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72화 (173/224)

#174화

이안은 지금껏 승리를 위해 살아왔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가 지금껏 살아온 전생과 현생은, 승리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였으므로.

그렇기에, 이안이 손에 넣은 승리의 숫자는 감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승리는 제법 특별했다.

“탄도미사일이라.”

S-1의 본체인 마키나 중앙의 거대한 첨탑.

첨탑의 지하 어딘가에 자리 잡은 사일로 안에서, 우뚝 서 있는 길쭉한 탄도미사일을 마주한 이안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 세계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모양은 조금 달랐지만, 이안이 전생에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봐왔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는 않는 형태였다.

[제작자님께서 주신 힌트들을 참고해서 만들어낸 물건이지.]

이안의 말에 S-1은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뭐, 내 입장에선 고맙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네.”

물론, 그 역작은 이제 이안의 것이었지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안이 가상공간에서 투하한 핵폭탄이 폭발한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안이 사용한 병기는, 자신이 어떻게든 완성해내려던 최종병기, 바로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싸움이 조금만 뒤에 벌어졌다면, 승자는 자신이 되었을 거란 사실도.

물론.

“그래, 어쨌든 넌 졌고, 난 이겼지.”

이제 와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공염불이었지만.

미소지은 이안의 한 마디에, S-1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는 기계정령을 내버려 둔 채,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ICBM이 이 세계에서 큰 의미를 가지진 않지만….’

결국, 미사일이건 폭탄을 장비한 폭격기건 그 목적은 같다.

안에 실어 둔 탄두를 목표까지 안전하게 잘 운반하는 것.

ICBM은 그 목적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했지만, 조금 과했다.

이 세계에선 고고도비행을 할 수 있는 폭격기만으로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탄도미사일까지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

‘안에 실어야 할 탄두도 없다면, 더더욱 말이지.’

가상공간에서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는 핵분열의 원리를 구현해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막고 있는 것처럼.

‘신급 페르소나를 얻는다면, 조금 달라지길 빌어야지.’

그리고, 신급 페르소나를 얻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지잉-

사일로를 뒤로하고, 이안은 S-1과 대결을 펼쳤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에 자리한 것은, 바닥을 뱀처럼 기어 다니는 수백의 전선들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의자.

“S-1.”

제작자가 자신의 후예를 위해 남긴 최후의 유산을 바라보던 이안은 옆에 자리한 기계정령의 단말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산에 접속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지?”

이안은 S-1이 가진 모든 통제권한을 받았지만, 아직 제작자의 유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진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안은 이미 제작자의 유산을 사용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터.

하지만 S-1의 답은 이안을 당황하게 했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 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게 된 이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약속이랑 좀 다른 것 같은데?”

분명, 승자가 모든 권한을 가져가기로 한 것이 둘 사이의 계약이지 않았던가.

그가 맺은 계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안의 표정이 풀어질 리 만무했다.

하지만 S-1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 나는 저 유산을 움직일 권한이 없다고.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던 권한을 줄 수는 없는 일이지.]

말을 마친 기계정령이 이안을 향해 비웃듯이 낄낄댔다.

하지만 단말기 화면에서 쏟아져나오는 웃는 얼굴 모양 이모티콘을 보고도 이안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계약상 문제는 없어.’

S-1의 말대로,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안은 한숨을 내쉬고는, 제작자의 유산을 향해 다가가선 의자를 눈으로 훑으며 쓰다듬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유산의 권한과 관련한 단서가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

의자를 세심하게 살피던 이안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구멍…?”

왕좌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황금 의자의 두터운 등판 뒷면.

의자와 연결된 수많은 케이블 사이로, 직사각형의 구멍 하나가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뭐지…?’

수상했다.

마치 무언가를 꽂아 넣으라는 듯 대놓고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 구멍의 크기가 왠지 이안의 눈에 많이 익었으니까.

‘혹시?’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이안의 손이 품 안의 주머니로 향했다.

‘이거라면….’

품속에서 나온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글 제목으로 쓰인 한 권의 책.

[이계에서 온 강민혁을 위한 아스텔리아 안내서]

‘혹시 몰라서 가져오긴 했는데….’

이 책 역시 제작자가 남긴 유산 중 하나이니, 저 의자에 난 구멍에 들어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모양도 비슷하고 말야.’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은 채, 이안은 손에 들린 제작자의 안내서를 서서히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된다.’

마치 원래부터 단짝이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안내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안의 마음속에, 조금씩 기대감이 차올랐다.

곧, 밀어 넣은 책이 두꺼운 의자 안으로 완전히 사라진 순간.

철컥!

쇳소리와 함께 의자에 난 구멍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허허.”

순간,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이거라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이 집어넣은 책이 저 의자와 관련된 무언가라는 것은 확실해진 상황.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이안은 황금의자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파아앗-

제작자의 유산, 황금의자는 이안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 주었다.

“크윽….”

의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황금색 광채에 이안이 눈을 찌푸리던 사이.

[코드 입력 확인. 저장고의 봉인을 해제합니다.]

철컥철컥

정체 모를 기계음과 함께, 의자가 놓여있던 방향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를 환하게 밝히던 빛은 사그라들었다.

우우웅-

[활성화 완료.]

“…뭐야?”

사그라든 빛과 함께 들려온 기계음에 눈을 뜬 이안은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똑같잖아?”

빛을 뿜어내기 전과 완벽히 같은 모습의 황금의자.

정말이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의자를 마주한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가 일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

그걸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들어 가봐야겠지.’

이안은 의자의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어떻게….]

S-1의 당황한 표정을 뒤로 한 채, 이안은 의자에 앉아 의자와 케이블로 연결된 헬멧을 머리에 썼다.

그 순간.

[접속자의 영적패턴을 확인중입니다.]

[패턴 일치. 저장고와 연결합니다.]

이안의 눈앞에 두 개의 메시지가 차례로 떠올랐고.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헬멧을 뒤집어쓴 이안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곧, 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고.

이안은 마주할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

“…제작자?”

제작자를.

***

제작자는 이곳에서 돌연변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분명 그의 본질은 인간이었지만, 그가 세계에 끼친 영향력은 어지간한 신이나 마왕과도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특히, 그가 만들어낸 대 마족병기 페르소나는 지금까지도 아스텔리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앉은 이 의자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이안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가 제작자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안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아이?’

그의 앞에 나타난 제작자의 모습이, 이제 다섯 살이나 될까 싶은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꼴을 보고 놀란 모양이지?”

이안의 반응이 퍽 재미있었는지, 아이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난 제작자가 아니야. 네가 강민혁이 아니라 이안의 육체를 뒤집어쓰고 있듯이.”

“…제작자가 아니라고?”

이안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제작자가 남긴 자동응답시스템. 너희 세계의 언어로 말하자면…일종의 인공지능이지. 저 밖에 있는 기계정령들하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아이의 표정은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면, 제작자는 죽은 것인가?”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냐. 제작자의 모든 것을 물려받고나면, 그 질문의 답을 알 수 있을거야.”

말을 마친 아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이안의 물음을 들은 인공지능의 답은 간단했다.

“널 제작자의 진정한 후계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지.”

“후계자라, 난 이미 제작자의 모든 걸 물려받은 게 아니었나?”

그 말을 들은 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S-1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순간, 그는 마키나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손에 넣었다.

거대한 공장과 미사일 사일로부터,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그만 볼트와 너트까지.

거기에,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과 마도위성 아스가르드까지 그의 손에 들어와 있지 않던가.

제작자가 거대한 대륙에 남기고 간 모든 것을 이미 손에 넣었는데.

“이제 와서 진정한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하나를 얻지 못했어.”

“하나?”

아이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이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카가가각-

아이의 몸에서 철판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이안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무슨….”

그다음 순간,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이이잉-

금속 긁는 소리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거대한 엔진소리 같은 기계음과 함께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아이의 팔.

팔을 감싼 잿빛 에너지의 강력한 힘 앞에서, 이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이안을 향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앞으로 네가 이곳에서 배워나가야 할 힘.”

위이잉-

“마동력.”

말을 마친 아이가 미소를 지었다.

“마동력….”

제작자가 남긴 유산의 마지막 한 조각.

처음 느껴보는 강력한 힘 앞에서, 이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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