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씨앗(3)
인류가 은하의 변방 행성인 지구를 벗어나 은하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된 계기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하이퍼드라이브의 발명이었다.
빛보다 빠르게 날아갈 수 있는 우주선이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인류들이 자신만의 행성을 찾기 위해 지구를 떠나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물론, 새롭게 행성을 개척한 인류의 대부분은 인류연합의 그늘 아래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
예를 들면, 레온이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라던가.
꿀꺽꿀꺽
[함장님, 약 2인분의 식량이 추가로 소모되었습니다.]
“나도 보고 있어.”
베가본드호의 AI, 세이렌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레온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도륙 내고 있는 여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며칠 굶기라도 한 것일까.
여자는 세이렌과 레온의 대화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허겁지겁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 숲을 꽤나 헤매고 다닌 모양인데….’
여자가 걸친 누더기 같은 옷과 전신의 생채기를 보며 레온은 그녀가 처한 상황을 추측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 드넓은 숲을 해매고 다녔다면, 이해하지 못 할 일도 아니다.
다만.
“세이렌, 이 대륙에는 지적생명체가 없다고 하지 않았어?”
[현재까지의 탐사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저 사람은 어디 땅에서 솟아 나온 거야?”
눈앞의 여자가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그 의문만은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 않고 있었다.
[대륙 내에서 문명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자원탐사를 위해 대륙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던 세이렌의 말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레온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가정은 두 가지.
이 자가 자신처럼 이 행성에 불시착했거나.
‘다른 대륙에, 인간들이 살고 있거나.’
우주에서 이 대륙으로 추락한 것이라면 이 근방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세이렌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긴 한데….
“저기요?”
“%#[email protected]?”
“후우. 아니에요, 먹던 거 마저 드세요.”
“^#@%$#@.”
닭날개를 뜯다 말고 자신을 바라본 여자의 입에서 나온 알 수 없는 언어에, 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식탁으로 향하자 레온이 세이렌에게 물었다.
“세이렌, 저 언어가 뭔지 알겠어?”
자신의 추측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도, 일단은 서로 말이 통해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세이렌이 입을 열었다.
[연합의 언어아카이브에 등록된 언어는 아닙니다. 이 행성에 자생하는 지적생명체의 고유언어로 보입니다.]
“그러면, 통역시스템을 만들 수는 있는 거야?”
[현재까지의 발화내역과 지구에서 사용된 고대어를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늦어도 오늘 안에는 기초적인 통역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세이렌의 말에 레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통하게 된다면, 적어도 끙끙 속앓이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
그때.
“%$#@%#@%!”
식사를 끝내기라도 한 것인지, 만면에 웃음을 띤 그녀가 레온을 향해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뭐…감사하다는 거죠? 별말씀을.”
상대가 감사하다고 말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레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휴, 답답해서 혼났네.”
상대의 입에서 익숙한 연합공용어가 흘러나온 순간, 레온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산산이 부서졌다.
“당신, 뭡니까?”
상대가 공용어를 쓸 줄 알면서 일부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댔다는 사실에, 놀림당한 듯한 기분이 든 레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여자는 도리어 레온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긴, 통역마법 쓴 거 보면 몰라? 마법사잖아. 마법사 처음 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 뭐요?”
“뭐야, 진짜 처음 보는 거야?”
통역마법? 마법사?
고대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당연하단 듯이 하는 상대를 보며, 레온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연합에 등록된 초능력 중, 마법이라는 초능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행성의 인류는 행성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을 테니까.
우주진출조차 하지 못한 행성의 인류가 가진 초능력이 연합에 등록되어 있을 리 없다.
아려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면서, 레온은 자칭 마법사라는 여자를 바라봤다.
마법사가 레온을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밥 먹기 전부터 궁금했는데, 지금 누구랑 말하고 있는 거야?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우주선의 인공지능인 세이렌입니다.”
“인공지능? 아, 에고무기의 정령같은 건가?”
레온의 말을 들은 마법사가 헝클어진 금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레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두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근데, 당신은 어디에서 온 거죠?”
“응?”
“이 대륙에서 원래 살고 계셨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당연하지! 어떤 미친놈이 이런 오지까지 와서 살려고 하겠어?”
‘역시.’
그녀의 답을 듣자마자, 레온의 의문은 단번에 풀려버렸다.
그의 생각대로, 눈앞의 여자는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것이다.
‘이 행성에, 문명이 존재하고 있어.’
그것도, 아직까지 다른 이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행성시대의 문명이.
아무도 하지 못한 새로운 발견을 앞둔 레온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쪽은 이런 오지까지 왜 온 건데요?”
이제 남은 건, 상대의 목적을 확인하는 것뿐.
상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지에 따라, 그가 취할 태도도 바뀌게 되리라.
하지만.
“예언을 받았어.”
“예언이요?”
그녀의 말에 레온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 미래예지의 한 종류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전해 듣는 것을 말합니다.]
‘나도 알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마법에 이어서, 이번엔 예언이라니.’
이미 과학 문명의 정점에 다다른 은하에선 잘해야 고대문명의 미신으로나 여겨지는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그래.”
“흠….”
아직 우주로 재진출하지 못했으니 이런 미신이 횡행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것도, 진짜일 지 몰라.’
조금 전, 상대가 사용하는 마법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레온은 그녀의 말을 단순히 미신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무슨 예언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 어려울 건 없지. 식사까지 제공해 줬는데.”
레온의 물음에 금발의 마법사는 씨익 웃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마족을 멸할 열쇠가 있다고 들었거든.”
“마족… 이요?”
“뭐야, 마족도 모르는 거야?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어?”
“뭐, 그런 셈이긴 한데….”
“흠?”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레온은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대로 우주에서 불시착했다고 이야기한다 해서, 평생을 이 행성에서만 살아왔을 상대가 이해할 리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개자식들을 잡을 열쇠가 이곳에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거든. 그런데 막상 오니까 온통 숲 뿐인 거 있지? 내가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며칠을 돌아다녔는지….”
그녀의 입에서 설명 겸 신세 한탄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레온은 그녀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결국, 열쇠를 못 찾았단 거죠?”
“뭐, 그렇지. 이러다간 제국이 놈들에게 멸망당할 텐데….”
레온의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마법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레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본데.’
그녀의 말이 맞는다면, 행성에 세워진 인간들의 나라는 지금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었다.
어쩌면, ‘마족’이라는 자들에 의해 이대로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
그 말인즉슨.
‘내 논문 주제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그 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그, 제국이란 곳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서요. 저는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너, 여기서 혼자 살아왔던거야?”
“네.”
“하긴, 누가 있었으면 정령이랑 수다나 떨고 있지는 않았겠지.”
“누가 수다를 떨었다고….”
마법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레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제국까지 가려면 바다를 직접 건너야 해. 좌표가 없는 여기선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당신은 제국으로 가는 항로를 알고 있는 거겠죠?”
“나는 마법으로 날아온 거긴 하지만. 너까지 태우기엔 내 마력이 부족… 해.”
자기 입으로 능력의 한계를 말하기 부끄러웠던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하지만 레온은 그녀의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이렌.”
[네, 함장님.]
“바다를 건너갈 장비, 만들 수 있겠어?”
처음부터, 그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현재 가진 설계도를 이용하면, 초보적인 대기권용 항공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만?”
AI의 말에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이렌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준비중인 계획이 원래 일자보다 약 일 주일 정도 연기될 우려가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 행성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레온에게, 일 주일의 기다림은 꽤나 긴 시간이다.
하지만.
“진행해.”
레온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연구주제가 박살나는 것 보단, 일 주일을 소모하는 게 차라리 나았으니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호복과 호신용 병기들도 점검해 줘.”
명령을 마친 레온의 심장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감으로 두근대기 시작했다.
***
레온과 마법사, 신시아가 대륙을 떠난 것은 둘이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쐐애애액-!
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고대의 제트기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행성의 대기권을 갈랐다.
음속의 두 배를 넘는 속도로 날아갈 수 있는 이 비행기라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루빨리 인류가 살고 있는 대륙으로 이동하기엔 최적의 선택.
하지만.
“뭐, 뭐가 이렇게 빨라!”
제트기의 좌석에 앉은 신시아의 반응은 달랐다.
자신의 비행마법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생전 처음 겪는 속도와 굉음을 마주했으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더 시끄럽네.’
물론, 그것은 레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음도 심하고, 연료 소모도 막대한 고대의 비행기 따위를 은하시대에 사는 그가 타봤을 리 없지 않은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비명소리 앞에서, 레온은 준비해 둔 이어플러그를 귀에 꽂고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함장님, 곧 대륙에 도착합니다.]
“그래?”
세이렌의 부름에 눈을 뜬 레온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땅 색이… 왜 이래?”
구름 아래로 보이는 신대륙의 모습을 확인한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보라색으로 물들어있는 대륙이라니.
그런 건 은하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형태였으니까.
그러나, 레온이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
[위험! 위험!]
“뭐?”
[정체불명의 투사체 접근 중.]
경보음과 함께 들려온 세이렌의 말이 끝나기도 전, 레온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보랏빛으로 물든 대지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자신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