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다시 발로 뛰어라(4)
‘이놈 이거 아주 무서운 놈이었네!’
속으로 감탄사를 뱉어낸 조현민은 그때부터 의기양양했다.
“이봐, 박수연! 거기서 뭐해? 어서 이리 와!”
조현민은 자신이 마치 육덕을 쓰러뜨리기라도 한 듯 목소리에 한껏 힘을 준 채 박수연을 불렀다.
눈치껏 쪼르르 달려온 박수연이 조현민의 옆에 바싹 붙는 사이 덩어리들이 슬슬 지태 쪽으로 몰려들었다.
믿기지가 않는 것은 놈들 역시 마찬가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다가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들이었다.
자신들의 숫자를 믿는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일 테고, 두 번째는 지태가 건달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인식 때문일 거다.
그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너 오늘 뒈졌어!”
각각 한 마디씩을 내뱉은 녀석들이 단매에 때려눕힐 듯이 달려들었다.
지태가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빠박.
“커억!”
콰직, 뻐억, 쩌억, 쩌어억!
“켁!”
“흡!”
“커억!”
달려드는 족족 신출귀몰한 솜씨로 타격해 나갔다.
지태의 주먹과 발길질에 나가떨어지며 내지르는 녀석들의 비명소리 또한 제각각이다.
덩치 큰 놈들은 큰 놈들대로, 얍삽하게 생긴 놈들은 또 얍삽하게 생긴 모양대로 특유의 비명을 내지르며 순차적으로 나가떨어졌다.
강남 돈두파인지 강낭콩파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달로서의 체면과 명성은 이 순간만큼은 깡그리 바닥에 나뒹굴어야 했다.
“후훗!”
지태가 휴게공간의 소파 쪽을 돌아보았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대가리뿐이다.
지태와 바닥을 나뒹구는 똘마니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대가리 표정에는 짙은 낭패감이 서려 있었다.
다른 한편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표정.
“뭐, 뭐냐, 너? 한때 우리처럼 생활했던 놈이냐? 여긴 무슨 조폭대행사 같은 데고?”
곧 똘마니들처럼 바닥에 나가떨어질 새끼가 궁금한 것도 참으로 많다.
지태는 외근을 위해 단정히 손봐두었던 머리칼이 흐트러져 있자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놈을 향해 웃었다.
이 마지막 남은 놈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 맛깔나게 잘 조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궁리를 하며 웃어 보이는 모양새가 독하고도 비릿했다.
대가리는 이미 힘의 균형은 깨진데다가 자기 혼자 감당하지 못할 상대임을 퍼뜩 깨달은 듯했다.
놈은 잽싸게 자신의 슈트 자락을 뒤로 젖히더니 가슴 안쪽에 품어두고 있던 생선회칼을 꺼내 들었다.
저글링을 하듯 두어 바퀴 돌리며 기선을 잡으려는 듯 씩 웃었다.
“어디서 좀 놀았다 이거지? 그래, 시발 놈아! 네놈의 몸에서 살이란 살이 다 발라지고 허연 뼈다귀만 남아도 어디 그 좆같은 웃음소리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
다시금 회칼을 저글링 하듯 굴리며 대가리가 마침내 지태 쪽으로 다가왔다.
지태가 다가오는 놈을 향해 말했다.
“난 좋은 쪽 사람들한텐 좋은 얼굴로 대한다. 반대로 나쁜 새끼들한텐 몇 배 더 지독한 방법으로 대접을 해주는 편이지. 어서 와!”
“아이고, 그러셔? 그런 헛소리는 향냄새 풍기는 병풍 뒤에서나 하세요, 이 시발 놈아!”
어느새 바짝 다가선 대가리 놈이 돌연 회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페이크 같았다.
크게 한 번 휘두르며 위협하는 것으로 거리를 잰 다음 진짜 공격은 그 다음이었다.
짧게 툭툭 끊어 치듯 상하좌우로 날카롭게 찔러왔다.
타탁.
파파밧.
지태는 해군특수전전단 시절에 눈만 떴다 하면 매일같이 갈고 닦았던 근접격투술을 이용해 놈의 살벌한 공격들을 막아냈다.
빠각.
쩌억, 쩍.
그렇다고 방어에만 치중한 건 아니다.
그런 중에도 놈을 향해 간간이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려주기 위해 되도록 살살 맛만 보여주는 정도.
나름 칼을 다루는데 있어 이 바닥에선 소문이 났고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놈은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숨이 가쁜 얼굴로 지태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태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이 정도로 벌써 지치면 어뜩하냐! 난 이제 겨우 몸이 풀리려던 참인데.”
“이런 시발 놈이!”
“쯔쯧! 안 되겠다. 네놈 말하는 싸가지가 아주 글러 처먹었어! 이제 그만 뻗어줘야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지태가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비릿한 살기가 풍겨 나오는 지태의 모습에 대가리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순간 지태의 몸이 날았다.
휘리릭.
순식간에 두어 걸음쯤 날아가듯 튕겨져 나간 지태가 주먹을 뻗었다.
일명 슈퍼맨펀치.
빠아악!
“으읍!”
정확히 인중에 꽂힌 주먹에 놈은 만취한 사람의 보행법으로 급하게 비틀거렸다.
그마나 맷집과 깡다구는 조금 있는 듯하다.
제법 강력한 한 방에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써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태가 피식 웃었다.
놈들이 사무실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린 걸 생각하면 단 한 방으로 쓰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살짝 힘 조절을 해뒀었다.
“넌 대가리니까 바로 뻗으면 내가 많이 서운할 거거든! 그래서 일단 맛만 좀 보여준 거야, 인마!”
다시금 씩 웃어 보인 지태가 이번엔 발을 날렸다.
힘 조절을 전혀 하지 않은 강력한 헤드샷.
빠각!
“……!”
이번엔 비명조차 없었다.
놈은 선 채로 고목이 넘어가듯 바닥에 코를 박았다.
지태는 널브러진 대가리 놈을 무심한 눈길로 내려 보다가 힐끔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대표실이 들어왔다.
사무실을 꾸민 뒤로 단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곳.
방치해두었던 곳이지만 오늘은 긴요하게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놈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좀 더 과격한 방법을 써야 할 텐데, 그러다 보면 심약한 박수연이 신경 쓰일 거다.
그래서 그녀가 볼 수 없게 대표실로 이놈들을 끌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저기 대표실이라고 쓰인 곳 보이지? 저기로 영점 오초 내에 튀어 들어간다! 만약 꾸물거리는 새끼들이 보였다간 그놈은 내가 반드시 시장바닥에서 배 깔고 알바하게 만들어준다. 실시!”
마치 훈련조교처럼 내지른 으름장에 바닥을 뒹굴고 있던 덩어리들이 앞다투어 대표실로 달려갔다.
지태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대가리의 뒷덜미를 꽉 움켜쥔 채 대표실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그걸 보며 조현민이 박수연에게 말했다.
“수연 씨는 잠깐 귀 막고 있어! 아니면 근처 카페에 가서 시원한 커피 한잔하고 와도 좋고.”
아무래도 곧 그려질 풍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 조현민이 대표실에 시선을 돌리며 피식 웃었다.
* * *
대호그룹 둘째 아들이면서 현재 대호건설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는 이현욱이 문득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일을 끝내도 몇 번은 끝냈을 시각이었다.
한데 아직도 함흥차사였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그런 놈 하나 조지는 건 간단한 식사라고 그렇게 장담하더니!”
이현욱은 이를 갈며 괜히 허공을 노려보았다.
며칠 전 라운지 바에서 생애 처음으로 수모와 치욕을 맛본 이후 며칠 동안 분함 마음에 잠조차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임지은의 앞에서 벌레만도 못한 하찮은 새끼한테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비서실장을 시켜 놈을 뭉개버릴 만한 해결사를 수배하라 지시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해줄 놈으로.
지시를 받은 비서실장은 곧 여러 인맥을 총동원해 그 일을 맡아줄 적당한 이들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일명 돈두파였다.
원래는 파주 쪽에 구역을 갖고 있던 놈들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경기 일원의 작은 조직들을 하나둘 통합해 세를 키워나가더니 최근엔 급기야 강남에 똬리를 틀고 밤의 패권을 노리는 무서운 신흥 세력이라고 했다.
비서실장은 놈들을 소개할 때 워낙 겁이 없는 애들이라서 기존 조직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욱은 이들에게 오더를 내릴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병신을 만들거나 혹시 그 과정에서 자칫 때려죽여도 전부 다 책임질 테니 가장 잔인한 수단과 방법을 쓰라고 했었다.
그날 라운지 바에서 싸움에 쌈 자도 모르는 자신이 봐도 지태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무술을 오랫동안 연마한 수준 같았다.
그렇다 해도 주먹으로 밥을 먹고 사는 건달 놈들을 결코 당해낼 순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잔뜩 기대하고 있는 건데 이 새끼들은 지금껏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현욱이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이 새끼들 혹시 그 새끼를 너무 심하게 두들겨 패서 죽이기라도 한 거 아냐?”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아직 연락을 못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 하나 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닌 새끼들인데, 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이현욱이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암튼 이 개건달 새끼들, 어디 이름값만 못했다간 봐라!”
* * *
덩어리들이 일렬로 무릎을 꿇은 채 힐끔힐끔 지태의 눈치를 살폈다.
대표실로 들어온 직후부터 지태의 본격적인 매타작이 시작됐다.
차라리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대가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혹독했다.
일단은 실컷 두들겨 팬 다음 배후를 캐내려는 지태의 의도였다.
“눈깔아, 이 새끼들아!”
지태의 엄포에 힐끔 눈치를 살펴대던 덩어리들의 고개가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 대가리의 몸이 꿈틀댔다.
끄응.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놈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는 듯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독하게 부라리며 으르렁댔다.
“이 개새끼 우리가 누군 줄 알아? 넌 이제 뒈졌어!”
그 순간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지태의 발길질이 날아갔다.
“빠각!
“커억!”
귀밑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대가리가 비명을 한번 쏟아내고는 다시 정신을 놓았다.
이제 나머지 불똥이 자신들에게 되돌아올까 두려운 마음에 덩어리들이 몸을 떨었다.
‘새끼들!’
이만 하면 확실히 기선 제압은 한 듯싶었다.
하지만 이 새끼들은 주먹으로 밥을 먹고 사는 놈들이다.
더구나 동네에서 거들먹거리는 양아치들 같지도 않다.
체계가 잘 잡힌 나름 이름 있는 조직의 똘마니들.
그렇다면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뒤따라올 조직의 살벌한 처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어찌 요리한다?’
잠시 고민하던 지태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 가지 방도가 떠올랐다.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약간의 허풍을 넣어 사기를 좀 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 과거, 내 어두웠던 시절을 좀 들려주는 게 나을 것 같군. 지금부터 한눈팔지 말고 내 말 똑똑히 들어. 알았어?”
지태가 윽박지르자 놈들이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곤 시선을 들어 지태에게 주목했다.
지태는 하나하나 눈을 맞추듯, 아니면 겁을 주기라도 하듯 천천히 훑어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말이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위 무섭게 좀 놀던 놈이야. 다이다이 먹는 거라면 내로라하는 전국의 주먹들하고도 결코 꿀리지 않을 만큼!”
지태가 잠시 말을 끊으며 은근한 눈빛으로 놈들을 살폈다.
이미 맞아보고 경험한 주먹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지태의 말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놈들에게 비릿하게 웃어준 다음 말을 이었다.
“사납게 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직에 얽매여 네놈들처럼 생활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조폭 전문해결사였다고나 할까? 암튼 알음알음 접촉해 오는 조직들의 오더를 받아 상대조직을 냅다 발라 준 다음 그럭저럭 오까네 좀 톡톡히 챙겼지.”
다시 흘깃 살피자 놈들 중 몇 명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