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4화. 씨앗(4)
[회피기동을 실시합니다.]
대기를 찢어발기는 제트기의 굉음 사이로 세이렌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조종석에 앉은 레온과 신시아의 몸이 좌우로 마구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제트기가 제멋대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놀란 신시아가 비명을 질러댔다.
“나도 몰라요! 공격받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은 레온 역시 마찬가지.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신시아가 해 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대륙의 절반은 마족의 영역이라고 했던가?’
대륙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성체들 중에서도 유난히 호전적이며, 악의로 똘똘 뭉친 존재들.
신시아가 그 이야기를 해 줬을 때는 적당히 걸러 들었지만, 막상 공격을 당해 보고 나서야 레온은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잖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시작부터 이럴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레온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준비를 더 단단히 해야겠어.’
레온이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조금씩 수정하고 있을 때 즈음.
삐-
조종석을 가득 메운 경보음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함장님, 확인되지 않은 위협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세이렌의 브리핑이 끝남과 동시에, 세탁기 속 빨래처럼 마구 요동치던 기체의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우, 우욱….”
“여기서 토하면 안 돼요. 알죠?”
“그치만, 속이….”
“아, 안된다니깐! 세이렌, 멀미 봉투 같은 거 없어?”
[제작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편의물품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돌겠네.”
금방이라도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뿜어낼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신시아를 바라보면서 레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함장님.]
“또 뭔데?”
세이렌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레온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전의 회피기동으로 인해 기체의 연료를 대부분 소진하였습니다.]
“…얼마나 날 수 있지?”
[현 속도대로라면 5분 27초 뒤 엔진이 정지합니다.]
“망할.”
세이렌의 답을 들은 레온의 표정이 구겨진 지 정확히 8분 하고도 12초 뒤.
레온은 인생의 두 번째 비상착륙을 경험해야만 했다.
***
“그나마 마족의 영역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런가요?”
“마족의 영역이었으면, 지금쯤 우리도 놈들처럼 마기에 침식당했을걸? 그럼 우리도 괴물 꼬락서니가 되는 거라고.”
신시아의 말을 들은 레온은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밟고있는 땅이 하늘 위에서 봤던 보라색이 아니라, 평범한 갈색빛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레온은 세이렌을 불렀다.
‘세이렌, 조금 전의 보라색 토양이 뭔지 알겠어?’
[발견된 적 없는 형태입니다. 확실한 조사를 위해선 표본을 채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집작업을 시작할까요?]
‘나중에. 지금은 여길 벗어나는 게 우선이니까.’
세이렌의 말에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고작 흙 좀 모으자고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사지육신이 찢길 생각은 없었으니까.
‘보호복을 입고 오길 정말 잘했어.’
아니, 그의 명줄을 좀 더 늘리기 위해선 추가적인 무기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베가본드호에 비치된 보호복에 장착된 무장들은 말 그대로 호신용인지라, 본격적인 전투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천생 학자인 레온이 행성의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보다 더욱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저기, 신시아.”
“왜, 또? 어차피 방금 그 고철 덩어리는 버릴 거라며? 안 그래도 속이 뒤집히려고 하는데, 자꾸 그럴 거야?”
조금 전 레온의 잔소리가 떠오른 탓일까, 그의 부름을 들은 신시아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
하지만 레온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핀잔이나 잔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 마법이란 거, 저도 배울 수 있는 건가요?”
“…마법을?”
신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넌 필요 없어 보이는데?”
일주일동안 레온의 거주지에서 생활한 그녀는, 레온이 사용하는 것들이 마법에서 비롯된 게 아니란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부리는 마법보다 더 마법같은 경험을 몇 번이나 해왔던 신시아에게, 마법을 알려달라는 레온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제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세이렌의 것이니까요.”
그리고, 거주지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 한복판에 떨어진 지금.
그가 당장 믿을 수 있는 호신수단은 고작해야 방호복뿐이었으니까.
“마법 중에는 적을 공격하는 종류의 것도 있다고 했죠?”
“뭐, 그게 마법의 본 목적은 아니지만, 그렇지?”
“마법을 배워두면, 제 몸을 지키기 좀 더 수월할 것 같아서요.”
거주지의 생산설비는 아직 미완성의 상태인 데다가, 그 설비의 대부분은 베가본드호를 하늘 위로 쏘아 올릴 로켓을 만들어내는 데 투입되고 있다.
세이렌이 당장 만들어낼 수 있는 무기라고 해 봐야 행성 시대에나 쓰던 구식 화약 무기 정도.
그나마도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레온의 생각이었다.
거기다.
‘배워서 쓸 수 있는 초능력이라니, 굉장하잖아?’
인류연합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술이었으니, 직접 익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신시아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이게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건 줄 알아? 마력 운용법을 몸에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법의 기초이론과 마법별로 나뉘는 마력의 배열방식을 모조리 외우려면 아무리 못해도 5년은 걸릴걸?”
당장, 상급이라 할 수 있는 5급의 마법사인 그녀조차 마법에 입문하는 데 3년이 넘게 걸리지 않았던가.
그녀의 눈에, 레온의 말은 어린아이의 객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레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해 봐야 아는 법이잖아요. 알려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마력운용법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재였으니, 알려주지 못할 건 없었다.
결국, 그녀는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안된다고 심술이나 부리지 마.”
“너무 잘 배워서 놀라지나 마시죠.”
결국, 신시아로부터 허락을 얻어낸 레온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져나갔다.
신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전에, 이 숲을 벗어나야 하겠지만 말야.”
“그러게요. 벌써 해가 지는 것 같은데.”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붉은 노을빛을 바라보며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시아가 대강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숲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좌표 위성이라도 하나 띄워뒀을 텐데 말야.’
방호복에 주변의 생명체를 탐지하는 레이더가 장착되어 있기는 했지만,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라 길 찾기용으로 사용하기엔 썩 좋지 않았다.
이대로 숲에 갇혀있을 생각이 없었던 두 사람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하지만 인간의 걸음 속도로 드넓은 숲을 벗어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
결국.
“이거, 여기서 하루 자야겠는데?”
“그러게요.”
왼손에 마법으로 만들어낸 빛의 공을 띄워둔 신시아의 말에 방호복에 달린 라이트를 켠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불 피울 나무를 찾아야겠는걸. 마법을 밤새도록 쓸 순 없으니까.”
“장작 패는 것 정돈 도와드릴게요.”
“그 몸으로? 평생 펜대만 잡아본 것 같은데?”
레온이 자신있게 나서자 신시아가 못미더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레온은 자신이 입은 방호복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저야 못하지만, 이 녀석은 할 수 있을걸요?”
근력강화기능이 달린 방호복을 이용한다면, 나무 한 두 그루 쯤은 충분히 꺾을 수 있으리라.
“거참 대단한 아티팩트네. 나중에 나도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그건 좀. 저도 한 벌 밖에 없는거라.”
“아쉽게 됐네. 그럼 같이 움직이자. 더 늦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돼.”
“그러죠.”
신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온은 꺾을만한 나무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몇 발자국을 채 떼기도 전.
[함장님, 생명체의 이동이 감지됩니다.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습니다.]
방호복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세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왜 그래?”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요. 뭔진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음.”
뜬금없는 레온의 경고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녀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비치는 몇 개의 노란 불빛.
“아무래도… 짐승이나 마수는 아닌 것 같은데.”
“희소식인가요?”
“아니.”
레온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신시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와 동시에.
파앗!
“오.”
불빛과 그들 사이로 반투명한 벽 하나가 솟아나자, 레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사용해 형성된 역장입니다. 위험 요소를 막아내는 용도로 보입니다.]
순식간에 분석을 끝낸 AI의 말을 들은 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배울 가치가 있겠어.’
인간의 몸으로 함선의 외부역장과 유사한 형태의 방어 수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레온이 마법을 배워야 할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이 시간에 숲속을 돌아다닐 만한 사람은 두 부류지. 마수 사냥을 나선 용병이거나, 아니면 산적이거나.”
“용병 쪽이 그나마 나아 보이는데요.”
“마수 말고 인간도 사냥하니까 문제지. 돈 되는 건 뭐든 하는 놈들이니까.”
그 말을 들은 레온은 입을 다문 채 허리춤의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신시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방벽 너머의 존재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녀석은 없겠지만, 숫자에서 밀리는 게 문제야.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도 해야 해.”
“알았어요. 세이렌?”
[1급 방호모드로 변환합니다.]
무미건조한 음성과 함께, 레온이 착용한 방호복이 붉은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방호복 안에 숨겨져 있던 붉은색의 헬멧이 등 뒤에서 튀어나와서는 레온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대인전투프로그램 실행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세이렌이 명령을 접수한 것을 확인한 레온은 점점 가까워져 가는 불빛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1급 방호모드로 들어간 방호복 안에 들어간 이상 레온의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레온의 심장은 쉴 새 없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
수풀 사이로, 몇 개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야.’
손에는 횃불을 쥔 채,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몸에 걸친 몇 명의 인간을 확인한 레온의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때.
“비르켄?”
상대를 확인한 신시아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