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94화 (195/224)

#196화

마르센 제국의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황금모루부족의 마을.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그곳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오두막에서, 황금모루부족의 족장인 바몬트는 작업하던 것도 멈춘 채 머리를 긁적였다.

“대륙이 멸망할 거라곤 하지만, 부족의 광산을 내줘야 한다니….”

난쟁이들에게 광산은 삶의 터전이고, 광맥은 영혼의 양식이다.

광산과 광맥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는 건, 영혼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는 일.

대륙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아니었다면, 바몬트는 절대로 광산의 채굴권을 넘겨주지 않았으리라.

“다른 부족들을 설득하는 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지….”

황금모루부족이 난쟁이 사회에 가진 위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똥 씹은 표정으로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족장들을 떠올린 바몬트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슬슬 채굴에 필요한 노동력을 보낸다고 한 것 같은데….”

사실, 광산의 광물을 캘 수 있도록 허락한 지금까지도 남의 손에 광산을 맡기는 것은 영 탐탁지 않았다.

“그 날개 달린 요물만 아니었더라도….”

자신에게 대가로 내민 ‘비행기’라는 기계의 설계도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대륙의 멸망을 막기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바몬트는 거절했으리라.

“이제, 난쟁이들도 하늘을 날 수 있겠어….”

평생을 땅 밑에서 살아가는 난쟁이들이 하늘을 난다 한들 삶에 별다른 변화는 없겠지만, 난쟁이들이란 원래 그런 족속이다.

새로운 기술을 마주하기만 하면 홀려버리는 자들.

당연히, 그 난쟁이의 범주에는 바몬트 역시 포함되었다.

“가장 먼저 하늘을 나는 건 내가 되겠지. 흐흐….”

가장 먼저 하늘을 나는 난쟁이로 역사책에 기록될 순간을 상상하며, 바몬트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쾅!

“조, 족장!”

오두막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명의 난쟁이가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갑작스러운 침입에 달콤한 꿈에서 깨어버린 바몬트는 인상을 쓰며 자신을 방해한 난쟁이를 노려봤다.

하지만 난쟁이의 표정은 너무나 다급해 보였다.

“크, 큰일났수!”

난쟁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바몬트는 짜증을 조금 가라앉히고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인간들이라면 내가 올 거라고 이미 말해 놨잖아?”

이미 아슈타르 공작령에서 광산으로 사람을 보낼 거란 이야기를 모든 부족원들에게 해 놓은 상황.

혹시나 부족원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 아닐까 싶었던 바몬트가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난쟁이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인간들이 아니니까 그렇지!”

“…뭐라고?”

인간들이 아니라니.

그럼, 뭐가 온 거지?

난쟁이의 말에, 족장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것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요! 빨리 나와보쇼!”

“어, 어… 알았어.”

난쟁이의 재촉에, 바몬트는 고개를 휘휘 저어 정신을 차리고는 오두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족장이 몇 걸음을 채 떼기도 전.

“뭐, 뭐야 저것들은?”

그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웨, 웬 골렘들이….”

골렘이라기엔 너무나 투박하고 이상한 생김새였지만, 그의 상식 범위 안에서 저 움직이는 기계들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골렘뿐이었다.

쿠르르르-!

앞에는 드릴이나 삽날 따위를 달고, 다리 대신 무한궤도를 장착한 직육면체 형태의 기계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로 광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몰라, 무서워….”

끝도 모르게 이어지는 기계들의 행렬에 압도된 것은 바몬트뿐만이 아니었는지, 주저앉은 난쟁이들의 입에서 질린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문지기들은 안 막고 뭐 했어? 제정신이야?”

순간, 정신을 차린 바몬트는 난쟁이들을 향해 외쳤다.

정체불명의 골렘들이 마을 안으로 줄지어 달려오는데, 왜 아무도 이 행렬을 막지 않았단 말인가.

그 말에, 옆에 있던 난쟁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족장, 족장 입으로 아슈타르의 문장이 달린 건 막지 말라고 했잖수?”

“…뭐?”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신검공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바몬트는 여전히 줄지어 광산으로 들어가고 있는 기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었어…?”

포효하는 사자.

기계들마다 아슈타르 공작가의 문장이 큼직하게 박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몬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

[자원 채굴 진행은 순조롭습니다. 총 83개의 광산에서 362개의 광맥을 새로 발견했고, 현재 채취 중입니다.]

“부족한 광물은?”

[없습니다. 광물의 수송이 완료되는 대로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마키나로 돌아온 이안은 자신만만한 S-1의 답을 듣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미미르가 조종하는 수백 대의 C-130 수송기가 전 대륙에 뿌려댄 것은, 이번 작전을 위해 특수하게 만들어진 채광용 로봇들.

난쟁이들의 마을과 광산을 문제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들은, 지금쯤 신나게 광산을 파먹고 있으리라.

채굴이 끝난 로봇은 자동으로 지상으로 올라온 다음, 미미르가 조종하는 수백 대의 수송용 헬기에 매달려 마키나까지 수송될 예정이었다.

‘이제 자원 문제는 해결했고.’

S-1이 로켓의 시제품을 만들어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리라.

쐐애액-!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안은 자신의 영지인 아슈타르로 기수를 틀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알자스 성에 도착한 이안은 C-130의 구현을 풀어버린 다음, 그대로 성을 향해 자유 낙하하기 시작했다.

지면과 이안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지만.

우웅-!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마동력을 끌어올릴 뿐이었다.

슈우우-!

다리에 구현해 낸 제트엔진을 역분사해 속도를 줄인 이안은 서서히 성내에 마련된 비행장에 착륙했다.

“누, 누구…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침입자인 줄 알고 달려오던 경비병들이 이안의 얼굴을 알아보곤 한쪽 무릎을 굽혔다.

이안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아 준 다음, 곧장 성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호오.”

연무장에 도착한 이안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투타타타-!

콰아앙!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신검의 가문인 아슈타르의 연무장.

그곳에서 훈련 중인 자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검이 아니었으니까.

투투투투-!

부아아앙!

전원이 페르소나를 다룰 수 있는 자격자로 구성된 300명의 신검대원들.

하지만 신검대원이란 명칭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검이 아니라 총포였다.

콰아앙!

쿠르르르-!

각양각색의 총기와 박격포, 유탄발사기 따위를 쥔 병사들이 두 패로 나뉘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패로 나뉜 병사들 사이로, 몇 대의 전차와 장갑차 따위가 거대한 엔진소리와 함께 육중한 거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실탄이 아닌 공포탄이나 훈련용 모의탄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실전에 근접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이안이 놀란 점은 다른 부분이었다.

“벌써 차량류를 다룰 줄이야.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새롭게 환수급에 오른 자가 있는 모양이군.]

“그것도 그거지만, 아무리 환수급이라 해도 페르소나의 형태를 바로 바꾸는 건 힘든 일이란 말이야.”

미미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페르소나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선 부단한 연구와 상상, 설계를 통해 형태를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이안이 현대병기에 대한 세부정보와 형태-심지어는, 직접 구현해 만져볼 수 있게까지 했다.-를 교육했다고 한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자신이 가진 페르소나의 형태를 바꿀 거라곤 그 역시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이안이 제법 놀란 눈으로 훈련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즈음.

“신검공.”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안은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벨라크론, 오랜만인데?”

용족의 제1장로이자, 엘더드래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힘을 완전히 회복한 벨라크론이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안과 달리 심각했다.

“시간이 괜찮다면, 긴히 할 말이 있네.”

“…무슨 일이지?”

심상치 않은 벨라크론의 표정을 읽은 이안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벨라크론이 입을 열었다.

“메이라우스님과 관련된 이야기네.”

“메이라우스?”

그녀의 이름은 이안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마르센 제국의 지하에 봉인된 채 힘을 회복하고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에인션트급 드래곤.

그녀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갑자기 왜 나온단 말인가.

이안이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하자, 벨라크론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메이라우스 님의 상태가 위중하네.”

그 말을 들은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

이안은 메이라우스에게 진 빚이 있었다.

‘그 용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겠지.’

비록, 그것이 수백 년의 시간을 담보로 만들어 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안은 메이라우스를 도와달라는 벨라크론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번번이 귀찮게 해서 미안해, 알론소.”

메이라우스가 자리한 마르센 제국의 황실비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안은 문을 열어준 제국의 새로운 황태자인 알론소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 말에 알론소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 인사를 듣기엔, 황가가 진 빚이 너무 크군. 이번 일 역시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고 말야. 부담 갖지 말고 어서 들어 가자고.”

말을 마친 알론소가 활짝 열린 황실비고의 문 안으로 성큼성금 걸어 나갔다. 이안과 벨라크론 역시 그 뒤를 따라나섰다.

참룡공과의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지나치고서도 한참을 깊숙이 들어간 끝에, 이안은 만날 수 있었다.

“메이라우스….”

거대한 수정구 안에 봉인되어 있는 고대의 용을 마주하자마자, 이안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인구의 색이….”

탁해져 있었다.

마치 그을음이 끼기라도 한 것처럼, 수정구는 군데군데 까만 검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붉은 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안의 고개가 알론소와 벨라크론을 향해 돌아갔다. 알론소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잠시 깨어나신 이후로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야. 수정구의 색이 점점 탁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메이라우스님을 불러도 응답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셨어.”

말을 마친 알론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르센 제국의 황태자로써, 그는 제국의 국모나 마찬가지인 고룡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의문을 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 건데?”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은 이안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차라리 고룡을 죽여야 한다면 모를까, 의사도 아닌데 무슨 수로 그녀를 살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안의 말을 들은 벨라크론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자네의 힘을 빌려주기만 하면 되네.”

“힘?”

벨라크론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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