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71화 (172/224)

#173화

마력.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힘이자, 중간계의 생명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힘.

그리고, 이안의 몸으로 빙의한 민혁에겐.

‘재료지.’

페르소나라는 증폭기를 이용해, 지구의 병기를 구현해내는 데 사용되는 재료.

어떠한 형태로든 변형시킬 수 있는 마력의 성질은, 신화와 전설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페르소나와 결합해 무시무시한 병기들을 이 세상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우웅-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온 지금 이 순간.

이안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마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파앗-

푸른 빛의 마력이 마치 후광처럼 조종석에 앉은 그의 주변을 잠식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간 거대한 마력 일부가 그가 앉아 있던 공간을 왜곡해나가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마력은 그가 탑승한 전투기를 완전히 감싸고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날렵한 두 날개는 넓고 두텁게, 앞뒤로 긴 동체는 옆으로 납작하게.

그것은, 지금까지 이안이 부려왔던 병기가 아니었다.

쐐애액-

마치 검은 가오리를 연상케 하는 넓적한 비행기가 하늘 높이 고도를 올렸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기체 전신에 발라진 것은, 어떠한 레이더가 쏘아내는 파장도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전자파 흡수 도료.

“아무래도, 이거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단 말이지.”

B-2 스텔스 폭격기.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이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날기는 할지 모르겠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안은 이 기체에 타본 적이 없다.

B-2는 지구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도 전략병기로 취급되는 물건.

한국이 아무리 미국의 동맹국이라지만, 자신들의 전략병기에 타국의 요원을 탑승시켜줬을 리 없지 않은가.

‘그나마 겉모습은 작전 때 봤던 것과 똑같이 만들었으니, 스텔스 효과는 있겠지만.’

이 날아다니는 가오리가 얼마나 제대로 비행할 수 있을지는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한 단점을 안고서도, 굳이 이안이 스텔스 폭격기를 불러낸 이유는 명확했다.

‘적을 무력화시키는 데엔 이만한 게 없으니까.’

그리고, 이안에겐 아직도 끝을 모를 만큼 넘쳐나는 마력이 남아 있었다.

우우웅-

마력을 끌어모은 이안은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마치 누군가가 막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구현할 수 없었던 병기.

‘하지만, 이 곳이라면 모르지.’

마도위성에 저장해 두었던 마력이 자신의 것으로 인식되었듯, 그동안은 구현할 수 없었던 무기도 이곳에선 가능할지도 몰랐으니까.

우우웅-

B-2의 하부에 위치한 무장창 내부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안의 몸과 페르소나를 지나 수 십배로 증폭된 마력이 난폭하게 무장창 안을 날뛰었다.

“크윽….”

앙다문 그의 입가에서 한 줄기 핏물이 새어 나왔지만, 그는 정신집중을 멈추지 않았다.

이안이 통제하는 마력의 양은 어지간한 비행전열함 한, 두 대가 가진 마력은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

천문학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거대한 마력은, 이안의 철저한 통제 아래 새로운 물질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찰나였지만, 이안에게는 억겁과도 같은 긴 시간.

이윽고.

파아앗-

무장창에서 날뛰던 마력이,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소시지를 연상케 하는, 하얗고 길쭉한 형태의 항공폭탄 한 기.

그 무게만 1톤이 넘는 거대한 폭탄이었지만, 그토록 거대한 마력이 들어갔다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적은 숫자였다.

“허억, 허억… 두 번은 못 하겠네.”

피범벅이 된 입가를 소매로 스윽 닦은 이안은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의 몸뚱이에 들어차 있던 거대한 마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묵직하고 진한 탈력감이 전신에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됐어.’

성공을 직감한 이안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가 B-2의 무장창에 만들어 낸 한 발의 폭탄은, 그만한 의미가 있었으니까.

‘단번에 끝낸다.’

결심을 마친 이안은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납작한 가오리의 배 쪽에 조그마한 문 하나가 열렸다.

문 아래로 보이는 것은, 로켓처럼 네 개의 꼬리날개가 달린 기다란 백색의 폭탄, B83.

꾸욱

곧, 이안이 버튼 하나를 더 누른 순간.

모든 것을 끝낼 병기가.

쐐애액-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

S-1이 이안을 전투시뮬레이션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된 행동이었다.

‘제작자의 유산을 인질로 잡는다면, 관리자는 이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관리자가 들어온 순간.

‘승리확률은 99.9998%.’

S-1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는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한계가 있지.’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철컥 철컥

대륙의 모든 기계들을 통제하기 위해 제작자가 만들어 낸 S-1의 육체인 거대한 탑.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는, 전투병기를 생산하는 공장 역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기이잉-

모든 기계의 어머니라 불리는 A-211의 거대한 공장설비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생산설비만으로도 수백, 수천의 병기들을 뽑아내기엔 충분했다.

‘자원 걱정할 필요 없는 이 시뮬레이터 속 공간이라면 말이지.’

숫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상대에 비해 약할지라도,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소수의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그것도, 상대가 한 명뿐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무슨 의도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작자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을 활용해, 감히 제작자님의 후예라 칭하는 저 유기체를 끝장내는 것.

기이이잉-

그것만이, 제작자가 직접 만들어 낸 피조물인 그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S-1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이더에 잡혔던 적의 위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로 간 거지?’

당황한 S-1은 레이더의 출력을 높여봤지만, 상대는 여전히 감지되지 않았다.

‘요격병력을 보낸다. 전부.’

갑자기 사라진 적에 위협을 느낀 S-1은 곧장 대기 중이던 전투기들을 출동시켰다.

쐐애액-

제대로 날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목제복엽기부터 소리보다 빨리 날 수 있는 제트기까지, 그가 생산해낼 수 있는 모든 항공전력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찾지 못하면, 질지도 모른다.’

상대는 고작 유기체긴 하지만, 관리자의 자격을 가진 자다.

숫자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모든 전력을 하늘 위에 흩뿌린다. 어딘가에는 분명 있겠지.’

당황한 S-1이 다급히 전투기들을 부리던 그때.

삐-삐-

‘적이다.’

레이더에서 점 하나가 나타난 것을 확인한 그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적의 위치를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선 상대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뭐지?’

S-1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날아드는 적의 목표는 분명, 그의 본체인 거대한 첨탑.

‘설마….’

순간, 무언가를 눈치챈 S-1은 적이 레이더에 감지되는 방향을 향해 카메라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폭탄?’

길쭉한 막대기처럼 생긴 하얀 색의 폭탄이, 자신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그 순간.

‘다른 방법을 찾지는 못한 모양이군.’

아이러니하게도, S-1은 폭탄을 보곤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저런 작은 폭탄 하나에 당해 줄 수는 없지.’

그의 계산이 맞다면, 저만한 크기의 항공폭탄이 낼 수 있는 폭발력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저런 물건을 여럿 떨어트린다면 혹 몰랐지만, 이미 제공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카메라로는 보일 것이다.’

제아무리 스텔스 기술이라 하더라도, 마법처럼 투명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상대는 저 폭탄을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겠지만, 결국 승리는 자신의 것이다.

‘곧 찾아내 주지.’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폭탄을 무시한 S-1은, 하늘 어딘가에 있을 적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번쩍-

그 잠깐의 방심이.

S-1을 패배로 몰아넣은 원인이었다.

***

번쩍-

멸망의 빛이 세상을 뒤덮는다.

이미 폭심지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이안이었지만, 너무나 밝은 빛에 이안은 눈을 감았다.

이윽고.

콰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버릴 듯한 거대한 폭음이 성층권을 날고 있는 B-2의 조종실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터졌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울려대는 대기의 진동을 느낀 이안은 창백한 얼굴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모의전을 종료합니다.]

[대전 결과: 이안 폰 아슈타르 승]

[승리를 축하합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젠장, 진짜 힘드네.”

그제야,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이안은 조종석 위에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파아앗-

이안의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다시 밝아졌다.

[이안, 괜찮나?]

수천 개의 태양이 떠오른 것 같았던 하늘 대신 나타난 것은, 자신의 전우인 검은 고양이 미미르.

“그럼, 괜찮고말고.”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고양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제작자의 유산인 황금 의자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처럼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력 탈진이라니, 가상공간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가상공간에서 핵폭탄을 만들어낸 대가로 마력탈진을 얻었긴 했지만, 그게 현실에까지 이어질 줄이야.

‘만약 패배하기라도 했다면….’

그 뒷일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뭐, 일단은 이겼으니까.”

이안은 의자에 축 늘어진 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그럴 수 없었다.

[패배라니, 이럴 수가….]

S-1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패배할 거라는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그 말도 안 되는, 흡사 신의 힘과도 같은 강력한 폭탄….’

제작자가 흘리듯 자신에게 던진 그 병기가 실제로 완성되었다면 이런 위력이었을까.

순간, S-1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데이터 확보 완료. 최종병기 생산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하겠음.]

관리자가 사용한 병기의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자신이 만들어내려던 최종병기의 완성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으리라.

물론.

“누구 맘대로?”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약속대로, 네 권한은 이제부터 내 것이라고. 그 핵미사일을 포함해서 말이지.”

거대한 첨탑을 지키는 기계정령을 향해,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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