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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8화 (159/224)

#160화

섬의 남쪽에 위치한 공동묘지.

고요하기 그지없던 평소와는 달리, 묘지는 이날 따라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동묘지에 사람이 모일 이유는 단 하나뿐.

묘지 한켠에 파여있는 수십의 구덩이들.

시신을 담은 관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구덩이 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장례식에 모인 이들의 마음 역시 무너져내렸다.

“망할 자식들.”

그 것은, 수호대를 이끄는 크리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앞에 놓여진 수 많은 관들 중에는, 그녀가 이끄는 수호대원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병신같은 놈들, 머저리 새끼들.”

구덩이 아래로 사라지는 관들을 바라보던 크리스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녀의 슬픔을 가릴 수 없었다.

“필립 이 자식, 돌아오면 술 사주기로 해 놓고선….”

“마리오….”

그녀의 주변에 선 수호대원들 역시, 굳은 표정으로 동료들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식이 끝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파괴된 구역을 복구하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장례식에 모인 일곱 용의 조직원들은 제각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수호대의 장인 크리스틴을 제외하고는.

“수호자님, 이제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크리스틴이 새로이 생긴 무덤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옆에 서 있던 비서가 재촉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난 조금만 있다 갈게.”

죽은 부하들을 바라보는 크리스틴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수호자님, 수호자님의 슬픔이 얼마나 크신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에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크리스틴이 고집을 피우자 비서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끌고 가려 했다.

하지만.

“베이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상관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잠깐, 잠깐만 얘네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상관의 눈망울 앞에서, 베이런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저흰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베이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관을 향해 예를 표한 다음, 대원들을 데리고 묘지를 빠져나갔다.

수호대원들이 사라진 뒤에도, 크리스틴은 부하들이 묻힌 무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윽고, 묘지를 바라보던 그녀는 옆의 나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제 그만 나오지 그래?”

그녀의 눈에 가득 차 있었던 눈물은 어느새 말라버린 상태.

나무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빛을 느낀 크리스틴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경계했다.

곧,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크리스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관리자?”

아스텔리아에서 건너온 일곱 용의 지배자이자,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존재.

“님은 안 붙이는 모양이네? 다른 애들은 꼬박꼬박 붙이고 다니던데.”

나무 뒤에서 나타난 이안은 장난스러운 투로 그녀에게 대꾸하고는, 새롭게 만들어진 무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기보단 권위적인 사람이네? 무덤 앞에서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줄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크리스틴은 이안을 노려봤다.

“당신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야. 최소한 무덤 앞에선 예의를….”

크리스틴의 눈에, 이안의 행동은 땅밑에 누워있는 부하들을 모욕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다음 행동에 그녀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털썩.

수십의 무덤 중 하나 앞에 선 이안이, 돌연 한쪽 무릎을 꿇어버렸기 때문.

“마리오.”

이안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묘비를 쓰다듬으며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중얼거리곤 옆의 묘지로 옮겨갔다.

“필립, 모레인.”

한 명씩, 한 명씩.

그의 입에서 영원한 안식에 빠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려졌다.

이안은 수십 개의 묘비 하나하나를 손으로 쓸어내리곤, 고개 숙여 묵념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크리스틴은 뒤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추모를 마친 이안이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고마워.”

부하들의 가는 길을 배웅해 준 관리자를 향해 크리스틴은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

그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는 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의 부하이자 전우였으니까.

임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우들을 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슬픈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크리스틴을 향해, 이안은 입을 열었다.

“수호자.”

“음?”

“수호대가 이 섬에서 하는 역할이 정확히 뭐지?”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이안의 질문에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원들이 잠든 무덤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이안이 묻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수호대원들이 다루는 병기와 능력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말이지.”

“그건 왜?”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안은 한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너무 약했으니까.”

그 순간.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거야?”

뿌드득

이안은 얼굴이 붉어진 소녀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지금, 저기 누워있는 애들이 누군지 알기는 해?”

“수호대원들이지.”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약하다고? 목숨을 걸고 이 섬을, 일곱 용을 지켜온 우리 애들한테?”

한 번도, 일곱 용의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분노는 더욱 거셌다.

그 대상이 일곱 용의 주인인 관리자라 할지라도.

“내 말이 틀렸나?”

하지만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들고 있는 병기도 형편없는 데다, 마력을 제대로 운용하는 자들도 손에 꼽을 정도야.”

“그러니까,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수호자, 그쪽부터가 문제야.”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크리스틴을 향해, 이안의 혀가 날카롭게 움직였다.

“공중의 적들은 제법 잘 막아냈어. 그건 인정하지. 대공포를 제법 촘촘하게 박아놨더군.”

물론 하늘을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안과 미미르의 분신들이었다.

하나 지상에서 쏘아낸 대공포들 역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안은 왜 그렇게 허술했던 거지?”

해안의 적들을 직접 상대했던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해안에도 적을 막아내기 위해 설치한 대포와 벙커가 있기는 했다.

구식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전장식 대포가 고작이었지만.

‘그런 골동품으로 강철 함선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다못해 고위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라도 배치되었다면 몰랐겠지만, 해안에는 마법사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벙커 안에 든 전장식 대포라니.’

그야말로 끔찍한 혼종.

“없는 걸 만들어낼 순 없잖아.”

하지만 수호자, 크리스틴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결국, 우리도 발굴자가 쥐여주는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보완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 보완했는데?”

“그, 그건….”

말을 끊으며 집요하게 들어오는 이안의 질문에, 말할 타이밍을 놓친 크리스틴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라면 저 쓰레기같은 대포들 옆에 마법사들을 배치했을 거야.”

이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쓰, 쓰레기라니….”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보조해 준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위력은 확보할 수 있었겠지.”

크리스틴은 이안의 말에 당황했지만, 그의 말은 거침없었다.

벙커에 배치된 구식대포들이 쏘아내는 것은 대강 포탄 모양으로 만들어낸 통짜 쇳덩이들.

그 쇳덩이들에 마법을 걸어볼 시도라도 했다면.

아니, 하다못해 자신들의 힘으론 저 함선들을 상대할 수 없단 사실을 깨닫고 후퇴시키기라도 했다면.

“최소한, 불필요한 희생은 없었겠지.”

말을 마친 이안은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데? 관리자님.”

당연히, 이안을 바라보는 크리스틴의 눈빛이 고울 리 없었다.

이안은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

“수호자의 지위에서 내려와.”

“뭐?”

“내가 볼 때, 넌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

당황한 크리스틴을 향해 이안은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누구는, 하고 싶어서 수호자를 하는 줄 알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기계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수호대를 이끌기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내가 아니면 이 자리를 맡을 사람이 없어. 최소한, 이 조그마한 섬에는. 그건 알고 하는 말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그녀가 본부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적임자가 있다면, 내가 부탁하고 싶은 심정….”

말을 마친 크리스틴은 한숨을 쉬었지만.

“있어.”

“뭐?”

이안 역시, 아무런 계획 없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안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미미르.”

그리고 그 순간.

애오옹?

“이런 미친….”

이안의 어깨에서 쪼르르 내려온 고양이와 눈을 마주한 크리스틴은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욕설을 참지 못했다.

***

크리스틴의 생각과는 달리, 이안의 정신은 아직 멀쩡했다.

‘어차피 저따위 병기나 손에 쥐고 있을 거라면, 없는 게 낫지.’

이안과 미미르가 부리는 고양이들은, 최소한 지구의 현대병기를 다루지 않는가.

구식 대포나 유사화승총 따위와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화력이니, 섬의 방위를 맡기엔 충분하리라.

[놈을 포획하는 것도 그 계획 중 하나인 모양이군.]

섬과 마키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해협의 하늘.

쐐애애액-

바다 위 수천 미터에서 아래로 강하하는 이안을 향해, 어깨에 매달려있던 미미르가 물었다.

‘그래.’

낙하산의 줄을 잡아당기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공모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의 마력을 아낄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거대하단 말로도 부족할 만한 크기의 항공모함을 움직일 만한 동력이라면 이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어느새 항공모함의 갑판에 안착한 이안은 갑판 위를 둘러봤다.

공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발굴자의 말과는 달리, 항공모함의 위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고, 침입자 탐지. 침입자 탐지.]

왜애애앵-

이안이 낙하산을 마력으로 되돌리기 무섭게, 갑판 전체에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그와 동시에, 갑판에 설치되어 있던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안의 판단은 빨랐다.

‘일단 함교로.’

타앗

오러를 가득 머금은 이안의 다리가 바닥을 박차자마자, 그의 몸이 화살처럼 함교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쨍그랑!

그대로 수십 미터 높이의 함교에 달린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이안은 곧장 중앙의 지휘통제실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자, 이제 놈을 어떻게 구슬린다….’

지휘통제실 안에 들어선 이안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번 섬을 공격했던 함대들은 여전히 바다 위에 고철인 상태로 떠 있었지만, 굴복시키기 위해선 제법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물며, 이렇게 거대한 함선이라면….

“역시, 그냥 부숴버려야겠어.”

우웅

생각을 마친 이안은 양손에 마력으로 구현해낸 C4를 한 아름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지휘통제실 이곳저곳에 폭탄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안의 움직임은 곧 멈췄다.

[사, 살려주세요! 뭐, 뭐든지 다 할테니 제발….]

항공모함의 처량한 애원이 함교 전체를 쩌렁쩌렁 울려댄 순간.

“…뭐?”

이안은 폭탄을 들고 움직이던 손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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