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51화 (152/224)

#153화

인계와 마경이 존재하는 대륙, 아스텔리아와는 까마득히 먼 곳에 위치한 섬.

그곳엔 제작자의 뒤를 잇기 위한 조직, 일곱 용의 본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본부 지하 깊숙한 곳.

수많은 마법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의 한 가운데에서, 한 여인이 거대한 기둥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삐-삐-

[영적 패턴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인증이 실패하였습니다.]

불길한 경고음과 함께, 기둥 한쪽에 백색의 메시지 하나가 떠오른 순간.

“도대체 왜!”

눈을 뜬 여인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후웅

거력이 담긴 그녀의 손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녀의 손바닥이 기둥와 맞부딪친 순간.

강철기둥과 손바닥이 만들어낸 소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손도, 그녀가 내리친 기둥도 흠 하나 없이 멀쩡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기는 했지만.

[경고. 당신은 시설에 위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위해가 감지될 경우, 시설의 안전을 위해 보호 프로토콜이 가동됩니다.]

그녀가 내려친 기둥 위로 장문의 경고문이 떠올랐다.

“주인도 몰라보는 고철덩어리 주제에, 안전은 무슨.”

하지만 그녀는 냉소했다.

“네 녀석의 권한을 이어받을 자는 이 세상에 오직, 나 하나뿐이란 걸 아직도 모르겠어?”

그녀는 제작자가 남긴 유지를 다음 세대로 이어나갈 의무를 지닌 자이자, 제작자의 유산을 이어받을 관리자의 후보 중 하나.

“내가 아니면, 넌 영원히 그 기둥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말을 마친 그녀가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기둥이었지만, 그녀의 손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은근한 눈으로 강철의 기둥을 바라봤다.

하지만.

[영적 패턴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인증이 실패하였습니다.]

기둥에 떠오른 메시지는 조금 전과 동일했다.

“흥, 좋아.”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기둥에서 손을 떼고는 기둥을 노려봤다.

“조금만 더 지나면, 너도 더 이상 날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까.”

발굴자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정보를 떠올린 그녀는 거대한 기둥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삐이이- 삐이이-

“…뭐지?”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방 안이 붉은색으로 번쩍인 것은 그때였다.

***

일곱 용의 본부에 발을 디딘 이안이 처음 마주한 것은, 이제 열 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

‘그것도, 총을 두 자루나 쥔 꼬마란 말이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글록을 손에 쥔 이안은, 무기를 잃어버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마를 내려다봤다.

“이익…!”

이윽고, 정신을 차린 꼬맹이는 이안을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움직이면 죽는다, 꼬마야.”

찰나의 순간, 이마에 닿은 뜨거운 총구.

그와 함께 들려온 사내의 말에, 소녀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넌 뭐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순식간에 제압당해버린 그녀, 크리스틴은 독기어린 눈으로 이안을 쏘아보며 물었다.

저쪽 대륙에는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일곱 용이란 조직이다.

그 중에서도 본부의 위치는 조직원 조차도 모르는 비밀.

외부인이, 그것도 적대적인 목적을 가진 외부인이 바다를 넘어 본부까지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크리스틴에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권총을 겨눈 이안의 답은 간단했다.

“네 윗대가리가 될 사람.”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크리스틴이 당황한 그때.

삐이이- 삐이이-

-침입자 발생. 전 수호대는 항구로 이동해 수호자님을 지원할 것.

경보음과 함께, 침입자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전 섬을 향해 울려 퍼졌다.

“1분 36초.”

그 목소리에, 이안은 손목에 구현해놓은 시계를 확인하곤 혀를 찼다.

“경보전달체계가 영 아닌데? 나중에 한번 손을 봐야겠어.”

“뭐, 뭐라고?”

당연히, 그 체계를 만들어낸 당사자는 이안의 말을 듣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표정을 읽은 이안은 피식 웃으며 이마에 겨눈 총구를 눌렀다.

“윽.”

“1분 36초면 내가 널 다섯 번은 죽이고도 충분한 시간이잖아? 그 동안 수뇌부들은 적이 나타났는지조차 모른다는 건데, 그건 문제가 있지.”

총구에서 전해지는 화끈한 통증에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간 자신의 부하가 될 지 몰라도, 지금은 적이었으니까.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수호자인지 뭔지가 책임자인 모양인데, 여기가 아무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곤 해도 경계를 너무 개판으로 하는 것 아냐?”

“네가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건데? 듣자듣자하니까….”

순간, 이안의 조롱에 부아가 치민 크리스틴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안은 그녀의 반응을 보곤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답다고 해야 할까, 그녀가 보이는 반응은 너무 뻔했으니까.

“혹시, 네가 그 머저리같은 수호자냐?”

“그, 그… 네가 알아서 뭐 할 건데!”

순간 당황한 크리스틴은 소리를 지르며 부인했지만, 이안은 이미 꼬마의 정체를 깨닫곤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꼬맹이한테 본부 방어를 맡기니 이렇게 개판이 날 수밖에. 그 잘난 일곱 용도 허울만 좋은 쭉정이였나봐?”

“이, 이익….”

이안의 비웃음 앞에서, 크리스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해….’

무슨 말을 한들, 상대에게 당해 무릎 꿇은 것은 수호자인 크리스틴 자신이지 않은가.

부우우웅-

이안의 귀에 무언가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지구에선 익숙함을 넘어 환경의 일부였던 소리.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선 들어볼래야 들어볼 수 없었던 소리.

‘엔진?’

내연기관의 엔진소리가 이안의 귓속으로 파고든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 들어갔다.

“미미르.”

[적 서른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이다. 마차 일곱에 나눠 탄 상태야.]

이안의 물음에, 미미르는 적의 위치를 보고하고는 주인의 눈앞에 표시해주었다.

‘빨라. 이게 마차라고?’

이안은 믿을 수 없었다.

말이 끄는 마차라 하기엔 일곱 대의 차량이 달려오는 속도는 너무나 빨랐으니까.

그리고, 이 익숙한 엔진소리는….

부우우웅-

이안의 상념이 채 끝나기도 전, 적은 이안의 시야 안까지 들어왔다.

적이 탄 마차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지프?”

이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레토나도 아니고, 지구에서도 수십 년 전에나 쓰였을 지프를 어떻게 저들이 타고 있단 말인가.

[마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 없는 마차라니, 생각은 기발하지만 효율이 썩 좋진 않을 텐데.]

끼이이익-

옆에서 미미르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이안은 급히 멈춰선 지프에서 내리는 적들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안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화승총?”

지프에서 내린 적들이 손에 쥔 것은, 공이 대신 불붙은 노끈이 달린 전장식 화승총.

18세기에나 입을 것 같은, 울긋불긋한 색의 군복을 입은 적들은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한데 모여 전열을 형성했다.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지프를 타고 온 18세기 전열보병이라니.

꿈에서나 나올법한 괴악한 조합을 마주한 이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이안만이 아니었다.

“수, 수호자님!”

자신들의 대장이 적에게 붙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호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호자님을 구해야 한다!”

“전열, 조준!”

척!

밀집대형을 이룬 총병들이 장전을 마친 총을 들어 올렸다.

“허, 허허.”

졸지에 전열보병과 싸워야 할 판국에 놓인 이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그리고는.

“꺅!”

바닥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소녀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들였다.

이마 가운데에 반지 모양 물집이 잡힌 소녀가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총 안 내리면, 니네 대장도 죽는다?”

방패로 삼은 소녀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댄 이안은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비, 비겁한 놈!”

이안의 행동을 본 수호대는 격분했다.

하지만 적이 자신들의 대장을 방패로 삼고 있는 이상, 그들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당장 수호자님을 풀어주지 못해?”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그저, 이안의 비겁한 행동에 대해 말로 공격할 뿐.

“지랄하네, 30대 1은 정정당당한 거냐?”

하지만 이안은 적들의 비난을 코웃음 한 번으로 흘려보내고는, 자신이 인질로 삼은 꼬마를 내려다봤다.

“어떻게 생각해, 수호자? 한 명을 잡으려고 서른 명이 몰려오는 것과, 서른 명을 상대하려고 인질을 잡는 것 중에 뭐가 더 비겁한 걸까?”

“…윽.”

그의 물음에 크리스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안은 혀를 끌끌 차고는, 자칭 수호대라는 얼간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꼬맹이가 일곱 용 전체를 대표하는 건 아닐 거고. 너희 대표자한테 가서 튀어오라 그래, 이 꼬맹이를 살리고 싶다면 말이지.”

이안은 여기서 계속 실랑이나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미 피는 많이 봤으니, 더이상의 피는 볼 필요 없겠지.’

눈앞의 적들은 결국, 자신이 끌어안아야 할 자들이다.

먼저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굳이 피를 볼 이유는 없었다.

“날 찾는 건가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또각또각

정적 속에서 울려 퍼지는 구두굽 소리. 이안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쪽이 일곱 용의 대표인가?”

이안은 여인을 향해 물었다.

“맞아요. 제 이름은 미네르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을 뻗어 이안과 크리스틴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길래, 우리 조직의 수호자를 인질로 잡고 있는 거죠?”

이안을 향해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는 이안의 뒤에 놓인 거대한 함선을 살폈다.

‘저건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배였다.

그것도, 전체가 강철로 이루어진 배.

저 배를 만들어내고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쓰였을지, 그녀의 머리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가능하면, 우리 조직 안으로 포섭한다.’

저 거대한 함선을 끌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일원이 될 자격은 충분했다.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산을 발굴하는 작업이 조금 더 빨라질지도 모르겠어.’

발굴자가 지금까지 발굴해 낸 것들을 떠올린 그녀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안. 이안 폰 아슈타르.”

상대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물이었다.

“이, 이안?”

신검의 주인. 마왕토벌자.

그리고.

‘조직이 대륙에 만들어 놓은 기반을 박살 낸 원흉.’

저 자의 손에, 얼마나 많은 조직원의 생명이 사라졌던가.

상대의 정체를 안 순간, 미네르바는 상대를 포섭할 생각을 버렸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땅에서 제거한다.’

결정을 마친 그녀가 입을 열려 했지만.

“너희의 새로운 주인이지.”

이안의 말이 이어진 순간.

“…뭐라고?”

그녀의 입은 놀라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