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사실, 이안도 자신이 사용한 신무기의 위력이 이토록 강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신의 지팡이라 불리는 질량병기의 원리는, 결국 쇳덩이를 음속의 수십 배 속력으로 지면에 내리꽂는 것일 뿐.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쇳덩이 몇 발로 산을 날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말 그랬다면, 핵무기로 서로의 목줄을 틀어쥔 지구의 위정자들이 신의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을 리 없었겠지.’
그렇다면, 신의 지팡이가 생각보다 강한 위력이 나온 이유는 아마도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마동력과 마법의 힘인가.’
사실, 어느 쪽이건 큰 상관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이, 이건….”
자신의 앞에 떠 있는 묵빛의 나이트메어.
1급 비행전열함의 갑판 위에 올라선 대머리 노인과 그 옆의 부관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환세공.”
이안은 아직도 입을 닫지 못하고 있는 마르쿠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생각이 좀 바뀌는 것 같지 않습니까?”
힘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차례.
“…….”
이안의 말에 마르쿠스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려야 할 결정은, 가울드 공작가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선택이었으니까.
‘산을 지워버리는 힘이다.’
평범한 언덕도 아닌,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선 산맥 일부를.
저 강력한 파괴의 힘이, 방향을 자신들에게 돌린다면.
‘나는, 막아낼 수 있을까?’
막아내지 못한다면, 가울드 공작가는 멸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문 전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비행전열함과 함대, 그리고 그 안에 타고 있는 모든 병사들이 저 산처럼 사라져버릴 테니까.
‘하지만, 신탁을 거역할 수도 없어.’
신탁을 거역한다면, 신의 분노는 모두 자신과 가울드 공작가에 쏟아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기에, 마르쿠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이안이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조건.
이안이 새롭게 꺼내든 이야기에 마르쿠스는 생각을 멈추고 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뭐지?”
“저를 도와주십시오. 환세공가가 가진 정령의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이안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산-이었던 것-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저 산처럼 만들어버리겠다는, 명백한 협박.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자다.’
어쩌면, 신들과 동급의 힘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을 택하건 미래가 없다면….
“하나만 묻지.”
“네.”
굳은 표정을 지은 마르쿠스를 향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세공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 뭘 도와줘야 한다는 것인가?”
고작 손 한번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산을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이다.
인간이 가진 능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신검공은 과연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일단은….”
이안은 가볍게 답했다.
“신들과 한판 붙어보려고 합니다.”
“…미쳤군.”
듣는 마르쿠스의 입장에선, 전혀 가볍지 않았단 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마르쿠스를 향해,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선택을 종용했다.
하지만.
“…내게 선택의 권한 따위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네.”
환세공은, 산을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내의 앞에서 감히 거절이란 말을 내뱉을 용기는 없었다.
그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과 공작령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건, 감사합니다.”
협박과 회유로 답을 얻어낸 이안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놈.]
그의 어깨에 자리한 미미르가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안을 따르기로 마음먹기는 했지만, 마르쿠스는 군대를 물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군대를 물렸다가, 의심받는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네. 자네의 계획을 실행하기에도 그 쪽이 낫지 않겠나?”
“뭐, 원하는 대로 하시죠.”
이안은 마르쿠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건, 아슈타르만 공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은가.
“허튼 짓은 하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나도 눈이 있네. 내가 뭐라도 하려는 순간, 자네가 내 함대를 단번에 박살내버릴 수 있단 걸 모를 것 같나?”
젊은 신검공의 말에 마르쿠스가 코웃음을 치자, 이안은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상대의 말이 진심이란 게 느껴졌으니까.
물론, 진심이 아니라 한들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뭘 말입니까?”
마르쿠스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환세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도 자네의 편에 서기로 했으니, 속 시원히 말해 주게나. 자네의 목표가 정확히 뭔가? 연합공국을 아슈타르의 발밑에 무릎 꿇리기라도 할 셈인가?”
“이미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나보고, 신들과 싸우겠단 말을 믿으라고?”
“네.”
“정말 미쳤군, 미쳤어. 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는 알고 있나?”
이안의 말에 마르쿠스는 텅 빈 이마를 손으로 철썩하고 짚었다.
“신들은 어차피 물질계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몇몇 신은 제외하고요.”
“그래, 그 말도 맞지. 신계의 존재들은 물질계의 대행자들 없이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으니까.”
이안의 의문 섞인 말을 들은 환세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이안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지상에 대행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힘을 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
그리고, 일곱 개의 공작령으로 구성된 연합공국엔 지상 최강의 대행자가 존재했다.
“모든 신의 지상대리자인 성광공의 힘은 어지간한 신과도 비견할 수 있을 터.”
말을 끊은 환세공이 잠시 이안을 마주 봤다.
“자네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나?”
정말로 이 자가 신에게 맞설 수 있을까.
이안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은 마르쿠스에겐 중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답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뭐?”
이안의 말에 마르쿠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들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잊지 말게. 난 자네에게 나와 가울드를 걸었어.”
그것이 비록 협박에 의해서였다지만, 결국은 환세공가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던가.
자신을 따르라 해 놓고, 저토록 무책임한 말을 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마르쿠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나!”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이안을 향해, 마르쿠스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안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상대와 똑같은 힘을 가져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안의 궤변이나 다름없는 말에 마르쿠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진지했다.
“창을 든 아이와 맨손의 어른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뜬금없이 이안이 질문 하나를 던지자, 마르쿠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지. 어른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지만, 무기를 쥔 순간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설마?”
순간, 마르쿠스는 이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자네의 손에 그 칼이 쥐어져 있단 말인가?”
“뭐, 그런 셈이죠. 칼보다는 활에 가깝긴 하지만.”
더 정확히는, 활이 아니라 총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마르쿠스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이 전쟁에서 그가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분명해졌으니까.
“그렇다면, 활을 쏘는 아이를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겠군?”
“정확히는, 해 주셔야 할 일 중 하납니다.”
“나머지는?”
“지금부터 설명해드리죠.”
노기 대신 궁금증으로 가득 들어찬 마르쿠스의 얼굴을 향해, 이안은 생긋 웃었다.
***
알자스 성의 구석에 위치한 연무장.
그곳에 모인 것은, 이제는 300인으로 불어난 신검대였다.
제각기 훈련을 하던 도중 소집 당한 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작 전하께서 우리를 직접 부르시다니.”
“정말, 전쟁이 벌어지긴 했군.”
“다른 공작가와 싸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전쟁.
아슈타르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전쟁의 분위기를, 그들도 읽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전쟁을 걱정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 페르소나의 위력을 시험해 볼 때가 왔어.”
“페르소나도 없는 평범한 녀석들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이 자리에 모인 신검대 전원은, 페르소나를 얻은 자격자들.
못해도 병기급, 강한 자들은 환수급의 페르소나를 가진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어지간한 소국 한두 개쯤은 이 300명 만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힘이, 그들에겐 존재했으니까.
혈기로 끓어오르는 신검대원들이 저마다 제 포부를 밝히고 있을 때 즈음.
“조용.”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일제히 울렸다.
순간, 300명의 입이 단번에 다물어졌다.
단 한 단어일 뿐이었지만, 그 단어를 내뱉은 자는 다름 아닌 신검대의 장이었으니까.
‘이안…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말 한마디로 신검대의 입을 다물게 만든 오베르트 아슈타르는 팔짱을 낀 채 텅 빈 연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섯 공작가와 전쟁이라니…정말 대단한 사고를 쳤어.’
여섯 공작가의 힘은 그 하나하나가 아슈타르에 뒤지지 않는 강자들이다.
비록 참룡공가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남은 다섯 공작가를 아슈타르가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안에게 단단히 따져야겠어. 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아야 해.’
마음을 다잡은 오베르트는 말없이 연단을 노려봤다.
이안이 연단 위로 올라선 것은 그 때였다.
“모두 잘 있었나?”
예를 갖추려던 신검대원들을 향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든 이안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경들을 부른 것은, 경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길래, 신검대원들을 모아놓고 저렇게까지 말한단 말인가.
오베르트를 포함한 300명의 대원들은 의구심 섞인 표정으로 연단에 선 이안을 바라봤다.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춘 다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오늘부터, 경들은 검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 말의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