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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3화 (3/272)

003화. 엎친 데 덮친…(3)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은 지태가 놀라 되물었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할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네 아빠가 가방 끈은 짧고 비록 폭삭 망하긴 했지만, 갖춰 입으면 옷맵시 하나는 제법 그럴싸하잖아. 품위가 있다고 인력 송출 회사에서 잘 보셨던 모양이야.”

그것은 지태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태의 본질은 그게 아닌 것이다.

“근데 왜 다친 건데요? 왜 저렇게 누워 계시는 거냐고?”

얼핏 살폈어도 그건 맞아서 생긴 부상임에 틀림없었다.

“마, 맞았다고 하더라. 흑!”

어머니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견고한 의지의 성채가 끝내 무너진 것이다.

차마 말을 끝까지 다 맺지 못하고 격정에 못 이겨 흐느꼈다.

“누, 누구한테? 아, 울지만 마시고 말 좀 해봐요, 엄마!”

지태는 아버지가 맞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미 침착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속에서 뭔가 훅 솟구치는 기분이었지만, 애써 누르며 참았다.

지금은 가해자가 누구인지부터 듣는 게 우선일 테니까.

분노는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회사의 사장이라더라. 인사를 하는데 허리가 덜 굽혀졌다는 이유로…….”

“이 개새끼!”

부경물산의 대표이사라면 임경남이다.

그는 재계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경그룹의 회장, 임상만의 외아들이었다.

이전에도 툭하면 운전기사를 갈아치우거나 폭행하는 등의 갑질을 해서 매스컴을 탄 전력이 몇 번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지태는 극심하게 밀려오는 분노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

온 치아를 다 부숴 버릴 것처럼 악문 양 볼이 경련을 일으키듯 심하게 일렁거렸다.

“알겠어요,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뭐, 뭘 어떡하려고. 설마 너… 그래선 안 된다, 지태야!”

일단 꼭지가 돌면 앞뒤 안 가리는 지태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어머니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 글쎄 알아서 한다고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내지른 지태는 이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보다 가슴 아파할 애먼 어머니에게 신경질을 부린 것이 미안했다.

“그냥 좋은 쪽으로 잘 해결할게. 근데 아버지는 치료를 더 받아야 된대요?”

지태는 미안함에 화제를 얼른 돌렸다.

비록 타박상이 있긴 했지만, 그리 큰 부상은 아닌데 퇴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오기 전이라 잘은 모르겠는데 니 아빠가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 가슴 통증도 호소했나 보더라. 그래서 갈비뼈가 잘못돼 어디 장기를 찌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씨틴가 엠알아인가를 찍어 보자고 했어. 결과 나오는 거 보고 퇴원하라더라.”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병원 안으로 다시 돌아온 지태는 조금 전 나눴던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다시금 이를 갈았다.

그리고 병실 밖 복도의 나무 의자에 앉아 밤을 꼬박 지새웠다.

어머니는 당신 혼자 병실을 지킬 테니 넌 그만 들어가라 했지만, 지태는 끝끝내 고집을 피웠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출근할 직장도 없었다.

* * *

날이 밝자 지태는 아버지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에게 출근을 한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밤새 가눌 길 없는 분노를 삭이느라 지태는 몸무게가 10kg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지태는 가까운 전철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출근 시간대의 번잡함 속에서 약 40여 분을 달려 그가 도착한 곳은 부경물산 사옥이었다.

사옥 앞 현관이 곧이 바라다 보이는 광장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지태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를 구타한 임경남을 향한 분노의 이면에는 현재 자신이 처한 막연하고 암담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숨의 의미는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봐야 옳았다.

자신은 이제 아침마다 출근할 데가 없는 그야말로 백수인 것이다.

그렇게 끝 모르게 치미는 분노와 어떤 알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 마구 교차하는 기분 속에서 지태는 임경남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오전이 다 가도록 임경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오전 근무를 마친 부경물산 직원들이 다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임경남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지태는 입술을 굳게 깨물며 안내데스크로 걸어 들어갔다.

“저, 오늘 사장님 출근 안 하셨습니까?”

지태는 상냥한 미소를 날리는 데스크 여직원을 보며 물었다.

환하게 벌어졌던 미소가 순간 지워지더니 여직원은 약간 긴장하며 지태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 디서 오셨는데요?”

“선우글로벌의 한지태 대리라고 합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사장님의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는지……?”

지태가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선우글로벌의 명함을 내보이며 말하자 여직원은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표정은 마치 ‘너 따위가 감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귀찮다는 듯 싸늘하게 뱉었다.

“사장님은 오늘 그룹 사장단 회의 때문에 여기 안 오세요.”

“그럼 그룹 본사에 들어가셨습니까?”

“더는 말씀 못 드려요. 바쁘니까 그만 나가 주시겠어요!”

이미 안면을 바꾼 여직원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태는 돌아서다가 문득 회전문 근처로 시선을 돌렸다.

목에 깁스를 한 듯 뻣뻣하게 오가는 고위 임원들에게 연신 허리를 꺾어 대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저런 모습으로 이곳에 서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태는 가슴이 미어졌다.

잔뜩 억눌렀던 분노가 일시에 고개를 쳐들고 치솟는 기분이었다.

지태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전철역으로 향했다.

* * *

그룹 본사는 계열사와는 그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룹 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공간인 까닭도 있겠지만, 오늘은 계열사 사장단이 총출동한 날이어서 그런지 오가는 직원들은 차분하면서도 은근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곳 로비는 중년 이상의 경비원 대신 젊은 보안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까만 정장 차림에 반듯한 모습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어설프게 들어섰다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로비에서 내쫓길 것 같았다.

지태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직원들이라면 서둘러 복귀해야 할 시간이지만, 그룹 고위 임원들이나 계열사 사장단 정도면 아직은 여유 있게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들이 모두 업무에 복귀했을 무렵부터 고급 승용차들이 하나둘 현관 앞에 도착한다.

대개 5~60대 이상의 사장단들이 모습을 드러낸 뒤로 유난히 눈에 띄는 승용차가 들어섰다.

한눈에도 국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최고급 외제 스포츠카였다.

보안팀장이 손수 달려가 문을 열어 준다.

지태는 본능적으로 그놈이라는 것을 느꼈다.

뒷좌석에서 내린 30대 중반의 그는 마치 대통령의 행차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순간 지태가 몸을 날리듯 달려갔다.

그러고는 이제 막 회전문을 통해 들어서려는 임경남의 뒤에 대고 외쳤다.

“이봐, 임경남 사장!”

흠칫.

어느 놈이 감히 제 이름을 함부로 부르나 싶어 임경남은 흘깃 돌아보았다.

“뭐야, 저 새끼!”

임경남이 인상을 구기자 보좌하던 중년의 비서실장이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혹시 물산에서 잘린 직원이 아닐까 싶은데…… 죄송합니다, 얼른 조치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보안 팀에 대고 낯을 붉히며 인상을 써댔다.

“인마, 너희들 똑바로 안 해?”

보안팀장이 불에 덴 듯 놀라며 근처의 보안팀원들을 급히 불러들였다.

“야, 너희들 뭐해, 인마. 저거 빨리 치워 버려!”

근처에 있던 열 명 남짓한 보안 요원들이 지태 쪽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지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또 임경남을 불렀다.

“야, 임경남! 이 개새끼야, 너 거기 서! 얼른 서라고, 이 새ㄲ…….”

순간 지태의 입이 누군가의 손에 틀어 막혔다.

그리고 이내 몰려든 보안 요원들에 의해 팔다리가 잡혔다.

“놔, 이거 놔, 이 새끼들아!”

지태는 입을 틀어막은 누군가의 손바닥을 물어뜯고 다시 임경남을 불러 댔지만, 그는 이미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해 버린 뒤였다.

“야, 임경남! 야, 상놈의 새끼야. 어디서 싸가지 없이 아버지 같은 분을 두들겨 패, 시발 놈아. 야, 이 호래자식아!”

그 순간 주먹이 날아와 지태의 복부에 꽂혔다.

보안팀장이었다.

경비를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룹 회장의 외아들에게 찍혔다.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그에게 찍혔으니 그 후폭풍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는 단 한 번의 펀치로는 도무지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재차 화풀이 주먹을 날려 왔다.

지태가 눈을 부릅떴다.

분노의 대상을 눈앞에서 놓쳤으니 응축된 그 많은 에너지를 어찌 다 감당할 것인가.

지태는 전신을 붙들고 있는 보안 요원들의 손길을 옥수수 털 듯 훑어내며 흡사 상처 입은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악!”

투두둑.

퍽, 퍽, 퍼버벅.

보안 요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태가 다시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무사트의 시스템 중 하나인 근접 격투술로 응수했다.

근접해있는 적을 처리하는 데 최적화된 무술인 만큼 한꺼번에 달려드는 보안 요원들을 처리하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급소를 타격당한 요원들이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자 2선에 있던 요원들이 지태를 중심으로 빙 둘러쌌다.

요원들 개개인은 하나같이 무술 유단자였다.

그들은 조금 전 눈앞에서 나가떨어진 동료들을 지켜보았음에도 지태를 얕잡아 보는 표정이 역력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 엉겁결에 당한 것뿐이라고 지레 무시해 버리는 것 같았다.

더구나 상대는 혼자다.

깜냥에 무술 유단자에 대 부경그룹 본사를 지키는 보안 요원들인데 이까짓 샐러리맨 하나쯤 감당하지 못하랴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몸 안에 내재된 분노를 당장 분출하지 않으면 금세 미칠 것만 같은 지태를 건든 것이 그들의 최대 실수였다.

퍼러럭.

지태가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파파파팟.

내려오는 회전 속도로 곧게 뻗은 발을 흩뿌리자 서너 명의 보안요원들이 머리통과 턱 등을 부여잡고 나자빠진다.

보다 못한 보안팀장이 슈트 안쪽에 매달고 있던 삼단봉을 빼들고 덤벼들었다.

휘웅.

슈욱, 쓕!

팀장답게 팀원들과는 달리 제법 몸놀림이 가볍고 좀 더 매서웠다.

그러나 후끈 달궈진 지태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너무도 어설퍼 보였다.

지태가 오른발을 뒤로 한 걸음 물리며 삼단봉의 예봉을 피한 후 그 상태에서 바로 돌려차기를 날렸다.

빠각.

헛손질에 미처 중심을 못 잡은 중에 날아온 지태의 발길질이 보안팀장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닿았다.

쩌억, 털푸덕!

지태가 달아오른 숨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바닥을 뒹굴던 팀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들은 각자가 소지하고 있던 가스총이며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보안팀장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라서 그중 선임 한 놈이 명을 내린다.

“저 새끼한테 인정사정 봐줄 거 없어. 한꺼번에 다 조져!”

그러자 겨우 몸을 추스른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태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기왕 임경남에게 분풀이를 하지 못할 바에야 이놈들에게라도 마음껏 분노를 내뿜을 생각이었다.

지태가 달려드는 팀원들을 향해 이제 막 허공에 몸을 띄우려 할 때였다.

“다들 그만둬욧! 지금 여기서 뭣들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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