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76화 (177/224)

#178화

[넌, 누구지?]

이안의 머릿속으로, 이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 같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물론, 이안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목소리는 이안의 것이 아니라, 이안의 손에 들린 영혼의 것이었지만.

‘애초에 영혼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혼을 인공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이쯤 되면 신성모독이라고 봐야 할 일이 아닐까.

‘아니면, 신들의 기준은 좀 다른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안은 곧 그 생각들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는 넌, 누구지?’

이안이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상대의 정체.

몰라서 물어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반마족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영혼이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파이톤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영혼. 이안 폰 아슈타르 공작을 베이스로 만들어졌지.]

하지만 다행히도, 인공 영혼은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좋아.’

정체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이제 내 질문에 답할 차례다. 그러는 넌, 누구지?]

말하는 투가 영락없이 자신을 빼닮았다는 사실에 이안은 순간 실소했지만, 그는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는….’

무심코 대답하려던 이안의 입이 순간 멈칫했다.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 거지? 네 주인? 원본?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할 말을 정리하곤 생각을 보냈다.

‘네 형제다.’

엄밀히 말하면, 그와 영혼을 나눈 사이가 아니던가.

어찌 보면 형제보다 더 친밀한 사이일지도 모를 일.

[형제라고?]

‘그래.’

[나에겐 형제가 없는데.]

‘그렇다면, 이제 생겼군. 됐지?’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거면서, 새삼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자,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갔다.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같은 기묘한 느낌이 오가기는 했지만, 이안 자신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녀석이기 때문인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이 구슬 안은 너무 답답해. 빌어먹을. 기왕 만들어 줄 거면 몸이라도 같이 만들어 주던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인공영혼이 한숨-영혼이 숨을 쉬진 못하지만-을 내쉬었다. 그 말을 들은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몸이라니?’

그렇다면, 파이톤이 진짜로 만들고자 했던 건 영혼이 아니라….

‘나였나?’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자신의 영혼을 복사할 만한 능력을 가진 시점에서, 육체를 만들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소름이 끼치는 건 소름이 끼치는 거다.

이안의 생각도 모른 채, 인공 이안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파이톤이 나에게 말하기론, 나를 위한 육체를 만들어줄 계획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없어졌지. 너 때문에.]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육체까지 내주면 진짜 이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나, 뭐라나.]

말을 하다 말고 인공 이안이 콧방귀를 뀌었다.

[참, 나. 나는 그런 생각 따위 눈곱만큼도 없는데 말이지. 너도 지금 그 자리가 귀찮지 않아?]

‘물론.’

인공 이안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신검공의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오직 생존을 위해 필요했을 따름이니까.

이제는 지킬 것이 많이 늘어난 것도 있긴 하지만, 공작이라는 지위가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나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은데 말야. 지금 해야 할 일이….’

순간.

한 줄기 생각이 이안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이거라면…?

나쁘지 않은데.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에 살을 붙여나가던 이안의 시선이 다시금 구슬을 향했다.

‘이봐.’

[왜? 여기서 내보내 주기라도 하려고?]

이안의 말에 인공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래.”

[…정말로?]

하지만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인공 이안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네게 몸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빌어먹을.]

하지만 이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인공 이안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야.

[내게 뭘 원하는 거지?]

이안을 복사해 만든 영혼인 그에겐, 이안이 다음에 말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나 뻔했으니까.

[알겠지만, 난 그냥 영혼일 뿐이라고. 네게 줄 수 있는 거라곤 영혼 말곤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아니.’

하지만 이안은 인공이안의 한탄을 듣곤 고개를 저었다.

‘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지.’

이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판데모니엄.

마족의 땅인 마경을 제외하고, 마족과 반마족들이 탈마공 디아블로의 제약 아래 살아가는 유일한 곳.

불길한 보라색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지하에 자리잡은 거대한 실험실에선.

“후우.”

탈마공의 자식이자 5급의 고위마법사, 파이톤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괜히 준 건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안 때문이었다.

이안에게 파이톤이 선물로 건넨 것은,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해낸 필생의 역작인 인공 영혼.

단순히 자아를 가지고 있을 뿐 생체와 결합할 수 없는 마법 자아를 넘어선, 생체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자신의 역작을 건네받은 이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하기사,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낸 영혼이라며 건네준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소름 끼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

“역시, 그냥 비밀로 하는 게….”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입으로 내뱉던 파이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언젠간 들킬 일이었어.”

이다음 단계는 영혼을 담기 위한 그릇인 육체를 만들어 인공 영혼을 담아내는 것.

그렇게 육체를 만들어낸 다음, 활동을 시키기라도 했다가 들킨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으리라.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아아….”

몰려오는 두통에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은 반마족이 관자놀이를 마구 눌러댔다.

그때.

우우웅-

“…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 소리에 파이톤은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연구실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책상.

그 위에 올려 둔 자신의 통신구슬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건….”

그 통신구슬이 누구의 것과 연결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파이톤의 표정이 굳었다.

그 통신구슬와 연결된 것은, 다름아닌 이안이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우우웅-

계속해서 진동을 보내오는 통신구슬 앞에서, 파이톤은 잠시동안 통신을 연결할지 말지 망설였다.

‘뭐, 미안하다고 하지 뭐.’

하지만, 이내 파이톤은 마음을 다잡고는 통신구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곧, 통신이 연결되면서 이안의 얼굴이 구슬 안에 떠올랐다.

“이안, 미안….”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파이톤은 이안을 향해 사과의 말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가 채 끝나기도 전.

[고맙다, 파이톤.]

“어…?”

생각지도 못한 감사 인사를 받은 파이톤은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파이톤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 이안은 재차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선물이었어. 이런 귀한 걸 내게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역시 내 전우다워.]

“어, 어….”

계속되는 이안의 칭찬에 파이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뭔데?”

이안이 질문하려 하자, 파이톤은 혹여나 잘못 대답할까 싶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왜, 이 영혼에 육체를 부여하지 않은 거야?]

이안이 물어본 것은 그리 답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그야, 너와 똑같은 존재가 하나 더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니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파이톤은 그 이야기에

“영혼이 육체를 부여받는 순간, 그 영혼은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원본이 되는 거거든.”

그것이, 이안처럼 특수한 영혼을 지닌 자라면 더더욱.

“비슷한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충분히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지. 가령, 네가 가진 페르소나를 그 영혼도 함께 쓸 수 있다던가….”

[그래?]

“응. 그래서 일부러 육체를 만드는 건 배제한거야.”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괜히 그런 말을 꺼냈다가 서로가 불편해지면 손해 보는 것은 결국 파이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야.]

“응?”

[육체를 만들어줄 수 있겠어?]

이안의 말을 들은 파이톤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 얘기 제대로 들은 건 맞지?”

[물론.]

“그러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겠네?”

[괜찮아.]

“아니, 괜찮기는 뭐가 괜찮단 거야?”

파이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안은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

인공 이안의 육체를 이안이 수령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는 데, 나는 책임 없다. 알았지?”

“그래.”

파이톤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이톤이 가져온 직사각형 모양의 관을 내려다봤다.

그곳엔, 이안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시체 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사실, 영혼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생명이 있는 신체와 큰 차이는 없었으니까.

[저게, 내 육체인가?]

‘그래.’

손에 쥔 구슬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이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그 구슬을 입 안에 넣어주면 돼. 참, 나.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파이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안은 파이톤의 반응을 무시한 채 관 안에 누워있는 육체를 향해 허리를 돌렸다.

‘진짜 똑같이 만들었네.’

과학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도 아니고, 마법으로 이 정도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이안은 잠시 놀람을 표했다.

그리고 잠자듯 누워있는 육체의 입을 손으로 벌리곤 구슬을 집어넣었다.

우웅

구슬이 커서 잘 안 들어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입에 닿자마자 콩알만한 크기로 줄어든 구슬은 목구멍을 타고 몸 안으로 굴러 내려갔다.

허리를 편 이안이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내뱉을 때 즈음.

우우웅-

관 안에 누워있던 육체가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안의 고개가 파이톤을 향해 움직였다.

“이거, 맞아?”

“응. 영혼이 육체에 정착하는 과정의 일부야.”

파이톤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다시 관 속의 육체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쩍!

환한 빛과 함께, 관 안에 누워있던 육체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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