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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78화 (179/224)

#180화

미넨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자마자 이안이 향한 곳은, 마경에 위치한 메피스토의 성이었다.

“조금 늦었군.”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메피스토의 말에 이안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중요한 건 네놈이 날 기다리게 했다는 거니까.”

물론, 메피스토는 이안이 말한 사정에 대해 구태여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불쾌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말하고 있을 뿐.

하지만.

“그건 됐고, 약속이나 지키라고.”

이안에게 마왕의 불만이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메피스토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 이안의 손가락이 마경의 군주를 가리켰다.

“마기를 다루는 법. 그게 내 조건이었잖아?”

더 이상 마왕과 마족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대신, 이안이 받기로 한 것들 중 하나.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마기를 다루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물론, 메피스토는 그런 이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마기란 닿기만 해도 육체와 영혼을 오염시키는 극독.

메피스토의 눈에, 이안이 하려는 행동은 고통스러운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건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고, 방법이나 알려 줘.”

그러나, 메피스토의 반응에 이안은 콧방귀를 뀌고는 재촉할 뿐.

“좋다. 정 죽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결국, 메피스토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안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따라와라.”

말을 마친 메피스토가 보라색 옥좌에서 일어나서는,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성 내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한참 동안 걷던 둘은 어느새 성의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을 밟아 내려가던 이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마왕 중의 마왕인 메피스토의 본거지인 만큼, 그 마기가 짙은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그 짙은 마기가 점점 페르소나의 힘에 의해 보호된 이안의 몸을 조여왔다.

[마기의 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 끝까지 내려간다면, 아무리 네가 영웅급 페르소나를 지녔다고 해도 견디기 힘들 거다.]

애옹….

이안과 함께 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미미르가 주인을 만류했다. 미미르 역시 마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안색이 푸르딩딩하게 질려있었다.

‘이건 좀…불편한데.’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끈적한 마기에 이안이 불쾌감을 느끼고 있을 즈음.

“도착했다.”

메피스토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안은 자신과 메피스토의 앞을 가로막은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건….’

문에 새겨진 것은, 어떠한 존재의 형상이었다.

그 존재는 이안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본 적이 있어. 분명….’

몸뚱이의 원주인이 보여 준 환영.

문에 새겨진 존재는 분명, 그 환영에서 도시와 성을 불태우고 있던 검은 짐승이었다.

“이봐, 메피스토.”

“음?”

이안이 심각한 목소리로 묻자, 메피스토의 시선이 마왕토벌자를 향했다. 이안이 물었다.

“저 문에 새겨진 건…누구지?”

“저 분 말인가?”

“저 분?”

마왕 중의 마왕인 메피스토가 존재를 향해 경칭을 쓸 줄이야.

그 순간, 이안은 문에 새겨진 검은 짐승의 정체가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그래.”

이안의 표정을 확인한 메피스토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이시지.”

마신.

신계에서 추방당해 중간계에 내려와 마족을 탄생시킨 존재.

그리고.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

미래의 환영을 봤던 이안에게, 마신의 존재는 절대 반갑지 않았다.

“이 문 너머에, 마신의 유산이 봉인되어 있다.”

이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마친 메피스토가 정신을 집중했다.

스으으-

메피스토의 오른손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마기를 가득 머금은 마왕의 손이 문에 새겨진 검은 짐승의 눈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거대한 문이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으으으-

문의 틈새로 쏟아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

거대한 마기가 이안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어마어마… 한데?’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짙은 마기가 몸을 짓누르자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영웅급 페르소나가 가진 마기에 대한 저항력 덕분에 버틸 수 있었을 뿐, 페르소나 없이는 채 일 초도 버티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저건….’

강력한 마기의 폭풍 속에서, 이안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의 한 가운데에 놓인 기둥.

하지만, 그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기를 견디는 와중에도, 보라색 기둥의 형태를 확인한 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발톱…?’

생긴 것은 마치 늑대나 곰의 앞발에 달린 발톱과도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 크기였다.

‘기둥만한 크기의 발톱이라니….’

고작해야 발톱이 저만한 크기라면, 저 발톱을 가지고 있었을 존재의 크기는 얼마나 거대했을지, 이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저게 바로, 마신께서 마족들을 위해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간신히 고통을 견디고 있는 이안과 미미르의 옆에서, 메피스토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마신께서 남기신 발톱이 지면에 박힘으로써, 대륙의 절반이 마기로 물들 수 있었지. 덕분에 마족들의 영역이 생겨났고.”

“그런… 건… 별로 관심 없는데… 마기 다루는 법이나… 알려달라고.”

하지만 이안에겐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그는 메피스토가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물론, 약속은 지킬 거다.”

이안의 말에 메피스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지에 박힌 마신의 발톱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신의 발톱과 접촉해라.”

“…뭐 …라고?”

“마신의 발톱과 접촉하는 순간, 순도높은 마기가 네놈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갈 거다. 페르소나의 보호 따위는 단숨에 뚫어버리겠지. 네놈의 몸속이 온통 마기로 물들게 될 거다.”

“그게… 무슨… 가르쳐주는… 건데….”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메피스토를 힘겹게 노려봤다.

마기.

그것도, 마신이 남긴 유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다.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기만으로도 이토록 강력한데, 마기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마신의 발톱에 직접 닿아야 한다?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마기를 사용하기 위해선 체내에 마기를 채워 넣어야 한다. 가능하면 순도가 높은 마기일수록 효과가 좋지. 마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말을 잠시 멈추고 한 쪽 입꼬리를 슬쩍 올린 메피스토가 뒷말을 덧붙였다.

“마신의 발톱을 이용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마경의 군주들 뿐이었지만.”

말을 마친 메피스토의 표정에선, 한 치의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안, 안된다! 지금도 이렇게 강력한 마기가 들끓고 있는데, 저 안까지 들어갔다간 아무리 너라도 살아남을 수 없어!]

이안의 뒤에서 몸을 숨긴 채 둘의 대화를 들은 미미르가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앞발로 이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 이안!]

저벅

미미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였다.

저벅저벅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기의 압력은 더욱 강하게 이안의 몸을 조여왔다.

“크윽….”

입술을 앙다문 이안의 입가에서 얇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저벅

하지만 이안의 발걸음은 조금 느려졌을 뿐, 멈추지 않았다.

‘쉬울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인간이 마기를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일 리 없다.

만일 그랬다면, 수 많은 마법사들이 마기를 다뤄보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을 리 없지 않은가.

‘분명,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은 메피스토의 말과 자신의 눈을 믿었다.

저벅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온몸을 적신다. 거대한 기둥이 조금씩 그의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안의 몸을 누르는 압력 역시 강해졌다.

‘조금만… 더.’

이제는 압박감을 넘어 짓눌릴 것 같은 고통이 온몸에서 느껴졌지만, 이안은 애써 무시하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마신의 발톱.’

문 너머에서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에 이안의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물론,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래, 만만치는 않다 이거지?’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호승심.

몸이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경고신호를 보내는 상태에서, 이안은 마신의 발톱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윽고, 보라색의 거대한 발톱에 이안의 손이 닿은 순간.

스으으으-

거대한 힘이 손을 타고 움직였다.

***

‘버텨낼 수 있을까.’

메피스토는 팔짱을 낀 채 마신의 발톱에 도달한 이안을 뒤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마족의 육체와 영혼으로도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마신의 원기.’

아무리 마스터급에 올라 마왕급의 육체와 힘을 지녔다지만, 마족이 아니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으니까.

마족이 아닌 자에게 마기가 접촉하는 순간, 마기는 존재 자체를 침식시켜버리리라.

그리고.

‘끝났군.’

상황은 메피스토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안의 손이 마신의 발톱에 닿자마자, 보랏빛의 마기가 그의 전신을 침식하고 있었으니까.

스으으-

내부에서부터 이안의 몸뚱이를 먹어치워 내려가던 마기는, 곧 이안의 전신 피부를 보랏빛으로 물들여버렸다.

‘시도는 좋았다만.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군, 마왕토벌자.’

메피스토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마경의 군주들과 수 많은 마족들을 도륙해온 마왕토벌자가 사라지는 게, 마왕 중의 마왕인 메피스토의 입장에선 좋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뭐지?’

하지만, 메피스토의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찜찜했다.

분명, 마기에 완전히 침식되어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였건만.

‘왜, 마기가 점점 옅어지고 있지?’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안의 피부를 물들인 진한 보라색이,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설마….’

그 사실이 말해 주는 바는 분명했다.

제멋대로 폭주하던 마기가 점차 이안의 체내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

그 말인즉슨.

‘정말로, 인간이 마기를 다룰 수 있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메피스토는 경악했다.

마기를 다루는 인간이라니.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정말로, 제작자의 뒤를 이었단 말인가…!’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인간.

메피스토의 머리속에서, 신마전쟁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과거의 기억을 전부 되새기도 전.

번쩍!

이안의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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