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씨앗(7)
“신이라.”
신시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레온은 고개를 숙인 채 혼자서 조용히 뇌까렸다.
그가 이 행성에 처음 불시착했던 대륙을 벗어난 지도 벌써 일 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륙의 수 많은 원주민들과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레온은 이 땅에서 말하는 신앙이 단순한 미신이나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재하는 힘을 가진 존재들이지.’
정확히는, 신을 모시는 성직자들에게 주어지는 신성력이란 이름의 초능력.
치료사나 의사가 아닌 사제들이 신에게 받았다 주장하는 초능력으로 다친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은, 합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연방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던 레온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온의 마음속에 본래 없던 신앙이라도 새로 싹튼 것은 아니었지만.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저들이 말하는 신은 일종의 정보생명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겠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세이렌의 말에 레온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면서 마주쳤던 외계의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는 육신이 아닌 정보나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들도 드물지만 존재했다.
개중 일부는 다른 지적생명체들에게 신이라 불리며 행성에서 지배적인 계급을 형성하는 경우도 존재했으니까.
학식을 쌓아오는 과정에서 그러한 사례를 몇 번이나 봐왔던 레온에겐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혹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신을 자칭하는 정보생명체들이, 어째서 자신을 찾는 것인지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
‘최악의 경우라면, 외계에서 온 나를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레온에겐 곤란한 일이었다.
연구를 끝마치고 무사히 이 행성을 나갈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그의 앞에 느닷없이 웬 훼방꾼 하나가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만약 그들의 방해로 인해 행성을 떠난다는 계획이 무산되기라도 한다면, 여태까지 계획을 준비해왔던 레온과 세이렌의 노력 역시 한낱 물거품으로 변해버릴 게 뻔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을 앞에 둔 레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유였다.
레온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쏟아질 대답을 기다렸다.
곧, 신시아의 입이 열리고 대답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바로 열쇠라고 했어.”
레온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열쇠?”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신시아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망울 안이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저 성벽 너머의 마족을 멸할 수 있는 열쇠.”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가 찾아 헤매왔던 예언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으므로.
***
마법의 신 갈리우스.
신과 악마의 전유물이었던 마법을 대륙의 인류에게 처음으로 전파한 신.
모든 신 중에서도 가장 대륙과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 주는 존재.
굳이 그를 섬기는 신관이나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대륙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인간에게 관심 많고 자애로운 마법의 신에게 공경의 마음 한 조각쯤은 보통 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데.”
물론, 대륙이 아니라 은하 저편의 인류연합에서 날아온 레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마차를 타고 며칠 동안 달려 도착한 갈리우스의 신전 앞에 선 레온에겐, 신전을 짓고 장식하기 위해 사용된 문양이나 기술이 그깟 신앙보다 훨씬 중요했다.
이 신전의 돌벽에 새겨진 글자 하나, 그림 하나가 언젠가 연합으로 돌아갈 레온의 지식이 되고 업적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미 며칠 전부터 보호복에 부착된 자동녹화기능을 켜둔 레온은 가슴 근처에 붙어 있는 카메라를 신전의 벽과 장식 방향으로 향한 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레온.”
“아차. 미안, 미안. 이럴 때가 아니었지, 참.”
함께 따라온 신시아가 눈치를 주고 나서야 레온은 호들갑을 멈추고는 입맛을 다셨다.
분명 어마어마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기는 했다.
하나 그것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오늘 할 일을 끝내고 난 뒤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쪽으로 오시지요.”
벽과 몸을 비비적거리는 것 같은 레온의 추태를 말없이 바라보던 신관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제국의 변경에 지어져서일까, 신전의 그 규모가 누군가의 (안내가 있어야 할 만큼 거대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향하는 곳이 일반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을 뿐.
‘경계가 삼엄한데.’
신전의 지하로 향하는 통로와 문을 오가면서 신전의 경비병들에게 검문을 받은 지도 벌써 세 번째.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레온은 옆에서 걷고 있던 신시아를 흘깃 바라봤다.
그녀 역시 계속되는 검문이 슬슬 지겨웠는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양해해 주십시오. 본래는 고위 신관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인지라.”
레온과 신시아를 여기까지 인도한 신관이 둘의 표정을 확인하곤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신관에게 두 사람은 무척 중요한 존재였다.
“신께서 직접 신탁을 내린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군요. 그것도 일개 인간을 찾으라는 신탁이 내려올 줄이야.”
자신의 삶을 신에게 오롯이 바친 신관이, 신께서 직접 만나고자 하는 인간을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자신들을 안내하던 신관이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온과 신시아는 찌푸렸던 표정을 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입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신관이 옆으로 살짝 비켜섬과 동시에 두 손으로 둘의 앞을 가리켰다.
레온의 시선이 저절로 신관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했다.
‘제단인가.’
주변의 바닥보다 몇 계단 높게 쌓인 피라미드 모양의 제단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제단과 그 주변이 지금까지 지나왔던 신전과는 비할 수 없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음을 깨달은 레온은, 그 제단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마법의 신을 모신 곳인가요?”
“정확히는, 마법의 신 갈리우스께서 저희에게 내린 성물을 모신 곳이지요.”
그 말을 듣고서야 레온은 제단의 가장 위에 올려진 주먹만 한 수정구슬을 바라봤다.
신시아에게 마법수업을 들으면서 몇 번 보고, 사용해 본 마법구와 별반 다르게 생기지 않은 평범한 형태의 구슬.
‘진짜인 것 같기는 한데….’
성물을 바라보는 신관의 눈빛이 경외와 환희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면, 레온은 저 평범한 수정구슬이 마법의 신을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리라.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어쨌거나 목적지에는 도착했으니, 남은 것은 자신들을 초대한 집주인을 만나는 일.
하지만 그 집주인이 얼굴도 형체도 없는 신이라면, 어떻게 서로를 마주 보고 대화를 이어나간단 말인가.
레온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신관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두 손으로 다시금 제단을 공손히 가리켰다.
“성물에 손을 마주 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돌아오자 레온이 재차 물어보려 했지만, 신관의 확신에 찬 표정을 마주한 레온은 뭐라 말하려던 것을 멈추곤 옆에 서 있던 신시아를 바라봤다.
“성물은 말하자면 신이 지상에 강림하기 위한 육체나 집 같은 거야. 다시 말해서, 초청을 받은 너라면 성물을 통해 갈리우스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거지.”
“일종의 통신기란거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
신시아의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서야 신관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이해한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곤 제단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사람의 허리쯤에나 올, 책상 정도 높이의 제단 앞에 선 레온은 조심스럽게 제단 위에 올려진 신의 성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곧, 보호복으로 둘러싸인 그의 손바닥이 맞닿은 순간.
파아앗!
레온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무슨….”
정신을 차린 레온은 주변을 휙 둘러보곤 경악했다.
“여긴 대체 어디야?”
하늘부터 땅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는, 순백의 세상.
레온이 알기로, 이렇게 생긴 공간이 존재하는 곳은 딱 하나뿐이었다.
‘어디 정신병원에라도 갇힌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레온이 요 수년간 경험했던 일들은 그저 광인의 꿈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변방 행성에 불시착한 것도, 새로운 세계에서의 연구도, 사랑하는 연인인 신시아까지도.
‘말도, 말도 안 돼.’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레온은 필사적으로 이를 부정했다.
단순한 현실 부정만은 아니었다.
‘환자 한 명한테 주는 방이라기엔 너무 넓어. 아니, 애초에 방이긴 한 거야?’
흰색 하늘과 흰색 땅 사이를 가르는 끝없는 지평선을 마주하고 나니, 레온의 이성이 다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곧,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
‘신전에서 마법의 신, 갈리우스의 성물을 만졌지.’
그렇다면, 이곳 역시 마법의 신과 연관된 곳이 아닐까.
레온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상황을 분석하고 있을 그때.
“드디어 만났군.”
등 뒤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레온은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곳엔.
‘노인?’
로브를 뒤집어쓴 노인이 레온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레온은 혹시나 노인 외에 누군가 숨어 있나 싶어 주변을 살폈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노인 외에는 사람은커녕 기척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노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당신이 갈리우스군요. 마법의 신.”
레온을 부른 당사자이자,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순백색 세상의 주인.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치고는 대하는 자세가 불손하군.”
갈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턱 아래로 길게 난 수염을 쓰다듬고 레온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눈치가 좋은 편이 아님에도, 레온은 상대의 눈빛에 담긴 오만함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나를 자신이 지배해야 할 존재로 보는 건가?’
인간과 대륙에 가장 많은 자비를 베푸는 신이라더니, 그 실상은 조금 다른 모양.
“허.”
하지만 레온은 갈리우스의 눈빛을 코웃음 치며 흘려보냈다.
자신의 지도교수를 마주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딱히 위압도 뭣도 아니었다.
“인간이 신을 비웃다니, 신벌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자연히, 그 비웃음의 대상이 된 갈리우스의 기분은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입에서 협박조의 말이 흘러나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중간계의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신이라지만, 자신을 모독하는 자를 용서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지는 않았으므로.
“신?”
이상한 것은, 그 협박의 대상인 레온의 태도였다.
마법의 신을 마주한 레온은 신을 경외하지도, 경원시하지도 않았다.
“저한테까지 사기를 치려 들면 곤란한데요.”
그의 앞에 선 것은 신이 아니라 조금 강한 힘을 지닌 사기꾼일 뿐이란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