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적응기(1)
이안이 중간계를 떠나 우주를 항해한 지도 언 1년째.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1년 내내 우주선 안에만 갇혀있던 이안에겐 지루하고 권태로운 시간이었다.
‘설마, 제작자가 준 좌표가 틀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제작자가 좌표를 기록한 것은 수백 년 전이었으니, 당연히 예상했어야 할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안은 그 사실을 간과해버렸고.
“…뭐야, 저 악어대가리는?”
그 결과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사실, 악어대가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무력의 한계보다 더 강한 힘을 쥔 이안에겐, 인간이나 악어인간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문제는.
“저 우주선이란 말이지….’
겉보기에는 이런저런 고철들을 그러모아서 얼기설기 붙여놓은 것 같은 엉성한 형태.
하지만, 고철들 사이사이로 함포로 보이는 길쭉길쭉한 것들이 언뜻언뜻 드러나 있는 모습이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가진 병기들이 놈에게 얼마나 통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가 가진 인류연합에 대한 지식은 600년 전의 것이다.
말이 600년이지. 고작 10년만 하더라도 기술격차를 좁힐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안이 방심할 수 없는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미미르, 어떤 거 같아?”
결국, 이안은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자의 지식과 아스가르드의 마나저장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의 핵심통제를 담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미르였으므로.
미미르가 답을 내놓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음… 제작자의 지식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굉장히 오래된 녀석인 것 같다. 특히, 저 함포로 보이는 것들은 제작자의 지식에도 있는 녀석이로군.]
“그렇단 말이지….”
다행히, 미미르의 답은 제법 긍정적이었다.
못해도 제작자와 동시대에 탄생한 우주선, 혹은 우주선의 부품.
“그렇다면, 내가 밀릴 이유는 없겠는데?”
판단을 마친 이안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시선이, 조종실을 가득 메운 디스플레이의 한쪽 구석에 자리한 악어대가리로 향했다.
[왜 대답이 없는 거지? 대답이 없다면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하는 수밖에.]-
입이 가볍게 열렸다.
“좋은 말 할 때 꺼져. 악어대가리 새끼야.”
순간.
악어대가리의 입이 다물어졌다. 분명 자신과 다른 종이고 생김새였음에도, 상대가 당황했다는 것을 이안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우우웅-!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안이 마력을 움직인 순간, 우주선에 장착해 두었던 마도위성 아스가르드의 마력저장고가 함께 움직였다.
일개 인간이 움직인다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마력이 이안의 몸에서 꿈틀대는 마력의 인도를 받아 저장고를 빠져나갔다.
거대한 마력의 푸른 빛이 우주선의 하부에 엉겨 붙은 것은 순식간.
엉겨 붙은 마력은 물질이되고, 물질의 덩어리는 이안의 조율에 맞추어 모양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곧, 우주선의 아래에 나타난 것은 이안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병기.
[전력 충전 완료. 탄두 장착 완료. 조준 및 발사 준비 완료. 말만 하면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다.]
미미르의 함께, 우주선보다 족히 두 배는 더 길게 뻗어나간 두 개의 거대한 창날.
창날 사이로 청색의 스파크가 튀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사.”
[오케이!]
소리 없이, 시퍼런 전류가 두 개의 창날을 집어삼킨다.
그 사이로 쏘아져 나가는 것은, 전기를 가득 머금은 푸른색의 탄환.
음속의 수십 배 속도로 쏘아져 나간 탄환은 눈 깜짝할 새 악어대가리가 탄 우주선의 장갑에 도달했다.
충격을 감지한 신관은 탄환의 내부를 가득 채운 탄두를 기폭시켰다.
TNT 1만 톤의 위력을 가진 핵탄두를.
파아앗-!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이안과 우주선을 덮쳤다. 인체에 해로운 모든 것을 차단하도록 설계되었음에도, 밝디밝은 백색 광채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레일건을 구현해내기 위해 쏟아낸 마력을 다시 회수한 다음, 이안은 미미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돌진해.”
[간다.]
콰아아-
우주선에 장착된 두 개의 열핵엔진이 불꽃을 내뿜었다.
그 반발력으로 쏘아져 나간 이안의 우주선이 나아간 곳은, 다름 아닌 핵탄두의 폭심지.
[방사능 수치는 제법 높은 편이지만…오러마스터인 너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겠지.]
“당연한 소릴. 빨리 해치나 열어.”
회수한 마력을 우주복으로 변형시켜 몸에 두른 이안은, 미미르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푸시이익-!
미미르가 우주선의 해치를 열자, 폭심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가 이안의 피부를 바늘처럼 찔러댔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를 가진 그를 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안은 그대로 핵탄두가 만들어 낸 적 우주선의 구멍으로 진입했다.
[적의 위치는 아마도 이곳으로 보인다. 도달하려면 제법 멀리 가야겠는데?]
미미르의 말대로, 이안의 시야 구석에 나타난 적의 위치는 꽤나 먼 곳에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존재할 방어시설이나 길을 막고 있을 벽 따위를 생각하면, 선장실까지 들어가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필요할 터.
“뭐, 조금 힘을 써보면 되겠지.”
하지만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페르소나의 마력으로 뽑아낸 두 자루의 검을 손에 쥐었다. 동시에, 무중력 공간에 떠오른 이안의 두 다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온갖 고철덩어리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듯 울퉁불퉁한 금속의 벽과 기둥들.
물론.
서걱!
오러블레이드와 엇비슷한 절삭력을 낼 수 있는 단분자블레이드 앞에서, 앞을 가로막은 고철 따위는 이안의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베어나갔을까.
서걱!
양손에 쥔 단분자블레이드를 쉴 새 없이 휘두르던 이안의 앞에, 마침내.
“이 미, 미, 미친놈이!”
경악한 표정을 지은 악어인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악어인간은 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지이잉-!
놈이 겨눈 총구에서 쏘아져나간 것은 탄환이 아니라 레이저였다.
그것도, 인간의 몸뚱이쯤은 눈 깜짝할 새 구멍낼 수 있는 고출력 빔.
아무리 이안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빛의 속도로 쏘아져 나가는 레이저를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빌어먹을 놈, 죽어!”
지이잉-!
놈의 총구에서 쏘아져 나간 고출력레이저가 선장실을 난도질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놈이 채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
“지랄하네.”
서걱!
“끄, 끄아아악!”
권총을 쥔 오른팔이 잘려 나가는 격통을, 악어인간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멀쩡한 왼손으로 잘려 나간 오른팔의 남은 부분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은 악어인간을 향해, 이안은 단분자블레이드의 끝을 겨누었다.
“야.”
“네, 네?”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조금 더 살아볼래?”
“사, 살겠습니다.”
악어인간은, 이안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
인류연방의 변방에 위치한 311-23 행성계.
인류연방이 자신의 영역으로 인정한 곳 중에서도 가장 외곽에 자리한 이 행성계는 연방의 공권력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으레 그렇듯, 그런 곳에선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자들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법이다.
“야,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혀, 현상금사냥꾼에게 넘긴다니…!”
이를테면, 1만 데나르의 현상금이 목에 걸려있는 악어대가리처럼.
“흠, 분명 쓰레기통의 하가르가 맞군. 용케도 잡아 오셨구만?”
“뭐, 운이 좋았지.”
처음 보는 동네였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법.
이안은 상대의 반응을 보곤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이안이 하는 일은, 이를테면 하청의 하청이었다.
연방에게 현상금을 타낼 자격을 가진 현상금사냥꾼에게 현상수배범을 넘기고, 그 일부를 받는 형태.
이 방법을 알려준-고문을 통해 얻어냈다- 것이 현상수배자인 악어대가리란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이안에겐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뭐, 나야 놈을 넘겨주고 돈이나 받으면 됐지. 자, 여기 당신 몫.”
말을 마친 현상금사냥꾼은 이안에게서 악어대가리, 아니 하가르를 묶은 줄을 넘겨받고는 열 장의 지폐를 건넸다.
“보아하니 연방 외부에서 온 개척민인 모양인데, 나라면 그 돈으로 연방시민 등록부터 하겠수. 계좌를 개설하건, 집을 구하건, 사람 취급받으려면 일단 시민등록을 해야할 테니까. 보통 개척민들이라면 몇 달은 악덕사장들한테 부려 먹혔을 텐데, 당신은 운이 좋구만.”
그러면서도, 현상금 사냥꾼은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았다.
이안이 잡아 온 쓰레기통의 하가르라는 녀석은, 자신이 직접 움직여도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대.
굳이 줄 필요도 없는 현상금을 떼어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괜히 앙심 사서 좋을 게 없는 상대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현상금 사냥꾼은 이안을 향해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를 말해 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봅시다. 그때도 이런 대어를 물어다 주면 더 좋고.”
“저야말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사,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하가르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안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걸음을 걸으며,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열 장의 지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대강… 한 달 치 생활비는 된다고 했지?’
아슈타르 공작가의 가주로 지내면서 중간계를 반쯤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던 때를 생각하면 푼돈이었지만, 시간 대비 나쁘지 않은 수입이다.
곧, 이안은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다.
현상금사냥꾼.
“옛날 생각도 나고…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전생의 자신이 국정원에서 하던 일도 따지고 보면 비슷하지 않은가.
나쁜 놈을 잡거나 죽이고, 그 대가로 보상을 얻는다.
이안의 생각에, 현상금사냥꾼은 그의 적성을 살리기 딱 좋은 직업이었다.
“그러면 일단, 보안청에 가봐야겠군.”
311-23행성계,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우주정거장인 에이트리의 치안을 유지하는 곳.
‘보안청 직원에게 얼마쯤 찔러주면, 새 신분은 금방 만들 수 있을 거요.’
조금 전 현상금사냥꾼의 말을 떠올린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여기군.”
[에이트리 보안청]
지붕 위로 기다란 첨탑이 우뚝 선 직사각형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안은 주머니 속의 지폐를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