 와서 폭탄을 던지고 가지는 않으니까.”

기민성이 자꾸만 놀리는 것 같아 지태는 입맛이 썼다.

겉으론 볼품이 없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실제 분위기는 달랐다.

제법 세련된 인테리어에 손님들의 수준도 그리 질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기민성이 단골로 자주 찾는 곳인 듯했다.

지배인이 당연한 것처럼 홀 안쪽에 칸막이 없는 별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주문한 술이 테이블에 세팅되기 전 지태는 서류봉투를 열었다.

A4용지 세 장 분량으로 사무엘에 대한 자료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선우에서 넘겨준 자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이거 진짜야? 또 다른 호구들을 낚으려고 슬그머니 냄새를 풍기는 건 아니고?”

“그건 아닌 거 같아. 진짜로 그런 소문들이 돌긴 했어.”

바로 차보라이트 광산에 대한 언급이었다.

현재 채굴이 활발한 탄자니아 국경 근처의 광산 말고 거기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광산이 또 발견되었는데, 그게 바로 사무엘 은조로게 소유의 광산이라는 거였다.

매장량이 역대 대박 광산들에 버금갈 정도라고 기술이 되어 있었다.

“그럼 광산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 확률이 크겠는데?”

“내 생각도 그렇긴 해. 하지만 거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 황야의 무법지대나 마찬가지거든. 현지인들도 꺼리는데 타국인이 그곳에서 어슬렁거렸다간 바로 이거야, 이거!”

기민성은 자신의 목 부위를 손날로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그게 무서우니까 나더러 그냥 돌아가라고?”

그런 위험성이 내포되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이 맡겨진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순간 기업 고충해결사라는 딱지는 당장 떼어서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럼 설마 거길 찾아가겠다고?”

“안 가면? 내 뒷조사를 해봤으니 알 거 아니냐. 내가 뭣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그렇다고 뻔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 무턱대고 고개를 들이밀겠다고?”

“그 덕분에 이거 하나는 짭짤하잖냐!”

지태가 손가락으로 돈을 뜻하는 동그라미를 말아 보였다.

“이런 미친… 어휴!”

기민성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다가 정색하고는 지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혼자는 절대 들어가지 마. 기어이 가려거든 유능한 보디가드 애들 몇 명 데리고 함께 들어가든가. 여기 애들의 몸값이 생각보다 별로 안 비싸.”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하는 충고였다.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었다.

“고맙다, 기 대리! 그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야! 비록 같은 회사 친구는 아니었지만, 난 너를 멋지고 남자다운 놈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예전부터 친구 삼고 싶었던 놈이야! 그런 너를 이런 지랄 맞은 곳에서 잃고 싶지 않아서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알아?”

“알아. 그 정도의 안목은 나도 가지고 있다. 너도 좋은 놈, 멋진 놈이라는 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지랄! 엎드려 절 받는 식이네.”

겉으론 퉁명스러웠지만, 따뜻한 진심과 진한 우정의 느낌이 그가 내뱉는 말 속에 스며있었다.

“기 대리!”

“왜?”

“부탁 하나만 더 하자.”

“이번엔 또 뭔데?”

애써 터프한 척하려는 건지 기민성은 여전히 투박하게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대답은 잘도 해주었다.

“권총 한 정 구할 수 있겠냐?”

“권총? 너 총이나 쏠 줄은 알고?”

지태가 일반 군대를 만기 제대한 줄 아는 모양이다.

“나 UDT 출신이야.”

“어쭈?”

기민성이 예상 밖이라는 듯 깜짝 놀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곧 정색했다.

“뭐, 권총 한 정 구하는 거야 그다지 어렵진 않아. 하지만…….”

“그럼 글록이나 베레타 둘 중 하나로 구해줘. 아무래도 내 손에 익은 게 좋으니까.”

기민성은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않은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태의 의지가 워낙 단호하니 자신이 말린다고 해서 들어먹힐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모험 속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지태의 말마따나 돈이 되는 오더가 그의 손에 주어지진 않았을 테니까.

기민성이 쓴맛을 다시며 답을 내놓았다.

“알긴 알겠어. 한데…….”

“고맙다, 기 대리! 이 신세는 내가 절대 잊지 않을게.”

지태는 기민성의 우려 어린 만류가 또 다시 새어 나올까봐 지레 선수를 치며 그의 말문을 막았다.

국내의 유흥가가 아니었다.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헤매는 것은 무방비 상태로 내 목을 가져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두 사람은 적당히 취기가 오를 정도만 술을 마시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