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86화 (187/224)

#188화

“오늘부터, 경들은 검을 버리게 될 것이다.”

검을 버려라.

그 말이 이안의 입에서 나온 순간.

연무장 안에 도열해있던 신검대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을 버리라니….”

“그게 무슨….”

신검의 가문, 아슈타르 공작가의 기사들은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간다.

신검의 기사들에게 검을 버리라는 말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라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이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지?”

그 것은, 오베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생을 검에 바쳐온 끝에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사내가, 살기를 내뿜었다.

그가 이안을 향해 분노를 내뿜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근위대를 해체하라고 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검을 버리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무리 오베르트가 이안의 형이라지만, 공석에서 반말을 놓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이안의 말은 그런 예의 따위는 무시해버려도 좋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검을 위해 살아온 자들이다. 지금 네 말은, 이 자리에 모인 기사들에게 자결을 명령하는 것이나 다름없단 말이다.”

스릉!

말을 마친 오베르트가 검을 뽑아들고는 자신의 목에 갖다대었다. 그가 뽑아든 검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연단에 선 이안에게로 향했다.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형님.”

하지만 이안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제가 말을 실수한 것 같군요.”

“…뭐?”

이안이 갑자기 한 발 물러설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오베르트는 순간 움찔했다. 이안이 말을 이어나갔다.

“검을 버리라는건, 그러니까…비유적인 의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검만으로는 전쟁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 새로운 것을 배워야한단 말입니다.”

오베르트도, 연무장에 도열한 300의 신검대원들도 이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슈타르는 검으로 일어선 가문이다.

신검공가의 가주이자 신검의 주인인 신검공의 입에서, 검이 아닌 다른 것을 배우란 말이 나올 줄이야.

“특히, 페르소나를 말이죠.”

“페르소나? 그게 왜….”

이어지는 이안의 말에 오베르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페르소나는 본디 전설과 신화속 존재들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

전설과 신화속 존재들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만큼 많았고, 당연히 어떤 전설과 신화를 차용할 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격자에게 달려있었으니까.

가문마다 제각기 특색이 있긴 했지만, 페르소나의 모든 것이 자격자에게 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페르소나를 구성하는 전설과 신화를, 하나로 통일이라도 하겠단 말이냐?”

이안의 속내를 짐작한 오베르트가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안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베르트는 바로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자격자들의 능력에 한계를 부여하는 일이다. 성장가능성도 막아버리는 것은 물론이지.”

일곱 가문 모두, 자격자의 페르소나를 같은 신화와 전설로 통일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나로 통일된 힘이란 그만큼 전술적인 이점이 있었으니, 분명 의미있는 시도기는 했다.

병기급이 환수급으로, 환수급이 영웅급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틀어막아버린다는 것이 문제일 뿐.

“환수급과 병기급 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는 이안 너도 잘 알고 있을거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꺼낸 것이냐?”

이안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당황한 것은 오베르트였다. 이안이 말했다.

“성장의 문제는 결국 병기급에서 환수급으로, 환수급에서 영웅급으로 올라서는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페르소나가 성장하는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

같은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자격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성장루트를 탈 수도 있기 때문.

“그러면, 네겐 그 성장과정에 대한 정보가 있단 말이냐?”

이안의 말에 오베르트가 물었다. 그의 표정엔 아직도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떻게….”

오베르트의 말에, 이안은 미소를 지었다.

“제 페르소나의 구축방식을 공개할 거니까요.”

“…뭐라고?”

이안의 말이 연무장 전체을 울린 순간, 오베르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 모여있던 신검대원들 역시 경악한 눈빛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

“페르소나의 구축방식을 공개한다니… 진심이냐?”

페르소나의 구축방식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비기를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말과 다름없는 이야기다.

‘페르소나의 강점과 약점까지도.’

이안의 말은 즉, 마왕토벌자라 불리는 신검공 이안 폰 아슈타르의 약점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네. 영웅급에 오를 수 있는 수준까지는 공개할 생각입니다.”

“안될 말이다. 공개했다간 네가, 아슈타르가 위험해질 수 있어.”

이안의 말에 오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이안에게 화를 냈던 그였지만, 이건 아니었다.

지금의 아슈타르는 어쨌건, 반쯤은 신검공 이안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안이 쓰러진다면, 공작가 역시 위기에 처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

이안은 오베르트의 걱정어린 눈빛을 보곤 피식 웃었다.

“형님,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걱정을 했다는 거냐. 난 그저 공작가의….”

이안의 말에 오베르트가 당황해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우우웅!

이안의 몸 안에 담겨있는 미증유의 힘.

당장이라도 이 연무장 안에 있는 모두를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이, 이건….”

오베르트와 신검대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웅급 페르소나의 힘과는 전혀 다른 격을 지닌 무언가가,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이건, 마치….

“…신?”

오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라 이안을 다시 바라봤다.

“설마, 신급 페르소나를 얻은 것이냐?”

신급 페르소나.

지금까지 아무도 얻은 사람이 없는, 소문으로만 떠도는 존재.

신의 힘에 맞먹는 힘을 가졌다 전해지는 신급 페르소나의 힘 만이, 이안이 내뿜고 있는 기세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맞습니다.”

오베르트의 물음에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열해있던 신검대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정말, 공작전하께서 신급 페르소나를….”

지금까지 나온 신검공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뿐.

“그러면, 우리가 받는 건….”

“신급 페르소나의 구축방식이라니….”

신급 페르소나.

그 말에,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신검대원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던 불만은 날아가버렸다.

전설, 혹은 소문 속 이야기로나 치부되던 존재를 자신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자, 그 전에….”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여러분이 배워야 할 게 있다.”

신급 페르소나의 구축방식을 익히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우우웅!

“이, 이건…?”

신검대원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마동력으로 만들어낸 수십, 수백가지의 총기들과 그 총기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서.

“일단은 이것부터. 오늘 안에 암기할 수 있도록.”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오베르트와 신검대원들을 향해, 이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신검대원들에게 과제를 던져준 이안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키나 대륙의 남단에 자리한 섬, 폐기장이었다.

폐기장에 도착한 이안은 가장 먼저 일곱 용의 간부들을 불러모았다.

“도대체…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관리자님?”

이안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를 느낀 전수자, 미네르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

“지금까지 느껴본 적도 없는 힘이야….”

“마치, 제작자님의 힘을 보는 것 같은….”

“뭘 놀라고 그래?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안은 핀잔을 주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일곱 용에 소속된 전 대원은 아스텔리아 대륙으로 돌아간다.”

“…예?”

“그게 무슨….”

이안의 폭탄선언을 들은 간부들은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일곱 용은 아슈타르 공작가의 부속기관으로 편입될 거야. 이름도 바꿔야겠는데, 무지개 사자는 좀 이상하고….”

“관리자님.”

“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이안을 향해, 미네르바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갑작스런 말씀입니다. 저희 조직이 이렇게 공개되어 버리면, 관리자님께도 무리가 가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 그거? 그건 걱정 안해도 돼.”

“네?”

하지만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야.

“이미 전쟁중이거든. 다른 공작령들과.”

“…예?”

이어진 이안의 말에, 회의실의 간부들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면, 저희 역시 전쟁에 참여하는 것입니까?”

이안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미네르바가 물었다.

전쟁이라는 단어에는 그만한 무게가 담겨있었다.

간부들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이안은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마. 당장 너희를 전투에 참가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나 미네르바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쟁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저희 일곱 용의 목적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곱 용의 목적은, 대륙에서 신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일곱 용의 세상을 만드는 것.

하지만, 이안의 말 대로 아슈타르 공작가에 편입된다면, 그 꿈은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안의 명은 조직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무리 관리자님의 명이라곤 하지만….’

‘이건 좀….’

자리에 앉은 모두의 표정이 불안해질 때 즈음.

“아, 그건 걱정 마.”

간부들을 향해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에 어떤 반발이 돌아올 지에 대한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다른 조직에 편입하라는 말이 쉽게 먹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미 예상한 일이다.

“내가 제작자랑 잘 얘기하고 왔거든.”

그렇기에, 이안은 미리 준비해둔 답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예?”

“제작자님이랑….”

“얘기를요…?”

그 말을 들은 순간.

간부들은 일제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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