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77화 (178/224)

#179화

육체를 얻어 깨어난 인공영혼을 마주한 이안의 감상은 짧았다.

“진짜 똑같이 생겼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인공영혼의 육체는 자신과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네 영혼을 복사한 영혼이 자리를 잡으려면, 육체도 비슷하게 만들어줘야 하니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이톤이 한마디 던졌다. 이안이 파이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마력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물론. 하지만 네가 가진 마력까지 주입할 수는 없었어. 마력은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할 거야.”

“그렇단 말이지.”

파이톤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을 복제했다지만, 자신이 가진 오러 마스터의 경지까지 복제하지는 못한 모양.

‘경지를 올리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하겠어.’

이안이 잠시 고민에 빠진 그때.

“날 두고 둘이서만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이안의 복제가 핀잔을 줬다.

“그러는 넌, 옷이나 입지 그래? 자.”

이안은 대답과 함께 미리 준비해 둔 옷을 복제에게 집어던졌다. 복제 이안은 주섬주섬 옷을 집어 들고는 능숙하게 입기 시작했다.

“그래도 옷 입는 건 안 가르쳐 줘도 돼서 다행이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대부분 네 녀석과 같으니까. 밝힐 수 없는 것까지도.”

“…정말이야?”

옷을 주섬주섬 입던 복제 이안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밝힐 수 없는 것.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내 전생, 강민혁의 기억.’

만약 파이톤이 그 기억을 보기라도 했다면, 꽤 귀찮아지리라.

그 말을 들은 이안은 곧장 파이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혹시 내 기억을 들춰본 건 아니겠지?”

그 말에 파이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럴 리가. 네 영혼을 복사하는 것과 분석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뭐, 문제가 되는 정보라도 있나 보지?”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이제 와서 이안이 사실은 강민혁이란 게 밝혀진다 해서 바뀔 것은 없었다.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이미 그에겐 그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힘이 쥐어져 있었으니까.

“혹시 봤다고 해도, 어디 가서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거 참, 안 봤다니깐. 볼 수도 없고.”

이안의 으름장에 파이톤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안은 진심이었다.

“어쩌면, 네 아버지와 싸울지도 모르는 일이야. 현명하게 판단해.”

“아, 글쎄, 안 봤대두!”

파이톤이 짜증을 낼 때까지 이안의 경고는 계속되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파이톤에게 다짐을 받아낸 후에야, 이안의 시선이 다시 자신의 복제를 향해 움직였다. 복제 이안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은 뭐지?”

“이름?”

“언제까지 날 복제 이안이라고 부를 건 아니잖아. 형제라면서?”

“그건 그러네.”

복제 이안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언제까지 복제 이안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안이 복제 이안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기도 전.

“이제부터, 내 이름은 미넨이다.”

“뭐야, 스스로 자기 이름을 짓는 거야?”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웃기는 일이긴 하잖아? 미넨이 뭐야, 미넨이. 차라리 아인이 낫겠다.”

자신의 작명센스가 최악이란 사실은 생각지도 못한 채, 이안의 입에서 망발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아인은 좀….”

옆에서 파이톤이 작게 말했지만, 그 말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부터 미넨이다. 미넨 아슈타르.”

“아슈타르의 성을 허락한 적이 없긴 하지만…뭐, 형제니까.”

복제 이안, 아니 미넨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을 도와줘야 할 존재인데, 그깟 가문의 성 쯤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안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 그리고.”

“뭐지?”

이안의 말에 미넨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마력 계약서였다.

“일단 여기 사인부터.”

“이게 뭔 줄 알고 사인을 하란 소리야?”

당연히 미넨은 일언지하에 거부했지만, 이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도, 나처럼 자유가 필요하지 않아?”

“…자유?”

“그 자유를 보장해 줄 계약이지.”

자유라는 말에, 미넨은 순간 흠칫했다.

그 역시 이안을 모델로 만들어진 존재.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미넨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정 못 믿겠으면 읽어 보던가.”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는 미넨을 향해, 이안은 손에 든 계약서를 흔들며 씨익 웃었다.

***

미넨에게 계약서를 작성하게 한 이후, 파이톤을 돌려보낸 이안은 미넨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쳤다.

마력을 움직이고 키우는 법부터, 자신의 영지에 대한 자잘한 정보들까지.

사실, 이안의 기억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미넨이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내 기억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실히 확인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대가는 이안과 아슈타르가 치러야 했으니까.

“다 아는 얘기를 쫑알쫑알…. 지겹네, 정말.”

물론, 테스트를 받는 대상인 미넨에겐 잔소리나 다름없었지만.

“너도 이게 필요한 과정이란 건 알텐데?”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지.”

이안의 말에 소파에 몸을 기댄 미넨은 입을 쩍 벌린 채 하품했다. 이안의 눈이 슬쩍 찌푸려졌다.

“계약.”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협조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조금 불성실할 뿐이지.

빠르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싶었던 이안에겐, 게으름을 피우는 미넨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안의 대안은 오직 미넨 뿐이었으니, 약간의 게으름은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수인계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말이지.”

“뭔데?”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내 마력은 어떻게 커버하려고 그래?”

이안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상태.

거기에, 이안이 가진 마력의 양은 일반적인 마스터급의 강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미넨에겐 마력이 없지.’

미넨의 몸에 마력이 없다는 사실은, 꽤나 큰 문제였다.

마력을 느낄 수 없는 자들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을 지닌 강자들은 분명 미넨의 마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일단 생각해 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일.

“프레이야.”

이안은 오랜만에 시스템의 제어정령을 불렀다.

파아앗!

이안의 부름과 동시에, 환한 빛이 집무실 전체를 감싸고는 사라졌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빛으로 이루어진 여성체 모습의 정령.

[오랜만입니다, 관리자님.]

왠지 토라진 듯한 표정을 지은 프레이야가 이안을 향해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관리자님…?]

“왜?”

[관리자님께서, 어떻게, 이런….]

당황한 그녀의 눈이 이안과 미넨을 바쁘게 오갔다.

그녀가 느끼기엔, 분명 관리자의 권한을 지닌 영혼이 두 명이었으니까.

“뭘 놀라고 그래?”

[아니, 어떻게, 관리자님께서 두 명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불렀어.”

[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주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걸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마력을 저 녀석에게 주입해 줄 수 있어?”

그저, 자신이 필요한 일을 할 뿐.

[그러니까…저 관리자님께 말인가요?]

“그래.”

[관리자의 권한을 가진 건 저분도 동일하니, 가능은 하겠습니다만…이게 도대체….]

이안의 말에, 아직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레이야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보다 못한 미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프레이야한테 최소한의 설명은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런가?”

“당연한 소릴. 이봐, 프레이야.”

[네, 관… 리자님.]

미넨의 부름에 프레이야가 두 눈을 끔뻑이며 돌아봤다. 미넨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안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공영혼이야.”

단지.

[예…?]

그 설명이,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을 뿐.

[이러다간 끝이 없겠군.]

애오옹

그 모습을 보던 미미르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혼란도 잠시.

[말씀하신 대로, 아스가르드의 마력공급라인을 추가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프레이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안은 반색했다.

[제가 손댈 수는 없는 부분이어서, 관리자님께서 직접 하셔야 하겠지만요.]

말을 마친 프레이야는 이안이 아닌 미넨을 바라봤다. 이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들었지?”

“그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미넨은 눈을 감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우우웅!

미넨의 몸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

이안은 미넨이 아스가르드와 연결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아스가르드와 연결된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제 3자의 눈으로 그 광경을 볼 일은 없었으니까.

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빛은 미넨의 몸 안 깊이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미넨의 몸 안에 새롭게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력량만 따지면 마스터급은 되겠군.’

물론, 그 말이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연료탱크가 아무리 크다 한들, 출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영웅급 페르소나는커녕, 병기급 페르소나도 간신히 움직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눈속임하기엔 충분하겠어.’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안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이봐, 기분이 어때?”

“최곤데.”

이안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미넨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기억 속에만 있는 힘이었는데, 실제로 느끼니 더 좋은걸.”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미넨의 소감을 들은 이안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럼, 이제 계약을 지킬 시간이겠지?”

이 모든 것이, 이안과 미넨이 작성한 계약서 안에 들어 있었으니까.

“젠장, 몇 년이라고 했더라?”

“10년.”

“더럽게 길기도 하네.”

그 말에 미넨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이안의 입꼬리는 반대로 승천할 듯 솟아올랐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럼, 여기서 뺑이 좀 치고 있으라고. 난 먼저 가볼 테니까.”

이 순간부터, 이안은 신계가 정한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일단은 메피스토부터 만나러 간다.’

마기를 다루는 법을 확실히 익힌 다음, 마동력을 완성하는 것.

그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