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17화 (218/224)

#외전 9화. 씨앗(9)

마족이 쳐들어왔다.

“이, 이런….”

도시 전체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레온과 신시아를 이끌고 나오던 신관이었다.

“어서 신전으로 다시 들어가시지요. 아무리 마족이라지만, 함부로 갈리우스님의 신성이 깃든 신전에 발을 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관에게 레온과 신시아는 마법의 신께서 직접 불러오라 명했던 귀한 손님이다.

손님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꼴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곧 신전 주변에 설치된 결계를 발동할 것입니다. 어서 안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신관이 재차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신시아를 잡아끌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어요.”

신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다가오는 레온의 손을 피했다. 레온의 손이 공연히 허공을 갈랐다.

“신시아!”

신시아가 자신의 손을 뿌리친 순간, 레온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설마, 마족들과 싸우러 가겠단 이야길 하는 건 아니지? 어차피 우리 말고도 싸울 사람은 많을 거라고!”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전쟁터로 향한다는 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레온은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난 5급 마법사야. 내겐 사람들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하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신시아의 눈에선 이미 무언가를 각오한 듯 강렬한 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넌 안에 들어가 있어. 어차피 싸울 생각도 없잖아?”

“신시….”

“겁쟁이.”

전장으로 뛰쳐나가려는 그녀를 막으려는 레온에게 돌아온 것은, 실망과 경멸이 섞인 멸시의 눈빛뿐.

순간 레온의 입이 다물어졌고, 그 사이 신시아는 홱 하고 등을 돌리곤 영창을 시작했다.

쐐애액-!

로브를 걸친 그녀의 가녀린 몸뚱이가 잿빛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변할 동안 레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겁쟁이.’

연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레온의 심장을 세차게 할퀴고 지나간 탓이다.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연합의 법을 핑계로 그녀가 그토록 바라왔던 일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곳은 위험합니다!”

레온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신전 앞에 우두커니 서 있자 마음이 급해진 신관이 신전의 대문 앞에서 레온을 향해 재차 소리 질렀다.

이대로 가만히 서 있다간 신전 주변을 감싼 결계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신관은 잘 알고 있었다.

“조금 뒤면 결계가 닫힐 겁니다! 그 전에 어서……!”

신관이 재차 재촉함에도, 레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넘쳐흘렀다.

‘여기 남는 게 맞아.’

신관의 말을 따르는 것이 분명 그의 안전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 행성에 대한 연구를 생각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갈 일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안전은 보장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이대로 가만히 신시아가 위험에 처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와 마족이 얼마나 가졌는지는 몰라도, 전쟁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무언가, 해야만 했다.

설사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지라도, 이대로 연인의 위험을 두 눈 뜨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세이렌.”

레온에겐 대부분의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다.

[네, 함장님.]

“1급방호모드 가동해.”

[알겠습니다. 1급방호모드를 가동합니다.]

세이렌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의 목 아래를 감싼 방호복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1급방호모드를 가동했을 때만 작동하는 보호헬멧이 목 뒤에서부터 레온의 머리를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1급방호모드 가동을 완료했습니다. 가동률 99.8%.]

세이렌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헬멧의 HUD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수치와 그래프가 레온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 정보들이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녀를 구해낼 방법이 생겼다는 것.

“죄송합니다.”

당황한 신관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붉은 갑주의 사내는, 전장을 향해 힘차게 땅을 내디뎠다.

***

“하급이 둘, 중급이 하나. 마수들은 셀 수도 없어.”

비행마법을 이용해 하늘 위로 날아오른 신시아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개척도시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는 괴물들이 들어왔다.

“나 혼자서는 힘들어 보이는데….”

그녀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녀가 5급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마법사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중급 마족 하나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을 뿐이다.

중급 마족과 함께 도시를 박살 내고 있는 하급 마족과, 그들이 이끄는 마수들까지 상대하고자 한다면 그녀의 생명을 담보로 잡아야한다.

“기사들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 텐데, 별수 없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투덜거릴 뿐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놈들은 제국으로 파고들 거야.’

마족은 주변을 마기로 침식시킨다.

저들이 도시를 마구 때려 부수는 이 순간에도, 마족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대지는 서서히 마기의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이야 고작해야 제국의 변경일 뿐이니 침식당한다고 하더라도 잠시 경계를 뒤로 물리면 될 뿐이지만,

존재만으로 마기를 흩뿌리는 마족들이 제국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제국의 비옥한 영토들이 모두 마족의 것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물러서면 안 돼.’

도시를 지키던 기사들은 모두 쓰러져버렸고, 신전의 힘을 빌리기에 이곳의 신관들은 너무 부족하다.

저 마족들에게 무언가 피해를 입힐 생략 제안 힘을 가진 것은 오직 그녀뿐.

“타오르는 홍염이여….”

신시아의 입에서 그녀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주문의 첫 마디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양손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우우웅-!

주문이 그녀의 몸에 잠들어 있던 마력을 깨웠고, 수인이 깨어난 마력을 인도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영창 속에서 세차게 회오리치던 마력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정해진 형태를 이루어나갔다.

-그으으…?

강력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하늘을 어지럽히고서야, 지상을 초토화하던 마족들은 고개를 들어 주문을 영창하는 신시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파이어스톰.”

그녀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주문의 완성을 알리는 시동어가 새어 나온 순간.

콰아아아-

홍염을 머금은 회오리바람이 지상을 집어삼켰다.

도시를 부수던 그 어떤 마족과 마수도 아무런 전조 없이 나타난 도시 절반 크기의 업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파괴된 도시 사이로 꿈틀거리던 마족과 마수, 대지를 침범한 마기와 같은 온갖 부정된 것들이 불꽃의 장막 아래 잠시동안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치 빛의 신 마르콘이 지상에 내린 성화가 이렇게 생겼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불길이 제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이대로 저 거대한 불꽃이 계속 타오른다면, 마족과 마수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를 집어삼킨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는 일은 없었다.

“커, 커흡!”

기침과 함께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린 신시아의 입술 사이로 검은색 핏물이 새어 나왔다.

‘역시, 무리였던 걸까?’

5급의 고위마법사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한 그녀가 가진 마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려 억지로 체내의 마력을 쥐어짠 순간,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은 핏물로 붉게 물들었고, 코에서 흘러나온 선홍색 핏줄기가 토해낸 검은 피와 섞여 아래로 흘러내렸다.

‘수명이 30년은 줄었겠는데.’

점차 사그라드는 업화의 회오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자조했다.

만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력의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간 몸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는 어려우리라.

‘끝인가.’

그녀를 공중에 띄워 올린 비행마법이 서서히 가는 것을 느끼며, 신시아는 눈을 감았다.

“신시아!”

지면을 향해 추락하던 그녀가 감고 있던 눈을 뜬 것은,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였다.

곧,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이 온몸에 붉은 갑주를 뒤집어쓴 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늦었잖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퍽!

***

[주요장기 손상율 72%, 두개골 및 척추를 비롯한 27부위 복합골절, 출혈로 인한 혈액 손실 32%.]

세이렌의 무거운 목소리가 레온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레온은 그녀의 말을 듣는 체 마는 체했다.

분석 결과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인류연합의 표준AI규격에 따라 제작된 세이렌의 뛰어난 연산속도를 바탕으로 초당 30만 번 이상의 현실과 거의 유사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며 얻어낸 결과다.

신뢰성만큼은 분명하게 보장되어 있다.

단지.

[회복 불가능한 부상으로 파악됨. 사망 예정 시간까지 앞으로 3분.]

“…웃기지마.”

그가 믿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

“방법이 있을 거야. 빨리 찾아내.”

[냉동보존을 활용한 응급이송을 포함해 316가지 경우에 대해 시뮬레이션하였지만, 현재 가능한 이송 및 치료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317번째 방법이 있겠지.”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레온은 참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연인을 바라봤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갈리우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혼자 보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피해낸 대가로, 레온은 연인의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 자신이 만들어낸 자책의 화살들이 심장을 마구 찔러댔다. 그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입술을 깨물었다.

방호복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입 안에서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찝찔한 피 맛이 감돌았다.

고작,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

죽음을 기다리던 그녀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그때였다.

“시, 신시아!”

죽어가는 연인이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레온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 보다 말고 놀라 외쳤다.

신시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손… 을….”

그녀의 말과 함께, 부러진 오른손의 검지가 까딱이기 시작했다.

까딱인다기보다는 떨림에 가까운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레온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순간.

우우웅-!

레온은, 그녀의 손을 통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들어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레온이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들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곧, 레온은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언?’

수많은 이미지들 중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레온은 이것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힘을 준 것이 신시아라는 사실도.

“왜, 왜 그랬어….”

그 사실에 레온은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 자신이 가진 능력을 넘겨주었다는 건, 그녀가 삶을 포기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성대 대신,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전하려 했을 뿐.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신시아….”

숨을 거둔 연인 앞에서, 레온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이름을 되뇌는 일 뿐.

그러나, 그에겐 슬퍼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으….

듣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울음.

그 부정한 포효를 듣는 순간,

“…세이렌, 정당방위 프로토콜을 가동해줘.”

[네, 함장님.]

레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온통 하얀색으로 물든 하늘과 땅 사이에,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결국, 돌아왔군.”

마법의 신이라 불리는 노인은 환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미 반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는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건너편에 선 사내는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뭐부터 하면 되는 거지?”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이,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