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4화 (155/224)

#156화

일곱 용의 본거지.

그 가운데에 자리한 일곱 용의 본부.

“너무 쉬운데.”

그 한 가운데에 자리한 방에서, 이안은 책상 위에 발을 뻗고 누운 채 중얼거렸다.

[쉽게 얻었으면 된 것 아니겠느냐. 자칫 잘못해서 충돌이라도 일어났다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미미르가 타박했다.

“그래, 그건 맞긴 한데….”

그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 구석엔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들 위에 올라서겠다는데, 아무런 반발도 없단 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이안은 일곱 용의 주인이 될 자격, 1급 관리자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반발을 무마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저희는, 오랫동안 관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왔으니까요.”

그 말에 답한 것은 미미르가 아니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이안은 고개를 돌렸다.

끼이익

“제작자님의 유지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으니,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검은 생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여성.

미네르바는 말을 마치곤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처음 온 사람을?”

“조직이 관리자님께 바라는 것은 관리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한이지,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니까요. 오늘 관리자님께서 이뤄내신 일을 보시면 아실 텐데요?”

말을 마친 그녀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정확히는 본부를 가리켰다. 이안의 고개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결국, 관리자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조직이었단 말인가?”

“정확히는, 잠들어있던 제작자님의 유산을 깨워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죠. 그리고.”

말을 마친 그녀의 눈이 이안과 마주쳤다. 그는 미네르바의 눈동자에서 타오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저희를, 일곱 용을 다시 영광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잠깐,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런데 말야.”

마치 신을 영접한 신도와도 같은 미네르바의 말에 거북한 표정을 지은 이안은 손을 뻗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제작자는, 단순히 인간 아닌가? 신마대전 때 이런저런 활약을 했다고 듣긴 했지만, 너희가 말하는 걸 보면….”

“신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것 같단 말씀, 아니신가요?

“그래.”

이안의 의심은 합당했다.

제작자가 뛰어난 인간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갈리우스와 함께 만들어낸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이나, 일곱 용이 다루는 병기들, 그리고 그가 앉아있는 본부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일 뿐이지.’

그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힘, 페르소나도 결국은 신들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신들이 그러던가요? 아니면 관리자님의 조상들이?”

그 말을 들은 미네르바는 조소했다. 이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뜻이지?”

“관리자님께서 알고 있는 진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단 의미죠. 관리자님께서 살아온 대륙에선 단순한 인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하다 말고, 미네르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이안은 이야기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 마키나에선 아니었으니까요.”

새로운 대륙의 신화를.

***

[이안, 저 말을 믿는 것이냐?]

미네르바가 방을 나선 다음, 미미르는 이안을 향해 물었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소설이라면 제법 잘 쓴 편이겠지.”

그만큼, 미네르바의 이야기는 정교했다.

이안이 미네르바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그가 지금까지 믿고 있던 진실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도 있고.”

말을 마친 이안은 허공을 바라봤다.

“프레이야.”

시스템의 제어정령.

[네, 관리자님.]

여느 때와 같이,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프레이야를 향해 물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지.”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괜찮습니다.]

“일곱 용.”

프레이야는 제작자가 남긴 유산의 일부.

[…네?]

“일곱 용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려줘.”

그렇다면, 제작자의 후예인 일곱 용에 대한 정보들을 알고 있지 않겠는가.

‘지난번엔 실패했었지만.’

이안이 3급 관리자였던 시절, 이안은 일곱 용에 대한 정보를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이안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관리자님. 말씀하신 정보의 열람 권한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프레이야는 지난번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이안은 인상을 썼다.

“그러면, 1급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단 거야?”

[1급 관리자 권한을 얻으시면, 사실상 제작자님의 권한과 동일한 권한을 갖게 되십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이야기를 열람할 수 있을 거예요.]

“1급 관리자 권한을 얻기 위해선?”

[페르소나의 등급을 한 단계 더 올리셔야 해요.]

“빌어먹을.”

제어정령의 답을 들은 이안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병기, 환수, 영웅, 신.

네 단계로 나누어진 페르소나의 등급 중, 이안이 가진 페르소나의 등급은 영웅급.

영웅급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은, 곧.

“신급 페르소나를 얻어야 한다는 거잖아.”

신급 페르소나.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이 만들어진 지 600년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등급.

영웅급 페르소나를 얻기 위해선 3급의 대마법사나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랜드마스터라도 되란 소리인가?”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허구의 경지가 아닌가.

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던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도 정확한 습득조건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만….]

그 모습을 본 프레이야가 입을 열었다.

[신급 페르소나는 제작자님의 유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산이라.”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봐, T.”

이안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네, 관리자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번쩍거리는 빛과 동시에 등장한 것은, 이안이 잘 알고 있는 이족보행로봇의 형태를 한 홀로그램.

[과, 관리자님? 저건….]

갑작스레 나타난 홀로그램을 마주한 정령은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아, 내가 소개가 늦었네.”

그 사실을 깨달은 이안은 둘 사이에 서서 소개를 시작했다.

“T, 이쪽은 프레이야.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의 제어정령. 프레이야, 이쪽은 T.“

[제 이름은 T-316입니다. 폐기장의 통제를 맡고 있습니다.]

[서, 설마, 그쪽도?]

[제작자님의 피조물입니다. 당신처럼 말이죠.]

말을 마친 로봇 모습의 홀로그램, T는 이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리자님,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그냥 불러봤어. 내가 말한 일은 잘 되어가고 있지?”

[말씀하신 폐기장의 잔존자원 분류작업은 현재 28%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빠르면 이번 주 내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좋아.”

T의 말에 이안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관리자님.]

다른 쪽의 반응은 조금 이상했다.

“응?”

[혹시, 더 시킬 일이 없다면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조금 전의 살가운 표정과는 달리, 사무적인 어투로 이야기한 프레이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 그래, 들어가.”

[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쟤 갑자기 왜 저래?”

갑작스레 변한 정령의 태도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게냐?]

그 모습을 보며 미미르는 혀를 끌끌 찼지만, 이안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그의 앞엔 삐진 정령을 달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쌓여있었다.

“관리자님, 잠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문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그 중 하나였다.

“T, 그만 돌아가.”

[알겠습니다, 관리자님.]

말 한마디로 이 섬의 정령을 돌려보낸 그는 방 안으로 새롭게 들어온 인물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발굴자라고?”

“네, 맞습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이안의 물음에 발굴자는 고개를 숙였다.

‘호오.’

발굴자의 차림새를 살펴본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근육이 제법 잘 발달 되어있어. 몸에 걸친 병기들의 수준도 여기 기준으론 높은 편인 것 같고.’

사내의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실전을 경험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확인한 이안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발굴자, 발굴자. 이름으로 봤을 땐, 제작자의 유산이라도 발굴하는 역할인가 본데, 맞나?”

“예, 맞습니다.”

“그런 것 치곤 실전경험이 꽤 풍부해 보이는데.”

그 말을 들은 발굴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작자의 유산들은 땅속에 파묻혀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발굴자의 말에 묻어있는 뉘앙스가 이상하단 사실을 깨달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발굴자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직책의 이름이 발굴자이긴 하지만, 하는 일은 사냥꾼에 가깝습니다.”

“사냥꾼?”

“이 섬의 뒤쪽에 위치한 대륙, 마키나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계, 그러니까 아티팩트같은 것들을 사냥한 다음, 복원해내는 일이죠.”

“살아 움직인다고? 사람이 조종하는 게 아니란 말야?”

살아 움직이는 기계라니.

그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발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임무 중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를 사람의 통제하에 움직이도록 만드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 없이 움직이는 기계라….”

지구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말을 들은 이안은 넵튠과의 거래를 떠올렸다.

하늘을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던 정체불명의 괴수를.

“제 목표는, 마키나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기계들을 복원해서 일곱 용의 힘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말을 마친 발굴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임무를 위해서, 이안에게 꼭 부탁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잠깐.”

그의 말은 이안에 의해 가로막혔다.

“당신의 임무 중에, 복원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만….”

발굴자의 답을 들은 이안은 씨익 웃었다.

“날 좀 따라오겠어?”

해결하지 못했던 일 하나가, 지금 막 풀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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