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206화 (207/224)

#208화

어젯밤은 미넨에겐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아니, 미넨 뿐만이 아니었다.

밤을 맞이한 대륙의 지성체들이라면,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상에, 달이 꿈틀댄다니….”

이제는 사라진 달의 여신조차도, 달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는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달의 모습이 여전히 저 모양 그대로 유지되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걸 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미넨의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이안, 이번엔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안의 분신으로써, 본신의 미친 짓이 평범한 자들과는 스케일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내가 이안이라면, 달로 뭘 만들 수 있을까?’

업무가 끝나고,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미넨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놈이라면, 분명 신계의 침공을 막을 생각뿐이겠지. 그렇다면 놈이 달을 이용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달을, 신계와의 싸움에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어지간한 대륙보다 거대한 크기의 위성은,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거기에 이런저런 군사시설과 병기들을 가득 채워놓는다면, 행성을 지키는 요새로는 나무랄 데가 없겠지.

“정말이지, 허무맹랑한 계획이기는 하다만.”

사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법한 이야기다.

물질계와 수십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달을 요새화한다는 건, 대륙 구석에 박힌 섬을 요새화하는 것과는 그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게다가, 놈은 달의 지형을 아예 변형시켰단 말이지….’

아마도, 달의 형태를 요새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일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야.”

일개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손쉽게 해내는 이안의 능력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미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넨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응?”

말도 안 되는 일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단 사실을.

“달이 왜….”

해와 달이 함께 하늘에 걸려있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하늘이 맑고, 둘이 지고 뜨는 시간이 맞물리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라면, 태양과 달이 하늘에 함께 있는 모습을 종종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서쪽에서 뜨는 거야?”

달이 반대방향에서 뜰 수는 없지 않은가.

“미친….”

생김새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미넨은 알 수 있었다.

서쪽 하늘에서 떠오른 그것은, 분명 달이라기보단 성에 가까운 모양.

하지만, 그 크기와 위압감은 분명 위성의 그것이었다.

달이 어째서 반대로 떠올랐는지에 대한 답은, 분명했다.

“이안….”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이 분명했다.

과학의 힘을 빌렸건, 신의 힘을 사용했건, 정체불명의 능력을 활용해 달을 반대로 떠오르게 한 것이리라.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진 모르겠다만….’

달이 반대로 떠오르는 게, 행성의 방어에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속도가… 너무 빠른데?’

서쪽 하늘에서 떠오른 달이 중천에 오르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나 빨랐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성의 모습을 한 달은 태양을 그대로 지나쳐 동쪽 하늘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어?”

거대한 달이 자신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미넨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안의 어깨 위에서, 미미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가?”

일견 바보 같아 보이는 고양이의 모습에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미미르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으냐!]

애오옹!

미미르가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자, 이안은 한쪽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 미미르의 말이 이어졌다.

[달을 찰흙처럼 주무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도 모자라 달을 마치 거대한 배처럼 이용할 줄이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달을 움직일 수 있는 엔진만 달아주면 되는 일인데 말야.”

[그게 말이 안 되는 다는 것 아니겠나! 아무리 자네의 힘이 신과 같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은 달의 여신조차도 해내지 못한 일이야!]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고양이가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잔말 말고, 애들 시켜서 초계나 똑바로 해. 언제 신계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말야.”

말을 마친 이안은 함교의 형태를 띈 성의 가장 꼭대기에서 검게 빛나는 우주를 둘러봤다.

‘예상 도착 시간은 앞으로 이틀.’

신계와 물질계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이안이 가진 로켓기술을 총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대륙만한 크기의 성을 밀어낼 엔진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제작자의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제작자가 가진 기술력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작은 태양과도 같은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핵융합기술과, 그 에너지를 온전히 방출해낼 수 있는 고도의 엔진기술.

그리고 거대한 달을 전쟁 기계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만큼 정밀한 제어기술까지.

‘사실은, 나보다 미래에서 온 사람 아냐?’

이안, 아니 이안의 몸을 뒤집어쓴 강민혁조차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제작자가 이안에게 풀어낸 기술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 뿐이었다.

“뭐, 내겐 나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이만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신들을 물질계에서 몽땅 쫓아내 버리네 마네 하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런 능력을 가지고 왜 신들에게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안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제작자의 지식창고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알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언제일지는 이안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이제, 가서 신들을 해치우면 되겠군.]

“언제는, 신들에게 덤비면 큰일 난다더니?”

미미르의 말을 들을 이안이 핀잔을 줬다.

신이 가진 힘 앞에서 벌벌 떨던 미미르가 떠오른 탓이었다.

명색이 신검에 깃든 인격이라는 놈이 신들을 해치우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웃기는 일이긴 했지만.

이안의 말에 미미르는 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신들이라 해도, 달을 부술 만큼 강한 힘을 지니지는 못했으니까.]

지난번처럼 거대한 소행성을 날려 보낸다 한들, 이안이 만들어낸 대륙 크기의 성을 부술 수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성에 부딪치기도 전, 성을 둘러싼 수많은 병기들 앞에서 소행성쯤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리리라.

하지만.

“흠… 아직은 신들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는데.”

[…어째서냐?]

이안의 말을 들은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네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거다. 네 녀석 성격대로라면, 그런 걸 가만히 두고 보진 못할 텐데?]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자의 원한은 생각보다 크다.

분명, 신계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안에게 두고두고 문제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었다.

“뭐….”

하지만 이안은 우려 섞인 표정을 지은 미미르의 말을 듣고는.

“놈들도 대충 쓸모가 있을 것 같거든.”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이제, 준비가 끝났군.]

전쟁 준비로 한창이던 신계를 돌아보던 마법의 신, 갈리우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도 빨리 빌어먹을 놈을 해치우고 다시 대륙인들로부터 신앙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전쟁을 벌일 준비가 끝났다는 사실은 그만큼 기꺼운 일이었다.

[신계는 이제 버리고 나서도 좋을 정도요, 갈리우스. 신계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를 각 신들이 흡수했으니, 얼마 동안은 제힘을 되찾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요.]

갈리우스의 옆에 달라붙은 신계의 관리자, 마테오르가 준비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힘을 되찾았단 말이지….]

그 말을 들은 갈리우스는 기쁜 미소를 지었다.

물질계로부터 보내져 오던 신앙이 끊긴 이후, 신계에 남은 신들은 사실상 허신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락해버린 상태.

그러니, 비록 일회성이기는 했지만 신들이 제힘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희소식이었다.

그것도 잠시.

[마르콘과 알테라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되었군.]

소멸당한 두 신을 떠올린 갈리우스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신들 중에서도 상위급에 위치한 두 신이 함께했다면, 전쟁이 조금은 더 수월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소멸한 신들을 다시 살려낼 수도 없는 일.

[그들이 없다 해도 신계는 충분히 승리할 수 있소. 아무리 그놈이 강력한 힘을 지녔다곤 하지만, 수천의 신이 한 번에 달려들면 어찌 상대할 수 있겠소?]

갈리우스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마테오르가 그를 위로했다. 마법의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말이지.]

신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이 이번 일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들이 전력을 발휘한다면, 어쩌다 신이 되어버린 그 자 따위는 충분히 짓이겨버릴 수 있으리라.

승리를 확신하고 나자, 갈리우스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의 계획을.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신계를 물질계와 붙여놓아야겠소.]

[신계를 말이오?]

갈리우스의 말에 마테오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갈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신계가 물질계와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

[하지만, 신계를 벗어나면 신들의 힘이 조금씩 깎여나간다는 사실을 그대도 알고있지 않소.]

하지만 마테오르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 대로, 신들은 신계를 벗어나면 그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과거라면 대륙의 지성체들이 보내주는 신앙으로 그 부족분을 메꿨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갈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의 신계는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요. 신계가 가진 모든 신성을 각 신들이 빨아들인 상태이니까. 그 신성을 물질계 근처에 다시 풀어두면, 새로운 신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소? 신기에 만들어진 성역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흠, 그런 방법이라면….]

갈리우스의 말에 마테오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갈리우스의 말 대로 신성을 뭉쳐놓는다면 지금만은 못해도 새로운 신들의 안식처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지상의 신기들이 가진 조그마한 성역 역시, 비슷한 생성원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달을 이용하는 게 좋겠구려. 물질계와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충분한 질량을 가진 물체이니.]

[소멸한 알테라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게 좋을 거요. 지금의 신계보다야 조금 좁기는 하겠지만, 물질계에 더욱 쉽게 간섭하기 위해선 이 방법이 최선이니.]

대화를 마친 두 신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생각하기에도 해결책이 제법 나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저건… 뭐지?”

그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삼으려던 달은.

“…성? 아니, 성이라기엔 너무 거대하군. 저건 대체….”

이미 신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오랜만이야, 갈리우스.]

“너, 너는….”

익숙한 목소리.

거대한 성으로부터 흘러나온 목소리에, 갈리우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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