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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4화 (24/272)

024화. 물고 물리는 게임(2)

지태는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침대 시트를 머리끝까지 꽁꽁 뒤집어쓴 채 깊이 잠든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침입자들은 마침내 객실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복도에 켜진 옅은 조명 빛이 안으로 조금씩 파고들었다.

침입자들이 들어온 다음 방문은 이내 닫혔다.

객실 안은 다시 깊은 어둠에 파묻혔다.

두 개의 그림자가 서서히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침대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선 그들은 지태의 머리쯤으로 예상되는 곳에 거침없이 총구를 겨눴다.

그림자들끼리 사인을 주고받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실루엣이 새벽 여명 빛에 잠시 흔들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퓩, 퓨슉, 퓨슉!

마치 모래주머니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

그들은 지태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듯 시트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랬는데,

“헉!”

두 놈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피투성이로 죽어 있어야 할 지태가 보이지 않는 거다.

놈들이 황당함에 물들어 있을 때였다.

딸깍!

놈들의 등 뒤에서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세 객실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본능적으로 총구를 돌리며 바라본 그쪽에는 웬 낯선 사내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사내 역시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들고 있다.

두 놈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낯선 사내의 동작이 좀 더 빨랐다.

퓨슉!

명중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사내와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또 한 발의 총소리.

퓨슉!

그것 역시 단 한 발로 명중이었다.

두 번째 총격을 가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지태.

침입자 두 놈은 미처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손목을 관통당한 채 권총을 바닥에 떨구었다.

“어, 어떻게……?”

핏물이 솟구치는 손목을 부여잡고 아길라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지태의 입꼬리가 냉소를 퍼붓듯 올라갔다.

“어떻게 네놈들의 행동을 예측했느냐 이 말이지?”

“……!”

지태가 놈들 쪽으로 한 걸음 내딛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낯선 사내가 강철처럼 단단한 웃음을 뱉어냈다.

“후안! 당신이 나 대신 말해 주겠소?”

“그러죠.”

후안 안토니오.

그는 지태가 출국하기 전 조현민이 현지 바이어를 통해 소개해준 인물이었다.

올해 38세로 아길라와 라이안이 근무했다던 스카우트 레인지 연대의 상사 출신.

본래 계획대로라면 삼보앙가에서 합류해야 옳았지만, 조현민은 지태 몰래 마닐라에서부터 그로 하여금 그림자 경호를 하게 만들었었다.

지태는 그걸 이미 눈치를 챘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것이고.

“너희 두 놈이 탈영병이라는 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마닐라의 파울로와 카를로가 한패라는 것도 벌써 다 알고 있고. 또 손성희라는 년을 포섭해 마닐라에서 미스터 한을 털어먹으려 했던 것까지도 말이야, 이 새끼야! 이래도 발뺌할 거냐?”

말을 마친 후안이 두 놈을 보며 씩 웃었다.

이번엔 지태가 앞으로 나섰다.

아길라에게 바싹 다가선 지태는 놈이 떨군 권총을 발끝을 이용해 저만치 밀어낸 다음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제 네놈들의 계획이 뭔지 알아볼 차롄데. 어때, 순순히 불래?”

“뻐큐!”

아길라가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

지태는 독한 눈빛을 한 채 싸늘한 미소를 놈에게 흘려주었다.

그러더니 주저 없이 놈의 허벅지를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퓨슉!

“으으윽!”

아길라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자 지태는 벗어 놓았던 자신의 양말 한 짝을 집어 들고는 놈의 입안에 그대로 쑤셔 넣었다.

그사이 후안은 미리 준비한 노끈으로 라이안을 꽁꽁 결박하고 있었다.

입에 재갈까지 물리자 라이안은 곧 절망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떨궜다.

“개기면 개길수록 고통만 더욱 심해져. 그니까 솔직히 털어놓은 게 네놈 신상에 좋을 거다. 내 말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지태가 아길라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 대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 * *

사무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깜빡 잠이 들었던 카를로는 문득 배를 짓누르는 묵직한 느낌에 깨어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그의 배를 배게 삼아 잠들어 있었다.

얼마 전 술집에서 우연히 낚시질을 해 잡아둔 물고기였다.

오늘처럼 초조하게 밤을 지새우는 경우 가끔씩 사무실로 불러내 욕정을 채우는 수단으로 쓰고 있는 거다.

혼혈이 아닌 본토인이어서 얼굴은 그다지 성에 차지 않았지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까만 피부에 군더더기 없는 잘 빠진 몸매만큼은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조명 빛에 번들거리는 여인의 벗은 몸매를 보자 카를로는 벌써 두 번씩이나 정사를 치렀지만, 다시 또 슬그머니 욕정이 치솟았다.

카를로는 잠들어 있는 여인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야, 야!”

그녀가 귀찮은 듯 깨어나며 졸음에 포박당한 표정으로 게으른 눈꺼풀을 느릿느릿 깜빡였다.

카를로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이봐, 내 물건 성난 거 보이지? 어서 좀 달래 봐!”

여인은 쓴맛을 다셨다.

귀찮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이지만, 이내 순응하듯 카를로의 바지를 내리고 아랫도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제 막 입술을 대려는 순간 머리맡 협탁에 올려둔 카를로의 스마트폰이 잔망스럽게 울었다.

카를로는 여인에게 계속하라는 듯 고갯짓을 해보이고는 손을 뻗어 폰을 집어 들었다.

보디가드 중 한 명이었다.

“놈은 잘 처리했어?”

당연한 것처럼 묻고 있다.

하지만 폰 너머의 부하는 뭔가 몹시 꾸물대는 폼이다.

“확실히 끝냈냐고 묻잖아, 이 새꺄!”

- 저, 그게…… 두 놈 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보스!

“뭐, 뭐야? 그럼 얼른 올라가서 확인을 해야지, 새끼야!”

카를로는 스마트폰을 신경질적으로 협탁 위로 내던졌다.

분위기를 깨버린 부하의 보고에 이미 욕정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저리 치워, 이년아!”

카를로는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여인의 머리를 발끝으로 밀어 버렸다.

* * *

여섯 명의 보디가드가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거슬러 왔다.

모두 다 총기를 휴대하고 있었는데 넷은 권총, 두 놈은 M16소총을 소지하고 있다.

816호.

지태가 머물던 호텔 객실 앞이다.

황달기가 있는 듯 누리끼리한 눈빛에 광대뼈가 많이 도드라진 녀석이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를 밑으로 가만히 눌러 문을 조금 열어젖힌 녀석은 귀를 바싹 대고 객실 안의 동정을 살폈다.

실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녀석은 동료들을 향해 몹시 긴장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중 한 놈이 어서 들어가라는 듯 고갯짓을 해대자 권총을 고쳐 잡은 광대뼈가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쏟아지듯 우르르 들어선 여섯 놈은 여차하면 갈겨 버리겠다는 식으로 총구를 앞세웠지만, 눈에 들어온 객실 안 풍경은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먼저 두 손을 뒤로 결방당한 채 이마에 구멍이 뻥 뚫린 라이안이 바닥에 코를 박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아길라가 입을 떡 벌린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턱 아랫부분을 꿰뚫은 총알구멍이 보였다.

놈들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와중에 광대뼈 사내가 스마트폰을 들어 카를로에게 전화를 넣고 있었다.

* * *

카를로는 폰을 손에 든 채 타오르는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새끼, 어떻게 눈치를 챈 거야? 어젯밤 기분 좋게 두 놈한테 술까지 사줬다고 안 했어? 그렇다면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얘긴데 어떻게……?”

- 그, 그게 참으로 미스터리 합니…….

“변명은 집어치우고 어서 경찰서장의 창고로 가 봐. 놈이 물건을 빼돌려서 공항으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처리하란 말이야, 새꺄!”

- 예, 알겠…….

“아냐, 아냐! 굳이 시내 한가운데서 시끄럽게 굴 필요 없다. 일단 놈들이 창고에서 물건을 빼내는 것만 멀리서 지켜봐. 그러다가 공항으로 이동할 때 길목 중간에서 처리해 버려!”

- 예, 보스!

카를로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스마트폰을 협탁 위로 내던지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마음을 바꿨다.

그러고는 얼른 통화목록을 뒤져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넣었다.

* * *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짙은 빛깔의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를 깊이 눌러쓴 지태가 화물차 적재함에 커피를 싣는 일꾼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창고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건물 뒤편에서 지태를 감시하던 광대뼈 사내가 이빨을 오도독 갈아댔다.

“시발 놈! 기세 좋게 설쳐대는 것도 여기까지다!”

놈은 한 손엔 권총을, 다른 한 손엔 진주가 든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지태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뺨에 긴 칼자국이 새겨진 사내가 씩 웃더니 물었다.

“어디서 덮칠 거냐?”

“체육관 근처!”

광대뼈 사내가 짧게 뱉었다.

체육관이라면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 가까이에 있었다.

이곳 경찰서장의 개인 창고가 있는 산타 카탈리나에서 그곳까지는 넉넉잡아도 약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어차피 그 앞을 통과할 것이 분명하니만큼 그곳에서 덮치면 딱 좋을 것이다.

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점이라 시끄럽게 소란을 떨어도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곳이고, 지태의 무덤으로 삼기에 딱 좋은 명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진동으로 돌려놓은 스마트폰이 떨어댔다.

광대뼈가 잔뜩 긴장하며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예, 보스! 아, 그러잖아도 그쪽으로 유도하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광대뼈 사내는 카를로의 지시를 받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뭐라셔?”

칼자국 사내가 묻는다.

그 역시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체육관 근처에 군 검문소를 설치하라고 시켰대.”

광대뼈 사내가 툭 내뱉자 칼자국 사내는 그 정부군의 관계자가 누군지 알겠다는 듯 이내 끄덕인다.

카를로와 친분이 깊은 정부군 대위로 그들 역시 가끔 얼굴을 맞대는 사이였다.

광대뼈 사내가 고개를 쳐들었다.

물건을 다 실은 모양이었다.

화물차 기사를 뺀 네 명의 사내가 화물칸에 몸을 싣는 사이 지태가 천천히 조수석에 올라타고 있었다.

“야, 우리도 준비하자. 여기서 따라붙는 건 우리 둘이 할 테니까 너희 넷은 체육관 쪽에 미리 가 있어.”

광대뼈 사내가 칼자국 사내를 뺀 나머지 네 사내에게 말했다.

그가 여섯 중에 선임인 듯 그들은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지태가 올라탄 화물차가 창고를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하고 있었다.

물건을 가득 실은 화물차는 시속 50km의 속도로 도로 위를 천천히 달렸다.

약 10분쯤 달린 뒤 에반젤리스타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화물차를 광대뼈 사내가 운전하는 SUV차량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이대로 쭉 직진하다가 공항 가까이에 있는 삼거리와 마주한 지점에서 좌회전을 하면 곧장 체육관에 이르게 된다.

“새끼!”

광대뼈 사내가 유리창 앞에 올려놔둔 베레타를 보면서 씩 웃었다.

지태를 처리하고 물건을 빼앗아 복귀하면 보스로부터 두둑한 보너스가 내려질 것이다.

그 돈으로 몸매 잘 빠진 여자를 꿰차고 며칠 뻐근하게 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설렜다.

생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벌써 묵직해져 오는 희열을 느끼며 얼마쯤 달리자 공항 쪽과 가까운 삼거리에 다다랐다.

“자, 이제 왼쪽 깜빡이 넣으시고. 그렇지!”

화물차의 뒤꽁무니에 좌측 방향지시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광대뼈 사내는 중계방송을 하듯 연신 떠들어댔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은 화물차를 보며 광대뼈 사내가 액셀러레이터를 더욱 힘껏 밟았다.

이제 눈치를 보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는 거다.

어차피 체육관 앞에서 정부군들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화물차를 막아 세울 것이므로.

광대뼈 사내가 좌회전을 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화물차가 바로 눈앞에 들어왔다.

화물차는 뜻하지 않은 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보고 꽤나 놀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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