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이안이 우주를 향해 날아오른 지 사흘이 지났다.
하지만 아스텔리아에 거주하는 사람 중,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주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안이 대륙을 지키기 위해 소리의 수십, 수백 배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아스텔리아는 여전히 평온했다.
“마르센 제국에서 건너온 물건입니다! 와서 구경들 해 보세요!”
“난쟁이들이 직접 벼려낸 검입니다! 가짜 아니냐고요? 그 칼 좀 줘 보슈. 그 허접한 검 정돈 단숨에 두 동강 내 버릴 수 있으니까!”
그것은 아슈타르의 새로운 수도, 알자스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광장은 좌판을 펼친 상인들의 외침으로 가득했고, 호객에 이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마왕에 의해 파괴되기 전, 아슈타르의 수도였던 슈바이크와 비견될 만큼 번화한 대도시의 모습.
하지만.
우우웅-!
“어?”
“뭐, 뭐야?”
각자의 목적을 위해 말하고, 움직이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하늘이….”
“밤이 된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한 태양 빛이 내리쬐고 있던 푸른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커멓게 변했으니까.
순식간에 어두워진 세상을 마주한 알자스의 영지민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물론, 이것은 알자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째서 하늘이….”
“마, 마족의 짓이다! 마족의 짓이야!”
연합공국의 다른 공작령과 마르센제국, 그리고 아인연방 까지.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그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이 일을 벌인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대륙 전체를 범위로 삼는 마법을 쓰게 될 줄이야.”
밤낮을 바꿔버린 범인, 탈마공 디아블로는 새까맣게 변해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마 마력 소모가 적은 통신마법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마법이었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디아블로가 해낸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를 제외한 영지 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마력탈진 직전에 이르렀지만, 대륙 하나를 범위로 삼는 마법을 펼친 대가로는 싸게 먹힌 편이었다.
하지만, 마법의 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륙의 하늘을 뒤덮은 어둠은, 단지 통신마법으로 만들어진 환영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력의 장막일 뿐.
우우웅-!
대륙 스케일의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환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마법진의 중심에 선 채, 디아블로는 손에 쥔 통신구슬에 마력을 가득 불어넣었다.
성인 머리만 한 크기의 수정구슬이 마력으로 가득 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앗!
하늘을 검게 물들인 어둠 사이로, 무언가가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건….”
하늘에 나타난 두 환영의 정체를 확인한 탈마공은 말을 잇지 못했다.
둘 다, 익숙한 생김새였다.
‘신검공이 보여주었던 멸망의 운석.’
운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하나의 섬과 같은 크기.
하지만 그 생김새는 이안이 보여주었던 그 모습과 완전히 동일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검공….”
거대한 운석을 정면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
“저런 걸 걸칠 존재는 그뿐이지.”
비록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의복을 겉에 걸치고 있었지만, 탈마공은 그가 아슈타르의 공작 이안 폰 아슈타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파아앗-!
운석과 신검공의 사이를,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인간 여성의 형태를 지닌, 전신의 피부가 은색으로 빛나는 존재.
신검공에 비하면 훨씬 거대했지만, 등 뒤의 운석에 비하면 훨씬 작아 보이는 그녀가 이안의 앞에 서 있었다.
디아블로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알테라….”
달의 여신.
그녀가 왜 이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탈마공은 알 수 있었다.
‘신검공.’
이안이 지금부터 할 일을 막기 위해서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며 디아블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
‘부디, 막아다오.’
디아블로는 주먹을 꾹 쥐고는, 신을 마주 보고 선 이안을 향해 기도했다.
***
“넌 또 뭐야?”
로켓엔진을 전력으로 가동한 끝에 목적지인 소행성에 도착한 이안은,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을 마주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전신에 순은을 치덕치덕 바른 듯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여인.
하지만, 이안은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신들 중 하나인 모양인데, 방해하지 말고 비키지 그래?”
소행성을 부수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존재라면, 당연히 소행성을 날려 보낸 신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는 보통 신이 아니다. 달을 지배하는 달의 여신 알테라야. 조심해야 한다.]
이안의 말과 거의 동시에, 신의 정체를 알아챈 미미르가 이안을 향해 이야기했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 자여.]
달의 여신, 알테라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그대가 하려는 일은 다른 신들의 의사에 반하는 일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잠시 이안을 바라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들의 행사를 막지 말아라. 그것이, 그대와 물질계의 존재들을 위한 일이니까.]
도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이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힘을 개방했다.
우웅-!
신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물질계의 존재들에게 숭배받아온 달.
가장 오래된 신 중 하나인 그녀가 가진 막대한 신성이 빛의 형태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법… 강한데.’
자신의 눈앞을 메운 은색의 파도가 주는 압력에, 이안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무력 시위의 의도는 너무나 분명했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소리겠지.’
태곳적부터 신으로써 존재해왔던 그녀의 눈에, 이제 막 신의 힘을 얻게 된 이안은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보일 터.
보통의 신이었다면, 이쯤에서 힘의 차이를 깨닫고 그녀의 압박에 굴복했으리라.
하지만.
“지랄하네.”
[…뭐?]
문제는, 이안이 보통의 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에, 알테라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의 폭언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신들이 물질계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했으니까 잠자코 멸망하란 거 아냐?”
사실상,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라는 말과도 같지 않은가.
“그걸 잘도 받아들이겠다. 달의 여신이라더니 정신이 달나라로 갔나.”
말을 마친 이안은 콧방귀를 뀌고는 달의 여신을 노려봤다.
[이… 반쪽짜리 신이….]
당연히, 알테라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간신히 신의 힘을 얻은 주제에, 감히 태곳적부터 신의 자리에 올라있던 자신을 무시하다니.
[멸망을 받아들이라면 받아들일 것이지, 감히 내게 대항하려 하다니…!]
그녀의 분노와 함께, 여신의 주변을 둘러싼 은색의 파도가 거칠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안을 향해 가해지는 압력 역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크윽…!”
조금 전보다 강해진 압력에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알테라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고작 이 정도의 힘도 버티지 못하면서, 나에게 그런 모욕을 주었단 말이냐? 역시 인간 출신이라 어쩔 수 없군.]
이대로 짓눌러 터뜨려버리리라.
자신의 신성에 괴로워하는 이안을 지켜보던 달의 여신은, 신성을 더욱 강하게 내뿜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음?]
온 힘을 다해 눈앞의 벌레 같은 녀석을 짓눌러버리려던 알테라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곤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신성이 약해졌지?]
자신이 바깥으로 뿜어낸 신성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가진 무궁한 양의 신성에 비하면 일부일 뿐.
하지만 그녀가 더 많은 신성을 뿜어내려 했음에도, 신성은 서서히 약해지기만 할 뿐 더 끌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황한 그녀가 이안을 바라본 순간.
씨익
이안은 그녀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순간, 이안이 무언가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알테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별 건 아니고.”
찌를듯한 눈빛에도, 이안은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너희 밥줄을 끊어버렸지.”
[그게 무슨 소리지?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알테라는 이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안은 여전히 비릿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한 이야기, 전부 물질계로 전송되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 그게 무슨….]
그 말을 들은 여신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얼빠진 얼굴을 한 달의 여신을 향해, 이안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신은 신앙을 먹고 살지.’
신앙이란, 신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며 필멸자들이 보내는 일종의 에너지.
필멸자 개개인이 보내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그 숫자가 수천만, 수억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많은 필멸자들이 보내준 에너지를 힘으로 삼을 수 있었기에, 신은 신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름조차 잊혀진 허신이 될 뿐.
그리고.
[이… 감히….]
급히 행성의 상황을 확인한 알테라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이, 우리를 멸망시키려 했다고?’
‘말도,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하지만, 저건 분명 달의 여신 알테라님이라고! 신관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건….’
그녀에게 바쳐지던 순수한 신앙 대신 날아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신들에 대해 쏟아지는 의심과 불신뿐.
필멸자들에게서 신앙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허신으로 만들어버리려 해…?]
그녀가 수없이 봐왔던 허신들처럼, 이름마저 잊혀진 채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막아야 해.’
어떻게든, 자신과 다른 신들에 대한 필멸자들의 불신을 없애고 다시 양질의 신앙을 이끌어내야 했다.
물론,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지만.
[네놈부터 처리해주마.]
눈앞의 벌레 같은 녀석만 해치워버린다면, 아직 수습할 방법은 있다.
그렇게 판단한 달의 여신은 자신이 가진 힘을 모두 긁어모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안의 모습을 보곤 당황했다.
[너….]
이안의 덩치가, 조금 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그가 가진 신성 역시도.
“왜 그렇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지?”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본 채, 이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물질계를 버렸으니, 물질계를 지켜줄 존재에게 신앙이 옮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마, 말도 안 돼. 벌써 신앙의 힘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신이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주제에….]
이안의 대답을 들은 알테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쓸데없는 대화는 그만하자고.”
도박수가 성공한 이상, 이안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우우웅-!
마동력이 이안의 의미에 따라, 우주공간을 감싼 은빛의 파도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녀석들이 만들어낸 것은.
파아앗!
고체연료와 산화제, 그리고 마동력이 듬뿍 섞인 핵탄두로 꽉꽉 들어찬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들.
“잘 가.”
이안이 이제는 허신이나 다름없어진 달의 여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댄 순간.
죽음을 실은 수백 발의 핵미사일이 일제히 적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