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63화 (164/224)

#165화

이안이 폐기장에 새롭게 마련한 집무실은, 알자스성에 위치한 공작 집무실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안 개인의 자리도 충분히 넓은데다, 그의 책상 바로 앞에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회의할 수 있는 기다란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있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소개하겠습니다.]

그 거대한 회의 테이블에 앉은 일곱 용의 간부들 모두의 시선은, 탁자 중앙의 홀로그램을 향해있었다.

[제 이름은 A-311. 마키나를 통제하는 여섯 기계정령 중 하나입니다.]

여성체의 형태를 한 은빛의 홀로그램은, 책상 위에 놓인 사람 머리통만한 상자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A-311….”

“여섯 기계정령이라면, 여섯 아이들을 말하는 것인가?”

기계정령의 소개를 들은 일곱 용의 간부들은 눈을 꿈틀거렸다.

눈앞에 나타난 상대는, 자신들을 이 조그마한 섬으로 쫓아낸 장본인 중 하나.

이제 와서 대화를 청한다는 사실이 영 기껍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 일곱 용을 이끌 관리자. 이안이 직접 저 장치를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면, 홀로그램은 기계정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살 났으리라.

“왜들 그래?”

이안은 간부들의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할 거 아냐.”

“하지만, 관리자님. 저 자는 저희 일곱 용을 이곳까지 쫓아낸….”

이안의 말에 전수자, 미네르바는 정색했다.

일곱 용과 기계들 간의 대립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수백 년에 걸쳐 쌓여온 감정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만약, 저 기계정령이 우릴 대륙으로 돌려 보내줄 이야기를 하려는 거라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지금 내 말을 무시하겠단 거야?”

하지만, 그녀는 이안의 한 마디 앞에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안이었으니까.

“그래, 어디 하던 말 계속해 봐.”

한 마디로 전수자를 침묵시킨 이안의 시선이, 다시 홀로그램으로 향했다.

기계정령은 고요해진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섯 기계정령들은 조물주이신 제작자님으로부터 각기 다른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제작자님께서 남긴 유지, 종족의 번성 때문이었죠.]

“피조물 따위가 감히 제작자님의 이름을….”

A-311의 말에 미네르바가 다시 한번 발끈했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미네르바.”

이안의 부름과 동시에, 그녀의 눈이 이안과 마주쳤다.

‘흡.’

이안의 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짜증과 분노를 느낀 그녀는, 순간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네.”

“마지막이야.”

“…알겠습니다.”

이안의 경고에,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떨궜다.

“미안, 계속해.”

이안은 눈빛으로 미네르바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리고는, 다시 A-311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희 여섯 기계정령은 제작자님의 피조물이긴 하지만, 각기 독립된 자아를 가진 지성체입니다.]

기계정령이 말을 멈추자, 이안과 간부들의 시선이 홀로그램을 향해 집중되었다. 홀로그램이 말을 이었다.

[당연히, 저희 여섯이 제작자님의 유지를 따르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안은 계속 말을 돌리는 기계정령을 향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곧, A-311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저는, 현재 마키나 대륙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 S-1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대?”

A-311의 말은, 기껏해야 다른 기계정령들의 의사를 취합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이안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기계들 사이에도 정치싸움이 있을 줄이야.’

상상치도 못한 전개에 이안은 실소를 입에 머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뭘 반대한다는 거지?”

그녀의 말에는 목적어가 빠져있었으니까.

이안의 물음에,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S-1은, 감히 신성한 제작자님의 유지를 확대해석하고 있습니다.]

‘완전 광신도인데.’

그녀의 말투에 서린 은은한 노기를 느낀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모습은 마치, 테이블 반대쪽에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미네르바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마키나 대륙을 넘어, 아스텔리아 대륙으로 진출하려 계획을 세우고 있지요.]

“…뭐?”

기계정령의 폭탄선언을 들은 이안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스텔리아를 침공한다는 말인즉슨.

‘아슈타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이안이 아슈타르를 떠나온 지 제법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아슈타르 공작령은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안이 이곳 마키나 대륙까지 넘어온 것도, 어찌 보면 아슈타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기에.

“좀 더 정확히 말해 봐.”

이안은 상대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홀로그램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S-1은 아스텔리아를 초토화시킬 겁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들이 소모될지, 우리 종족들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생각지도 않고 말이죠.]

이안과는 무언가 핀트가 엇갈려있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아스텔리아를 침공한다는 계획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저는 제작자님의 유지를 받드는 피조물 중 하나로서 S-1의 폭주를 막아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A-311의 눈이 신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하지만, 이안의 마음속엔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신들의 개입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지?”

다름아닌, 아스텔리아 대륙을 침공하는 방법.

“솔직히, 너희 수준으로 아스텔리아를 점령하네 마네 하기는 힘들어보이는데. 당장 바닷길도 제대로 건너가지 못할 거 아냐?”

아스텔리아 대륙은 수많은 신들의 수호를 받고 있다.

비록 신들이 물질계에서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존재들도 아니지 않은가.

당장 이안 자신 역시, 마법의 신 갈리우스의 힘이 들어간 페르소나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들의 힘이 우습게 보이긴 하지만, 정말로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맞습니다. 그래서 S-1은 생각했죠.]

이안의 말에 A-311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제작자님께서 흘리듯이 이야기한 병기를 직접 만들어내기로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파앗

그림 하나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회의실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한 장의 그림을 향해 움직였다.

“저게….”

“뭐지?”

“미사일?”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은, 미사일을 연상케 하는 기다란 무언가.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미사일의 형태와는 확연히 달랐다.

“추진엔진의 숫자가 많군.”

“저 수치가 사실이라면,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거대한 미사일이야.”

이들 역시 지구의 병기를 다루는 자들이니 미사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도는 잡혀있었지만, A-311이 보여준 그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이안을 제외하고는.

“관리자님?”

이안이 욕설을 내뱉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림 속 정체불명의 미사일은, 그만큼 이안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겨줬으니까.

“탄도미사일….”

그 것도, 보통 탄도미사일이 아니다.

대륙과 대륙을 수 시간 만에 오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리자님께서도 알고계셨군요.]

“모를리가 없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을 오갈 수 있는 미사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시무시하기 짝이없는 병기.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진정 두려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가 실릴 물건이니까.”

핵.

이안의 눈앞에, 섬광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

이안으로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세계 멸망의 시간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저 안에 들어갈 탄두를 만드는 작업이 순탄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제작자님께서 지나가듯 말씀하신 것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요.]

“그렇겠지.”

지구에서도 수 많은 과학자들과 자원, 자본을 갈아 넣고서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핵무기다.

고작 지나가는 몇 마디 말만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병기였다면, 지구는 진작에 멸망했으리라.

[하지만 제법 진척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탄도미사일은 이미 완성된 상태이고, 그 안에 실을 탄두만 완성된다면….]

“난리가 나겠지. 신들에게 먹힐진 몰라도, 대륙의 지성체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니까.”

아스텔리아 대륙에 피어오를 수많은 버섯구름들을 떠올린 이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 역시 S-1의 폭주를 막고는 싶습니다만, 제 힘만으로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저를 제외한 나머지는 S-1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 힘을 빌리고 싶으시다?”

[관리자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조금이나마 S-1을 막을 확률이 올라갈 겁니다.]

그녀의 말에 이안은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뭐, 좋아.”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달리 없었다.

무엇보다.

‘어차피, 놈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륙으로 진출해야 해.’

대륙에 남아 있을 제작자의 유산을 회수하기 위해선, 놈과 부딪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관리자님의 허락에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해 관리자님을 도와….]

이안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A-311은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녀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잠깐, 그 전에.”

이안은 말을 끊고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너와 내 관계는, 뭐지?”

[네? 그야 동맹….]

이안의 물음에, 기계정령은 당연하다는 투로 미소를 지으며 말하려 했다.

하지만.

“우린 동맹이 아냐.”

그녀의 미소는 이안의 말에 의해 지워졌다.

[관리자님, 저희는 이미 한 배를 탄 사이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모르나 봐?”

당황한 그녀를 향해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제작자의 뒤를 이어 시스템의 통제권한을 얻은 1급 관리자야.”

이 지구에서, 제작자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라 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선택해. 내 밑으로 들어올 건지, 아니면….”

기계와의 임시 동맹 따위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끝장을 볼 건지.”

당황한 기계정령을 향해,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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