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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07화 (208/224)

#209화

[신계는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곳일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직접 보니까 그냥 그러네.]

이안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거대한 행성인 천계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댔다.

그와 함께, 신계의 대기권을 뚫고 내려오는 거대한 무언가.

쿠구구궁

신들의 머리 위를 완전히 가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요새가, 신계를 향해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저,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저토록 거대한 요새를 인간 따위가….]

[어지간한 소행성보다 거대하군. 물질계쯤은 충돌만으로 박살 낼 수 있겠어.]

거대하다, 웅장하다 따위의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크기의 요새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을 외치던 신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갈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저건….]

곧, 요새를 잠시 살피던 갈리우스는 요새의 원형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알테라를 소멸시킨 이유가, 달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나?]

형태는 완전히 달랐지만, 자신의 머리를 가린 거대한 성의 여기저기엔 달이 가지고 있던 크레이터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역시 마법의 신은 다른데? 이렇게 쉽게 알아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짝짝짝

비아냥 따위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감탄의 박수가 신계를 향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이잉-!

요새가, 눈을 떴다.

키이이잉!

요새의 한쪽 벽이 동그랗게 갈라지며 거대한 공간이 생겨났다.

공간 안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미사일들.

개수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병기들이, 마치 바늘꽂이의 바늘들처럼 빽빽하게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탑.

[…준비를 많이 했군.]

그 기괴한 모습에, 갈리우스는 침음을 삼켰다.

내부에 가시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것이 신조차도 멸할 수 있는 핵병기란 사실은 몰랐다.

하지만, 가시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탑 형태의 구조물에서 느껴지는 힘만으로도, 눈앞의 요새가 그저 거대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 제작자가 제법 준비를 많이 해 뒀더라고?]

[제작자… 결국, 그가 일을 저질렀군.]

이안의 입에서 제작자라는 말이 나오자, 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는 처음부터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 그 사실을 조금만 더 빨리 눈치챘다면 좋았을 것을.]

제작자가 신들을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신계의 모든 신들은 힘을 모아 제작자를 물질계에서 배제하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제작자가 만들어 낸 대부분이 대륙에서 사라졌지만.

[조금 더 꼼꼼하게 살펴보지 그랬어? 그랬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결국, 제작자가 남긴 안배는 거대한 위협으로 돌아왔다.

이안이 장난스러운 투로 입을 열자, 신들은 모두 침묵했다.

‘이건….’

‘이길 수 없어.’

‘아니,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신계에 나타난 거대한 요새를 마주한 순간, 그들의 전의는 이미 꺾여버렸다.

아무리 신들이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물질계의 위성인 달을 박살 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달이 수 많은 병장기들로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다면 더더욱.

물질계의 달이 자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무엇을 원하는가.]

남아 있는 신들 중 가장 강한 존재인 갈리우스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우리를 멸하고자 했다면, 이런 귀찮은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었겠지. 그 흉악한 요새라면 신계를 멸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굳이 요새에 장치해 둔 병기 따위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그저, 저 거대한 요새를 신계에 집어 던지는 것만으로도 신계에 거주하는 신들을 소멸시키기엔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을 터.

그런 간편한 방법을 굳이 사용하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역시, 신들이라 그런지 머리는 잘 돌아가는걸.]

갈리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내게 굳이 너희를 소멸까지 시켜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거든.]

키이잉

[아직까지는 말야.]

이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요새 곳곳에 장치된 병기들이 신계를 향해 겨누어졌다.

누가 봐도 뻔한 의도를 가진 무력 시위이자, 협박.

하지만, 신들은 그 협박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요구 조건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 따위는 없어 보이는 것 같네만.]

굴복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소멸뿐이었으니까.

이미 이안의 손에 소멸당한 두 신, 알테라와 마르콘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좋아,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그래도 신들이라 다르긴 해.]

[…음.]

신계의 신들을 동네 시정잡배처럼 취급하는 이안의 태도에 갈리우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상대와의 격차가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너희가 가진 신성을 몽땅 두고 사라져.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이안이 자신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순간.

[감히…!]

갈리우스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

한때는 물질계의 위성이었던, 요새의 함교 위에서.

[이안, 신들이 정말로 신성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안이 신들과 대화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미미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신성은 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내놓으라는 건,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단 걸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신성과 신앙을 잃은 신은 허신이 된다.

이미 신앙을 잃어 허신이 되기 일보직전인 저들에게, 손에 쥔 한 조각 신성까지 빼앗으려 하다니.

[쥐를 쫓을 때도 도망갈 길은 열어 주는 법이다. 신들은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미미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성을 포기하고 허신이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마법의 신이 보내온 강렬한 외침이 함교를 뒤흔들었다.

[이안, 들었지?]

미미르는 이안을 향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앞발과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얘기지.”

우웅-!

이안은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요새와 자신을 연동시켰다.

곧, 요새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안은 신계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그의 눈앞에 빛의 형태로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이 들어왔다.

[너희도 알잖아?]

이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허신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진정한 너희의 모습이란 걸.]

자신을 신들이라 칭하는 정보생명체들의 정체에 대해서.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안의 말을 들은 순간, 갈리우스는 순간 멈칫했지만 곧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겐 제작자가 남긴 수 많은 지식들이 있어. 이 지식들이 어디서 흘러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엔 너희에 대한 정보도 있더라고.]

곧이어 이안의 입에서는, 어떤 생물에 대한 정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보와 사념을 먹이로 삼는 생물체. 그 형태가 정해져 있진 않으나….]

[…그만.]

[정보와 에너지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 생물들은….]

[그만.]

[…자신들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며 물질계라 부르는 행성에서 지성체들이 뿜어내는 정보와 사념을 수확해간다. 수확한 정보와 사념의 종류에 따라, 개체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뒤에 좀 더 있는데, 다 이야기해 줄까?]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이안의 설명을 들은 갈리우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일 뿐. 우리는 신성을 얻음과 동시에 평범한 생물에서 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네가 주워섬긴 이야기들은, 이미 신으로 거듭난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아, 그래?]

하지만, 이안은 갈리우스의 변명을 듣곤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잘난 신성이 물질계의 소유라는 것까지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건가? 결국, 신성이란 것도 물질계의 지성체들이 보내온 신앙의 결정체일 뿐이니까.]

[그, 그건… 물질계의 지성체들이 스스로 내놓은 것이다! 그들에겐 믿어야 할 절대자가 필요했으니까!]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갈리우스는 그 말에 반박했다.

[난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냐.]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신이 되기 위해 훔쳐 간 것들을, 다시 내놓으란 것이지. 물질계에서 만들어진 신인 내게.]

엄밀히 말하면, 이안은 자신의 것을 되돌려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물질계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자들이 물질계의 것을 가지고 있는 꼴을, 굳이 봐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저, 원래 자리로 돌아가란 이야기일 뿐이야. 원한다면, 너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해 줄 수 있어. 물론….]

기이이잉-!

[너희가 원하지 않는다면, 조금 다른 방법을 택할 수도 있겠지.]

당장이라도 발사할 준비를 갖춘 이안의 수많은 병기들.

그 앞에서, 신계의 신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군.]

갈리우스의 입에서 사실상의 항복선언이 나온 순간, 이안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

달이 사라졌다.

그 사실이 아스텔리아 대륙 전체에 퍼지는 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달이, 달이 사라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당연히, 그 소식을 들은 대륙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일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식이나 월식처럼 잠시 모습을 감춘 것도 아니고, 달 자체가 서쪽에서 뜨더니 아예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재앙의 징조처럼 느껴진 탓이다.

“설마, 신계의 신들이?”

“달의 여신이 소멸했다더니, 그 복수를 하려는 것인가?”

“그럼, 검신께서는?”

자연히, 신들과의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대륙인들의 관심사는 곧 이안의 생사 여부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신계의 신들로부터 중간계를 지키던 검신, 이안이 신들에게 패하고, 그로 인해 달이 사라진 것이라면.

“검신이시여….”

“부디….”

중간계의 안위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전 대륙에서 이안을 향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검신… 당신은 정말….”

그것은, 한때 마르콘을 모시는 사제였던 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콘께서는 그 이후로 연락도 되지 않고… 정말로, 중간계를 버린 것일까?”

이안이 사라지고 달의 여신이 소멸한 이후, 마르콘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달의 여신이 거주하던 달까지 사라진 마당이었으니.

“물질계가 어떻게 되려는 건지, 정말….”

자신이 모시던 신과 달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세리아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오늘도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저건….”

동쪽에서부터 나타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달…?”

아니, 달은 아니었다.

달처럼 동그랗기는 했지만, 마치 밤송이처럼 가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형태.

하지만, 움직이는 궤도와 크기는 분명, 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저건 대체….”

하늘에 나타난 괴물체를 바라보며, 세리아는 경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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