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19화 (220/224)

#외전 11화. 시작의 끝에서.

나는 오늘 죽는다. 어쩌면 내일.

그날이 언제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죽음의 신이 내 목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후우, 후우….”

수명과 맞바꾼 늘어진 뱃살이 심장과 허파를 꽉 조여온다.

근육보다 비계가 더 많은 다리는 몸뚱이를 지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균형을 잡아줘야 할 양팔은 앞뒤로 흔드는 것조차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게 했다.

“이런 몸으로 영성의 홀에 온 건 내가 처음이겠지, 아마?”

페르소나를 수여 받게 될 자격자를 위해 배정된 방에 놓인 거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무리 이 모양 이 꼴이라지만, 이 비곗덩어리 몸에 흐르는 피는 신검공 아슈타르 공작가의 것.

그것만으로, 내가 대 마족병기 페르소나를 얻을 자격은 충분했다.

페르소나를 얻는 과정이 너무나 힘겨워서도 아니다.

페르소나를 얻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닐뿐더러, 내가 그 과정을 직접 겪게 될 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한숨을 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잘 될지 모르겠네.”

아픈 다리를 움직여 침대에 몸을 누인다. 제법 고급목재로 튼튼하게 만들어졌을 침대가 무너질 것처럼 휘청인다.

의심을 피하고자 십 년 넘게 지켜온 몸뚱이였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가끔은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따져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동안 잘 놀았으면 됐지, 뭘.”

유일한 친우, 바드리안 공작가의 윌리엄과 함께 한 시간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대륙에서 가장 신성한 성광공의 피를 이어받은 주제에 온갖 놀이문화에 정통해있던 녀석.

아마도 지금쯤이면 리아나에 도착해있는 형 대신 일 하느라 바쁠 것이다.

노는 걸 좋아하긴 해도 일 처리가 서툰 녀석은 아니니까.

“부럽네, 부러워.”

부러운 일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가 물려받은 의무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저렇게 살았을지도 모르지.

신검공의 자리 따위는 오베르트 형이나 요제프에게 맡겨두고, 아슈타르의 혈통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보잘것없는 재능을 가지고 다시 마법서나 검을 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지만.

똑똑똑

“계십니까, 공자님?”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영성의 홀에 머무는 사람 중, 내 방으로 찾아올만한 사람은 오직 한 명뿐.

“들어와, 할아범.”

그게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보이지는 않겠지만- 상대를 불렀다.

곧, 끼익 거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공자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도노반 경이었다.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아슈타르의 수많은 기사들 중 하나.

나이로 따지면 기사단의 부단장이나 단장, 그도 아니면 교관의 자리에 있어야 할 그였지만, 나같은 망나니의 호위 기사로 배정된 이유야 뻔하디뻔했다.

“멀쩡하고말고. 다 죽어가는 할아범이 걱정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지. 가서 하던 수련이나 마저 하지 그래? 호위 기사 자리라도 지키려면 말야.”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할아범을 향해 이죽거렸다.

순간 할아범의 이마가 꿈틀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아범이 나를 미워하고 경멸해 주는 쪽이 얼마 남지 않은 계획의 실현을 위해선 좋은 일이었다.

혹시라도 죽어가는 나를 억지로 살리기라도 했다면 곤란에 빠지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공자님. 소신에게야 상관없습니다만, 다른 공자님들 앞에선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주십시오. 혹여 공자님께서 곤경에 처하실까 우려됩니다.”

마음에 쌓인 게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기사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걸 막아주는 게 할아범이 할 일 아냐? 그런 것까지 내가 말로 해야 돼?”

물론 나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지만.

어차피 다른 자격자들을 만날 때 즈음,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곧 내 목을 베어갈 신의 칼날에 비하면 내 또래쯤 되는 녀석들이 해코지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어?

“영성의 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격자들 뿐입니다. 숙소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제가 어떻게든 책임질 수 있지만….”

“그만. 지겨운 얘기는 이쯤 하자고.”

“공자님.”

“할아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지겹다고. 내 가정교사도 아니고 원.”

할아범이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나는 재빨리 할아범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더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소시지만 한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체념하는 표정을 지은 할아범의 입에서 긴 한숨이 쏟아지는 걸 보니, 당분간은 귀찮게 하지 않을 모양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무리할 여유가 생겨났다.

“할아범.”

그 전에, 할아범에게 확실히 해 둬야 할 게 있었지만.

“…네, 공자님.”

내 부름에 축 처진 고개를 들어 올리는 할아범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망나니가 뭐가 예쁘다고 저렇게 걱정하는지, 원.

내가 살날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면 할아범의 바람대로 망나니짓을 때려치우기라도 했을지도 모를만큼 안타까워하는 눈빛이었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끝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의미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내가 사라진 이후를 걱정하는 게 맞겠지.

“할아범이 나랑 같이 다닌 지 얼마나 됐지?”

“아마… 햇수로 5년은 되었을 겁니다.”

“5년이라, 어쩐지 지긋지긋하더라니.”

그동안 내 행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긋지긋한 쪽은 할아범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여전히 나를 위해 주는 할아범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이 마음을 겉으로 티 낼 일은 내가 죽을 때까지 없을 테지만.

“…소신이 공자님의 마음에 차지 않으신가 보군요?”

하지만 내 대답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할아범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마도, 이번 수여식이 끝나면 내가 자신을 호위 기사의 자리에서 내쫓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물론, 내가 원하는 결과는 그런 게 아니다.

“그건 아니지. 할아범만큼 뒤처리가 깔끔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도노반은 지난 5년 동안 내가 싼 똥을 깔끔하게 치워준 사람이다.

할아범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나나 내 몸을 이어받을 그 이계놈은 큰 곤란을 겪게 되겠지.

“할아범은 죽을 때까지 내 손에서 못 벗어날 테니까, 괜히 헛된 희망 찾지 말고 수련이나 열심히 하라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 내 몸을 차지하게 될 이계의 인간.

녀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중 하나는, 할아범을 내게 계속 묶어두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공자님.”

…뭐야, 왜 웃는 거지?

그렇게 내 밑에서 똥이나 치우고 싶었던 거야? 알고 보니 고통을 즐기는 변태였던 건가?

내 말에 묘한 웃음을 짓는 도노반 경을 보며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내 몸을 차지할 이계인이 어떤 놈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눈앞의 노인네가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을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뭐야, 기분 나쁘게 웃기는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자님. 그저, 공자님께서 이런 말을 할 때도 있었구나, 싶어서 그랬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제발 혼자 알고 있으란 말야.”

“네, 공자님.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지요.”

내가 이야기한 무언가가 나도 모르게 할아범의 마음을 건드린 것일까.

말을 마친 할아범의 미소가, 어쩐지 후련해 보였다.

“그럼, 그만 가 봐. 이제 잠이나 잘 거니까.”

“네, 공자님. 편안한 밤 되십시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할아범이 문을 닫으며 사라진다.

손잡이가 철컥이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바로 누웠다.

600년 전에 새겨진 천장의 고풍스러운 장식을 눈으로 훑고 있자니, 어머니의 유언이 떠오른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사실, 어머니가 미안해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을 한낱 인간 따위가 바꿀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나도, 어머니도. 그저 운명이란 이름의 자연재해가 할퀴고 간 희생자일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영혼을 담을 그릇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그저, 내 몸 안에 들어서게 될 이계인이 운명을 이끌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뿐.

중간계를 구원할 존재를 위해서, 이안 아슈타르라는 사람의 존재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그게, 내 사명이지.”

그래, 사명이다.

목숨과 영혼을 맞바꿔서라도 지켜내고 이뤄내야만 하는 나의 의무.

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중간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내 역할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음….”

밤이 깊어진 탓일까, 점점 피곤이 몰려온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천장에 새겨진 문양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마도, 지금 잠에 빠지고 나면 나, 이안 아슈타르라는 존재는 다시 깨어날 수 없겠지.

설사 깨어난다 한들, 그 몸에 들어 있는 영혼은 내가 아니라 이계인일 것이다.

내 영혼의 흔적 정도는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겠지만 그 역시 이계인이 예언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 나라는 영혼은 지워진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신마전쟁이 일어나기 전 나의, 어머니의 조상인 제작자님께서 내린 예언은 지금까지 틀리지 않았으니, 이것 역시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만하면 마지막치고는 편안한 편이잖아.”

따지고 보면, 나는 정해진 수명을 다했을 뿐이다.

내게 예언의 힘이 없었다면, 그래서 내가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할 일도 없었겠지.

의식이 점차 흐려진다. 머릿속이 안개 낀 것처럼 하얘져 간다.

영원한 잠을 안겨줄 수마(睡魔)가 저 아래에 펼쳐진 무의식의 바다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서히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도….”

뭐라도 남기고 싶다.

나란 사람이, 이안 아슈타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단 사실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팔을 허우적댔다.

사실 허우적대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잠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너무나 아쉬웠다.

조금만, 단 1초라도 더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나면…….

***

고풍스러운 장식과 가구들이 가득한 호화로운 방.

방의 한 가운데, 세 사람은 너끈히 잘 수 있을 만큼 넓은 침대 위에 한 사내가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컥, 커흑.”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겹게 숨을 헐떡이던 사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민혁은 번쩍 눈을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