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91화 (192/224)

#193화

대륙의 모든 생명을 무로 돌려버릴 것이다.

만신의 대리자인 성광공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나 무시무시한 이야기.

“지금, 협박하는 거야?”

이안은 그 말을 듣곤 비틀거리는 노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엘로임은 고개를 저었다.

“협박이 아니오. 나는 그저 신들의 이야기를 그대에게 전달할 뿐.”

말문을 열기 시작한 엘로임의 눈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 그대와 대륙에 주어진 유예기간이오.”

“한 달이 지나면?”

“신벌이 이 대륙을 향해 날아들겠지. 대륙 안에서 신벌을 피할 수 있는 필멸자는 아마도 없을 거요. 나를 포함해서.”

“신들이 원하는 게 뭐야? 쥐 죽은 듯이 처박혀 있기라도 하란 말인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오.”

말을 마친 엘로임이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이안을 가리켰다.

“스스로의 힘을 봉인하고, 페르소나를 소멸시키시오.”

그리고, 엘로임의 제안은 심히 충격적이었다.

“신들은 그대의 힘이 세계의 균형을 깰 거라 생각하고 있소. 반대로 말하면, 그대가 가진 힘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이럴 이유도 없단 말이지.”

성광공의 말을 이안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엘로임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당장이라도 좋소. 그대가 힘을 포기한다면, 이 대륙의 필멸자들은 무사할 거요. 그대의 영지민들을 포함해서.”

신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세계의 균형.

균형을 무너뜨리는 요소만 사라진다면, 대륙은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되리라.

물론.

“지랄하고 있네.”

이안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서겠지만.

“…지금, 뭐라고 하셨소?”

이안의 입에서 나온 저속한 말에 성광공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하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랄한다고 했다, 왜?”

“결국, 자신의 아집 때문에 대륙을 멸망시키려는 게요?”

이안이 제안을 거부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로임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런 엘로임을 이상한 놈 보듯 바라봤다.

“뭔 개소리야? 대륙을 멸망시키는 건 내가 아니라 너, 그리고 신들이잖아.”

이 순간, 이안은 신들을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하는 행위는, 자신들을 섬기는 대륙의 필멸자들을 단순히 장기판의 말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저들이 진심으로 대륙의 인간을 위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질극 따위를 벌였을 리 없지 않은가.

“이건 그대가 힘을 포기하기만 하면 해결될….”

“포기 못 하겠다고. 아직도 못 알아들었나?”

그리고, 그 때문에라도 이안은 힘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신들을 이 대륙에서 몰아낸다.’

이전에는 그저 추상적인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계획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의 협박에 굴해 힘을 포기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대륙의 지성체들을 자신들의 장난감쯤으로 생각하는 놈들과 한배에 타고 싶은 생각 따위, 이안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대륙을 위험에 빠트리겠단 말이로군.”

“아니.”

성광공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대륙을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천계의 신들.

그러니.

“난 대륙을 구할 거야.”

말을 마친 이안의 시선이 노인을 향했다. 노인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허. 설마, 신벌을 막아내겠단 소리를 하는 게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어째서지?”

“거대한 섬이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질 거요. 그걸 막아낼 수 있는 건 이 대륙, 아니 세계 전체를 뒤져도 없을 거요.”

그도 그럴 것이, 그 거대한 섬과도 같은 바위를 직접 골라서 불러들인 장본인이 다름 아닌 엘로임 아니던가.

자신이 얼마나 거대한 재앙을 불러들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막아낼 수 있다는 이안의 말이 허황되게 들릴 뿐이었다.

“그건 해 봐야 알 일이고.”

하지만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전에, 이야기를 좀 해 줘야겠어.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좋지?”

우우웅!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향해, 한쪽 팔에 구현된 전차포를 들이댄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

성광공과의 면담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이안이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성광공은 이미 대륙이 멸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자에게 정보를 얻어내기란 이안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신벌의 정체는 소행성. 천계와 이곳 사이의 소행성들 중 하나를 끌어당겨서 충돌시킨다.’

신벌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게 된 이안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소행성의 정체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일정 크기 이상의 소행성이라면 대륙뿐만 아니라 행성 전체를 멸망시키기엔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행성으로 접근하기 전에 요격하면 될 일이야.’

행성으로 날아드는 소행성을 완전히 소멸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저, 일정 이상의 충격으로 궤도를 뒤흔들어주기만 하면 소행성은 알아서 다른 곳으로 비껴 나갈 것이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겠지만.’

그렇기에, 이안은 다시 마키나 대륙을 찾았다.

[돌아오셨군요, 관리자님.]

이안이 대륙 중앙의 거대한 탑 안으로 들어오자, S-1의 모니터가 반갑게 웃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오랜만이야. 작업 진행 상황은?”

[관리자님께서 주신 정보에 따라 설계도를 구축하고, 시제품을 제작 중입니다. 이르면 다음 주까지는 시제품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안의 물음에 S-1은 힘차게 답했다.

제작자의 후계자인 이안의 명령은, 신을 멸한다는 그들의 목적과도 일치했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 말을 듣곤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더 빠르겐 안되나?”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이안의 반응을 확인한 S-1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계에서 운석을 날렸어.”

[운석이라면, 저 우주에 떠다닌다는 돌덩이를 말하는 겁니까?]

“정확해. 그 돌덩이 크기가 어지간한 섬 만 하다는 게 문제지만.”

[그 정도 크기라면….]

순식간에 피해 규모를 계산해낸 S-1의 모니터가 하얗게 질린 이모티콘을 출력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막아내지 않으면 세계 전체가 위험해.”

그렇기에, 시제품을 조금이라도 빨리 생산할 필요가 있었다.

‘로켓 시제품을 페르소나로 구현해낸 다음, 임시로나마 우주선으로 활용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예정된 멸망을 바꾸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

[관리자님, 지금보다 더 빨리 진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시제품을 실제로 조립한 다음 테스트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게 뭔데?”

S-1의 하소연을 듣던 이안이 짜증스러운 투로 묻자, S-1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이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마키나 대륙 전체에서 자원을 지속해서 캐내고는 있습니다만, 생산량이 너무 적습니다. 폐기장에서 부품을 재활용해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요.]

사실, 현재 마키나에서 생산되는 물자 대부분이 폐기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자원으로 쓸 만한 광산은 바닥 끝까지 긁어냈으니, 이건 대륙 전체를 통제하는 S-1으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 그렇습니다.]

S-1이 얼떨결에 동의를 표한 순간.

“기다려.”

우우웅!

이안은 곧장 다리에 F-22의 엔진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엔진을 가동시켰다.

쐐애애액-!

순식간에, 이안의 몸뚱이는 탑에서 멀어졌고.

[…이런.]

S-1의 논리회로 한쪽 구석에서, 불길함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

“드, 드디어….”

바몬트.

가장 위대한 난쟁이부족 중 하나인 황금모루 부족의 족장인 그는, 오랜만에 창조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완성했다….”

새롭게 완성해낸 작품을 바라보던 바몬트의 눈이 감동으로 젖어 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신검공의 강철 괴물, 전차였다.

몸통엔 수십 개의 바퀴와 무한궤도를 달고, 전신에 강철장갑을 두른 강철괴물의 머리 부분엔 적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마력포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제, 신검공 그 작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몰라.”

감히 인간 따위에게 기술로 밀렸다는 사실이 난쟁이족들에겐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장담컨대, 신검공이 직접 온다 해도 이 강철괴물을 막아낼 수는 없을걸?’

머릿속에서 이안을 떠올린 바몬트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쐐애애액-!

토굴 안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뭐지? 누가 또 사고를 친 거야?”

자신처럼 병기를 만들던 드워프가 실수라도 했겠더니, 생각한 바몬트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 사고 현장을 향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시, 신검공?”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신검공 이안 폰 아슈타르였으니까.

“오랜만이야.”

다리에 구현해 놓은 엔진을 해제한 이안은 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양 바몬트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오, 전차잖아? 직접 만든 거야?”

그 안에서, 누가 봐도 전차처럼 보이는 강철괴물을 발견한 이안은 놀라 휘파람을 불었다.

전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직접 전달해 준 적은 없었으니, 아마 눈대중으로만 보고 만들어낸 것이 분명할 터.

‘고작 눈대중만으로 이 정도까지 구현해낼 수 있을 줄이야. 역시 난쟁이들은 만만치 않아.’

물론 이안 자신이 움직이는 에이브람스에 비하면 조금 엉성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런 기반 지식 없이 여기까지 완성할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크, 크흠. 어떤가? 이만하면 괜찮지?”

이안이 놀랐다는 사실을 눈치챈 바몬트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보완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뭐 이 정도면.”

“보완이라니? 이건 자네가 보여준 그 강철 괴물이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이안의 말에 조금 기분이 나빠진 난쟁이가 인상을 쓰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됐고.”

하지만 이안이 제국 중심에 위치한 난쟁이 부족의 토굴까지 찾아온 것은, 고작 전차 따위를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펄럭!

이안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바몬트를 향해 펼쳤다.

“이건 뭐야? 철… 구리… 망간….”

각종 자원들의 목록과 수량이 빼곡히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바몬트가 멍청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여기 적힌 거, 좀 빌려줘.”

말을 마친 이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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