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9화 (160/224)

#161화

지구에서부터 이안은 수많은 적을 마주했고, 그 목숨을 취해왔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적들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커, 커헉!’

‘죽여라.’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고꾸라지거나, 눈을 감은 채 담담히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거나.

‘이 악마같은 놈! 신께서 네놈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죽어가거나, 한 마디 신음도 없이 입을 다문 채 숨을 거두거나.

’사, 살려줘! 뭐든 말할테니 제발….‘

개중에는, 목숨을 구걸하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저 C-218, 태어난 지 이제 5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어린 양을 조금이라도 안타깝게 여기신다면,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자신을 C-218이라 소개한 항공모함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함교를 쩌렁쩌렁 울려대기 시작했다.

고막이 먹먹해질 만큼 커다란 소리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은, 저 징징대는 스피커를 끌 필요가 있었다.

“그만. 진짜 터뜨리기 전에 닥쳐봐.”

[….]

이안이 으름장을 놓자마자, 시장바닥보다 시끄럽던 함교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 틈을 타, 이안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함교가 놈의 약점인가?’

사실 이안이 함교에 폭탄을 설치한 것은, 혼란을 주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항공모함에 함교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항공모함의 인공지능이 살려달라 울부짖지만 않았어도, 이안은 아무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어찌 됐든.’

이건 이용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어.

생각을 마친 이안은 함선의 인공지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살고 싶어?”

[그럼, 죽고 싶겠어요?]

말을 마친 이안이 피식 웃자 인공지능은 발끈했지만.

“너, 말이 좀 짧다?”

[아, 아닙니다.]

이안이 손에 쥔 기폭장치를 흔들어 보이자 인공지능은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분명, 이안이 붙인 게 폭탄이라는 사실을 아는 모양.

하지만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근데, 네 친구들이랑은 좀 다르네?”

[친구들이라면…?]

“다른 기계들에 비해서, 너는 좀 더 사람답다고 해야하나?”

이안은 지난번 섬을 공격했던 함선들을 떠올렸다.

SF영화의 인공지능 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말투를 기본탑재한 놈들과 달리, 이 항공모함의 혀는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까지.

여러모로 지난번 만났던 놈들과는 달랐다.

[그런 하등한 놈들과 이 C-218을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이안의 말을 들은 C-218은 발끈했다.

[이 C-218로 말할 것 같으면, 제작자님의 유지를 이어받은 여섯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먼 곳까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거기에 제 생각 한 줄이면 움직이는 여든의 강철새들까지! 가히 여섯 아이들 중에서도 첫째라고 할 수 있지요!]

[저 친구, 말이 너무 긴데.]

C-218의 장황한 연설을 들은 미미르는 이안의 어깨 위에서 혀를 찼다.

“여섯 아이들?”

하지만 이안은 인공지능의 장황한 설명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제작자님께서 다시 돌아오실 날에 대비하는 제작자님의 자식들이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은데.]

C-218의 말에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일곱 용의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잖아.’

항공모함이 지껄이는 이야기에서 그 사실을 깨달은 이안은 표정을 굳혔다.

다시 말해, 마키나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들 역시 자신들만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저 폐기장의 인간놈들은 자기들이 아버지의 후예라고 지껄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죠. 어딜, 약해빠진 살덩이 놈들이.]

C-218의 경멸 어린 목소리가 함교를 울려댔다.

하지만.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이안이 흔드는 기폭장치 앞에서, 항공모함은 태세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인간님께선 그렇지 않죠. 관리자니 뭐니 헛된 꿈만 꾸는 인간놈들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헤헤.]

“근데 말이지.”

[네, 인간님!]

약점을 잡은 이안이 입에 미소를 머금자, C-218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내가 관리잔데?”

이안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순간.

[네?]

“내가 관리자라고.”

C-218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일곱 용의 본부가 자리한 섬, 폐기장.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섬은 곳곳이 폐허가 되어 있었고.

“마법사, 마법사 없나?”

“여기, 여기 생존자가 있어!”

특히 큰 피해를 입은 해변에선 무너진 방어진지와 벙커를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살아남은 일곱 용의 조직원들은 쏘아댄 포탄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해안을 뛰어다니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애오옹!

거기에 동참한 것은 미미르의 분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 곳에 있는 미미르의 명령에 따라 수백의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흩어져 조직원들을 도왔다.

물론, 이 고양이들은 평범한 고양이들이 아니었다.

“야, 저 고양이가 너보다 삽질을 잘한다. 좀 제대로 해 봐.”

“허, 저게 어디 보통 고양이냐? 말이 고양이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게 그냥 사람인데.”

애옹! 애오옹!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본부의 조직원들에게, 걸어 다니는 고양이들의 등장은 너무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와 인간이 힘을 합쳐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 그때.

애옹?

작업하던 고양이들이 갑자기 하던 삽질과 곡괭이질을 멈추었다.

“뭐야, 얘들 왜 이래?”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갑자기 손을 놓자 조직원들은 당황했지만, 고양이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애옹 애오옹!

손을 멈춘 수백 마리의 고양이들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조직원들의 시선 역시 고양이들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저, 저건?”

바다로 고개를 돌린 조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섬.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섬이 자신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거….”

“관리자님께서 타고 오신 그 함선 아닙니까?”

“그 거대한 배라면, 분명 항구에 정박 중일 텐데….”

“잠깐, 들어본 적 있어. 기계놈들 중에 엄청나게 거대한 배가 있다고….”

“그럼, 기계놈들이 다시 공격해왔단 소리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조직원들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애오옹!

그에 반해, 고양이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함선을 반기는 눈치였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미미르, 쟤네 왜 갑자기 만세질이야?”

항공모함의 함교 위에서 해안을 훑어본 이안은, 난데없는 고양이들의 만세삼창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에 미미르가 코웃음 쳤다.

[주인인 네놈이 반가워서 그러는 것이겠지. 제식인지 뭔지를 가르칠 때 저 우스꽝스러운 동작도 가르치지 않았더냐.]

“뭐, 그렇긴 하지만….”

[내 분신이긴 하지만, 저들도 미약하나마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미미르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을 마치곤 이안을 바라봤다.

자신의 분신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기 때문일까, 미미르의 입가가 조금씩 실룩이고 있었다.

[분명 평범한 생물은 아닌 것 같군요. 전신이 피와 살이 아니라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물이라니….]

C-218 역시 그 모습을 보고 흥미로워하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이안의 관심을 오래 끌지는 못했다.

“섬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10분이면 도착합니다요!]

그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럼, 섬 반대편으로 가자고.”

[예이이!]

이안의 명령에 힘차게 답한 C-218은 선수를 틀어 항구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을 반 바퀴 돈 끝에 항구에 도착한 C-218은 크나큰 의문에 빠졌다.

[그, 관리자님.]

“왜?”

[저기 저 배 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거대한 함선.

이미 항구에 자리 잡고 있는 함선을 마주한 C-218은 도플갱어라도 본 것처럼 당황했다.

“아, 저거?”

하지만 이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항구에 정박해있는 거대한 함선은, 다름 아닌 자신이 불러낸 녀석이었으니까.

“걱정 마, 조금 있으면 자리가 날 테니까.”

[네?]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항공모함이 되물었지만, 이안은 답하는 대신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이안이 세계에 구현해낸 해상요새,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구성요소는 페르소나를 통해 투영된 이안의 의지에 따라 배열된 마력.

이안이 항공모함을 이루는 마력에 담긴 의지를 흩어버린 순간.

파앗

거대한 섬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항공모함의 함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항공모함을 이루던 거대한 마력은 본래의 푸른 빛을 띄는 거대한 덩어리로 변모했다.

“이제 빈 자리가 좀 있을 거야.”

[제가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만….]

눈앞에서 자신과 똑같은 배 한 척이 사라져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항공모함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정말로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그럼, 슬슬 규모를 키워볼까.”

항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막대한 마력을 바라보며, 이안은 씨익 웃었다.

이제, 항공모함을 나포할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생각해온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었다.

우우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항공모함을 이루던 거대한 마력은 여러 개의 덩어리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개의 마력 덩어리들이 항구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좋아.’

생각대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페르소나를 통해 추가적인 마력과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파아앗!

마력의 덩어리들은 다시금 강철의 배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원래의 형태였던 니미츠급 항공모함에 비하면 작은 크기였지만, 이 세계의 일반적인 함선들에 비하면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크기.

‘마력이 모자라니 완전한 구성은 힘들겠지만….’

새로운 함선들을 순조롭게 빚어나가면서, 이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항공모함은 분명 혼자서도 강력한 존재이지만, 단독으로 움직이기엔 그 위험이 너무나 크다.

항공모함을 지켜줄 구축함과 초계함, 잠수함과 보급을 맡을 보급선들.

그 모든 것을 갖춰야만.

기이잉

국가 하나의 국방력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함대.

항공모함 전투단(Carrier strike group)을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이, 이건…?]

“새 친구들이야. 앞으로 잘 지내라고.”

갑자기 등장한 다섯 척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당황한 C-218을 향해, 이안은 장난스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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