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제국에 위치한 황금모루부족의 광산 가장 깊은 곳.
“히야….”
“호오….”
“허….”
광맥을 캐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그 일을 담당해야 할 수십의 난쟁이들은 곡괭이를 휘두르는 대신 멍한 눈으로 가만히 서서 감탄사만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광부의 자질을 가진 난쟁이들이 난생처음 파업을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카가가각-!
위이잉-!
입을 떡 벌린 난쟁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위치한 것은, 다름 아닌 수십 기의 작은 기계들.
키이이잉-!
각자 드릴이나 삽날과 같은 장비를 몸 이곳저곳에 붙인 기계들이 광맥에 달라붙은 모습은, 마치 줄기에 달라붙은 진딧물과도 같았다.
“아름다워….”
“어찌, 저렇게 완벽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지?”
“나도 저 춤판에 끼어들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한 치의 오차도, 낭비도 없이 마치 무도회장에 오른 남녀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의 모습 앞에서, 난쟁이들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삶의 대부분을 광산과 함께 보내는 그들의 눈에, 기계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은 하나의 예술공연과도 같았으니까.
“안 되겠어. 나도 저런 녀석을 하나 만들어야….”
“저렇게 완벽한 기계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아….”
입가와 수염이 서서히 흘러나온 침에 젖어 드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모여든 난쟁이들은 눈앞의 채광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어?”
“뭐, 뭐야?”
달아오른 난쟁이들의 분위기는 곧 차갑게 식어버렸다.
기이이이-
광맥 앞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기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동작을 멈춰버린 것이다.
“고장이라도 난 건가?”
“아아, 조금만 더 볼 수 있다면….”
기계들의 공연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난쟁이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 채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고장이 난 것은 아니었다.
삐-
멈춰버린 수십의 기계에서 일제히 비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명령 입력.]
기계들은 한목소리로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야.”
“기계가 말을 할 수 있다고?”
“저 많은 기계들이,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눈앞의 채광기계들이 단순히 자동으로 채광하는 골렘같은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난쟁이들은 기계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일은 지금부터였다.
[명령 수행을 위해 이동하겠음.]
키이이잉-!
기계들로부터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동시에, 채광을 멈춘 기계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산 밖을 향해.
“도, 돌진한다!”
“피해!”
“저것들 갑자기 왜 저래?”
그 과정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난쟁이들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기계들을 보곤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하지만 기계들은 그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키이잉-!
그저, 명령에 따라 광산 밖을 빠져나가려는 것일 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계들은 줄지어서 빠른 속도로 황금모루부족의 광산과 마을을 빠져나왔다.
기계들의 대탈주는,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무, 무슨 일이야?”
“기계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피, 피해!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온 대륙에 퍼져있는 난쟁이들의 광산.
그 광산들에서 광맥을 캐고 있던 모든 채굴 기계들이, 일제히 난쟁이들의 마을을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속력으로 이동하라.]
지시받은 명령에 따라, 순식간에 캄캄한 지하를 빠져나온 기계들은 수천여 기.
모두가 드넓은 대륙의 이곳저곳에 퍼져있었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였다.
[마경으로.]
키이이잉-!
자신들의 창조주이자 지배자, S-1의 명령을 받은 기계들이, 바퀴와 무한궤도를 최대속력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
마경은 드넓은 곳이다.
아스텔리아 대륙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는 마경을 걸어서 주파하기 위해선 못 해도 몇 달은 걸리리라.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늑대의 모습을 한 마신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뜀박질 한 번에 수십 미터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늑대에게, 마경을 벗어나는 것은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것만큼 쉬운 일.
물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많은 마족들이 자신을 방해하기는 했지만.
으적!
이미 대부분의 마왕을 먹어 치워 자신의 힘으로 소화시킨 마신에게, 마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한 힘을 지닌 마족 따위는 걸어 다니는 간식에 불과했다.
지나가는 길에 있던 불쌍한 마목(魔木)을 한입에 집어삼킨 늑대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기에… 내 먹잇감이 보이는군.]
과거, 봉인 당할 때 흩어진 자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째서 자신의 기운이 더러운 신성과 함께 느껴지는 것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모조리 먹어 치우면 될 뿐이지.]
스으으-
그렇게 마음먹은 마신은 본디 자신을 구성하는 힘, 마기를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늑대의 모습은 주변에 만들어진 보라색의 안개로 뒤덮여 가려져 버렸다.
그리고.
키이이이-!
크아아-!
마기의 안개 속에서, 마족과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잡아먹은 마족과 마수들을 다시 불러낸 것이었다.
마신이 굳이 자신의 힘을 나누어서 마족들을 부활시킨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일단은… 저 더러운 것들을 먼저 치워야겠어.]
그에겐 더러운 오물이나 마찬가지인 신성에 직접 닿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렇기에, 자신을 대신해 저 더러운 오물을 청소해 줄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다.
마기로 가득 찬 안개 속에서 수천의 마수와 마족들이 만들어졌을 그때.
[가서 치워라.]
마신은 자신의 종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키에에-!
생전의 모습과는 달리, 이지를 잃어버린 마족과 마수들이 무질서한 대형으로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자신의 창조주인 마신이 내린 하나의 명령뿐이었다.
앞에서 느껴지는 신성을 모두 지워버리고, 마기로 물들여버리는 것.
키이이-!
그 하나의 명령만을 수행하기 위해, 마족과 마수의 물결이 지평선 너머를 향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명령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쐐애액-!
[저건, 뭐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불꽃을 안개 속에서 지켜보던 마신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것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무기이고, 토마호크라는 이름을 가진 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지만.
[위험하다.]
마신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눈치채곤 마기의 안개를 움직였다.
스으으-!
마신의 의지를 받아들인 마기의 안개가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신은 강철보다도 단단한 형태로 변한 마기의 방패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콰과과광-!
이어진 것은, 지축을 올리는 거대한 폭발의 연속.
[이건, 마법이 아냐. 신법도 아니다.]
반원형의 보라색 방호벽 안에 몸을 숨긴 마신은, 그 위력을 느끼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대체….]
땅거죽이 뒤집히는 진동이 끝날 때까지, 마신은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방호벽 아래에서 몸을 숙였다.
이윽고, 진동과 굉음이 사그라들었다.
[끝인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마신은 방호벽의 일부를 슬쩍 열어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니….]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마신은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창조한 마족과 마수들로 가득 차 있던 평원은.
[사라졌다니….]
텅 비어 있었다.
평원에 남아 있는 것은, 바닥에 뻥뻥 뚫려있는 수많은 크레이터들 뿐.
방호벽에 의해 보호받은 자신을 제외하고, 살아 있는 마족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신들이 새로 개발해 낸 술식인가…. 이번엔 제법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졌군.]
하지만 마신은 곧 당황한 표정을 지워버렸다.
자신의 몸에 더러운 신성이 묻는 것을 감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공격은 충분히 감당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단숨에 뚫어버린 다음, 먹잇감을 해치운다.]
스으으-!
각오를 다진 마신의 뒷다리가 마기에 의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가 뒷다리를 튕기는 순간, 마신의 몸은 순식간에 그가 원하는 먹잇감을 낚아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가 채 다리를 움직이기도 전.
마신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먹잇감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대륙의 한참 뒤편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먹으려고 아껴둔 녀석인데, 이러면 순서를 바꿔야겠는걸.]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뒷다리에서 힘을 뺀 마신은 입에서 침을 뚝뚝 흘렸다.
먹잇감이 자신을 향해 알아서 다가와 주는데,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었으니까.
곧, 마신은 자신이 점 찍어 둔 먹잇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
마왕도 아니고, 인간이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먹잇감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신의 머릿속에선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채 해석하기도 전.
“야, 늑대.”
[늑대…?]
건방진 인간놈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마신은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이 마신을 그따위 하찮은 미물에 비유하다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숨에 먹어 치울 생각뿐이었던 그의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뜯어먹어 주마.]
그래서, 자신의 말에 죽을 때까지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생각을 마친 마신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착하지? 앉아.”
[이런….]
감히 먹잇감 주제에, 마신인 자신을 개 취급하는 상대의 말에 그가 분노하고 있던 그 순간.
파아앗!
먹잇감의 주변에서, 익숙한 모양의 막대기 수십 발이 나타났다.
‘저건, 조금 전의….’
자신을 방호벽 아래로 숨게 만든.
그리고, 자신이 창조해낸 마족의 군세를 쓸어버린 가공할 술식이 아니던가.
꽁무니에서 불을 뿜지는 않았지만, 형태는 조금 전 하늘에서 쏟아진 녀석들과 동일했다.
그리고.
“앉으라고.”
먹잇감, 이안이 입을 연 순간.
쐐애애액-!
수십 발의 기둥이, 불을 뿜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막는다.’
스으으-!
급히 만들어낸 마기의 방호벽 아래에서, 마신은 이안의 말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