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대륙이 멸망한다.
이안이 그 이야기를 꺼낸 순간.
[대륙이, 멸망한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성광공과 폭권공을 제외한 네 공작이 보인 첫 반응은 부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웬 돌멩이 사진을 하나 보여주면서 대륙이 멸망할 거라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쉽사리 믿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물론, 대륙이 멸망할 거라는 이안의 말을 믿는 자도 있었지만.
[신검공. 설마, 자네의 짓인가?]
[자네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군. 대륙을 볼모로 협박할 생각이라니….]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이안이 꾸민 음모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공작들의 반응에, 이안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합공국의 공작이란 자들이 현실 부정이나 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현실 부정이라니! 그럼 자네의 말이 사실이란 겐가?]
이안의 말에 탈마공이 발끈해 외쳤다.
하지만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뻗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시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는, 다름 아닌 성광공.
이안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자, 엘로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엘로임…?]
[성광공, 이게 무슨 말인가? 당사자라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공작들의 시선이 지친 표정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의문이 가득 섞인 다섯 명의 시선을 받으며, 엘로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했네.]
[내가 했다니, 그게 무슨….]
[내가, 신벌을 불러들였네.]
말을 마친 엘로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성광공의 말에, 충격을 받은 다섯 공작들은 한동안 말조차 제대로 꺼낼 수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신벌이라니, 저 돌멩이가 말인가?]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신벌.
단 두 글자였지만, 그 단어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무거웠다.
만신의 지상대리자인 성광공이, 신들의 사주를 받아 대륙을 멸망시키려 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신검공을 봉인한다면, 신벌은 멈출걸세. 신들과는 그렇게 이야기가 되어 있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자네, 드디어 신들의 꼭두각시가 되기로 마음먹은 겐가?]
엘로임의 변명 같은 말에 환세공, 마르쿠스가 불같이 화를 냈다. 탈마공 역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럴 때가 아니네. 신벌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해.]
[그건 불가능해.]
그 말에 엘로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천계에서 직접 보내는 신벌을 막아낼 방법은 없어. 차라리 대륙의 지성체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는 게 빠를걸세.]
수천만이 넘는 대륙의 지성체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
성광공의 말은, 사실상 포기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내 영지민이라도 어떻게든….]
[방법이, 방법이 정말 없는 건가?]
신벌이라는 단어 앞에서, 공작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작들 개개인이 마스터급의 힘을 지닌 강자라고는 하지만, 신과 비교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다가올 신벌을 피할 방법만을 필사적으로 찾아낼 뿐.
그렇기에.
“있습니다, 방법.”
이안이 입을 연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이안을 향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방법이… 있다고?]
[신검공, 정말로 신벌을 피할 방법이 있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전쟁을 치르던 사이였다는 사실 따위는, 그들의 머릿속에 지워진 지 오래였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 영지민들이 신벌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향해서 모인 시선을 잠시 음미하던 이안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신벌을 왜 피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은 공작들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그러면, 아슈타르는 대륙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말인가?]
신벌을 피하지 않겠다는 이안을 향해 공작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당연히, 이안은 대륙과 운명을 같이할 생각이 아니었다.
“피하는 게 아니라, 막아야죠.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대륙에서 도망간단 말입니까?”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마친 이안의 시선이 당황한 여섯 공작들을 향했다. 환세공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신벌을, 막을 수 있다고?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우웅-!
환세공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구슬에 마동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구슬이 띄우고 있던 화면이 변했다.
거대한 암석을 비추던 화면은 곧, 두 개의 행성을 좌우에 둔 화면으로 변했다.
[이게, 대체….]
“하늘 바깥의 세상입니다. 뭐, 이해하기 힘들다면 천계와 물질계라고 해도 되겠죠. 왼쪽의 구슬은 천계, 오른쪽의 구슬은 물질계입니다.”
[하늘 바깥의 세상이라니….]
이안의 말에 공작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다른 차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질계와 천계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저 구슬처럼 생긴 것이, 물질계라고?]
[허… 정말이지 믿기 힘들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공작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이안이 보여주는 영상을 바라봤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신벌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입니다.”
그 말과 함께, 물질계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소행성의 위치가 영상에 표시되었다. 이안의 손가락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소행성을 가리켰다.
“다시 말해서, 저 암석 덩어리를 부숴버릴 수만 있다면 신벌을 막아낼 수 있는 겁니다.”
말을 마친 이안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공작들을 바라봤다.
[흠….]
[크흠….]
여섯 공작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안의 말이 워낙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이안이 제시한 해결방법 역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과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저, 암석 덩어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환세공이 이안을 향해 물었다. 이안은 가볍게 답했다.
“작은 섬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걸 소멸시켜야 한다고? 그건 불가능해.]
그 말을 듣고 입을 연 것은 환세공이 아니었다.
[1급 마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섬 크기의 땅을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해. 하물며, 마법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멀어진단 말일세. 세계 바깥에서 날아오는 섬을 무슨 수로 부순단 말인가.]
마법에 관한 한 일곱 공작 중 최고라 일컬어지는 탈마공이었지만, 그가 보기에 이안의 계획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 하더라도 거리가 멀어지면 그 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1급 마법을 쏘아 올린다고 하더라도 저 암석 덩어리에 닿을 때 즈음에는 9급 마법만도 못한 마력 덩어리로 변해있으리라.
“아니.”
하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탈마공 디아블로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 보게. 듣는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
환세공이 질린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공작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이안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계획에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환세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우우웅!
이안은 자신의 육체와 일체화되어 있는 페르소나를 깨워내기 시작했다.
“제가 가진 신급 페르소나의 힘.”
파아앗!
이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의 광채가 공작들의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 이 힘은….]
[마, 말도 안 돼.]
통신구슬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강렬한 이안의 기운 앞에서, 여섯 공작은 일제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는 공작들을 향해.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께서 제 발목을 잡지 않는 것.”
말을 마친 이안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여섯 공작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안은 다시 S-1이 위치한 마키나대륙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이안이 굳이 마키나 대륙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S-1, 준비는 끝났나?”
[네, 관리자님. 말씀하신 대로 채굴장비들의 생산을 마쳤습니다. A-211의 힘을 좀 빌리긴 했습니다만….]
“뭐, 그건 상관없지. 나야 광물만 잘 캐면 되는 거니까.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말씀하신 대로, 활주로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좋아.”
우우웅!
S-1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리를 전투기의 엔진으로 변형시켰다.
쐐애애액-!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제트엔진의 강력한 힘은 순식간에 이안을 거대한 탑의 바깥에 위치한 활주로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이안은 그곳에서 그가 지시한 사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휘유, 꽤나 고생했겠는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수많은 기계들의 군세였다.
한쪽에 아슈타르 공작가의 문장인 포효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 용도를 가진 기계들.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이 되는지까지는 이안도 알 수 없었지만.
‘뭐, 보내면 알아서 움직이겠지. 그래도 나름대로 자아가 있는 녀석들이니.’
일일이 사람이 움직여줘야 하는 지구의 기계와는 달리, 이곳의 기계들은 마치 로봇처럼 목적에 맞게 스스로 움직였으니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녀석들을 대륙까지 옮겨야 한다는 말인데….’
바다로 옮기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방법은 항공기를 이용한 공중수송뿐.
“S-1.”
[네, 관리자님.]
“이 녀석들, 튼튼한 편인가?”
[튼튼하다면….]
“공중에서 낙하시켜도 괜찮냐는 말이야.”
[고공에서 낙하시키실 생각이라면, 지금 즉시 재포장에 들어가겠습니다. 낙하산과 보호장비 없이는 위험할 테니까요.]
“소요 시간은?”
[수송기에 싣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좋아.”
S-1의 답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고양이를 바라봤다.
“미미르.”
[왜 그러지?]
“오늘, 고생 좀 하자.”
[고생이라니, 그게 무슨….]
이안의 말에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미미르가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미미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우우웅!
이안은 자신이 가진 마동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파아앗!
그의 몸을 중심으로, 잿빛이 활주로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드넓은 비행장을 가득 채운 회색의 기운은 서서히 거대한 비행기의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C-130.’
20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군용 전술수송기.
물론, 고작 한 대의 수송기로 이 많은 기계의 군세를 실어나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파아앗!
이안이 구현해 낸 수송기의 숫자는 한 대가 아니었다.
[미, 미친….]
애오오옹….
자신과 자신의 분신이 몰아야 할 수백 대의 C-130이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미미르가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