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이안이 장난스레 말을 꺼낸 순간, 일곱 용의 간부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사라진 지 수백 년이 지난 제작자와 이야기를 하고 왔다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이안의 헛소리는 계속되었다.
“얼마 전에 얘기하고 왔는데, 그 녀석도 내 의견에 동의하더라고. 목적이 어느 정도는 일치하기도 하고.”
“저, 관리자님.”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사람을 마치 엊그제 만나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이안을 보다 못한 미네르바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가 관리자님을 진심으로 따르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제작자님을 만나고 오셨다는 건 좀….”
이안이 한 이야기의 내용은 상식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한 말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제작자의 유산에 접속했어.”
이안이 그 말을 꺼낸 순간.
“제작자님의….”
“유산…?”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안이 말하는 제작자의 유산이 무엇인지 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그들 역시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관리자가 제작자의 유산과 접촉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안의 말을 마냥 허투루 들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간부들을 향해 이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키나의 통제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유산에 접속했지. 제작자가 자신의 사념을 남겨두었더군.”
“저, 정말입니까?”
“제작자님의 의지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었을 줄이야….”
“그, 그렇다면, 제작자님께선 대체 무슨 말씀을 남기신 겁니까!”
이안이 연이어 쏟아내는 이야기 앞에서, 일곱 용의 간부들은 그저 질문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제작자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
하지만 이안은 그들에게 제작자가 남긴 말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대신, 다른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우웅-!
이안의 몸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마동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곧 페르소나와 하나가 된 마동력은 이안의 육체로 흘러 들어가서는, 세포 하나하나를 회색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페르소나가 가진 증폭의 힘이 더해진 순간.
파아앗!
이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회의실 전체를 물들였다.
“이, 이건….”
“무슨 힘이지?”
“신성력도, 마력도, 마기도 아냐… 이건 대체….”
이안이 한 것은 별 게 아니었다.
그저 기세를 조금 드러냈을 뿐.
하지만, 이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서 느껴지는 힘과 압박감을 느낀 간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과, 관리자님….”
“제발 그만….”
집행자와 전수자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온 다음에야, 이안은 자신의 기운을 거두었다.
그제야 숨통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에서 벗어난 간부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힘자랑을 해 버렸군.’
이안이 원래 의도했던 것은, 자신이 제작자로부터 얻은 마동력의 힘을 간부들에게 알리는 것.
하지만 페르소나의 증폭기능이 예상보다 강했던지, 간부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동력이야. 제작자가 나에게 직접 운용법을 알려준 힘이지.”
“마동력….”
“제작자님께서… 직접….”
“그래, 들어본 적이 있어. 제작자님께선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사용하셨다는 게 사실이었나….”
제작자가 직접 전수해 주었다는 말에, 일곱 용의 간부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증명이 되었나?”
“…저희는 처음부터 관리자님을 의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은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전수자 미네르바는 뻔뻔한 표정으로 답했다.
“뭐, 좋아.”
그 태도에 이안은 피식 웃기는 했지만, 별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지금부터, 일곱 용의 이름을…이것도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일단, 너희가 할 일은 하나야.”
이안이 이들을 굳이 아슈타르로 불러들이려는 이유는 단 하나.
“신검대에게 새로운 전투방식, 새로운 전술과 전략을 전수하는 것.”
말을 마친 이안의 눈이, 앞에 선 간부들을 향해 빛났다.
***
물론, 일곱 용의 모든 인원이 당장 아슈타르로 이동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폐기장에서 살고있는 일곱 용의 조직원들이 머물만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시간과 인력, 예산이 들어가는 문제였으니까.
고작 300명의 신검대를 교육시키기 위해 그만한 노력을 쏟는 것은 낭비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안이 구현해낸 수송헬기에 탑승한 자들은 일곱 용의 조직원 중에서도 이안에게 직접 지구의 전술을 익힌 자들이었다.
“설마, 내가 대륙을 벗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그중 하나, 크리스틴은 헬기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른색 바다를 보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스텔리아 대륙이라, 어떤 곳인지 궁금한데.”
“기계가 아니라 지성체들로 이루어진 대륙이라지 않나.”
“일곱 용 같은 조직을 갖춘 나라들이 있다던데….”
“우리가 가는 곳 역시 관리자님의 조직이고 말야.”
그것은 평생 마키나 대륙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녀의 부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국가라는 개념을 책에서만 배워왔던 그들에게, 아스텔리아는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육지, 육지다.”
“벌써 대륙 사이의 바다를 건넜단 말야?”
“역시, 관리자님의 힘이란….”
점점 시야를 뒤덮어나가는 붉은색 대지를 보며, 크리스틴과 대원들은 감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기는 아슈타르의 해안을 지나 알자스의 성에 내려앉았다.
헬기의 구현을 해제한 이안이 크리스틴과 대원을 안내한 곳은, 신검대를 위해 만들어진 연무장.
“자, 이쪽은 이제부터 너희가 가르쳐야 할 사람들.”
이안은 밤을 새웠는지 조금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300명의 신검대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크리스틴이 물었다.
“정확히, 무엇을 가르치면 되는 거죠?”
이들에게 전투방식을 가르치라고는 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가르치라고 했는지는 말해 주지 않은 탓이다.
크리스틴의 물음을 들은 이안은 짧게 답했다.
“모든 것.”
“모든 것이요?”
하지만 이안의 두루뭉술한 대답을 듣고나니 크리스틴과 부대원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희가 나에게 배운 그대로, 얘네한테 가르쳐주면 돼.”
“배운 그대로라면….”
그 말에, 크리스틴과 대원들은 이안에게 받았던 교육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교육이라고 할 수 있나?’
이안이 그들에게 가르친 것을 떠올린 크리스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되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이 실시한 전술훈련은 그들이 가진 병기를 어떻게 하면 더욱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명확히 알려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외에는….
‘지독한 체력훈련뿐이었지.’
오러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자신과 부대원들조차도 지쳐 나가떨어질 만큼 지독한 훈련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이 악물고 참아내던 그때를 떠올린 크리스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당시에 느꼈던 이안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에서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때, 잘 할 수 있겠어?”
크리스틴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짐작한 이안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앞에 도열한 신검대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며.
***
다음으로 이안이 찾아간 곳은, S-1이 존재하는 마키나의 중앙탑이었다.
[어쩐 일입니까, 관리자시여.]
신급 페르소나를, 제작자의 힘인 마동력을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전과는 달리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는 S-1의 단말기를 향해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해줘야 할 일이 있어서.”
[관리자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이안의 말에 모니터의 이모티콘이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천천히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해 주려고 하는데, 전송방법 정도는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관리자님.]
스으윽
이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촉수 하나가 내려왔다.
[단말기에 접촉하신 다음, 전송하실 지식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좋아.”
S-1의 시원시원한 대답을 들은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망설임 없이 뻗어 나온 촉수를 마주 잡았다.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찌릿함이 느껴졌지만, 그 느낌은 곧 사라졌다.
‘흠, 이런 식이군.’
이안은 아스가르드와 연결된 것처럼, S-1이 자신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는 곧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자신이 보내려는 지식을 선택했다.
우웅-!
곧, 촉수를 쥔 이안의 오른손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이안의 손에서 시작된 빛은 천천히 촉수를 따라 천장으로, 그리고 천장과 연결된 중앙시스템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좋아.’
채 1분도 지나기 전, 이안은 지식 전송을 끝내고는 눈을 떴다.
[이건….]
이안으로부터 지식을 전송받은 S-1은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멸망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로군요.]
지난번, 이안과의 대결에서 그를 패배로 이끈 바로 그 병기.
이안이 보내준 지식은, 다름 아닌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그 안에 실릴 전략 핵탄두를 만드는 대략적인 방법과 재료였다.
[이걸 저에게 보내주시는 이유는….]
“뻔한 걸 물어서 뭐 하려고?”
S-1의 물음에 이안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빠르게 개발과 테스트 끝낸 다음, 바로 양산 준비에 들어가.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지?”
이안의 말에 S-1은 잠시 계산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결론을 내렸다.
[마키나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면…한 달이면 양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빠른데?”
[관리자님께서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대략적으로나마 알려주신 덕분입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답변에 이안이 놀라자, S-1은 뿌듯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날리며 답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궁금증은 다 풀리지 않았다.
[관리자님.]
“음?”
[그러면, 이 무기는 얼마나 만들어 두면 될까요?]
이안의 답은 간단했다.
“최대한 많이. 대륙을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말을 마친 이안의 눈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