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제작자의 사념을 흡수한 이안이 깨어난 순간.
‘이건….’
이안은 자신을 이루고 있던 무언가가 완전히 뒤바뀌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육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러마스터에 이르러 총탄도 잘 박히지 않을 강건한 육신은, 신체에 위험을 끼칠지도 모르는 요소들을 자동으로 소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변한 것은 육신이 아닌 그의 영혼.
‘영혼이, 느껴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자신이 가진 영혼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눈으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있다는 말과 똑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 이안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내 영혼이, 이렇게 거대했나?’
자신의 영혼이 가진 존재감이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걸 깨달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감각에 느껴지는 영혼의 크기는 이미 인간, 아니 지성체 하나의 범주를 벗어났으니까.
우우웅-!
마키나 대륙 중앙에 존재하는 탑을 완전히 감싼 빛의 기둥.
‘이게 내 영혼이라니.’
한 사람의 영혼이라기엔 너무나 거대한 기둥의 모습에, 이안은 전율했다.
과연 이 영혼이 인간의 작은 육체 안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
‘그래도, 몸 안으로 어떻게든 쑤셔 넣어야겠지.’
그냥 내버려 두기엔, 하늘을 꿰뚫은 빛의 기둥은 너무나 눈에 띄었으니까.
‘들어와라.’
눈을 감은 채, 이안은 자신의 거대한 영혼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지이잉-!
이안의 의지가 빛의 기둥 전체로 퍼짐과 함께, 빛의 기둥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늘을 꿰뚫은 회색의 기둥의 높이가 서서히 낮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의 기둥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물론, 이안의 영혼이 힘을 잃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일단 갈무리는 끝났고.’
자신의 몸 전체에 터질 듯 넘쳐흐르는 마동력과 영혼의 존재감이 합쳐지자, 이안은 조금 고양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강력한 힘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 이제 알겠어.’
영혼을 갈무리한 순간, 이안의 날카로운 직관은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게 느껴진다.’
단순히, 자신의 육신과 영혼만이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끼긱-끼기긱!
마키나 대륙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수많은 기계들과 그들을 이끄는 존재들. 그리고 제작자의 지식이 담겨있는 저장소.
[관리자님께선… 이제 날 잊으신 걸까?]
아스텔리아 대륙에서 대 마족병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는 페르소나 제작시스템과 제어정령인 프레이야.
삐-삐-삐-
대기권 바깥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도위성, 아스가르드까지.
제작자가 자신의 후예를 위해 행성 전체에 뿌려놓은 모든 것들이, 이안의 손아귀에 잡힐 듯 들어왔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
파아앗!
이안이 생각을 마친 순간,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글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이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자신의 본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미미르가 놀라 물었지만, 이안의 귀엔 들려오지 않았다.
‘굳이 병기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어.’
이미 수많은 중화기들을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는 이안에게, 권총 정도의 병기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마동력에 의해 강화된 탄환을 쏘아낼 수 있다지만, 그래 봐야 한계는 명확했으니까.
‘차라리….’
생각을 마친 순간, 회색빛이 이안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페르소나의 힘으로 만들어 낸 헬멧과 방탄조끼 따위의 장구류들은 빛에 닿자마자 녹아들었고.
우웅-
이안이 가진 모든 페르소나의 힘을 녹여낸 빛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안의 몸속.
스으으-
마치 마기가 대지를 침식하듯, 페르소나를 녹여낸 마동력의 회색빛이 이안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 몸을, 페르소나로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안은 자신이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우우우웅!
페르소나 제작시스템, 그 자체였으니까.
***
아슈타르 공작령의 서부.
두 마왕, 단탈리안과 바르바토스의 침략에 의한 피해가 그대로 남아 있는 폐허 위에, 정화되지 않은 마석들이 여기저기 대지를 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두 마왕이 가지고 있던 마석의 조각들 역시 마찬가지.
한때는 마왕의 육신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존재였지만, 두 마왕이 소멸한 지금에 와선 하찮은 돌멩이일 뿐이었다.
마석이 깨져나간 순간, 그 안에 잠자고 있던 거대한 마기는 이미 공기와 대지로 흩어져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고오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돌멩이처럼 바닥을 구르던 마석의 조각들.
녀석들이 갑자기 제 자리에 멈춰 선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휘이이잉-
마기가 섞인 거센 바람과 함께, 대지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던 마석조각들이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으으-
놀랍게도, 깨져버린 마석 조각들 안으로 다시금 마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조금씩이나마 마기를 머금은 마석 조각들은 거센 바람 속에서 자기들끼리 엉겨 붙기 시작했다.
작은 돌멩이만 했던 마석들은 눈덩이처럼 크기를 불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석조각들의 뭉치는 성인 머리만 한 크기까지 커져 나갔다.
고오오오-
돌멩이들을 제멋대로 이어붙인 듯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마기는 무시할 수 없는 크기였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석조각은 주변의 마기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곧, 마석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한계 이상의 마기를 끌어모았다.
과도하게 끌어모은 마기는 자연스럽게 마석의 바깥을 감싸 안았고.
스으으-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는, 점차 특정한 형태를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와 꼬리가, 그다음으론 네 개의 다리가.
짐승의 형태를 취한 마기의 덩어리는, 점차 그 형태를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장기와 감각기관, 털, 발톱, 이빨들이 마치 대리석을 조각한 조각상처럼 마기 덩어리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석조각이 흩뿌려져 있었던 대지 위에 나타난 것은.
“크르르….”
늑대 모양을 한 검은 짐승이었다.
그 길이가 5미터는 훌쩍 넘는, 어지간한 말만큼 커다란 늑대.
마수라기엔 너무나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
하지만, 마족의 대지에 존재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뭐야, 늑대잖아?”
“새로운 마족을 눈앞에서 마주할 줄이야. 운이 좋은데.”
새롭게 등장한 늑대를 향해, 몇몇 마족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혈마족, 뱀파이어.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기사등급의 흡혈귀들.
뻐드렁니를 드러낸 뱀파이어들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늑대를 향해 다가왔다.
“마기의 냄새가 짙어.”
“잘하면, 남작급에 오를 수도 있겠는데?”
이미 잡은 먹잇감이라도 된 것처럼, 뱀파이어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늑대를 향해 다가갔다.
새롭게 태어난 마족은 아직 제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갓 태어난 마족은 다른 마족들에게 손쉬운 사냥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흡혈귀들을 고고한 눈으로 바라보는 늑대가, 평범한 마족이 아니란 사실을.
푸슈슛!
늑대의 몸을 감싼 털들은 촉수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어?”
천천히 늑대 모양의 마족을 향해 다가가던 흡혈귀들은, 자신의 몸 깊은 곳에 박힌 마석을 정확히 관통한 무언가를 멍청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삭!
마석을 잃은 마족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마, 말도….”
단말마를 내지를 틈도 없이, 흡혈귀들은 부서진 마석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스으으-
그와 동시에, 늑대는 자신의 몸에서 뻗어나간 수천 개의 촉수를 회수하고는 마기를 움직였다.
우웅-
그와 동시에, 흡혈귀들의 부서진 마석조각들이 하늘로 떠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마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 늑대는, 마석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고오오-
마석조각을 집어삼킬 때마다 늑대의 몸뚱이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네 다리가 조금씩 길어지고, 발톱과 이빨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정확히 다섯.
혈마족 다섯의 마석을 집어삼킨 늑대는, 조금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크르르….”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후우.”
모든 작업을 마치고, 이안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몸 전체에 흐르는 충만한 힘. 기분 좋은 충족감을 잠시 즐기며, 이안은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그의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한 마리의 회색 고양이였다.
[이건… 정말이지 미쳤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군. 어떻게 페르소나를 몸 안에 박아넣을 생각을 한 건지….]
“나도 설마 될 줄은 몰랐는데, 이게 되네?”
경악한 미미르를 향해 실없는 소리를 내뱉은 이안은 자신의 정보창을 열어 확인했다.
[이안 폰 아슈타르]
[페르소나명: 미미르]
[등급: 신]
[마동력: ??????]
[개방 필요 마동력: ??]
[증폭률: ?????%]
[권능]
수많은 특성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의 정보창에 담긴 정보는 너무나 깔끔해 보였다.
심지어, 마동력과 증폭률은 물음표로 나와 있으니 정확한 수치는 추산조차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의미 없게 만들어버리는 정보가,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신급 페르소나.’
지금껏 등장한 적 없는, 페르소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
이안이 신급 페르소나를 얻었다는 것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능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말이지.’
정보창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특성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권능… 이라. 정말 신이라도 된 건가.’
아마도 특성보다 상위등급의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일 터.
어떻게 얻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것저것 시험해 볼 게 많겠는데.’
자신의, 그리고 신급 페르소나의 한계를 측정하는 것.
새롭게 얻은 힘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새롭게 얻은 힘을 시험해 보기도 전.
우웅-
품속에 넣어둔 통신구슬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넨과의 통신을 위해 받아 둔 통신구슬.
“무슨 일이지?”
이안은 조심스럽게 마동력에서 마력만을 뽑아내 구슬에 불어넣었다.
곧.
파앗!
구슬 위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미넨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
이안은 형제나 다름없는 미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인사할 때가 아냐.]
미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섯 개 공작령이 선전포고를 했어.]
그 말에, 이안은 미넨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