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포의 위력은 그 구경과 비례한다.
같은 화력을 가지고 같은 속도로 날아가는 포탄이라면, 조금이라도 거대한 쪽이 더 강한 위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괜히 양차대전 당시 지구에서 거함거포주의가 유행한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안이 상대하는 육상전함이 가진 21인치 주포는 상상을 불허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크기의 성채 정도는 한 발로 끝장낼 수 있는 거대한 포가 다섯 개의 포탑에 두 문씩, 총 열 문.
‘저런 무식한 물건을 열 문 씩이나 달고 있으면, 벙커버스터가 따로 필요없겠어.’
단순히 열 발의 포탄을 목표지점에 명중시키는 것만으로 유사지진을 발생시키는 정신 나간 병기.
하지만.
콰아아아앙-
육상전함의 등에 주렁주렁 매달린 그 정신 나간 함포들은, BGM-109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파도 앞에서 속절없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원하는 창문을 정해서 맞출 수 있을 만큼의 정확도를 지닌 토마호크 미사일에게, 정확히 미사일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포구를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쐐애애액-
미사일 백 발이 일제히 같은 목표를 노린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는 법이다.
콰과과과광!
또다시, 육상전함의 방공망을 뚫어낸 미사일 한 기가 함포의 포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그와 동시에 일어난 거대한 화염이 전함의 상부를 집어삼켰다.
포탑에 장전되어 있던 포탄들이 유폭한 것이다.
[명중. 적의 주포를 모두 무력화시켰다.]
“좋았어.”
미미르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은 육상전함 D-7을 향해 쌍안경을 돌렸다.
전함의 상태는 처참했다.
길게 내뻗었던 주포의 포신들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거대한 포탑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지고 터져있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꺼지지 않고 전함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불길까지.
“끝인가?”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의 굳은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이제, 남은 건 방공기지뿐이군.’
거대한 도넛 형태를 띤 방공기지, B-19.
그 기지만 뚫어낼 수 있다면, S-1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정보건 뭐건 챙길만한 건 모두 챙긴 다음, 바로 움직인다.’
생각을 마친 이안은 생명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는 전 육상전함, 현 고철덩어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안, 놈이 아직 움직인다!]
“뭐?”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함교를 떠나려다 말고 다시 육상전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미친.”
사태를 파악한 이안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분명 놈의 등에 얹어진 주포들은 박살 나 있었고, 그 위에선 여전히 붉은 불꽃이 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지만.
구구구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거대한 무한궤도는 멈추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흙더미를 밀어내며 움직이는 육상전함의 목적지는, 누가 보더라도 명확했다.
“시설을 노리는 건가?”
완파나 다름없는 상태로도 기어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고철덩어리를 마주한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버려 두면 골치 아프겠는데.’
주포는 박살 난 지 오래지만,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 대지를 짓뭉개는 질량병기다.
수만 톤이 넘는 쇳덩이가 시설 위로 올라가 자폭이라도 한다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리라.
물론.
‘저건 오히려 쉽지.’
수백 발의 순항미사일을 숨쉬듯 쏘아낼 수 있는 이안에게, 저 거대한 쇳덩이를 멈춰 세우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미미르.”
[알겠다.]
이안의 명령을 듣자마자, 미미르는 각 함선에 배치된 고양이들에게 발사명령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콰과과광-
[궤도를 파괴했다. 이제 녀석도 끝이군.]
“좋아.”
미미르의 보고를 받은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졌다.
***
D-7.
지상의 적을 확실하게 분쇄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육상전함의 기계정령은.
[임무수행 불가능.]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뒤 결론을 내렸다.
주포는 이미 적의 공격에 침묵한 지 오래였고, 전함의 이동을 담당하던 무한궤도는 적의 미사일공격에 끊어진 지 오래.
그것만으로도 육상전함의 수명은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유폭에 의한 마력로 손상. 30분 내 기능정지 예상됨.]
강력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위력의 포탄을 가득 싣고 있던 탄약고가 연달아 폭발했으니, 아무리 견고한 방어력을 지닌 전함이라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자신의 생명이 앞으로 30분가량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육상전함은 절망하지 않았다.
[임무 변경. E-16의 후속임무 지원 필요.]
그 대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
기이이잉-
산처럼 거대한 전함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마력로.
찌그러진 표면에서 푸른 마력이 연기처럼 새어 나오는 것이, 자신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었지만.
[마력주입 준비 완료.]
아직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었다.
쿵 쿵
묵직한 발소리가 폭주 직전의 마력로를 향해 다가왔다.
발소리의 주인은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이안이 봤다면, 분명.
‘왜 저런 걸 만드는 거야?’
라고 말하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이족보행병기 E-16, 목표지점으로 이동중.]
인간을 금속으로 빚어낸다면 이런 모습일까.
여섯 기계정령 중 하나인 E-16의 몸통 아래에 달린 것은, 무한궤도나 바퀴가 아닌 두 개의 강철 다리.
쿵 쿵
어깨에는 강철로 만들어진 상자 두 개를 장착한 이족보행로봇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푸른 연기을 뿜어내는 마력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기잉 쿵.
이윽고, 마력로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로봇이 제자리에 멈춰선 순간.
[도착 완료.]
우우우웅-
반파당한 육상전함의 마지막 불꽃이.
[지금부터 마력 전이를 시작함.]
시퍼렇게 타올랐다.
***
[마력반응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끝난 모양이야.]
“확실해?”
자신의 머리 위에서 고철덩어리가 된 육상전함을 바라보던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의구심을 품었다.
‘내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제작자가 직접 만들어 낸 여섯 기계정령과 그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
그들을 만들어낸 제작자는 여섯 아이들의 힘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었겠지만.
‘감추고 있는 거라도 있는 건가?’
직접 상대해 본 이안의 눈엔,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지만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주의할 필요야 있겠지만, 저들의 힘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C가 빠져나오는 대로 선봉대 애들이나 불러야겠어.”
고철덩어리가 되었긴 했지만, 내부를 수색하다 보면 적에 대한 정보를 더 캘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안은 이지스 구축함의 함교에 서서 시설의 통로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안.]
“왜?”
[마력반응이다. 아까와는 차원이 달라!]
아직은 쉴 시간이 아니었다.
미미르의 말을 듣자마자, 쌍안경을 치켜든 이안의 시선이 조금 전 박살 낸 육상전함을 향했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쌍안경 너머의 움직이는 물체를 본 이안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로봇?”
정확히는, 3미터 가량의 키를 지닌 이족보행병기였다.
일전에 마주쳤던 제국의 신병기, 기가스에 비하면 매우 작은 크기.
‘저건, 미사일 발사대인가? 웃기게도 생겼네.’
어깨에 짊어진 두 개의 상자를 제외하면, 인간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그 모습에 이안은 실소했다.
“도대체 저런 건 왜 만드는 건지….”
인간은 그 신체구조부터가 전투에 적합한 형태가 아니다.
특히나 이족보행이라는 특징은 한쪽 다리가 망가지는 순간 바로 전투불능이 되어버리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약점이지 않은가.
“저번에 그 녀석도 그렇고, 왜 이리 이족보행을 좋아하는지 원….”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깨 위에 앉은 미미르를 쓰다듬었다.
“처리해, 미미르.”
[알겠다.]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쐐애애액-
미미르가 쏘아 올리는 수십, 수백 발의 함대지미사일이라면, 충분히 놈을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거대한 육상전함조차도 버티지 못한 순항미사일의 화력을 놈이 견딜 리 없다.
“아우우, 이제 슬슬 지겨운데.”
그렇게 생각한 이안은 기지개를 켜며 굳어 있던 몸을 풀었다.
선봉대와 함께 육상전함을 수색하려면,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안.]
애오옹…?
미사일을 쏘아 올린 미미르의 표정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미미르의 표정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이안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알 수 있었다.
콰과과광-
분명, 이안과 미미르가 쏘아 올린 것은 미사일의 비.
하늘을 가득 메운 미사일의 폭발반경까지 고려한다면, 그 미사일을을 전부 피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타타탓
놈은 달랐다.
콰과과광-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순발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민첩한 발걸음.
로봇이 다리를 한 번 뻗을 때마다 미사일 하나가 목표를 잃고 바닥에 쳐박혔다.
콰과광-
두 걸음에 두 발, 세 걸음에 세 발.
녀석의 말도 안 되는 도약력은, 미사일의 폭발범위를 벗어날 만큼 뛰어났다.
설사 피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한들 상관없었다.
투타타타-
로봇의 몸에 장착된 요격장비는 주인에게 다가오는 위험요소들을 착실하게 격파해나가고 있었으니까.
“무슨, 오러마스터도 아니고….”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신 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한 회피기술이다.
로봇의 신기에 달한 움직임을 본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할 셈이냐. 쉽게 끝낼 수는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하긴.”
미미르의 물음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상대해 봐야지.”
우우웅
심장에 가득 쌓여있던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그와 동시에, 이안은 함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안, 도대체 무슨….]
난데없이 바다를 향해 뛰어든 그의 주인을 보고 미미르는 당황했지만.
파아앗-
이안의 행선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마력의 푸른 빛이 이안의 몸을 완전히 감싼 순간.
[…허.]
미미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쐐애애액-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와 함께, 이안을 태운 A-10 썬더볼트II 공격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미사일 정도는 가뿐히 피한다, 이 말이지?’
그렇다면, 더 끝내주는 걸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