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7화 (7/272)

007화. 이건 아니지, 새끼야!(3)

전화로만 통화를 했기 때문에 놈은 지태의 얼굴을 모른다.

다만 너무 경계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은 의심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주변을 훑었다.

지태는 휴대폰을 들어 강성원에게 어디쯤 왔는지를 묻기 위해 톡을 보냈다.

혹시라도 놈과 전화 통화 중일까 싶어 통화 대신 톡을 택한 거다.

[10분 후 도착! 놈하고는 도착해서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칼 갈아 놔라!]

톡을 확인한 강성원의 답이었다.

칼을 갈고 말 것도 없다.

이미 분노의 칼끝은 날카롭게 별러져 있었으니까.

약 10분이 못 되어 택시 한 대가 길 건너편에 섰다.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 강성원이 주변을 훑더니 지태와 눈이 마주치자 확인만 하고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지태는 표 나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의 옷차림이 좀 후줄근해 보이는 거다.

‘새끼, 누가 형사 아니랄까 봐.’

불쌍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니 거기에 맞춰 잠복 때 입으려고 가져다 놓은 허름한 옷을 주워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지태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곧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강성원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슬슬 작업에 들어갈 시간이다.

지태는 돌출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지극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병원 정문 옆에 자리한 편의점 간이 테이블 의자에 걸터앉았다.

* * *

전화를 기다렸던지 사기꾼 녀석은 벨이 두 번 울리자 잽싸게 받았다.

- 여보세요.

“예, 접니다. 지금 병원 앞에 와 있습니다.”

불쌍한 캐릭터로 빙의한 강성원은 어설픈 목소리 연기를 선보이며 응답했다.

- 아, 그러십니까? 내가 가던 중에 급한 연락을 받아서 중간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럼 오늘 약속을 미루자는 말씀이신지……?”

강성원은 더욱 간절하고 애틋한 심정을 담아 물었다.

그러자 그쪽이 더 간절한 모양이었다.

얼른 부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닙니다, 아녜요. 좀 수고스럽겠지만, 선생께서 이쪽으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만…….

순간 강성원이 속으로 쓰게 웃었다.

‘어쭈, 이 새끼 봐라? 선순데?’

강성원은 만약을 대비해 간을 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를 놈의 시선을 피해 속으로 다시 한번 조소를 흘린 다음 새 약속 장소를 물었다.

브로커가 문자로 위치를 찍어 왔다.

강성원은 문자를 확인하는 척하며 지태에게 조심히 따라오라는 톡을 날렸다.

그러고는 택시를 잡아탔다.

지태가 택시를 잡아 따라올 수 있게 당연히 눈치껏 시간을 벌어 주었다.

새로 정한 약속 장소에 다다르자 놈은 한 번 더 핑계를 대며 약속장소를 바꾸었다.

마약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첩보 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구는 걸 보면 놈은 둘 중 하나였다.

꽤나 신중하거나 아니면 예전에 많이 데어 본 기억이 있는 놈이라는 것.

총 네 번에 걸친 장소 변경 끝에 강성원은 마침내 놈과의 숨바꼭질을 멈췄다.

그가 대로변에서 걸어 들어와 멈춰선 곳은 동대문구 전농동의 어느 골목이었다.

예전엔 집창촌 골목으로 그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곳, 속칭 588골목이었다.

강성원은 놈을 만나는 즉시 검거하려고 마음먹었지만, 혹시 일이 잘못될 경우를 생각해 선배 형사로부터 빌려온 300만 원이 든 봉투를 들고 주변을 힐끔거렸다.

미국 메이저 N구단의 모자를 꾹 눌러쓴 젊은 녀석 하나가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강성원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에 맞춰 강성원은 재빨리 이보다 더 불쌍한 표정은 없을 만큼 슬프고도 절실한 연기를 펼쳤다.

그게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무심한 척 스쳐 지나갔던 녀석이 방향을 다시 바꿔 되돌아오고 있었다.

‘새끼, 다가오기만 해 봐라! 바로 따 버릴 테니까.’

3보 전, 2보 전, 그리고…….

“저, 혹시 전화 주신 강성원 선생 되십니까?”

녀석이 말을 걸어온다.

“예. 제가 전화 드렸던 강성원입니다.”

강성원은 대꾸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오만 잡생각이 교차했다.

이걸 지금 따야 하나, 아니면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하나 갈등을 때릴 때였다.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톡이 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펴보니 지태다.

[딱 봐도 놈은 똘마니다. 주범을 잡게 그냥 돈 건네주고 넌 뒤로 빠져. 내가 그 새끼의 뒤를 밟을 테니까.]

강성원은 입맛이 썼다.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빌려온 300만 원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은 물론 사기꾼들까지 놓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태였다.

강성원은 친구의 능력과 실력을 믿기로 했다.

“대부업자한테서 문자가 왔네요. 일주일 안으로 원금을 갚지 않으면 제 몸에 있는 모든 장기를 다 떼어서 팔아 버리겠답니다.”

강성원은 거의 울상인 채로 절망의 눈빛을 보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연결을 시켜 드려야겠네요. 저희 형님께 말씀드려서 1순위로 작업 들어갈 수 있게 해드리죠.”

젊은 양아치가 생색을 내며 씩 웃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강성원이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감사의 예를 표하자 녀석은 다시금 씩 웃고는 연신 손을 까불어댔다.

고마우면 어서 그 돈을 내놓으라는 거다.

“아, 여기!”

강성원은 깜빡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톡 치고 돈 봉투를 내밀면서도 순간 멈칫했다.

지태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다른 한편 불안한 마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낚아채듯 돈 봉투를 가져간 젊은 양아치가 주변을 본능적으로 훑고는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가더니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강성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무지 쓴 입맛을 다셨다.

* * *

큰 힘 들이지 않고 거금 300만 원씩이나 챙겼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브로커로 보이는 녀석이 운전하는 승용차는 마치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신이 나 보였다.

“놓치지 말고 바싹 따라가십시다.”

지태가 택시기사를 재촉했다.

“형삽니까?”

제법 덩치도 있고 이를 악다문 모습이 형사로 오인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지태는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을 쫓고 있는 중인가 보군요. 그렇담 10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제대로 보여 드려야지.”

택시기사는 버스 전용차로를 넘나들며 요령껏 브로커의 뒤를 쫓았다.

지태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 강 형사! 이제 방금 왕십리를 막 지났다. 넌 지금 어디쯤이냐?”

- 웬 강 형사?

새삼스럽다는 듯 강성원이 되물었다.

택시기사가 형사로 오인하고 있으니 장단을 맞춰주려는 것뿐인데 자꾸 딴죽을 걸어오니 지태의 목청이 높아졌다.

“시끄럽고, 새꺄! 암튼 잘 따라와. 지금 중곡동 쪽으로 들어섰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지태가 앞을 노려보며 다시금 아프게 이를 악물었다.

브로커의 승용차는 화양사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한 뒤 다음 사거리에서 성수동 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요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온 지태는 3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며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듯 숨을 골랐다.

녀석들이 올라간 계단을 따라 밟아가니 2층에 두 개의 사무실이 보였는데, 한곳의 출입문 앞엔 인근 섬유공장의 자재 창고인 듯 원단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와 마주한 사무실엔 아무런 간판이나 팻말이 붙어 있지 않았다.

지태는 직감적으로 이게 놈들의 아지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출입문의 손잡이를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돌린 후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사무실의 동태를 살폈다.

말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요즘처럼만 호구들이 꽉꽉 물어 준다면 우리 금세 재벌 되겠습니다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호구들이 제 발로 물어 줄 때 팍팍 땡겨야 돼. 그니까 열심히 스티커나 붙이고 다녀. 알았어?”

“알겠습니다요, 형님. 근데 오늘 보너스 좀 주실…….”

“시꺼, 이 새끼야!”

타악!

“아얏!”

곧 뒤통수 후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구시렁대는 젊은 양아치의 목소리도 들렸다.

지태의 입술 끝이 비틀리며 올라갔다.

저음에 탁한 목소리, 바로 지태와 통화를 했던 그놈이었다.

이제는 망설일 것이 없다.

지태는 거침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뭐, 뭐여?”

브로커 놈이 돈을 세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고, 젊은 양아치 놈은 순발력 있게 낡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셔?”

놈은 겉모습으로 지태의 신분을 유추해 내려는 듯 재빨리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나 곧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폼이 같잖았다.

경찰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듯했다.

지태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길로 씩 웃었다.

“쪼개지 말고, 시발! 귀머거리셔? 누구냐고 물으시잖어, 내가요!”

“너희들이 무서워하는 짭새는 아니니까 걱정 마라.”

“시발, 짭새라면 우리가 무서워하는 줄 아나. 그럼 무슨 볼일을 보러 왔는데?”

“차라리 짭새 불러 달라고 네놈들이 애걸복걸 빌게 만들려고!”

지태가 입술 끝을 비틀며 다시금 싸늘하게 웃었다.

젊은 양아치의 눈빛에 신경질이 일었다.

그러고는 중지를 곧추세웠다.

“이거나 까 드셔!”

휘익.

형사는 분명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몇 대 두들겨 놓고 찾아온 용건을 물어보려는 모양이었다.

젊은 양아치가 대뜸 거친 주먹부터 휘둘러왔다.

학창 시절엔 제법 침깨나 뱉어 봤고 삥깨나 뜯어 봤음직한 솜씨.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태의 눈엔 그저 어린아이의 애교로밖엔 안 보였다.

터억.

날아오는 주먹을 왼손바닥으로 가볍게 말아 쥐며 원을 그리듯 녀석의 등 뒤로 크게 비틀어 밀어 넣었다.

“아아아아아-.”

날갯죽지가 뜯겨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다.

녀석은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질러 댔다.

이놈은 브로커의 똘마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같은 족속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어설프게 건드려만 놓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태는 새우 등처럼 굽은 녀석의 등허리에 거침없이 엘보를 꽂아 넣었다.

쩌억!

“헙!”

짧은 비명과 함께 깨진 달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넌 똘마니 역할만 했으니까 살려는 드릴게, 이 새꺄!”

지태가 비릿한 미소를 띠더니 녀석의 무릎 관절을 사정없이 내밟았다.

힘을 조금 더 보태니 아예 자지러진다.

뚜두둑!

그리고 이내 무릎 뼈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비명도 비로소 끝이 났다.

지태는 시선을 들어 브로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신의 똘마니가 어찌 당했는지를 정면에서 목도한 뒤다.

놈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듯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지태를 쳐다보았지만, 차마 눈은 마주치질 못했다.

지태가 검지를 까불어댔다.

“이놈은 공범이니까 최하 병신을 만들었는데, 넌 주범이니까 어찌 될 거 같냐?”

“너, 뭐 하는 새, 새끼야?”

그래도 깜냥에 마지막 자존심은 살아서 주절거린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폼이 뭔가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갖다 놓은 알루미늄 야구배트가 눈에 들어왔다.

손만 뻗으면 금세 닿을 거리.

지태는 놈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가만히 두고 보았다.

어차피 연장을 드나 맨손이거나 상관은 없으니까.

이런 놈 하나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말이다.

지태가 핏빛 비린내 나는 미소를 흘리다가 곧 이를 악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냐? 내 눈물 나는 간절함을 너 같은 개새끼한테 사기당한 사람이라고 하면 알아 처먹겠냐?”

악문 잇 사이로 분노 어린 설명을 내뱉자 그제야 놈은 지태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얼마 전 전화로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해낸 것이다.

“씨벌, 제대로 똥 밟았네.”

놈이 신음성 같은 한마디를 흘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