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82화 (183/224)

#184화

제작자의 유산 중 하나, 저장고가 만들어 낸 무형의 세계.

“지식주입장치를 사용해 본 기분이 어때?”

그곳에서, 제작자가 남긴 사념이 이안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안은 함께 미소 지을 수 없었다.

“최고야, 아주 짜릿해. 너도 꼭 한 번 해 봤으면 좋겠는데.”

얄밉게 생글거리는 아이를 노려보며, 이안은 찢어질 것처럼 욱신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수천 개의 번개가 동시에 뇌 속을 헤집는 고통을 혼자서만 알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그건 내 본체가 만들었거든? 좀 아프단 것 정돈 잘 알고 있다고.”

“개자식.”

얄밉게 깔깔거리는 아이를 향해, 이안은 가볍게 중지를 세워 보였다.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아이가 입을 열었다.

“주입한 지식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을 때까진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도대체 어떤 지식을 쑤셔 넣었길래 이렇게 아픈 거야?”

여전히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이안은 필사적으로 새롭게 주입된 지식을 떠올려보려 했다.

하지만 떠올릴 수 없었다.

‘왜지?’

자신의 뇌리 한편에 지식의 창고 하나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창고의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신들을 쓸어버리기 위한 계획에 필요한 지식들이지.”

아이가 대답했다.

“초광속 이동기술과 마동력을 이용한 엔진기술, 반중력기술….”

“나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이안의 머릿속에 박힌 지식들의 목록을 나열하는 아이의 말에, 이안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주워섬긴 기술들의 이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었으니까.

그의 눈에, SF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기술들의 이름을 진지하게 늘어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과학에 마법을 적당히 섞어 넣고 나니 기술의 빈칸을 채우기는 쉽더라고. 덕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을 만들어냈지.”

“그냥 허풍인 건 아니고?”

아이의 말에 이안이 핀잔을 놓았지만.

“곧 있으면 알게 될 건데, 내가 왜?”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던 이안은 침묵을 지켰다.

아이가 씨익 웃고는 말했다.

“이제, 이곳을 나가면 너는 신들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 거야. 그 때가 되면, 내가 준 기술들은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전쟁이라….”

“아주 큰 전쟁이지. 어쩌면, 이 행성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대전쟁 말이야!”

말을 마친 아이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곤 생각했다.

‘제작자 녀석,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하군.’

하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신을 없애버리겠단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곧, 광기 어린 눈빛이 이안을 향했다.

“너도, 그렇지?”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섬뜩한 목소리.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 목소리와 눈빛만으로도 기절해버릴 만큼 두려웠지만.

“아닌데.”

이안은 태연하게 아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순간, 아이의 몸이 굳었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는 이안을 노려봤다.

“자신을 신이라고 자청하는 그 꼴불견들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야?”

“나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이안은 태연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전쟁만이 아냐. 그건 언제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지.”

병기는 사용될 때만 쓸모가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용되지 않을 때 더욱 쓸모가 많다는 사실을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하, 겁쟁이였군. 제작자의 후계자가 전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다니.”

“내가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너 같은 전쟁광도 아니라서.”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제작자의 사념이 무슨 말을 꺼내건, 이안은 무시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안의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광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던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 순간.

‘이건….’

이안의 촉이 경고음을 보내왔다.

조금 전 광기 어린 표정을 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단 상황이라고.

‘일단 대비해놔야겠어.’

우웅

이안은 그의 단전에 가득 쌓인 마동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이안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네가 싫다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타타탓

외침과 동시에, 갑자기 아이가 이안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를 빨빨거리며 움직이는 아이와 이안 사이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아졌다.

하지만 이안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의 손엔, 어느새 자동권총 글록18C가 쥐어져 있었다.

드르르륵!

이안이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탄창을 가득 채운 열일곱 발의 탄환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갔다.

마동력에 의해 더욱 강화된 탄환은, 이안이 원하는 대상이면 누구든 찢어발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씨이잉-

탄환은 목표를 맞출 수 없었다.

‘통과했어?’

순식간에 쏟아진 탄환의 비는, 아이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사라져버렸다.

마치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은 내 세상이야. 아무도 날 해할 수 없다고!”

당황한 이안을 향해 쏘아붙인 아이는 그대로 이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스윽

‘사라졌다. 어디로? 몸속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제작자의 사념이 몸 안에 그대로 흡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은, 글록을 마동력으로 되돌리곤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것이라면, 곧 적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역시.’

그의 생각대로, 제작자의 사념이 자신의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은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전쟁을 거부한다면, 내가 대신 네놈을 움직여주마!]

이안의 머릿속에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기이잉-

이안의 의지가 없었는데도, 마동력의 일부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들었다면 자아는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을, 쯧쯧. 네놈의 나약함을 원망해라.]

아이의 말과 함께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마동력은 어느새 이안의 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아이의 몸을 이루고 있던 마동력.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아이는 이안의 정신과 영혼을 장악하게 되리라.

물론.

“어디, 잘해 보라고.”

이안이 그 꼴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이안은 자신이 가진 마동력을 천천히 움직였다.

우웅

이안의 의지가 움직임과 동시에, 단전에 모여있던 마동력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사념의 마동력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간 이안의 마동력은, 어느새 전신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사념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사념은 경악했다.

[고작 오늘 마동력을 깨달은 주제에, 이렇게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사념이 가진 힘은 제작자가 본래 가진 마동력의 일부.

물론 그조차도 충분히 강력한 힘이었지만, 이안이 가진 마동력의 양에 비하면 마치 태양 앞의 촛불과도 같았으니까.

“마동력, 별거 아니던데?”

그 말에 이안은 코웃음을 치곤, 자신의 마동력으로 사념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했다.

이안이 이렇게 강력한 마동력을 가진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넌 마법의 신에게 신성을 횡령했겠지. 그것도, 극히 일부를.”

서서히 사념을 짜부라트리며, 이안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신을 가졌거든?”

이젠 허신이 되어버린 그림자의 신이 가진 신성.

그리고, 미미르가 탑에서 조금씩 얻어낸 다른 신들의 신성.

거기에, 마신의 유산으로부터 직접 얻어낸 마기까지.

어마어마하다곤 할 수 없는 양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시스템에 들어간 신성 일부를 사용해 만들어낸 제작자의 마동력과는 그 질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말도,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이 이런….]

자신이 제 발로 함정에 기어들어 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념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알았으면.”

이만, 끝내자.

우우웅-!

마동력을 향해 의지를 불어넣으며, 이안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

이안이 사념과 싸움을 끝내고 현실세계로 빠져나온 순간.

파아아앗!

거대한 빛의 기둥이 마키나의 중앙 탑을 뚫고 솟아났다.

신성력도, 마기도, 마력도 아닌 미지의 힘.

회색으로 물든 빛의 기둥은 그대로 구름을 뚫고 하늘을 물들였다.

마키나 대륙 밖, 아스텔리아에서도 보일 만큼.

“이, 이건….”

엘로임 폰 바드리안 공작.

드높은 만신전의 옥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성광공은,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기운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거대한 힘이….”

마경의 군주들도.

“마력도, 신성도, 마기도 아닌 힘이다.”

“저긴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인데….”

“신이시여….”

공국의 여섯 공작도

“이,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강대한 힘이….”

제국의 황제와 황자, 그리고 오러마스터도.

“본체 놈…도대체 뭘 하는 거지?”

이안이 어디로 갔는지 잘 알고 있는 이안의 분신체, 미넨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제작자 놈, 결국 성공했군.]

이 모든 것을 행성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던 빛의 신, 마르콘의 눈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

그가 위치한 곳은 다름 아닌 행성, 아스텔리아의 달.

[별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제작자의 옛이야기를 떠올린 마르콘은 턱을 쓰다듬으며 아스텔리아를 꿰뚫은 회색 기둥을 바라봤다.

곧,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정말로,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다라….]

인간이 신이 되다니.

이 이야기를 지상의 존재들에게 전한다면, 필시 말한 자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터.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건 다름 아닌 신. 그것도 강력한 신 중 하나인 빛의 신이었다.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군. 정말 대단해.]

달 표면에 걸터앉은 그가 거대한 손으로 박수를 쳤다.

대기가 없는 달이었기에 소리는 없었지만, 그가 박수를 칠 때마다 거대한 달이 조금씩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이쪽도 준비를 해야겠군.]

말을 마친 마르콘이 달 위에서 일어나선, 살짝 발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달의 중력을 거슬러 우주공간으로 향했다.

곧, 마르콘의 몸이 순식간에 신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신이 되었단 건 결국, 마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란 소리지. 그렇다면….]

제거할 수밖에.

번쩍!

빛의 신 마르콘.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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