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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81화 (182/224)

#183화

신들을 쓸어버린다.

대부분의 필멸자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이야기.

혹자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농담으로도 여기지 않고 코웃음 치며 지나가리라.

하지만, 이안의 앞에서 그 농담 같은 이야기를 꺼낸 장본인의 표정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들을 쓸어 버린다라, 포부는 좋네.”

짝짝짝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아이의 모습을 한 제작자의 사념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박수는 아니었다.

“결국 자기 힘으로는 못했으니까, 나한테 미루는 거밖에 안 되잖아? 무슨 방학 숙제도 아니고.”

박수를 치다 말고 이안은 코웃음 쳤다.

정말로 제작자의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있었거나, 실현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아이는 제작자의 사념이 아니라 제작자 본인일 테니까.

“나는 진지하다.”

이안이 비꼬듯 말하자 아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무 진지해서 탈이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제작자의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신들을 어떻게 쓸어버릴 건데? 신계에 핵미사일이라도 퍼부을 생각이었나?”

신계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말이지.

이안은 대답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신계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들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성광공 조차도 그들이 거주하는 천계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넌 신을 뭐라고 생각하지?”

대답 대신, 아이는 이안을 향해 되물었다. 이안의 대답은 짧았다.

“정신으로만 이루어진 강력한 생명체. ”

“신을 진짜로 믿는 머저리는 아니었군. 내 후계자가 그런 머저리가 아니라 다행이야.”

이안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무신론자인가?”

“무신론보단 지적창조론에 가깝다고 해 주지 그래? 사실, 외계의 존재들에게 지배받고 있는 이 행성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지.”

“뭐가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치지.”

사실, 제작자의 사상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이안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거야.”

아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눴던 이안은 별 기대가 없었지만.

“내가 죽기 전에, 천계의 위치를 알아냈다 이 말이지.”

이러면 이야기가 달랐다.

“…뭐라고?”

사념의 말을 듣자마자 이안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전과 달리, 이안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아이의 미소가 더욱더 진해졌다.

“내가 왜 마키나에 거대한 연산장치를 만들었는지 알아?”

“연산장치? 이 탑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이안의 말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대륙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그렇게 거대한 탑을 연산장치로 도배할 이유는 없다고.”

“그럼, 신계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사용했단 말이로군.”

이안은 어렵지 않게 아이가 말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의 웃음이 진해졌다.

“맞아. 마법의 신과 함께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을 만들어내면서 신성의 흐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인한 다음, 그 흐름을 역추적했지.”

“용케 신들에게 걸리지 않고 해냈군.”

아이의 말에, 이안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성은 신들의 존재 그 자체.

신성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은,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가는 신들을 바로 뒤에서 미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신들이 눈치채지 못한 게 신기한 일.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놈들에게도 한계는 있거든.”

“한계?”

저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들에게 한계라니.

그 말에, 이안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아이는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 신이란 놈들이 힘을 쓸 수 있는 건, 자신을 신앙하는 자들이 있는 곳뿐이야. 신앙이라는 개념을 가진 건, 오직 지성체들 뿐이고.”

“그럼, 마키나는….”

“지성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이었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고.”

사념의 설명을 들을수록, 이안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퍼즐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져 갔다.

마키나가 어째서 이런 꼴이 된 건지, 그리고 신들이 자유의지를 지닌 기계들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한 것인지.

모두가, 신들이 가진 한계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자, 이안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페르소나나 마동력에 들어가는 신성력은? 분명 놈들에게 추적당할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

이안의 물음에 아이는 걱정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페르소나 시스템을 이루는 신성력은 마법의 신으로부터 아예 분리된 힘이거든. 마동력을 이루는 신성도 그곳에서 끌어온 힘이고.”

다시 말해서.

“횡령이군.”

“내가 괜히 신들 좋은 일을 한 게 아니지. 놈들에겐 내 의도를 숨길 필요가 있었기도 하고. 마지막에 조금 실수하긴 했지만.”

말을 마친 아이는 옛일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안과는 상관없는 일.

“그래서, 신계는 대체 어디 있단 거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신계의 위치를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안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본디, 정보란 열세를 한순간에 우세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안의 물음에.

“저기.”

아이는 팔을 들어 손가락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확인한 이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늘에 있다고?”

사념이 가리킨 곳은, 자신의 머리 바로 위쪽.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존재하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코웃음을 쳤다.

“멍청하긴. 좀 더 위를 생각해야지.”

“좀 더 위라면….”

하늘 위에 뭐가 있더라?

잠시동안, 이안은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대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주.”

“이제야 알아먹는군.”

이안의 답을 들은 사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우주에 있다고?”

우주.

대류권과 성층권, 중간권과 열권을 지나 외기권을 벗어나면 펼쳐지는 끝없는 별들의 세계.

신들의 세상이 위치한 게 행성 바깥인 우주라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주라니….’

갑자기 장르가 판타지에서 SF로 바뀌어버리니, 이안의 입에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진짜로 어디 다른 차원에라도 있을 줄 알았냐?”

하지만 어처구니없어하는 이안의 표정을 마주한 사념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건 아니지만….”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마법적인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다른 행성이라니.

‘가장 가까운 별이 몇 광년인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빛의 속도로도 수 년, 수십 년을 움직여야 도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곳.

우주에 대해 평범한 한국인 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던 이안에게, 사념의 이야기는 사실상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신계에 도착하면, 난 이미 늙어 죽어 있겠는걸.”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일.

“다행히도, 그렇게 멀지는 않아.”

“그럼, 늙어 죽기 직전 정도인가? 어느 쪽이건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아니래도.”

이안이 헛웃음을 짓자 사념은 고개를 흔들고는, 이안의 눈앞에 홀로그램 하나를 띄웠다.

태양계, 아니 이곳의 행성계를 형상화한 그림이었다.

일곱 개의 행성이 중앙의 태양 주변으로 주욱 늘어서 있는 가운데, 아이가 손가락을 뻗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

지구의 위치와 같은 세 번째 행성.

그리고.

“신계는 여기.”

말을 마친 아이의 손가락이 한 번 더 움직였다.

손가락이 멈춘 곳을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화성?”

지구가 위치한 태양계였다면, 화성이 위치해 있었을 자리.

그곳에는, 불그스름한 화성과는 달리 푸른 색의 행성이 위치해 있었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여길 날려버리면, 신들도 끝장이지.”

“말은 쉽군. 행성을 날려 버린다라.”

핵무기를 다발로 퍼붓는다 해도 불가능한 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안은 코웃음 쳤지만.

“그래서, 준비해 둔 게 있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이는 미소를 짓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순간.

기이이잉-

이안과 제작자의 사념만이 존재하고 있던 세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짓이지?”

“이 장치의 본 용도대로 활용하는 중이지.”

“본 용도라니….”

이안은 제작자의 유산에 대해 떠올렸다.

본래, 자신이 앉은 의자는 제작자의 지식이 저장된 저장소와 연결된 것.

그렇다면….

“머리가 좀 아플거지만, 참으라고.”

이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 아이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악단의 지휘자처럼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번쩍!

이안의 머리를 향해, 수천 발의 번개가 쉴 새 없이 내리쳤다.

***

마키나의 중앙에 위치한 S-1의 탑.

그곳 지하에서, 한 고양이가 가슴을 졸이며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

사실,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자에 앉아 헬멧을 뒤집어쓴 이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파직 파지지직!

강력한 전류가 한 번 흐를 때마다, 의자에 앉은 이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수천 개의 번개가 한 사람을 향해 동시에 쏟아진다면 이런 모습일까.

심상치 않은 전류의 기세에, 미미르는 이안에게 쉽사리 다가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인이 무사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 옆에서, 모니터의 형태를 한 S-1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고양이.]

[난 고양이가 아냐.]

[저건 단지 관리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입하는 과정일 뿐이다.]

[지식을 주입한다고?]

S-1의 말에 미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S-1의 모니터에 떠오른 이모티콘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제작자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요란스럽지 않나!]

[쉬운 과정은 아니니까. 어차피, 잠자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말을 마친 S-1은 우는 이모티콘을 날리곤 침묵했다.

파지직!

그 와중에도, 이안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전기충격을 견뎌내고 있었다.

[제발….]

무사하길.

미미르는 자신의 주인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슈우우우-

이안을 향해 끊임없이 쏟아지던 전류의 세례가,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의 몸을 마구잡이로 할퀴어대던 전류들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파아아앗!

이안이 앉아있던 제작자의 유산 주변에서, 강렬한 회색빛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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