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이건 아니지, 새끼야!(2)
- 아, 중요하죠. 얼마나 다급하고 절실하면 제 몸 일부를 떼어 팔려고 하겠습니까. 거두절미하고 다른 데선 최대 5천만 원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맥이 두터워서 최대한 제공 고객님들께 더 많은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얼마를 줄 거냐고?
지태는 그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꾹 참았다.
- 저희가 최대로 받아 줄 수 있는 금액은 신장 8천, 간은 이보다 좀 더 많습니다, 1억!
사내의 말마따나 다급하고 절실한 판국에 8천만 원이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절반은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사내가 목소리에 좀 더 힘을 밀어 넣었다.
- 요즘 기다리는 분들에 비해 제공하려는 분들의 수가 좀 적습니다. 지금이 몸값을 제대로 높일 수 있는 적기라는 거죠. 마음을 굳혔으면 빨리 진행하는 게 좋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진행해야 합니까?”
- 기다리고 있는 분들과 조건이 맞는지를 알아보려면 먼저 검사가 필수겠죠?
“그렇겠죠.”
- 장기 거래가 불법인 건 당연히 아실 테고.
“그렇죠.”
- 그래서 조심스럽게 진행을 해야 합니다. 먼저 저희 쪽과 조인을 맺고 있는 병원이 있어요. 저희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예약을 해놓을 테니까 지정된 날짜에 가서 검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아, 그래요?”
- 일단 지금 바로 선생님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문자로 보내 주시면 되구요. 내일쯤 병원으로 확인을 해보시면 될 겁니다. 우선 검사비는 저희 쪽에서 대납하겠습니다.
검사비를 먼저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네가 우선 대납을 하겠다니 사기를 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지태는 사내에게 자신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문자로 보내 줬다.
이튿날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검사를 받을 병원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러면서 예약이 됐는지 직접 확인을 해 보라고 했다.
지태는 사내가 일러 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니 진짜로 예약이 되어 있다.
곧 문자로 답장을 주었다.
[예약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내로부터 이내 전화가 걸려왔다.
- 선생님 이름으로 예약되신 거 확인했으면 저희가 대납해 드린 검사비를 입금시켜 주셨음 합니다. 간혹 변심하여 취소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럼 저희가 큰 손실을 입는 거라서…….
그러면서 지금 당장 입금을 안 해주면 진행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을 해 왔다.
지금껏 그의 말에 수상한 점은 없었다.
더구나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검사비가 얼맙니까?”
-저희 쪽과 조인을 맺은 곳이라서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쌉니다. 다른 곳은 보통 300만 원 정도 하는데 우린 250만 원에 해주기로 했어요!
사내는 싸다고 했지만, 지태는 속으로 ‘헉!’ 하고 놀랐다.
무슨 놈의 검사비가 그리 비싸!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어쩌겠나, 달라면 달라는 대로 보내줄 수밖에.
지태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자로 계좌번호를 찍어 달라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오늘도 취업 사이트를 뒤지며 지겹게 시간을 때우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병원으로 달려온 지태가 아버지의 수발을 드는 사이 어머니 역시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곧장 왔다.
어머니의 얼굴은 요사이 족히 십 년은 더 늙어보였다.
근심 걱정으로 웃음기를 잃은 어머니의 표정엔 짙은 그림자가 그 자리를 대신 메꾸고 있었다.
진짜로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가족 보기가 미안해 애써 외면하는지는 몰라도 두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지태는 어머니를 밖으로 불러냈다.
“엄마, 어쩌면 돈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우리 집안 사정을 뻔히 알 텐데 누가 돈을 빌려주겠어?”
“부장님이 연대 보증을 서 주신다네요. 그럼 은행에서 최대 8천만 원까지 추가대출을 해준대.”
“아이고, 네 말마따나 사람이 결코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녀는 기뻐하다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지난번 대출받은 금액 3천만 원에 추가로 8천만 원을 더 대출받게 되면 도합 1억이 넘는 돈이다.
그것으로 우선 급한 불은 끄겠다만 이 많은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가 또 다른 근심으로 다가오는 거다.
“에고, 못난 부모 잘못 만나 우리 아들만 죽도록 고생시키겠네.”
어머니는 신음처럼 탄식을 내뱉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 흐느끼는 것 같았다.
지태가 쪼그리고 앉으며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괜찮아, 엄마! 그깟 돈, 조금만 아껴 쓰면 금세 갚을 수 있어요. 승진하면 월급도 오를 테고. 엄마, 아들 못 믿어? 나 엄마 아들 한지태야! 회사에서도 유능하다고 소문이 났어요. 그니까 부장님이 선뜻 보증까지 서 주지.”
“그러게. 우리 아들이야 늘 장하지. 그나저나 부장님이 너무 고맙다. 언제고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려야 할 텐데…….”
어머니는 흐느끼는 그 와중에도 지태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곧 부장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는데, 그 순간 지태의 인상은 절로 구겨졌다.
어머니가 고마워해야 할 부장이라면 양태식인데, 빈말이라도 그는 결코 고마워 할 대상이 아니었다.
* * *
며칠이 후다닥 흘러갔다.
지태는 매양 피씨방으로 출근하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지만, 병원 측에서는 까마귀 고기라도 삶아 먹은 듯 깜깜무소식이었다.
또다시 병원비를 정산해야 할 날짜는 다가오는데 은행 잔고는 이제 슬슬 밑바닥을 보여 가는 형편이었다.
지태는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지태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지태라고 합니다. 신장이식 공여를 위한 검사 예약을 해 두었는데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 한, 지, 태 씨……. 한, 한, 한…… 어? 없는데요?
“없다니요? 내가 며칠 전 전화로 확인했을 때 분명 예약이 돼 있다고 했는데?”
- 예, 그랬는데 그 다음 날 바로 취소가 됐어요.
지태는 넋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 먹먹했다.
‘허!’
황당함을 안은 채 지태는 스티커 속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님의 사정으로 당분간 통화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기다!
혹시나 했는데, 불길한 느낌은 예상에서 한 치도 비켜가질 않았다.
“이런 개새끼!”
오죽하면 자기 몸을 떼어 팔 생각을 했을까.
한데 막장까지 내몰린 그런 절실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사기 치다니.
지태는 가슴속에서 피가 끓었다.
* * *
“뭐어? 그런 곳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믿고 돈을 입금했다고? 이런 어리바리한 새끼! 얀마! 그 새끼들 백이면 백, 다 사기꾼들이야. 어휴, 이걸 어따 써먹냐!”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해서 지태는 광수대가 있는 종로로 넘어갔다.
카페에 들어와 사기당한 이야기의 전말을 말해 주자 강성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진하게 타박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혀를 찼다.
“이 새끼, 이거 영 헛똑똑이네. 얀마! 아이고, 참…….”
강성원은 속이 타는 듯 냉수를 벌컥 들이켰다.
“속은 내가 더 터져, 새꺄! 아무소리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줘. 그 폰 추적 안 되겠냐?”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수신 정지 시켜 놓은 모양인데, 뭘! 그리고 어차피 대포폰이야. 쫓기 힘들어!”
“이 개새끼를 당장 잡아서 모가지를 비틀지 않으면 내 성질에 내가 먼저 죽을 거 같다.”
“그러게 왜…. 하아!”
강성원은 답답한 마음에 뭔가 또 잔소리를 퍼부으려다가 애써 꾹 삼켰다.
대신 소리 죽여 날숨을 내뱉고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이 새끼, 너 하나로 그만둘 새끼가 아니다! 그렇담 다른 대포폰으로 스티커 작업을 하고 다닐 거야. 벌써 너 같은 호구를 또 물었을지도 모르고.”
“……!”
일부러 속을 긁으려는 것은 아닌 듯해서 지태는 그냥 떫게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강성원 역시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는 듯 지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역으로 놈들한테 작업을 들어가자는 거야.”
“새로 붙인 스티커로 다시 전화를 하자?”
“그래. 네놈 목소리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이번엔 내가 호구가 돼 줄게.”
“말하자면 함정수사 같은 거냐?”
“친구 새끼 하나 잘못 둔 덕분에 내가 광수대 가오 안 살게 이 짓거리까지 다 한다, 인마!”
강성원이 밉지 않게 흘겼다.
지태는 고마운 눈길을 보내고는 속이 타는 듯 냉수를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성원이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근데 진짜 신장을 떼어 팔 생각을 한 거냐?”
“그럼 어쩌냐. 병원비며 약값 댈 돈은 다 떨어져 가는데…….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 말…….”
강성원은 내뱉던 말을 삼켰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강성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현재 형편이 도움을 줄 처지가 아니라서 그 한숨 속에는 깊은 자괴감마저 풍겨 났다.
강성원을 사무실로 올려 보내고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 지태를 어머니가 밖으로 불러냈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 너무도 일찍 병원에 온 것을 가지고 그러는 듯했다.
“너 요즘 회사에 무슨 일 있는 거니?”
“왜요, 엄마?”
“요즘 들어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거 같아서.”
“아버지의 병세를 아니까 회사에서도 배려를 많이 해 줘요. 근데 엄마야말로 왜 벌써?”
그러자 어머니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해갔다.
“주방 일에도 뒷배가 필요한가 봐. 나 말고 형편 어려운 친척을 데려다 쓰겠다는데, 내가 뭐 할 말이 있겠니.”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잘렸다는 이야기다.
“잘됐어요. 나 사실 엄마가 식당에서 주방 일 하는 거 별로였어. 이제부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아버지 병간호나 해 줘요.”
“이 많은 짐을 너한테만 다 뒤집어씌워 놓고 나 혼자 어찌 편하라고…….”
마음 여린 어머니가 다시 울먹인다.
이래저래 마음 고달픈 것은 그 자신이지만 지태는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아들을 잘나게 만들어 놨으니 이만큼이라도 하는 거야. 이게 다 엄마 아빠가 잘 키워준 덕분이니까 당연히 그 이자 받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엄마!”
“에그! 어느 것 하나 버릴 데 없는 내 새끼! 우리 아들,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누.”
어머니는 지태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 * *
신장 밀매 사기꾼을 꼭 잡아야겠다고 장담했던 강성원에게서 문자가 날아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목소리를 확인해 보라는 문자와 함께 음성 파일 하나를 보내 왔다.
음성 파일을 열고 두어 마디를 들으니 더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딱 그놈이었다.
지태는 곧바로 강성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100% 그 새끼야. 근데 너한텐 뭐라디?”
- 레퍼토리야 똑같지.
“예약 전화 확인해 보고 돈부터 입금하라대?”
- 그래서 내가 이거 잘못되면 나부터 죽을 거라고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일단 만나서 두 눈으로 확인한 다음 직접 돈을 넘겨주기로 했어.
“잘됐다. 그래서 언제 만나기로 했는데?”
- 조금 이따가 예약됐는지 확인 전화해 본 뒤에 내가 다시 연락 준다고 그랬어.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까?”
- 그러든가. 암튼 예약한 병원 근처로 약속 장소를 잡을 테니까 그 근처에서 전화 줘라. 혹시 놈들이 감시할지 모르니까 우리 둘이 만나는 건 삼가는 걸로 하고.
지태는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에게 강성원을 잠시 만나고 오겠다고 하고선 서둘러 병원을 나섰다.
며칠 전에 예약의뢰한 병원이라서 찾아가는 것은 쉬웠다.
60병상 정도를 갖춘 병원이었는데, 놈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병원 관계자가 사기꾼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지태는 병원 건물을 흘깃 올려다보고는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어떤 새낀지…….”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낮게 으르렁거리던 지태는 신음성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