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선전포고.
그 말을 들은 즉시, 이안은 아슈타르의 수도인 알자스로 향했다.
알자스 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굳어 있군.’
자신에게 예를 갖추는 기사와 마법사들의 표정에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전쟁을 앞둔, 목숨을 건 싸움을 앞에 둔 자들의 얼굴을 잠시 마주한 그는 성안에 위치한 집무실로 향했다.
이안이 집무실의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자신과 똑같은 차림새와 생김새를 가진 사내.
하지만 이안과 달리, 사내의 얼굴은 꽤나 수척해 보였다.
“참, 빨리도 왔네. 얼굴 살이 탱탱한 걸 보니 잘 쉬다 왔나 봐? 형제는 여기서 개고생시키고 말이지.”
이안을 보자마자 미넨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이안의 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힘에, 미넨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람의 몸에 담을 수 있는 크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 형제의 몸에서 감돌고 있으니까.
‘이건 마치….’
신을 앞에 둔 것 같은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서, 미넨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잘 쉬다 와서 그런가 보지.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이안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미넨이 입을 열었다.
“정말 모르는 거야?”
“뭐?”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미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회색 기둥, 네 짓 아냐?”
“회색 기둥이라니… 잠깐.”
미넨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내 영혼?’
그의 영혼이 만들어 낸, 하늘을 꿰뚫을 만큼 거대한 회색의 기둥.
“나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그게?”
“이제 무슨 일인지 좀 감이 잡히나 보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이안을 향해 미넨은 코웃음을 쳤다.
이안은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내 영혼이 대륙 바깥에서 보일 정도였다니….’
자신의 영혼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에서도 느껴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미넨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너란 걸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여섯 공작가에서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날렸어.”
[신들이 귀띔해 준 것이 틀림없다. 그들이라면 네 기운의 정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결국, 헛짓거리만 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힘 뺄 필요도 없었을 텐데.”
미넨과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넨이 어깨를 으쓱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내 탓은 아니다? 대륙 너머에 보일 정도로 광고한 놈이 잘못이지.”
“그 정돈 알고 있어.”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뭘 어떻게 해?”
미넨의 물음에 이안은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답했다.
“적이 오면, 싸워야지.”
그리고, 쳐부숴야지.
우우웅-!
전신으로 마동력의 회색빛을 뿜어내며, 이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아슈타르는 연합공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아슈타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공작가는 다름 아닌 가울드 공작가.
“흠….”
환세공, 마르쿠스 폰 가울드.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도장된 1급 비행전열함. 나이트메어의 갑판위에서, 가울드 공작가의 가주인 그는 백발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딘가를 응시했다.
이제는 자신들의 적이 된, 아슈타르 공작가의 땅.
“이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군.”
아슈타르 공작령을 내려다보던 마르쿠스의 눈에 들어찬 것은, 의구심이었다.
과연, 아슈타르를 공격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
마르쿠스의 읊조림에, 그의 옆에 서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제 와서 군을 물린다면, 아슈타르가 패망한 다음에는 저희가 신들의 분노를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잘 알고 있지, 단장.”
환세공가의 2인자, 정령기사단장 세뮬러의 말에 마르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의 말이 옳았다.
환세공가와 환세공 자신의 힘은 분명 강했다.
하나 신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신들의 분노를 감당하기엔 아직 힘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세뮬러.”
“네.”
“자네도 봤겠지? 그 빛의 기둥을.”
“…네.”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환세공을 향해 세뮬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스텔리아 대륙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지성체가 그 빛의 기둥을 보며 경외했으리라.
그것은 마르쿠스와 세뮬러 역시 마찬가지.
“공교롭게도, 그 빛의 기둥이 나타난 시점과 신들의 신탁이 내려온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단 말일세.”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신들로부터 여섯 공작들에게 내려온 신탁.
그 내용에 대해선 세뮬러 역시 환세공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혹시, 혹시 말일세.”
하지만, 마르쿠스의 생각은 그 너머에 닿아 있었다.
“그 빛의 기둥과 신검공이 관련되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예? 아, 죄송합니다.”
마르쿠스의 말에, 세뮬러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실수를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마르쿠스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나 역시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마르쿠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혹시나, 그 빛의 기둥을 만들어 낸 존재가 신검공이라면 말일세.”
길게 자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마르쿠스가 말했다.
“우리는, 승산이 있겠나?”
그 말에, 세뮬러는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에게 대놓고 미쳤냐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의 머릿속에도, 그 가정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니까.
만약,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경외감마저 느껴지던 그 빛의 주인이, 우리의 적이라면.
‘적어도, 여섯 개 공작가가 동시에 달려들어야 해. 안된다면 성광공이라도….’
그렇게 판단을 내린 세뮬러는 자신의 주군을 향해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온다.”
“네?”
아슈타르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주군의 말에, 세뮬러는 급히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이, 이건….”
저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그 기운이, 자신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세뮬러가 급히 나이트메어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전열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자신들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저건….”
“새?”
마르쿠스와 세뮬러는 자신들의 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강철새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강철새의 머리가 열린 순간.
“오랜만입니다, 환세공.”
마르쿠스는 강철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신검공.”
“손님이 많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준비를 조금 더 해 놓는 건데.”
신검공, 이안 폰 아슈타르.
자신들이 맞이해야 할 적.
그가, 자신들의 함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이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힘을 숨기라는 이야기라면, 이거로 열 번째인 것 같은데.’
이안은 미미르의 잔소리를 사전에 차단했다.
신들에게 자신의 전력을 숨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이안 역시 동의했으니까.
하지만.
‘필요하면 드러내야지.’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적당한 시간.
이안은 호버링중인 F-35 위에서 마르쿠스를 바라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굳은 표정을 지은 환세공을 향해, 이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군대를 물린다면, 환세공가에는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을거라 약속하겠습니다.”
환세공가는 다른 여섯 공작가 중 그나마 아슈타르와 친분이 있던 자들.
저들을 멸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멸할 수 있었지만.
‘신을 상대하기 위해선, 내 편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좋지.’
이안은 지금 당장의 전쟁이 아닌, 그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신급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신계 전체와 싸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가 있었으니까.
‘날 지원해 줄 존재가 필요해.’
그리고, 환세공가는 자신의 지원세력을 만드는 첫걸음.
정령의 힘을 다루는 존재들의 힘은 언제고 필요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거절한다면?”
이안의 몸에 잠들어 있는 강력한 기운을 느낀 마르쿠스는 천천히 입을 뗐다.
마르쿠스의 질문을 들은 이안은 가볍게 답했다.
“이렇게 되겠죠.”
그리고는,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곳에 위치한 것은, 작센산맥의 드높은 봉우리들 중 하나.
마르쿠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이안이 손을 뻗은 방향을 바라봤다.
하지만.
“…음?”
이안이 손을 뻗었음에도 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무슨….”
한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마르쿠스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경악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건….”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발견한 마르쿠스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령왕을 다루기 위해 고도로 단련된 육체로도 쫓기 힘들만큼 빠르게 떨어지는 것은, 쇳덩이로 이루어진 막대기 다섯 개.
그래, 단순한 막대기일 따름이었다.
음속의 수십 배로 지면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는 사실이 다를 뿐.
콰아아아아앙!
막대기가 떨어진 방향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불어닥친 거대한 후폭풍.
콰과과과-!
“크으윽!”
“충격에 대비해라!”
“이, 이게 대체 무슨…!”
거대한 전열함이 폭풍 속 돛단배처럼 사정없이 흔들리자 배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폭풍에 휘말려 날아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저, 저건… 말도 안 돼.”
거대한 폭풍 속에서, 마르쿠스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산이.
“산이….”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거대한 산이 지워진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꼿꼿이 서 있던 환세공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놀란 것은 미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악한 미미르를 향해, 이안은 가볍게 말했다.
“신무기. 생각보다 위력이 괜찮은데?”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