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2화 (153/224)

#154화

“너희의 새로운 주인이지.”

이안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온 순간.

항구에서 이안과 대치하던 일곱 용의 조직원들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누구인가.

신검 레온하르트의 주인이자, 연합공국을 이끄는 일곱 공작가 중 하나인 아슈타르 공작가의 가주.

그리고.

‘두 마왕을 대륙에서 소멸시킨 마왕토벌자.’

일곱 용의 본부는 아스텔리아 대륙과는 한참 떨어진 섬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안에 대한 이야기는 그 먼 거리를 넘어서까지도 들려올 만큼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네가 우리의 새로운 주인이라고?”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라 한들, 그것 만으로 일곱 용의 주인을 논할 수는 없다.

그것이, 자신들과 끊임없이 반목하던 이안이라면 더더욱.

“침입자 주제에 혓바닥이 길구나, 마왕토벌자.”

그 말을 들은 여인, 미네르바의 말투가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이안과 미네르바, 그리고 일곱 용의 조직원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리 경고하는데, 우리를 힘으로 굴복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신들의 하수인 밑에서 일할 바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으니까.”

말을 마친 미네르바는 이안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봤다.

“당장 수호자를 풀어주고 이 섬을 떠나라. 그 목숨이 아깝다면.”

미네르바는 조직의 힘을 믿었다.

마왕토벌자의 등 뒤에 자리 잡은 거대한 함선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들 역시 거대한 마수와 괴물들을 상대로 살아남아 온 자들.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제작자의 이름과 조직을 걸고.’

마왕토벌자와 눈을 마주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러나.

“너흰, 제작자의 후예라고 자청한다 들었는데.”

이안은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이안의 말을 들은 미네르바는 당황했다.

‘저자가, 어떻게 우리 조직의 기원을 알고 있지?’

일곱 용의 존재 자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대륙의 사람이, 어떻게 조직의 기원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교수, 에리히만으로부터 이안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에리히만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

‘설마, 메놀르프가?’

유산탈환작전 이후 실종된 제독을 떠올린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실종된 메놀르프가, 죽은 게 아니라 포로로 붙잡혔다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메놀르프, 그 자의 입이 그렇게 싼 줄 알았다면 기용하지 않았을 텐데.”

“아, 너희가 보낸 그 작자? 그래도 생각보단 입이 무거운 편이던데.”

하지만 이안은 성 안에 있을 메놀르프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조직의 기원을….”

“그건 알 것 없고.”

당황한 미네르바의 말을 끊은 이안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시작했다.

“자칭 제작자의 후예님들.”

“자칭이라니, 우리는 제작자님으로부터 그분의 사상과 지식을 이어나갈 의무를 부여받은….”

“그래,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자신의 말에 상대, 미네르바가 발끈했지만 이안은 무시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가 진짜 제작자의 뒤를 이은 존재라면, 너희들의 주인은 결국 제작자, 혹은 제작자의 후계자 아냐?”

“관리자를 말하는 것인가? 메놀르프 이 작자는 도대체 어디까지….”

이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미네르바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이안은 한숨을 내쉬곤 재차 물었다.

“그 자한테 들은 게 아니라니까. 어쨌든, 내 말이 틀려?”

“그 작자한테 들었다면 알고 있겠지. 네 말 대로, 우리 일곱 용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제작자님의 유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관리자뿐이다. 너처럼 힘으로 지배하려 드는 자가 아니라.”

미네르바가 말을 마친 순간, 항구에 모여있던 병력들이 일제히 화승총을 이안과 크리스틴을 향해 겨누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곳을 조준하는 자들이 있다. 숫자는 여섯.]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은 눈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 말대로,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건물들의 지붕 위에선 스코프가 달린 화승총-명중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을 조준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조준하고 있는 길쭉한 무언가까지.

‘저격수에, 대포도 있는 모양인데. 마력포인가?’

생각대로, 일곱 용의 전력은 만만치 않았다.

이안이 전력을 다하면 못 이길 것은 없어 보였지만.

‘그렇게 없애버리기엔 확실히 아까운 전력이야.’

이들의 충성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면 더더욱.

“그래, 그렇단 말이지?”

상황을 파악한 이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프레이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존재를 소환해냈다.

파아앗

이안이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허공에서 전신이 빛으로 이루어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

갑자기 나타난 정령을 바라본 미네르바는, 정령 자체가 가진 힘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도했다.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정령의 생김새에, 그녀는 기억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령의 정체를 기억해내기도 전.

[부르셨나요, 관리자님?]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인 정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과, 관리자?”

“방금, 저 정령이 관리자라고 한 거 맞아?”

“잘못 들은 거 아니고?”

항구에 모여있던 조직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연합공국을 다스리는 신들의 일곱 꼭두각시 중 하나가.

대륙의 동지들을 박살내던 마왕토벌자가.

인질이나 잡을 줄 아는 비겁자가.

제작자의 유산에 접근할 자격을 지닌 관리자라니.

“…관리자라고?”

“과, 관리자?”

크리스틴도, 미네르바도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경악한 표정을 지은 일곱 용의 조직원들을 좌우로 훑어보던 이안의 시선이 그의 관제정령, 프레이야로 향했다.

“프레이야, 네 소개를 해줘.”

[제 이름은 프레이야. 페르소나 제작시스템의 제어정령입니다.]

“그럼, 나는 누구지?”

[제작자님께서 세우신 절차와 규정에 따라 1급 관리자의 권한을 부여받으신 이안 폰 아슈타르님이십니다.]

이안과 프레이야의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주변에 일으킨 파장은 작지 않았다.

“지, 진짜 관리자님이라고?”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빨리 총 내려야 하는 거 아냐?”

이안을 향해 총을 겨눈 수호대들 사이로 혼란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감히 자신들의 대장을 인질로 잡은 사내는, 자신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할 존재이지 않은가.

“웃기는 소리.”

하지만.

“정령 하나를 가지고 우릴 속이려들다니, 누굴 바보로 아는 것이냐?”

이안의 말을 믿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메놀르프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리자의 권한을 얻기 위해선 적합한 혈통과 영혼을 모두 가져야 하는 법.”

그 중 하나, 미네르바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신족의 꼭두각시일 따름인 네놈이, 관리자의 권한을 얻을 자격이 있을 리가.”

관리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은, 관리자의 혈통을 잇는 것.

“그 작자가 이런 이야긴 안 해줬나 보지?”

말을 마친 미네르바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래, 정령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

“연합공국의 공작이 제작자님의 핏줄을 가졌을 리가 없잖아?”

그와 함께, 그녀의 말을 들은 조직원들의 혼란 역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관리자라니, 그럴 리 없어.’

제작자가 사라진 이래 제작자의 핏줄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얻어내지 못한 것이 관리자의 권한이다.

그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방인 주제에, 감히 관리자의 권한을 논하다니.’

일곱 용과는 하등 관계없는 이방인이 관리자의 권한을 얻을 수 있는 영혼과 혈통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자도, 하나 있었다.

항구에 모인 수많은 일곱 용의 조직원들 사이로 걸어들어오는, 전신갑옷을 걸친 사내.

이안이 그의 존재를 눈치챈 순간.

‘위험하다.’

그의 촉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건 가진 힘이 강한지, 약한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힘, 그 이상을 끌어낼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자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

사내에게서, 그 위험한 냄새가 풍겨왔다.

이안 자신과 동류의 냄새가.

‘이런 곳에서 나같은 사람을 만날 줄이야.’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이안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굳어 들어갔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는지, 이안의 존재를 의식한 상대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당신이 낄 자리가 아니에요, 집행자. 이건 외부의 일이니까요.”

갑작스레 등장한 사내, 아니 집행자를 향해 미네르바가 쏘아붙였다.

하지만 사내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자가 자신을 관리자라고 주장한 순간부터, 저 자는 일곱 용의 일원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철컥

말을 마친 집행자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뽑아든 무언가를 확인한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총?”

화승총 따위가 아니었다.

여섯 발의 탄환을 순식간에 쏘아낼 수 있는 크롬빛의 리볼버.

‘도대체, 여긴 어떻게 되어 먹은 동네야?’

전열보병이 지프를 타질 않나, 리볼버를 든 중갑 기사가 나타나질 않나.

지구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시대구분을 나눌 수 없을 수준이었다.

“일곱 용의 일원이라면, 그 집행권은 나에게 있지.”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권총을 쥔 기사의 총구가 이안을 향했다.

“수호자를 풀어주지 그러나? 자칭 관리자.”

“미안하지만, 자칭 아닌데.”

집행자의 말에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집행자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네 말이 증명될 때까지는 자칭일 뿐이다. 네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만 수호자를 놓아주는 게 어때?”

“집행자, 이건 월권행위에요!”

집행자의 말을 들은 미네르바가 옆에서 소리를 쳤다.

“월권행위는 지금 당신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 전수자.”

하지만 기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철컥

그 기사의 손에 장전된 싱글액션 리볼버가 쥐어져 있다면 더더욱.

미네르바를 서늘한 눈으로 쏘아본 마친 집행자는 권총의 노리쇠를 당겨 장전했다.

“글쎄, 내가 뒤통수 맞아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라서.”

하지만 이안은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이안의 등 뒤에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물보라가 터져 나왔다.

“무, 무슨 짓….”

“그 증명인지 뭔지, 당장 시작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콰아앙-

“다음은 너희 본부니까.”

끌려다녀줄 생각은 없다.

두 개의 폭탄을 연달아 터뜨린 이안의 입에 서늘한 미소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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