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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3화 (154/224)

#155화

촤아아악-

폭발의 충격으로 쏟아져나온 물보라가 항구를 덮쳤다.

물세례를 얻어맞은 일곱 용의 수호대원들은 졸지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불이 꺼졌어!”

“화승이….”

화승총에 달린 화승의 불이 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호대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작자의 비전으로 만들어 낸 무기의 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 무기에 불을 붙일 화승이 푹 젖어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런….”

“좋지 않군.”

수호대로부터 일어난 소란에 미네르바와 크리스틴, 그리고 집행자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수많은 증원군이 곧 달려올 예정이기는 했지만,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수호대원들은 사실상 무장해제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내 무기는 젖어도 쏠 수 있지만….’

이길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길 수 있다 자신하기엔, 상대가 보여준 힘이 너무나 강력했다.

그리고, 마왕토벌자의 뒤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함선을 고려한다면.

‘조직 전체가 달라붙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못해도 공멸이다.

설사 마왕토벌자를 제거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와의 싸움에서 조직이 입어야 할 피해는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막대하리라.

그렇다면.

‘그런 힘을 지닌 자가, 굳이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집행자의 머릿속에 한 줄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자, 어서 선택하라고. 그 검증인지 뭔지를 빨리 하든지, 아니면.”

“윽.”

“여기서 끝을 볼 건지.”

집행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은 전면에 나선 집행자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알았다.”

집행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집행자!”

“하지만, 우선은 수호자를 풀어주는 게 먼저다.”

옆에서 미네르바가 외쳤지만, 집행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고?”

상대가 말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우리 조직과 대적할 힘을 가진 자가 굳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쓸 리가 없으니까.”

여차하면 힘으로 때려 부수면 될 것이 아니냐는 소리.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어차피 검증을 위해선 수호자를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직위와 목을 걸고, 그대의 안전을 보장하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중갑기사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리스틴의 관자놀이를 향해 겨누고 있던 총을 거두었다.

풀려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부하들이 자리한 곳으로 이동했다.

“수호자님, 괜찮으십니까?”

“저 비겁한 자가….”

수호대원들이 이마 가운데의 화상을 빼면 무사히 돌아온 그녀를 향해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만해, 좀. 쪽팔리게….”

정작, 풀려난 당사자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그럼 어디, 안내해보라고.”

붙잡고 있던 인질이 무사히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이안은 집행자를 향해 턱짓했다.

“따라와라.”

집행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안을 수호대원들이 타고 온 지프로 안내했다.

이안은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집행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말 없는 마차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군. 그쪽 대륙에는 없다고 들었는데.”

“나야, 워낙 많이 타봐서.”

이런 골동품을 탈 줄은 몰랐지만.

기사의 질문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긴장감 하나 없는 태도에 집행자는 피식 웃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자칭 관리자셨군.”

“자칭이 아니라니깐.”

“그 이야기는 인증 이후로 미루지.”

이안의 말을 무시하며 집행자는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주변을 살피던 이안은 곧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봐.”

“무슨 일이지?”

운전하던 집행자가 고개를 돌리자, 이안은 바닥을 가리켰다.

“이거, 어떻게 깐 거야?”

이안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

‘어디 기름이라도 나는 건가?’

중세양식의 건물들 사이로 죽 뻗어있는 아스팔트 도로가, 이안에겐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도로다. 제작자님께서 본부를 세울 때부터 존재했다고 하더군.”

“그렇단 말이지.”

집행자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상념은 오래지 않아 끊겨버렸다.

끼이익-

“도착했다.”

집행자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이안은 눈앞에 선 건물을 바라봤다.

“건물은 제법 그럴듯한데?”

그럴듯한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지구의 거대한 연구소를 떠올리게 만드는 형태.

외벽이 유리로 이루어진 본부를 보며, 이안은 지구를 떠올렸다.

“제작자님께서 본부와 함께 직접 세우신 건물이지.”

“허.”

이안은 갈수록 제작자의 정체가 궁금해져갔다.

‘페르소나의 제작시스템을 직접 구현해낼 정도니, 이 정도 건물은 누워서 떡먹기겠지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의구심을 품은 채, 이안은 본부 안으로 들어섰다.

“타라.”

집행자의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문이 열렸다.

이안이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집행자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띵-

지하를 향해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곧 멈춰 섰다.

“호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문 너머의 모습을 본 이안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잖아?”

도서관의 책장처럼 가지런히 배치된 거대한 컴퓨터들과 바닥을 어지럽게 기어 다니는 전선들.

그리고 그 중앙에, 단말기로 보이는 기둥이 하나 놓여있었다.

“컴퓨터라니?”

하지만 집행자는 이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저 가운데의 기둥으로 가서 손을 얹어라. 그러고 나면 정령이 네 자격을 심사할 것이다.”

“정령?”

“이 본부와 섬을 통제하는 정령이지.”

“하.”

정령으로 움직이는 컴퓨터라니.

이안의 상식선에선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기둥으로 향했다.

“흠.”

기둥에 다가간 이안은 기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모니터 화면을 줄줄이 이어붙인 형태의 기둥엔 아무런 표시도 되어있지 않았다.

‘손을 갖다 대라고 했지.’

집행자의 말을 떠올린 이안은 천천히 오른손을 기둥으로 뻗었다.

곧, 그의 손바닥과 기둥이 맞닿은 순간.

우웅

방 안에 가득 들어찬 시스템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둥 위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접촉 확인. 인증을 위해 스캔을 시작합니다.]

우웅

그와 함께, 이안은 손바닥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를 느꼈다.

‘뭐야? 되게 간지럽네.’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더듬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불쾌한 감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웅

[인증중….]

“뭐야, 끝이야?”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사라지자, 이안은 기둥에서 손을 떼고는 팔짱을 꼈다.

그러나 집행자의 반응은 달랐다.

“이, 이건….”

기둥 위로 떠오른 인증중이라는 세 글자는, 지금까지 조직의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문구였으니까.

‘설마, 진짜 관리자라고?’

그 역시 관리자의 후보중 하나.

관리자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시기심과, 수 백년만에 등장한 관리자의 탄생과정을 마주하고 있다는 경탄이 한데 뒤섞여 집행자의 얼굴에 묘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유전자 및 영적패턴이 일치합니다. 인증에 성공하였습니다.]

기둥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1급 관리자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안을 향해 기둥이 환영의 메시지를 건넨 그 순간.

구구구궁-

‘지진?’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땅 위에서 균형을 잡은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급히 고개를 돌려 집행자를 바라봤지만, 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

하지만 이안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조건을 만족하였으므로, 시설의 휴면상태를 해제합니다.]

제작자가 이 땅에 남겨놓은 안배 중 하나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

구구구궁

“지, 지진이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섬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자, 일곱 용의 조직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항구에서 이안과 대치하고 있던 수호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대피! 모두 본부로 대피하세요!”

일곱 용의 지도자 격이나 다름없었던 미네르바는 급히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호자! 당신은 수호대원들과 함께 발굴자를 보호하세요, 빨리!”

“아, 알았어! 가자! 차량은 내버려두고 뛰어서 이동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호자, 크리스틴은 미네르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수호대원들을 이끌었다.

크리스틴과 수호대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미네르바는 곧장 본부를 향해 움직였다.

‘분명, 놈의 짓이야.’

마왕토벌자.

자신을 관리자라 주장하던 그 놈이 본부로 들어가자마자 벌어진 일이 아닌가.

‘놈을 막아야 한다.’

이안의 곁엔 집행자가 함께 하고 있었지만, 그의 힘만으로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발굴자와 수호자까진 있어야 해.’

아스텔리아 대륙의 강자들이 모두 죽어버린 지금, 일곱 용 안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자들.

그들의 힘을 모두 모아야만, 일곱 용을 뒤집어 엎으려는 마왕토벌자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본부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 그녀의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대체….”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녀가 알던 본부가 아니었다.

구구구궁-

본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지렁이가 머리를 내밀듯, 본부 아래에 잠자고 있던 구조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이건….”

이안이 본다면 ‘공장이잖아?’라고 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에겐 이 구조물을 지칭할만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끝모르고 솟아나던 본부는 곧 성장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섬을 흔들던 지진이 멎었다.

“전수자! 발굴자를 데려왔… 저, 저게 뭐야?”

“저거, 본부 아닙니까?”

뒤늦게 그녀를 쫓아 본부로 돌아온 수호자와 발굴자 역시, 완전히 변해버린 본부의 모습을 보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 수 있었다.

타탓

“와, 이게 네 본모습이라고?”

본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사내.

마왕토벌자 이안 폰 아슈타르.

[그렇습니다, 관리자님. 저는 폐기장의 통제를 맡고 있는 T-316이라고 합니다.]

그가, 일곱 용을 이끌 새로운 관리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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