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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92화 (193/224)

#194화

난쟁이족들은 선천적으로 광부와 대장장이의 자질을 가진 채 태어난다.

그 덕분에, 일생의 대부분을 땅 밑에서 보내는 난쟁이들은 땅에서 나는 광물에 관한 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름의 광물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데.”

그런 난쟁이들의 부족장인 바몬트조차도, 이안이 보여준 광물들의 목록은 굉장히 생소했다.

“망간? 티타늄? 이게 다 뭔가?”

“…모른다고?”

순간, 이안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망치를 걸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네.”

“여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하긴,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구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적혀있는 광물을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알 리 없지 않은가.

‘그러면….’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겠다.

“좋아. 그러면, 대륙의 광맥 목록 정도는 있겠지?”

“우리 부족이 가진 광맥이라면 내가 전부 알고 있지. 다른 부족의 광맥은 협조를 구해야겠지만….”

“그 협조를 좀 구해 주면 좋겠는데.”

“허, 설마, 광산을 빌려 쓰겠단 건 아니겠지?”

“잘 알고있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이안의 말을 들은 바몬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난쟁이들에게 광산은 삶의 터전이네. 삶의 터전을 다짜고짜 빌려달라니, 그런 말이 우리에게 통할 것 같은가?”

자기만 아는 고집 센 난쟁이들이 이안의 제안을 받는다면, 승낙하기는커녕 곡괭이 들고 쫓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야.”

“필요한 일이라고? 난쟁이들의 터전을 빼앗아야 할 정도로?”

“그래.”

“도대체 무슨 잘난 이유이기에 그런 건가? 어디 들어나 보지.”

이안의 말을 들은 바몬트의 마음속에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이안의 대답은 짧았다.

“아스텔리아.”

“아스텔리아가 뭐 어쨌다고?”

이안의 입에서 뜬금없이 대륙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바몬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스텔리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광산의 광물들이 필요하다면?”

“…멸망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농담이라도 하는 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이안에게서 나오자, 바몬트는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농담 같아 보여?”

이안의 얼굴에서, 농담조라고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한 달. 한 달 뒤면 대륙에 신벌이 내릴 거다.”

“신벌?”

“그래. 대륙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신벌.”

“마, 말도 안 되네. 어째서 신들이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대륙의 지성체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신벌이라는 말에, 바몬트는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중요한 건, 신벌을 막아낼 계획에 난쟁이들의 광물이 필요하다는 거지.”

말을 마친 이안은 광물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흔들어 보였다.

“자, 이제 도와줄 마음이 좀 생겼나?”

말을 마친 이안이 바몬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

이안이 바몬트로부터 협조하겠다는 대답을 받아내고 있을 동안.

마경의 중심에 자리한 메피스토의 궁전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네놈이로군. 마족들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녀석이.”

메피스토.

마경의 제1군주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옥좌에 앉은 채,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고오오-

그 존재는,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생김새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슬라임처럼 온몸이 꿈틀거리다가도, 순간순간 짐승이나 인간, 마족의 형태를 취하길 수십 차례.

상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메피스토는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놈이 삼킨 녀석들인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마족들의 모습 중, 메피스토의 눈에 익은 자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메피스토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지직

마기를 듬뿍 머금은 보라색의 바위로 만들어진 팔걸이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버렸지만, 메피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분노를 활활 불태웠다.

물론, 저 정체불명의 존재가 삼킨 마족이 그가 아끼는 존재였다거나, 자신의 백성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감히 나를 한낱 먹이라고 생각할 줄이야. 감히!”

스으으으-

자신이 상대에게 한 끼 식사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메피스토는 체내에 가득 담긴 마기를 몸 밖으로 끌어냈다.

마경의 군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자만이 끌어낼 수 있는 고순도의 마기가 메피스토의 몸을 갑옷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고오오-

하지만 상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동요라는 걸 할 수 있는 지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

“이 힘을 느끼고도 도망치지 않는 걸 보니, 본능만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무릇, 마경의 존재라면 지성 없는 마수라도 고개를 조아릴 만큼 강력한 마기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메피스토는, 자신의 진력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대를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메피스토.]

그 존재가 입을 연 순간, 메피스토는 생각을 수정했다.

“대화할 정도의 지성은 있었군. 넌 누구지?”

여전히 강력한 마기를 온 몸에 두른 채, 메피스토는 눈앞의 적을 향해 물었다.

조금 뒤, 상대는 천천히 대답을 시작했다.

[네, 본체, 전부.]

“…본체라고?”

본체라니.

순간, 메피스토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줄기의 생각이 메피스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신?”

메피스토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경의 군주와 마족의 원천.

마경을 이루는 모든 마기는 결국 마신에게서 나온 것이니, 상대가 마신의 일부라면 본체라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다.

“…빌어먹을 마왕토벌자 놈.”

마왕들의 마석 속에 봉인되어 있을 마신의 일부가 어떻게 풀려났을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안을 향해 한바탕 욕지거리를 쏟아낸 다음, 메피스토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마신이여, 당신은 지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요.”

마신이 대륙에 다시 강림한다는 것은, 마신에게서 비롯된 마족의 존재 자체가 대륙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

마경의 군주 중 하나로서, 메피스토는 종족의 멸망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너, 흡수, 복구.]

하지만 마신의 일부로 추정되는 존재에게, 메피스토의 생각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고오오-

제멋대로 형태를 바꿔나가던 존재의 형태가, 하나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보라색 털로 가득 뒤덮인, 궁의 메인홀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늑대의 형태로.

[너, 흡수, 복구.]

말을 마친 거대한 늑대의 눈에 보라색의 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마경의 군주 중 하나인 메피스토조차도 일순 움찔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

하지만.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고작 그 정도로, 마경의 지배자를 무릎꿇릴 수는 없었다.

스으으으-

마기를 가득 끌어모은 메피스토의 신형이.

파아앗!

거대한 늑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

바몬트와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끝낸 다음, 이안은 알자스성으로 복귀했다.

[이안.]

“왜?”

책상에 앉아 때를 기다리는 이안을 향해 검은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미미르가 물었다.

[할 수 있겠느냐?]

“뭘?”

[신벌을 막아낸다고 하지 않았느냐. 정말, 네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냐?]

이안이 가진 힘이 강력하단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안이 부리는 생전 처음 보는 병기들은, 수백 년 동안 검으로 살아온 미미르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신을 만만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대륙에 직접 힘을 쓸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힘은 자신의 관할 안에선 전능에 가까워.]

신벌을 직접 막아낸다는 이안의 말이, 그에겐 조금 허황되게 들렸던 이유다.

“그게 뭐?”

하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어차피 대륙 안에선 힘을 못 쓴단 소리잖아.”

[…그건 맞는 말이다만.]

”그러니까 대륙 밖에서 돌멩이나 던지는 거지. 놈들에겐 고작해야 그게 한계란 소리야.”

그리고, 상대의 한계를 확인한 이안에겐 자신감이 넘쳤다.

행성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소행성만 막아낼 수 있다면, 신들이 대륙에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저깟 돌멩이쯤,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이안에겐,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야.]

자신감에 차 있는 이안의 얼굴을 보며, 미미르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제 슬슬 시간이 됐는데.”

툭툭

미미르와 대화를 끝낸 이안은 의자에 앉아 때가 오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우웅-!

“시작인가.”

집무실의 중앙에 자리한 통신구슬이 진동하는 것을 확인한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통신구슬을 향해 다가간 다음, 구슬에 손을 갖다 대고 마동력을 불어넣었다.

회색빛을 띤 기운이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통신구슬을 향해 스며들어 갔고.

파아앗!

거대한 통신구슬은 각기 다른 여섯 개의 환영을 위로 쏘아 올렸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통신구슬 너머 상대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신검공…!]

[누가 신검공을 불러들인 것이오! 저자는 대륙의 균형을 깨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안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심안공과 참룡공이 놀라 소리쳤다.

자신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신검공이 회의에 나타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불렀소.]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이안이 아니었다.

[환세공, 그대가 어찌!]

[가울드 공작가도 이제 신검의 편에 붙기로 한 것인가!]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낸 환세공을 향해 심안공과 참룡공은 놀라 외쳤다.

하지만, 둘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다들….’

‘침착한 거지?’

성광공도, 탈마공도, 폭권공도.

두 공작을 제외하면, 이안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순간, 두 공작의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안은, 손에 쥐고 있던 또 다른 구슬 하나에 마동력을 불어넣었다.

파아앗!

그가 쥐고 있던 구슬이 빛을 발하더니, 또 다른 영상 하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영상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바위였다.

[저건….]

[뭐지?]

무저갱처럼 시커먼 배경 중앙에 나타난 거무튀튀한 바위를 발견한 여섯 공작들의 시선이, 영상을 띄운 이안을 향해 집중되었다.

이안은 조용히 말했다.

“대륙을 멸망시킬 존잽니다. 대륙 멸망까지 앞으로 29일 남았군요.”

그 말을 듣고 일제히 경악한 공작들을 향해, 이안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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