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신장까지 떼었는데(2)
전화를 끊은 지태는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지태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경광등을 요란하게 밝힌 패트롤카와 경찰들이었다.
지태는 후들거리는 걸음을 겨우 옮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흥건한 핏자국이 선명한 아스콘 바닥을 중심으로 폴리스라인이 쳐 있었다.
아버지의 이미 시신은 치워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반쯤 얼이 빠진 모습으로 다가오자 제복을 입은 경찰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섰다.
“뭡니까? 구경난 거 아닙니다. 저리 가세요.”
“…….”
귀에 들리지 않는 듯 경찰의 말을 무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지태의 어깨를 확 낚아챘다.
지태가 벌레를 털어내듯 한쪽 팔로 거칠게 뿌리치자 말리던 경찰은 힘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생각해 보니 열이 받치는 모양이다.
씩씩거리며 다가서려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50대 초반의 다른 경찰이 얼른 그를 막아선다.
고개를 가로로 내젓는 걸 보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 같았다.
벌써 냄새를 맡고 달려온 기자나 혹은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조금 전까지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에 다가와 기웃거리지는 않을 테니까.
중년 경찰은 지태가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가족 중 하나일 것으로 판단한 듯했다.
“고인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중년 경찰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경황이 없어 차마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장에 와서야 제대로 실감이 났다.
지태의 두 눈에선 얼음이 녹은 것처럼 차가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을 훔치며 지태는 천천히 뒤돌았다.
“제 아버지십니다. 지금 어디로 모셨죠?”
“고인의 품에 유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극단적인 선택이라 판단해 일단 안으로 모셨습니다만…….”
중년 경찰은 고갯짓으로 병원을 가리켰다.
지태는 묵묵히 돌아섰다.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것은 심약한 어머니 혼자일 것이다.
어머니마저 나쁜 마음을 품기 전에 어서 가봐야 한다.
지태는 이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펑펑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먹 쥔 손등으로 훔치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 * *
한바탕 꿈만 같은 현실이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문상객을 맞는 지태의 표정엔 지독한 공허감이 흘렀다.
아버지의 투신 이후 꼭 다섯 번을 혼절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거듭했던 어머니는 결국 병실에 입원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저리 유명을 달리한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깊은 자책에 빠진 것 같다.
당신의 입방정이 결국 이런 사달을 만들었다고 깨어날 때마다 울부짖었다.
‘엄마 잘못 아녜요. 이건 다…….’
지태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퀭한 눈빛에 작은 원망을 담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영정 속에서 근심 없이 환하게 웃는 아버지가 보였다.
‘이건 아니잖아요, 아버지. 이건 배신이죠. 비겁한 도망이라고요.’
마음속으로 원망을 털어낸 지태가 허탈하게 웃었다.
답답한 심장을 거슬러 올라온 한숨 한 자락이 쓴맛을 풍기며 새어 나온다.
소태처럼 쓰다.
그리고 지독하게 매웠다.
지태는 문득 검은 상복의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핏물로 물든 쪽지 한 장.
바로 지태에게 남긴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였다.
[옥상에 올랐다가 우연히 오열하는 네 엄마와 너를 보았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나를 짓눌렀다.
해서 고민 끝에 결심했다.
어차피 피 같은 돈을 쏟아 부어도 얼마 살지 못할 목숨이라면 차라리 남은 가족에게나마 그 고통을 줄여 주고 싶었다.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지태야.
그리고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안다만 심성만 착해 세상물정에 어두운 네 엄마, 나를 대신해 잘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부디 강하게 살아라!
나는 비록 그리 살지 못했지만, 너만은 이 험난한 세상의 온갖 어려움들을 이 악물고 잘 헤쳐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거운 짐만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 잘 살아라, 지태야!]
지태는 이가 부서질 듯 악물었다.
‘허! 모르셨구나, 아버지! 저 이미 독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두고 보시면 압니다. 이 아들 한지태가 얼마나 독하게 사는지, 얼마나 깡다구 있게 이 엿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가는지 두고 보시라고요.’
지태는 괴롭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밑으로 닭똥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똑 굴러 바닥을 적셨다.
* * *
지태는 원지동에서 화장을 마친 아버지의 유골을 분당 쪽에 모셨다.
서울에서 가깝고 입지 조건이라든가 시설 등이 좋아서 분양가는 비교적 높았지만,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지태는 곧바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 이면에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를 위한 배려가 더 컸다.
반려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호강시켜 주고 싶어 하실 어머니의 염원을 헤아린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 충격에서 채 벗어나질 못해 이곳엔 함께 오지 않았다.
장례를 위해 3일간 휴가를 낸 강성원이 그나마 지태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평소엔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거리낌 없이 농담을 내뱉던 그도 지금만큼은 지태의 눈치를 살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진 지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강성원은 힘들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은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지태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념하듯 서 있는 지태.
비록 입으로 내뱉지는 않고 있지만, 그 마지막 교감이 어떤 것일까 하는 것쯤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독하게 한 세상 헤쳐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여 주고 있으리라.
“가자, 성원아. 나 졸라 배고프다!”
침묵 속에서 땅이 꺼질 듯 한숨 한 번 내뱉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태가 돌아섰다.
그리고 처음 내뱉은 말이 그거였다.
“많이… 고파?”
강성원이 지켜본 바로는 3일장 내내 지태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 한들 이제 막 장례를 마친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배고프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어울리지가 않는 거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지태가 쓰게 웃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인마. 내가 말이다, 조금 전에도 울 아버지한테 약속했어. 졸라 독하게 살겠다고. 근데 깡다구를 부리기도 전에 배고파 쓰러지면 얼마나 쪽팔리겠냐. 안 그래?”
“!”
“농담 아냐, 인마. 나 진짜로 배고파!”
“시발! 말이 안 된다면 몰라도 그거 졸라 말이 되니까 웃기네. 까짓 거 가자. 내가 다른 날 같으면 안면몰순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큰맘 먹고 두 그릇 사 주마.”
지태는 강성원의 장담대로 시내로 나와 설렁탕에 밥을 두 공기씩이나 말아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하, 이제야 세상이 좀 똑바로 보이네.”
식당을 나오자 지태는 실성한 놈처럼 낄낄거리면서 잔뜩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그 웃음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는 듯해서 강성원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세상 똑바로 보이게 해줬으니까 내 은혜나 잊지 마, 인마!”
“알았다. 이 형아가 돈 많이 벌면 한몫 단단히 떼어 줄게.”
“당장 백수인 처지인 놈이 어느 천 년에…….”
강성원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자 지태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정색했다.
“나 새로 직장 구하는 거 때려치울 생각이다.”
“뭐?”
“진짜야, 인마!”
“리얼리?”
농담이 아닌 것 같아 강성원은 진중하게 물었다.
지태가 눈을 마주하며 끄덕인다.
일견 어떤 결심이 확고하게 서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럼 혹시 저번에 말한 그거 실행하려고?”
이번에도 지태는 곧바로 수긍하듯 끄덕였다.
“한 몇 년 커리어를 쌓은 다음에 독립할까 했는데, 이참에 그냥 내지르기로 했다.”
“그래도 지금은 좀 빠르지 않을까? 아직…….”
“알아, 나도! 아직 경력도 짧고, 쥐뿔도 가진 것도 없고, 다 부족하지. 그럼에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내가 가진 젊은 패기와 깡다구 하나면 당장 산 입에 풀칠은 못하겠냐?”
“하, 이거 참…….”
생각나는 대로 막 지껄이는 녀석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가슴에만 품었던 생각을 아버지의 장례가 진행되는 3일 동안 마침내 결심으로 뒤바꾸어 놓았을 뿐.
그럼에도 강성원은 조금 염려스러웠다.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태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 * *
아버지를 분당에 모신 지 보름이 훌쩍 지났다.
홀로서기를 위한 기초적인 시장조사와 자료 수집을 위해 외출하고 돌아온 지태는 어지럽게 널브러진 거실 풍경에 깜짝 놀랐다.
“뭐하세요, 엄마?”
거실 가득 의류들이 쏟아져 있었고, 평생 아버지가 썼던 물건들이 발끝마다에 채였다.
“남은 가족들 속 터지게 만들어 놓고 자기 혼자 맘 편하겠다고 가버린 사람이다. 뭐가 예쁘다고 좁은 집안에 물건들을 쌓아둬. 그냥 몽땅 다 갖다 버리고 말지.”
말은 퉁명스러웠어도 지태의 귀에는 결코 그리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어머니 나름의 방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태는 측은지심이 담긴 시선으로 잠시 내려다보다가 재킷을 주방 식탁 위에 던졌다.
팔을 걷어붙이고 쪼그려 앉자 어머니가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여긴 내가 할 테니까 넌 베란다에 있는 것들이나 치워라. 먼지 쌓이고 케케묵은 것들을 왜 그리도 끼고 살았는지 몰라. 손길이 가도 나보다는 더 갔을 거야. 생전 살갑게 굴지도 않던 양반이 저것들만큼은 평소에도 무슨 국보 다루듯이 했으니까.”
지태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운 모양이었다.
말 많은 불만이 타령조로 변해 가는 만큼 그리움의 무게나 깊이 역시 덩달아 상승한다는 것만 알면 된다.
지태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어머니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자코 베란다로 걸어갔다.
예전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아 미처 몰랐는데, 아버지의 수집품은 가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어머니의 말마따나 먼지 풀풀 풍기는 케케묵은 고서 종류가 그중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이다.
어머니는 가볍게 치워 버리라 말했지만, 결코 허투루 버릴 만한 물건들이 아니었다.
지태는 차곡차곡 쌓인 고서들을 위에서부터 한 뭉치씩 끄집어 내렸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서 다시 보기 좋게 정리해 쌓아둘 생각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꽤 걸렸고 등허리가 다 쑤실 정도였지만, 아버지의 손때 묻은 소중한 유품이라 여겨서인지 피곤한 줄은 몰랐다.
약 두 시간 가까이 몰두하다가 지태는 그제야 비로소 허리를 폈다.
“많기도 하다.”
천장까지 몇 단으로 쌓아 두었던 고서들은 이제 무릎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펴고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하자는 심정으로 허리를 돌리던 지태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서와 고서 사이에 낡고 오래된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둘둘 말린 기다란 물건을 집어 살펴보니 옛날 족자 같았다.
명주실 매듭으로 묶인 것을 풀어 헤치니 그 안에 꽂아 두었던 쪽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지태는 족자를 확인하기 전에 우선 그것부터 먼저 주워 펼쳐 보았다.
볼펜으로 뭔가 쓰여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것은 아버지의 필체였다.
[구한말 무역왕으로 불리던 최봉준의 처세 10조. 이것이 최봉준이 살아생전 손수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흥남에서 피란을 내려왔다는 연로한 실향민 노파에게서 일금 10만 원에 구입하다.]
쪽지엔 그렇게 메모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