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씨앗(8)
인류는 지구와 태양계 바깥으로 뻗어나가면서 수많은 형태의 외계생명체를 만나왔다.
지성은커녕 생명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형태의 열등한 생명체부터, 인류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우월한 문명을 가진 고도의 지적존재까지.
인류연방이 설립된 이후 수백 년간 만나온 외계생명체들에 대한 수 많은 정보는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내용이었다.
“물질 형태의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정보형 생명체가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하는 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놀랍긴 하네요. 역시 이 행성은 연구할 거리 투성이라니까.”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레온의 눈앞에 선 노인과 같은 부류였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이 맞아떨어짐을 깨달은 레온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귀한 사례였으니, 이 역시 돌아간다면 논문거리로 쓰기 충분한 내용이리라.
“…불경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로구나.”
물론, 갈리우스의 반응은 레온과 완전히 달랐지만.
대륙의 존재들에게 신이라 불리며 떠받들어지던 그에게 레온의 말은 난생처음 듣는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불쾌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마법의 신 앞에서 레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자칭 신이라면, 내가 여기 원주민이 아니란 건 당신도 알 텐데요? 여기 원주민도 아닌 내게 당신네 규칙을 강요하진 마시죠. 더구나, 내가 필요해서 여기까지 불러온 거라면 더더욱 안될 말이고.”
신시아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레온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신이라 자칭하는 저 노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지 않은가.
더 간절한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처음부터 상대에게 지고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으음.”
레온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갈리우스는 한동안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눈앞의 건방진 인간을 단숨에 짓이겨버리고 싶었지만.
‘저자가 어떤 존재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눈앞의 인간이 대륙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중간계를 향해 추락했고, 그 비행체 안에서 저 인간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천계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걸친 정체불명의 갑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법의 신이라 불리는 그조차도 저 얇은 갑주에 어떠한 힘이 깃들어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저 인간이 마족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열쇠라는 사실 뿐.’
대륙인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능력 중 하나, 예언의 능력.
태어날 때부터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쥐고 태어난 자신의 신도가 그렇게 말하였으니, 틀림없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필요가 있겠군.”
그것이, 갈리우스가 눈앞의 인간에게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대도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들어서 알겠지.”
“그, 마족을 멸할 열쇠인지 뭔지를 말하는 겁니까?”
물론, 이미 신시아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들은 레온은 갈리우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언이 말해 준 대로, 자신을 마족과의 전쟁에서 써먹겠다는 의도이리라.
“그렇네. 세계의 바깥에서 나타난 그대의 힘을 빌린다면, 저 마족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는 게 나와 신들의 판단이야.”
말을 마친 갈리우스의 눈이 반짝였다.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 숙원을 해결할 방법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막상 그 예언이 가리키는 열쇠인 레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레온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노인은 레온을 설득하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강대한 힘을 가진 우리 신들조차도 세계의 바깥으로 나갈 생각은 할 수도 없었네. 신성의 근원인 중간계에서 멀어질수록, 우리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인간의 몸으로 세계 바깥에서 날아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그대라면, 분명 마족과의 싸움에서도 큰 힘이 될 테지.”
그리고, 마족들을 대륙에서 몰아내는 날, 신들은 중간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리라.
그를 위해선, 눈앞의 건방지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레온은 그 말을 듣곤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협조하기 싫은데요.”
“그대는 아직 마족의 추악함을 보지 못한 모양이로군. 직접 마족을 마주한다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당장이라도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게야.”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레온이 길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명백했다.
“저는 학자일 뿐이지, 군인이 아니라서요. 제가 속한 연방의 법에선 민간인이 함부로 지적생명체를 죽일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학자인 자신이 어떤 종족을 멸망시킬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웃긴 일이고, 그 자체가 연합법 기준으로는 크나큰 범죄행위이다.
언제고 고향으로 돌아가 이 행성에 대한 정보를 연합에 발표해야 할 레온이 굳이 자신에게 해가 될 범죄를 저질러야 이유가 있을까?
‘완전히 해적들이나 할법한 일이잖아?’
평범한 연합의 시민이자 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레온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레온이 거절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자, 갈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네. 예언은 정확히 그대를 가리키고 있어.”
“예언이 잘못됐나 보죠.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예언은 틀리지 않네. 예언이란 세계를 움직이는 수많은 톱니바퀴들의 배치를 보고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읽어내는 능력이니까. 조그만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싫다 한들 거대한 톱니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러면 저 말고 중간계-3에서 일어날 예언인가보죠. 어쨌든, 저는 당신들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갈리우스의 설명에도 레온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원주민의 특정 세력을 돕기 위해 스스로 범죄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방에 다시 돌아갈 것이라면 더더욱.
“이제 이야기가 대충 끝난 것 같은데, 슬슬 돌려보내 주시죠? 제 생각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레온은 말을 마치곤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면 좀 골치 아파지긴 하겠지만 뭐….’
최소한, 레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리라.
예언인지 뭔지를 그토록 철석같이 믿고 있다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알겠네. 좀 아쉽긴 하네만, 이제 작별할 시간이로군.”
레온의 생각대로, 마법의 신은 그에게 해코지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까딱했다.
동시에.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온통 흰색으로 가득 찼던 세상이 지우개를 문댄 것처럼 지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갈리우스의 입이 열렸다.
“언젠가, 생각이 바뀌게 될 걸세.”
이윽고, 무의 상태로 돌아간 하늘과 땅 사이로 노인마저 지워진 순간.
파아아앗!
다시금, 레온의 눈앞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
“…온! 레온!”
정신을 차린 레온의 귓가에 가장 먼저 젊은 여자의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잘 알고 있는 레온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뭘 울고 그래?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네.”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연인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알기나 해? 사람 놀라게나 하고….”
“미안, 미안.”
신시아가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주먹을 불끈 쥐자, 레온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물론, 귀환한 레온을 반긴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함장님?]
지금까지 레온을 충실하게 보좌해온 AI, 세이렌의 당황한 목소리가 레온의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
[함장님께서 제단 위의 구슬을 만진 직후, 2시간 13분 27초 동안 함장님에 대한 모든 생체신호가 소멸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워프상태에 돌입한 것처럼요.]
‘최소한, 거기가 이곳과 같은 차원은 아니었단 거네.’
당황한 세이렌으로부터 그가 사라진 뒤 벌어진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프항법이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차원의 틈을 넘나들듯, 그의 육신 역시 잠시 다른 차원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리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물질 대신 정보로 이루어진 생명체 특유의 능력일지도 모르지.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낀 레온은 자신의 전공 분야도 아닌 녀석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는, 신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을 만나고 왔어.”
“그래, 그렇구나.”
레온의 말을 들은 신시아는 당연하단 듯 촉촉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레온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러면, 이제 레온 너도 마족에 대항해서 함께 싸우는 거지?”
그녀는 자신이 받았던 예언이 곧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륙인들에게 예언이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니, 마족을 멸할 열쇠로 지목된 레온이 마족과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레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꼭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뭐?”
신시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녀의 낯빛에서 실망과 배신감을 읽어낸 레온은 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나도 돕고 싶지만, 나는 내가 속한 곳의 법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정식 허가를 받게 된다면 몰라도….”
“하지만, 넌 예언에서 지목한 존재야! 인간이 예언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미안, 미안해.”
레온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만을 믿고 있던 신시아의 실망감이 얼마나 깊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일만은 레온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든 도와줄 방법을 찾아볼게. 그러니까 지금은….”
“…됐어.”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매몰차게 몸을 돌린 그녀의 등을 보며, 레온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씁쓸함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옆에서 둘을 지켜보던 신관만이 뒤바뀐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들어올 때와 달리, 신전을 빠져나가는 셋 사이를 감도는 것은 무거운 침묵뿐.
하지만, 그들이 입을 다문 채 신전 밖으로 빠져나올 무렵.
땡! 땡! 땡! 땡!
“마족이다! 마족이 쳐들어왔다!”
“전투준비! 빨리 움직여!”
무거운 침묵은 곧 징 소리와 비명, 고함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