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내심, 이안은 자신이 마신의 힘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신이 가진 마기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거대한 힘을 다뤄본 경험이라면 넘칠 만큼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도위성 아스가르드에는 거대한 마력이 잠자고 있지 않던가.
‘성질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아스가르드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마기를 조절할 수 있을거야.’
이안이 망설임 없이 마신의 발톱을 향해 손을 내뻗은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손이 마신의 유산과 맞닿은 순간.
‘크… 윽!’
이안은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으으!
마신이 남긴 발톱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마기가 이안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순식간에 페르소나의 보호를 뚫어낸 마기는, 발톱과 맞닿은 이안의 손바닥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아냐.’
마신의 마기는, 마치 의지가 있기라도 한 듯 집요하게 이안의 몸을 탐했다.
손바닥 끝에서부터 차근차근히 이안의 몸을 점령해나가기 시작한 마기는 어느새 그의 어깻죽지에 이르렀다.
‘일단은 몰아낸 다음 생각한다.’
생각을 마친 이안은 영웅급 페르소나의 힘으로 증폭된 마력과 신성력으로 마기를 급히 몰아내려 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몸뚱이가 마신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스으으으!
이안의 바램과는 다르게, 마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기의 흐름은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마력과 신성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더욱 강한 힘으로 이안의 몸뚱이를 침범해나갔다.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마력은 안 돼.’
마력을 아무리 쏟아부어 봐야, 자신의 몸을 탐하는 마기에겐 그저 질 좋은 먹이에 불과할 뿐.
‘그나마 신성력은 통하는 것 같긴 하다만….’
이안이 가진 신성력을 전부 쏟아부어 넣는다고 하더라도, 마기의 흐름을 막아내기엔 부족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몸뚱이건 영혼이건 마기의 한 입 거리로 전락하게 되리라.
이안은 필사적으로 방법을 궁리했다.
스으으!
그 와중에도, 이안의 몸은 점차 마기에 집어 삼켜지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이미 완전히 마기가 띈 보라색으로 변해버렸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근육과 뼈를 삼키기 위해 이안의 전신을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뭔가, 방법이….’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신성.
그리고, 그에게 가장 가까운 신성력의 진원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미… 미르!’
겉으로 보기엔 검은색의 평범한 고양이.
하지만 그의 육체를 이루는 것은, 수 많은 신들에게서 얻어낸 신성의 힘이 아니던가.
‘이리로… 빨리!’
입을 열 수조차 없었기에, 이안은 혼신의 힘을 다해 미미르에게 의념을 보냈다.
애오옹!
이안의 간절함을 알아챈 미미르가 곧장 이안을 향해 뛰어들었다.
[어, 어떻게 하면 되지?]
자신의 주인이 마기에 잠식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미미르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네 신성… 빌려줘!’
가물가물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가며, 이안은 미미르에게 지시했다.
[아, 알았다!]
이안의 말이 가진 의미를 깨달은 미미르는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파아아앗!
이안의 몸 속으로 금빛의 에너지가 흘러들어갔다.
마력과 섞인 신성력이 아닌, 순수한 신의 신성 그 자체.
이안이 가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신성이 마기와 맞부딪쳤다.
그리고.
스으-
‘일단은 느려졌다.’
자신의 육체를 침범하는 마기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안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우선은, 둘의 균형을 맞춰본다.’
마기가 자신이 가진 신성보다 강력하다면, 마기를 줄이면 될 일.
그리고, 이안은 마기를 변환할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우선은….’
이안은 자신의 신체구조를 떠올렸다.
전신의 핏줄을 흐르는 오러와, 오러를 천천히 물들이고 있는 마기가 구석구석 느껴졌다.
곧, 이안은 한 가지를 상상했다.
우웅-
그것은, 탄환이었다.
탄두와 화약, 탄피까지 구현되어 있는 5.56mm 소총탄.
화약 대신 미미르가 제공한 신성이 채워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작동원리는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파아앗!
그 크기가, 적혈구보다 작을 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탄환들이, 곧 이안의 혈맥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발사.’
이안이 탄환에 의지를 부여한 순간.
쐐애애액!
수백, 수천의 탄환들이 목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탄환의 목표는, 다름 아닌 마기에 침식당한 자신의 육체.
‘크윽….’
수천 개의 바늘이 몸 속에 박히는 통증에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는 탄환을 쏘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자신이 만들어낸 수백만 발의 탄환이, 마기에 침식당한 육체 구석구석에 퍼질 때까지는, 참아야 했다.
그렇게, 이안에겐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알 수 있었다.
‘됐다.’
자신이 쏘아낸 조그마한 탄환들이, 마기에 잠식된 혈맥에 분명하게 박혀들었다는 것을.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흡마.’
신검 레온하르트의 특성을 발동하는 것.
이안이 속으로 특성의 시동어를 외친 순간.
파아앗!
전신 혈맥에 박혀있던 수백만 발의 탄환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웅-
탄환이 박혀있던 곳의 마기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늘어난 것은 거대한 마력.
이안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균형을 맞추는 거야.’
흡마의 특성으로 마기를 마력으로 변환시키고, 남아돌게 된 마력을 신성의 먹이로 삼는다. 그래도 남는다면 아스가르드에게로.
‘신성과 마기, 마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렇게, 마기가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고오오-
그 것이, 이안이 마기를 통제하기 위해 꺼내든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생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순간.
고오오-
이안의 몸속을 파고들었던 마기의 성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변했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했다.
마기가 마력을 물들여 흑마력이 되고, 신성이 마력을 물들여 신성력이 된다.
신성력은 또다시 마력과, 흑마력 역시 마력과….
‘연쇄반응이라고… 해야하나?’
마력과 마기, 신성이 함께 어우러진 연쇄반응.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신성과 마기, 마력은 서서히 희석되어가면서 형태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융합….’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힘이 한 데 융합하는 광경 앞에서, 이안은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기도, 신성도, 마력도 아닌 제 3의 힘.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지만, 이안은 이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마동력….’
그가 힘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번쩍!
이안은 감은 눈을 번쩍 뜨고는 손발을 움직였다.
‘가벼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몸을 옥죄던 마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방에 들어설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은 몸 상태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새롭게 얻은 힘에 살짝 취해 미소를 지었다.
“이, 인간이,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되다니!”
경악한 메피스토의 목소리 따위, 그의 귓가엔 들려오지도 않았다.
***
마동력을 얻은 이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힘의 형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빌려준 건 돌려줘야지.”
미미르에게 빌렸던 힘을 돌려주기 위해 이안은 마동력을 움직였다.
당연히 신성만 부여하면 균형이 깨지게 될 테니, 마동력을 주입해줄 생각이었다.
애오옹….
이안에게 신성 대부분을 빌려주어서인지, 미미르의 몸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자신이 부리는 분신들처럼 몸이 반투명해진 미미르는 오한이라도 느끼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빨리 돌려줘야지.’
미미르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은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단전 어림에서 마동력이 꿈틀댔다.
‘신기한데.’
심장을 중심으로 쌓여있던 마력이나 오러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자리잡은 마동력을 느꼈다.
이안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손에 올려진 미미르에게 마동력을 주입했다.
다행히도, 마동력이 미미르의 육체를 거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으으으-
미미르의 몸에 스며든 마동력이 반투명한 고양이의 육체를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미르의 털 색이 검은 색에서 남색으로 변했을 때 즈음.
[으… 으으….]
“어때, 좀 괜찮아?”
정신을 차린 미미르를 향해 이안이 물었다.
털썩!
미미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젓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제법 지친 모양이었다.
‘하긴, 내게 모든 힘을 쏟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육체의 구현을 거의 포기할 정도의 힘을 썼으니, 금방 정신을 차리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리라.
이안은 지쳐 쓰러진 미미르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는, 자신이 들어왔던 방의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이안은 경악한 마경의 군주, 메피스토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피식 웃었다.
“뭐야, 예상한 것 아니었어?”
“…그럴리가. 솔직히 말해서, 네놈이 잘못되더라도 이상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종족이 마기를 다루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성공해서 아쉽다는 표정인데?”
이안이 정곡을 찌르자, 메피스토는 할 말을 잃었는지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난 간다.”
메피스토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자, 이안은 마왕을 그대로 지나쳐 계단을 향해 올라갔다.
하지만 이안이 계단을 밟기 직전.
“잠깐.”
“왜? 또 뭔데, 이번엔?”
메피스토가 그를 멈춰 세우자, 이안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마경의 군주를 바라봤다. 메피스토가 입을 열었다.
“네가 다루는 힘은… 마기인가?”
메피스토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집중하고 이안을 바라봐도, 이안에게선 마기의 냄새만이 나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른 힘들과는 상극이나 다름없는 것이 마기.
마기와 다른 힘들을 동시에 다룬다는 것은, 그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안의 대답은 짧았다.
“아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안은 그대로 성의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을 모두 오른 이안이 지상에 발을 디딘 그 순간.
[사용자에게서 마동력을 감지했습니다!]
[아스가르드의 봉인을 일부 해제합니다!]
“…뭐?”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