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마도위성 아스가르드.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계의 유일한 인공위성이자, 이안의 든든한 마동력 저장고 겸 감시장비로 그 쓰임새를 다해 온 녀석.
하지만 이안이 아스가르드에 걸고 있는 기대는 그 이상이었다.
[2단계의 봉인… 말씀인가요?]
“그래.”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가진 힘 상당수는 아스가르드가 가진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하니 아스가르드를 묶고 있는 봉인을 풀 수 있다면 신계와의 싸움에 분명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미, 관리자님께서는 봉인의 열쇠를 쥐고 계신 걸요?]
“그게 무슨 소리야?”
프레이야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본 프레이야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관리자님께서는 이미 신의 격에 오르신 것으로 보이는데, 아닌가요?]
“그런 것 같긴 한데.”
얼마 전부터, 이안의 몸은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대륙인들의 신앙을 받아들인 뒤부터지.’
그 이후로, 이안은 먹고 마시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육체에 부담이 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체내에 가득 찬 마동력이 이안의 육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존에 꼭 필요한 산소 역시 마찬가지.
그 증거로, 이안은 지금 우주복 없이 맨몸으로도 우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이지 않은가.
‘필멸자에서 불멸자로 변화해 가는 상태인 것 같긴 한데….’
아마도, 이게 신의 격에 올라있는 상태가 아닐까.
이안의 말을 들은 프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봉인을 풀어낼 자격조건은 이미 획득한 상태입니다.]
“그래?”
[신의 격에 오른 상태에서, 권능을 발동하는 것. 그것이 봉인을 해제하는 조건이니까요.]
“좋아.”
그제야,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신의 격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권능이라면 이미 셋이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전이, 흡수, 방출.’
이 권능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시험조차 못해 본 상황이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참에 권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시험해 볼 좋은 기회였으니.
“고마워, 프레이야. 나중에 또 보자고.”
[별말씀을요, 관리자님. 그럼, 또 불러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이안의 작별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인 프레이야는 곧 우주공간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텅 빈 공간에 남은 것은 이안과 미미르, 그리고 눈앞의 마도위성 뿐.
‘권능을 발현해야 한다라.’
아스가르드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이안은, 곧 눈앞의 집채만 한 마도위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전이.’
마도위성의 금속 표면에 손을 가져간 이안은, 눈을 감은 채로 발현하고자 하는 권능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한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자, 이안의 마음속에는 조금씩 의구심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다루어야 할 권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교육받지 못한 상태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나, 이안이 슬슬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우우웅-!
이안의 의지 없이, 그의 몸에 가득 들어차 있던 마동력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손바닥 바깥으로 나온 마동력은 그대로 아스가르드의 차가운 금속 표면을 완전히 감싸버린 다음, 서서히 안으로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게… 전이의 권능인가?’
그 과정에서, 이안은 자신이 내보낸 마동력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위성을 집어삼키고 있군.’
권능의 소유주가 본디 마기의 주인이었던 마신이기 때문일까.
전이의 권능은, 마치 자신과 닿은 물질을 모두 침식하는 마기처럼 자신과 맞닿은 위성의 부품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건 꼭… 내 몸의 일부가 된 느낌인데.’
일전의 아스가르드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종과도 같았다면, 지금의 아스가르드는 새롭게 돋아난 팔과도 같았다.
아스가르드에 장착된 수많은 센서들이 보내오는 신호 하나하나가, 그대로 이안에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권능 확인. 아스가르드의 2단계 봉인을 해제합니다.]
이안의 머릿속에, 차가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말에 이안은 아스가르드의 거대한 동체를 바라봤다.
이안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텅 터텅!
수십 번의 나사 풀리는 소리와 동시에, 거대한 마도위성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위성의 금속제 부품들은 분해의 충격으로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봉인을 풀려고 한 거지, 위성을 박살 내버릴 생각은 없었던 이안은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이대로 가면 멀쩡한 위성 하나를 완전히 못 쓰게 되어버릴 판.
“이러면 곤란한데.”
바라지 않던 일이 벌어지자 이안의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잠깐.]
미미르가 이안을 향해 외친 것은 그때였다.
[이안, 저 안쪽을 봐라.]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산산이 조각난 위성의 잔해를 옆으로 슥 밀고는 위성이 있었던 곳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회색의 에너지, 마동력으로 가득 찬 구슬을.
‘마동력을 담은 에너지 저장고인가?’
사람 몸통만한 구슬을 마주한 순간, 이안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파앗!
이안의 머릿속에 담겨있던 제작자의 지식이, 조금씩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곧, 지구인의 상식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고도의 과학지식이 이안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젠장, 머리 아파 죽겠네.’
이안은 갑자기 쏟아지는 지식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내 제작자의 지식창고가 말해 주는 설명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괜찮나, 이안?]
이안이 이마를 찡그리자, 놀란 미미르가 허공에서 사지를 휘젓기 시작했다.
“잠깐 머리가 지끈거렸을 뿐이야.”
곧, 통증이 잦아들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지식들을 하나씩 잡아챈 결과였다.
“그나저나… 이제 알겠어.”
[알겠다니?]
이안의 말에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위성 자체가 봉인이었어. 아스가르드의 진짜 정체는 따로 있었던 거지.”
[진짜 정체?]
미미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안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제작자… 당신은 미쳤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이안은 세상에 없는 제작자를 향해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구슬은,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전이의 권능을 활용하는 법까지…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알고 있었어.’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배워본 적 없는 지식들이 지식창고에서 쏟아질 때마다 이안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안은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을 처음부터 새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판이 바뀌었으면, 더 크게 놀아줘야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새로운 계획을 바라보며, 이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지구와 물질계는 많은 것이 서로 달랐다.
대륙과 바다의 생김새부터, 생물의 구성, 지성체들의 모습까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잘 찾아보면 공통점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달이 제법 큰데.”
지구의 보름달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단 말이지.
업무가 끝나고, 미넨은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의 본체인 이안과는 달리, 이런저런 의무에서 벗어났던 미넨은 업무가 끝난 뒤의 삶을 충실하게 즐기고 있었다.
밤하늘의 달을 술잔에 담아 즐기는 것 또한,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
오랜만에 떠오른 커다란 보름달 앞에서, 미넨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참동안 달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
달을 바라보던 미넨은, 순간 두 눈을 깜빡였다.
하늘에 떠오른 달이, 아까보다 아주 조금 일그러져 보였기 때문이다.
“취했나?”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은 미넨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안이 가진 마스터의 육체를 그대로 복사한 미넨의 육체는, 술을 병째로 들이부어도 취하지 않을 만큼의 내독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저건 뭔데?”
한 손에 술잔을 쥔 채, 미넨은 다른 한 손으로 눈을 비비곤 달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쨍그랑!
미넨은 손에 쥔 술잔을 놓쳐버렸다.
깨진 유리조각과 붉은 액체가 집무실 바닥을 마구 어지럽혔지만, 미넨은 그 사실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철컥!
“공작 전하! 괜찮으십니까?”
잔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집무실 앞을 지키던 신검대원들이 뛰쳐 들어왔다.
하지만, 미넨은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윽고, 신검대원들의 눈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 저게 대체….”
하늘을 바라본 대원들은 미넨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경악했다.
“다, 달이….”
분명, 동그란 형태로 하늘을 비추고 있어야 할 달이.
“꿈틀대고 있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모양을 변형시키고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검은 하늘 위에서 마구 꿈틀대는 달을 올려다보며, 미넨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흠….”
꿈틀대는 거대한 대지.
물질계의 달-이었던 것-을 내려다보며, 이안은 턱을 긁적였다.
“일단 사용법은 이게 맞는 것 같은데 말이지….”
살아 움직이는 달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안이 한 일은 별것 없었다.
위성 안에 봉인되어 있던 에너지 저장고를 달 표면에 부착시킨 다음, 전이의 권능을 조금 불어 넣어줬을 뿐.
그것만으로, 단단한 대지를 가지고 있던 물질계의 달은 마치 살아 있는 찰흙처럼 물컹거리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대륙인들이 이 모습을 보면 난리가 나겠군. 달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니.]
그 모습을 보며 미미르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주인도 없는 땅인데.”
사실 이 대지의 주인은 달의 여신인 알테라였지만, 이미 그녀는 이안의 손에 의해 소멸당하지 않았던가.
“주인도 없는 땅인데, 내 입맛대로 좀 바꾼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전이의 힘을 조금만 응용하면, 권능의 대상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비틀어버릴 수 있다.
지성이나 영혼이 없는 위성 따위라면 더더욱 쉬운 일.
찰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듯, 이안은 이 달을 재료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셈이었다.
[그래서, 뭘 만들 셈인 게냐?]
미미르의 물음에, 이안은 짧게 답했다.
“요새.”
그것도, 아주 거대한.
자신의 머릿속을 새롭게 채워나가는 제작자의 지식을 하나씩 살피며, 이안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