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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95화 (196/224)

#197화

“힘?”

벨라크론의 말을 들은 이안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진 힘은 단 두 가지다.

대 마족병기인 페르소나와, 제작자로부터 물려받은 마동력.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벨라크론이 이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자네가 다루는 정체불명의 힘 말일세.”

“마동력을 말하는 건가?”

“자네는 그걸 마동력이라고 부르는군. 분명, 제작자가 다루던 그 힘이 맞겠지?”

이안의 물음에 벨라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안의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건 맞긴 한데, 마동력에 치료 능력 따위는 없단 말이지.”

마동력은 말 그대로 동력(動力)이다.

세 가지 힘의 균형을 정확히 맞춰 섞어낸, 물질계에 존재하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보다도 강력한 힘을 내재한 동력.

하지만 아무리 마동력이 아무리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치료의 능력까지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의 답을 들은 벨라크론은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 제작자가 죽어가는 용들을 살려내곤 했다는 기록이 있네.”

“…살려냈다고?”

이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벨라크론을 바라봤지만, 엘더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제작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용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 그러니, 자네의 힘을 메이라우스님께 빌려주게.”

말을 마친 벨라크론의 눈빛은 너무나 간절해 보였다.

그 눈빛 앞에서, 이안은 차마 안된다는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마침내.

“일단 시도는 해 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이안은 벨라크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이라우스가 봉인되어 있는 거대한 수정구를 향해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용을 잠시 올려다보던 이안은,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수정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정구의 표면과 그의 손바닥이 맞닿은 순간.

‘이건….’

이안은 수정구를 물들인 검은 얼룩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흑마력이야.’

마력이 마기와 결합해 만들어지는, 주로 흑마법에 사용되는 에너지.

‘왜, 흑마력이 봉인구 안에 들어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흑마력이 원인이라면, 내가 조절할 수도 있겠어.’

어쩌면, 이 고룡의 육체를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

우우웅-!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이안의 몸에서, 회색의 에너지가 서서히 몸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을 통해 수정구 안으로 불어넣어 진 힘은, 마기와 신성, 마력을 재료로 빚어낸 마동력.

그리고.

위이이잉-!

수정구 안을 조금 채운 마동력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탁기 안 물줄기처럼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마동력의 줄기가 거대한 수정구 전체를 감싸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 역시…!”

메이라우스가 봉인된 수정구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벨라크론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얼룩이… 지워지고 있어…!”

잿빛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검게 얼룩진 흑마력 덩어리를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잿빛의 소용돌이가 얼룩처럼 묻은 흑마력 덩어리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 수는 없었던 벨라크론의 눈엔 이안의 힘이 수정구를 완전히 정화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데?’

마동력의 소용돌이를 유지하면서, 이안은 수정구를 물들인 흑마력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상처 안에서 흑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어.’

정확히는, 용의 복부에 벌어진 상처.

그곳에서 조금씩 새어 나온 흑마력이 봉인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왜 흑마력이 새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력을 제거한다면, 고룡이 회복될 가능성이 조금 더 올라갈지 모른다.

이안은 수정구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마동력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이안의 의지에 감응한 마동력의 소용돌이가 그 크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힘 자체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조그맣게 응축된 만큼 마동력의 소용돌이가 가진 힘은 더욱 강해졌다.

콰과과-!

메이라우스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소용돌이가 고룡의 하반신을 감싸고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하는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소용돌이 안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안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회전하는 힘으로 흑마력을 끌어들인다.’

이안이 봉인구 안에 불어넣은 마동력의 순도와 밀도는 그 어떤 에너지보다도 높다.

고작해야 약간의 마기가 섞인 흑마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콰과과과-!

메이라우스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마동력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상처의 안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툭!

상처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가 떨어져나온 순간.

‘저거다.’

이안은 지금까지 메이라우스를 괴롭혀온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콰과과-!

이안의 의지에 따라, 마동력의 소용돌이가 더욱 압축되었다.

고룡의 복부에 난 상처만큼 줄어든 소용돌이가, 메이라우스에게서 떨어져나온 정체불명의 물체를 감싸 안았다.

‘조금만 더….’

정체불명의 물체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력을 모두 흡수할 생각에, 소용돌이를 다루는 이안의 집중력이 한계치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물체의 안에 남아 있던 모든 흑마력을 빨아들인 그때.

파아앗!

소용돌이 안에서 백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그 빛의 정체를 깨달은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

신이 가진 고유의 힘, 신성과 자연의 마력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진 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흑마력을 뿜어내던 물체가 상극인 신성력을 뿜어낼 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백색 광채가 조금씩 사그라들 때 즈음.

[…으으음.]

그녀가, 눈을 떴다.

***

[먼저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는데. 고마워, 아슈타르.]

“별말씀을.”

봉인구 안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 메이라우스를 향해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고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가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겠지. 어쩌면 영원히.]

“뭐,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고. 그나저나.”

하지만 이안에겐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뱃속에 박혀있던 그건 뭐야?”

흑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뿜어낸다니.

그런 물건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안의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고룡의 답은 짧았다.

[제작자가 날 위해 만들어 준 아티팩트.]

“제작자가…?”

여기서 갑자기, 제작자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메이라우스를 올려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상을 입고 이 봉인구 안에 안치될 때, 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며 붙여줬지.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고.]

“…흑마력과 신성력을 뿜어내는 혼종을?”

서로 상극인 힘을 내뿜는 아티팩트라니, 지금까지 폭발하지 않은 게 기적이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이안이 어이가 없어 되묻자 메이라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냐. 원래는 마력과 신성, 마기가 혼합된 특이한 힘을 내뿜어서 내 힘의 회복을 도왔지.]

“마동력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동력을 내뿜는 아티팩트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으니까.

[그래… 제작자가 그 힘을 마동력이라고 불렀지. 그러고 보니, 이 소용돌이에 담긴 힘이 그 힘과 똑같아.]

“제작자로부터 직접 전수받았으니까.”

정확히는, 유산에 깃든 제작자의 사념을 흡수하면서 완성된 힘이었지만 거기까지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 결국, 제작자에게 두 번이나 도움을 받은 셈이군.]

그 말을 들은 메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겠지.]

말을 마친 그녀가, 정신을 집중했다.

기이잉-!

고룡이 봉인된 수정구를 중심으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건….’

그리고, 이안은 볼 수 있었다.

그가 마동력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뽑아냈던 정체불명의 물체가, 서서히 봉인구의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윽고.

봉인구 밖으로 튀어나온 물체는 황실비고의 바닥을 뒹굴었다. 이안의 시선이 정체불명의 물체로 향했다.

‘거울?’

얼핏 봐서는 금속 따위로 만들어낸 거울처럼 보였지만, 거울이라기보단 금속의 파편에 가까운 형태.

매끈하게 가공된 금속 파편에 남아 있는 미량의 신성력이 주변을 밝게 비추었다.

“이게, 메이라우스님을 지킨 물건인가….”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신성력을 내뿜고 있다니.”

알론소와 벨라크론은 금속 파편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메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이름 모를 신의 신기였던 것 같군. 신기를 어떻게 가공했길래 흑마력이 흘러나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문 섞인 표정으로 바닥에 놓인 파편을 내려다보던 메이라우스의 시선이 이안을 향했다.

[힘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신기라면 분명 네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겠지?]

“물론.”

고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신기를 향해 다가갔다.

아직도 신성력을 내뿜고 있는 신기의 힘이라면, 그가 새롭게 흡수한 흑마력과 신성력 사이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데 도움이 될 터.

그는 여전히 순백의 빛을 내뿜고 있는 신기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스으으-

신기의 파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나기도 전, 밝은 빛을 내뿜던 신기의 파편은 평범한 쇳조각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안은 놀라지 않았다.

신기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던 힘을 흡수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그였으니까.

‘제법 양이 많은데? 이 정도면 흑마력을 안정화시킬 수 있겠어.’

본래는 마기를 흡수하는 데 이용하는 흡마의 힘을 역으로 적용하자, 신기에 담긴 신성력을 흡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의 몸을 타고 들어온 신성력은 곧 마동력과 따로 놀던 흑마력에 들러붙기 시작하더니, 이안의 마동력에 서서히 융화되기 시작했다.

‘어디, 얼마나 늘어났는지 한 번 볼까?’

흑마력과 신성력을 마동력 안에 녹여낸 이안은, 오랜만에 자신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창을 열었다.

그리고.

“…응?”

정보창의 변화내용을 확인한 이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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