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68화 (169/224)

#170화

이안이 E-16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했다.

“이봐, T.”

[예, 관리자님.]

“이 자식, 그냥 분해해버려.”

기계정령이니 여섯 아이들이니 하지만, 결국 그 육체의 기반은 볼트와 너트, 쇳조각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던가.

‘그냥, 분해해서 데이터만 긁어모으면 제까짓 게 어쩌겠어?’

마침 이안이 위치한 섬엔 폐기장의 시설을 담당하는 기계정령, T-316이 존재한다.

기계의 분해와 해체에 관한 한, 이 세계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뛰어난 존재.

‘메모리건 뭐건,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상대는 모든 무장이 해제된 데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

폐기장으로 가기에 딱 좋은 상태가 아닌가.

[관리자님, 너무 잔혹하신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 말을 들은 C-218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C-218, 관리자님의 잔악무도함에 함체가 부들부들 떨려….]

하지만 이안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기계정령을 향해 한 마디를 툭 던질 뿐이었다.

“너도 갈래?”

[아닙니다.]

고철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던 C-218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안은 격납고 안에 나타난 T-316의 홀로그램을 향해 재차 명령을 내렸다.

“자, 어서 시작하자고. 운반은 나랑 선봉대가 도와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관리자님. 해체시설 가동을 준비하겠습니다.]

이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T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곧, 이안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댔다.

파아앗!

“자, 다들 여기다 실으라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가 구현해낸 것은, 전차를 운반할 때 쓰이는 거대한 수송차량.

수십 톤에 달하는 전차도 거뜬히 운반할 수 있는 이 녀석이라면 망가진 이족보행병기를 옮기는 것도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

“자. 하나, 두울!”

그렇게, 이안과 선봉대가 힘을 모아 잠들어버린 E-16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삐이이이!

귀청을 찢을듯한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크윽, 고막 터지겠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 자리에 모인 선봉대와 이안은 모두 오러나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존재들.

하지만, 정체불명의 굉음은 마력과 오러로 강화된 그들의 고막에 타격을 입힐 정도로 날카로웠다.

인상을 찡그린 이안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았다.

소리의 진원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 고철이…?’

귀청을 찢을듯한 금속음이 이족보행병기, E-16에서 들려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모두 내려놓고 함선 밖으로 대피해!!”

관리자의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E-16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선봉대원들이 빠르게 물러섰다.

어느새 격납고에 홀로 남은 이안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전투불능에 빠진 상대가 택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 때문이었다.

‘자폭이라도 하면 곤란한데.’

상대가 가진 마력은 못해도 오러 마스터급의 양일 터.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일시에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이안 자신은 몰라도 항공모함이나 섬은 큰 피해를 입으리라.

‘이제 와서 자폭이라니,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우우웅

이안의 심장과 마도위성 아스가르드에서 뿜어나온 마력이 그의 몸 전체에 가득 들어찼다.

‘방향만 뒤틀면 돼.’

폭주하려는 마력을 감싸 안은 다음, 폭발의 방향을 유도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터.

삐이이이-

철판을 찢어발기는 것같은 금속음이 커질수록, 이안이 끌어모은 마력 역시 거대해져 갔다.

마력을 최대한도까지 끌어모은 이안이 마력을 방출하려던 그때.

삐….

이변이 일어났다.

‘소리가, 멎었어?’

금방이라도 터질 듯 귀를 쑤셔대던 금속성이 단번에 멎어버렸다.

‘뭐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안은 아직 마력을 거두지 않았지만,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곧.

[그대가, 관리자인가.]

마력을 가득 끌어모은 이안을 향해, E-16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의 말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넌 누구지?”

E-16은 지금까지 관리자 이안 자신과 싸우고, 패배해 이곳까지 끌려오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모르는 척 자신의 정체를 묻는다는 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했으니까.

“방금까지 내가 싸우던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을 마친 이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고철덩어리를 바라봤다.

‘무슨, 강신이라도 했나?’

그가 방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상대와는 말투부터가 완전히 다른 자.

[나는 S-1.]

그리고.

[제작자님의 유지를 이어받은 마키나 대륙의 통제자다.]

언제나 그렇듯, 이안의 예상은 정확했다.

***

[D-7 완파. E-16 전투불능.]

마키나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 기계정령 S-1.

그가 관리자를 대적하기 위해 파견한 두 기계정령의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계획 성공률 28% 감소. 실패위험 지나치게 높음.]

S-1은 빠르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까지 관리자에게 붙거나 당한 피조물은 모두 넷.

남은 것은, 자신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공기지, B-19뿐.

하지만.

[A-211의 생산력을 감안할 때, 관리자에게 시스템의 제어권이 넘어갈 확률은 72.6%.]

모든 기계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거대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계들은, 대부분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녀가 자신의 손을 떠난 순간, 그가 세워놓은 영광스러운 계획이 실패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방법이 필요했다.

[관리자를 저지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 필요.]

우우우웅-

자신보다 강한 세력을 얻은 관리자를 막아내고, 계획을 실현시킬 방법이.

파직 파지지직-

탑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연산장치들이 과열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터져나갔다.

하지만 S-1은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가장 큰 적, 관리자를 멈춰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으니까.

그리고.

[…연산 완료.]

S-1은 찾아낼 수 있었다.

[예상 성공률, 5.21%.]

비록 성공률은 좀 낮긴 했지만.

[E-16의 육체를 단말기로 사용, 계획 실행.]

관리자를 유리한 고지에서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우우우웅-

최후의 계획을 세운 E-16의 본체, 첨탑의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E-16으로부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대한 이안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이렇게 연락해오지 않았어도 됐는데 말야. 어차피 좀 있으면 때려 부수러 갈 예정이었거든.”

사실, 이안은 현재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적대하는 여섯 아이들, 기계정령의 숫자는 고작 둘.

거기에, 자신 쪽에는 기계를 무한히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과 박살난 기계를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장이 존재했다.

굳이 항공모함 안의 함재기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고작해야 방어기지 하나뿐인 적을 상대하기엔 충분한 전력.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원하는 것이라니? 나에게 그런 게 있었나?”

S-1이 으름장을 놓자, 이안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얻어갈 것은,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 너도 뭔가 하나 내놓을 게 있단 말이지.’

제작자의 유산.

이안이 마키나까지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그대가 진정 관리자라면, 제작자님의 유산을 원하고 있을 터.]

S-1은 제작자의 유산을 가지고 흥정을 시작했다.

[나를 쓰러트릴 수는 있겠지만, 나와 제작자님의 유산은 이미 한 몸이다. 자폭시퀸스를 가동하는 순간, 나는 유산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흠.”

그건 좀 곤란한데.

S-1의 협박 아닌 협박에, 이안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S-1을 때려 부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걸 막는다 쳐도, 제작자의 유산을 얻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그제야 이안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고철덩어리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조건을 제안하고 싶다.]

“뭔데?”

[관리자인 그대와, 마키나의 통제자인 나 S-1. 단 둘만의 대결.]

이안의 물음에 돌아온 S-1의 대답은 간단했다.

“허.”

그리고, 상대의 요구조건을 확인한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 나에게 너무 불리한 조건 아닌가? 아무리 네 손에 들린 게 많다곤 하지만, 그건 좀 곤란하지.”

이미 대세는 이안에게로 기울어버린 상황.

팔다리가 잘린 상대의 아가리에 굳이 머리를 집어넣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자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님의 유산과 함께.]

“흠….”

상대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니, 이안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안, 말려 들어가선 안 된다.]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미미르가 이안을 말리기 시작했다.

[칼자루를 쥔 건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미 승산은 우리에게 있어.]

하지만 미미르의 설득은 생각만큼 먹히지 않았다.

“네가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은?”

[이안!]

이안의 물음에 미미르는 놀라 소리쳤지만, S-1은 반색했다.

[네가 원하는 모든 종류의 방법으로 맹세하지. 어떤 것이든.]

“좋아.”

S-1의 대답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에게 대적하기 위해선, 제작자의 유산이 필요해.’

자신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신들에 대한 최소한의 억지력.

제작자의 유산은 그 억지력을 획득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합의를 마친 이안은 S-1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대결 방법은 뭐지? 설마하니, 나 혼자 네 친구를 때려잡으란 소리를 하진 않을 거고.”

아무리 이안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홀로 도시 크기의 방어기지를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하지만 S-1은 이안의 말을 부정했다.

[그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놀이를 하게 되겠지.]

“놀이라고?”

놀이라니.

상대의 입에서 상황과 맞지 않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작자님께서 직접 고안하신 놀이지. 본래는 유기생명체들이 즐기도록 고안된 것이니, 관리자인 그대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영상으로 대체하겠다.]

위이잉-

S-1이 말을 마치자마자, 고철덩어리 앞에 푸른 빛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홀로그램에 나타난 것은, 제작자가 만들어냈다는 ‘놀이’의 소개와 규칙.

그리고.

“뭐야, 이건.”

홀로그램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이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상… 현실?”

상상도 못한 게임의 정체에,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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