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일곱 용을 갖겠다.
이안의 선언을 들은 넵튠의 반응은 차가웠다.
-결국, 너는 그놈들과 같은 편이 아니란 말이군.
키에에-
넵튠이 말을 마치자마자, 이안과 항공모함을 둘러싸고 있던 마수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자신을 부리는 신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놈들의 집게발과 촉수는 항공모함을 향해 휘둘러지리라.
하지만 이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건 맞는데, 일단, 저놈들 좀 치우고 이야기하지? 시끄러워서 방해되는데.”
마수들의 입에서 나오는 울음소리에, 이안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바다의 신, 넵튠이다. 내가 인간 따위의 말을 따를 거라 생각하나?
하지만 이안의 말에 돌아온 답은, 신의 오만한 비웃음뿐.
하지만 이안은 피식 웃고는.
“따르지 않는다면.”
손을 아래로 휘둘렀다.
그 순간.
쐐애애액-
구름을 뚫고 폭탄의 비가 쏟아져 내려왔다.
하나하나가 수백 킬로그램의 폭약으로 속이 꽉 찬 항공폭탄의 목표는.
콰과과광-
이안을 둘러싼 거대마수들.
키이이-
전투력 자체는 중급, 아니 상급 마족과도 비견할 수 있을법한 마수들.
하지만.
콰과과광-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무슨 수로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목표를 따라 움직이는 비라면 더더욱.
구구궁
폭탄의 충격파가 텅 빈 항공모함을 뒤흔들었지만, 이안은 꼿꼿이 선 채 마수들이 다시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키에에-
키이-
구름 위에서 쏟아지는 폭탄의 비를 견디지 못한 오징어와 게, 가재들의 사체는 순식간에 깊은 바다 아래로 사라졌다.
-인간 주제에….
쏴아아-
넵튠의 분노가 바다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신의 감정을 대변하듯, 잔잔했던 바다는 어느새 거대한 파도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함선이라면 파도에 휩쓸려 침몰당했을 정도.
하지만 니미츠는 어지간한 함선이 아니었고.
“갑자기 왜 성질이야? 멀미 나게.”
오러 마스터인 이안에겐 고작해야 약간의 멀미, 그 이상의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다.
“어디, 또 불러올 수 있으면 불러와 보라고. 불러오는 족족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이안은 이미 넵튠의 한계를 깨달았다.
‘하늘까지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모양이지?’
넵튠의 영역은 정확히 바다와 그 아래.
바다 위까지야 마수들을 이용해서 어찌어찌 영향을 주는 모양이었지만, 구름 위에서 날아다니는 함재기들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만일 바다를 뒤흔들어서 항공모함을 가라앉히려 한들, 구현을 해제하고 탈출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안전을 확신한 이안은 조금 더 대담하게 나가기로 했다.
“원한다면, 네 권속들을 보이는 족족 쳐죽여주지. 저 바다 밑까지 말이야.”
마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핵무기는 구현 자체가 되지 않았지만, 이안이 가진 병기의 종류는 무궁무진했다.
‘정 안되면 바닷속에 네이팜이라도 부어버리지 뭐.’
넵튠이 알게 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이안은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말없이 바라봤다.
-…무엇을 원하느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넵튠이었다.
그가 입을 염과 동시에, 몸부림치던 바다도 서서히 잠잠해져 갔다.
‘손해가 너무 크다.’
자신의 모든 권속들을 동원한다면 저 인간을 죽일 수 있겠지만, 권속들도 만만치않은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으니까.
권속들이 헛되이 죽어 나가는 것은 그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넵튠의 물음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잖아? 그냥 길만 좀 비켜달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이 거대한 배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뿐.
‘이걸 다시 구현해내려면 마력을 한참 모아야 한단 말이지.’
이안 역시, 천문학적인 마력이 투자된 항공모함을 쉽게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넵튠의 대답은 이안의 예상과 달랐다.
-네가 정말로 일곱 용과 관련이 있다면, 놈들보다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해라.
“증명?”
난데없이 날아온 상대의 요구.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넵튠의 말이 이어졌다.
-놈들이 바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대가로 시킨 일이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한테… 아.”
신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일을 안 하나 보지?”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진 이안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일곱 용이 넵튠의 니즈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 보는 자신에게 일곱 용들과의 일을 밝힐 리 없으니까.
이안의 생각대로.
-벌써 수백 년이 흘렀지만, 놈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벌써 몇 번째인지….
쏴아아-
넵튠이 고함을 내지르자 바다가 출렁였다.
“무슨 일인데?”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이안은 물었다. 넵튠이 짧게 답했다.
-저 하늘.
“하늘?”
-하늘에서 내 권속들을 노리는 녀석들이 있다. 비열하고 치졸한 놈들이지.
넵튠의 설명엔 짜증이 가득 깃들어있었다.
-순식간에 날아와서는 물 밖으로 모습을 내민 권속들만 처리하는 놈들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런 마수가 존재한다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다가 바다의 마수를 노리는 마수라니.
공중을 날아다니는 존재이니, 바다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 넵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일 터.
‘미미르?’
하지만, 수십의 함재기를 하늘 위에 띄워 올린 이안에겐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찾았다. 11시 방향 320킬로미터. 고도 23000.]
“23,000?”
미미르의 답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데.’
생명체가 날아다니기엔 너무 높은 고도였으니까.
두 마왕과 전투를 벌이던 때, 비행형마수인 와이번조차도 그만한 고도에서 비행할 수는 없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안은 별 걱정 없이 미미르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놈을 잡아.”
이안이 가진 비행전력은 장담컨대, 이 세계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했으니까.
[알겠다.]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미미르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말벌들을 몰고 있는 자신의 분신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쐐애액-
수십의 전투기들이 적을 향해 날아가는 엔진소리를 들은 이안은 남는 의자에 앉았다.
-잡으러 가는 게 아니었나, 인간?
상대가 갑자기 자리에 앉자 넵튠이 의문을 품었지만.
“조금만 기다려 봐. 곧 있으면 해결될 테니까.”
툭 툭
바다의 신이 초조해하거나 말거나, 이안은 앉아있던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면서 미미르의 소식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안, 적을 격추시켰다. 하나가 아니라 다섯이었어. 음….]
미미르의 보고를 들은 이안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양이의 말에선, 무언가 난감해하는 뉘앙스가 느껴졌으니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우리 쪽 피해는?”
이안은 혹시나 싶어 피해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다섯 기다.]
역시나, 그의 촉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뭐?”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경악했다.
F/A-18 호넷.
그중에서도 가장 최신형인 슈퍼호넷이다.
원산지인 지구에서도 강하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전투기와 마수 따위의 교환 비율이 1:1이라니.
“미미르, 상대에 대한 정보는?”
마수의 정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놈의 잔해를 회수할 병력을 보내두었다. 전투영상도 함께 띄우도록 하지.]
이안의 질문에 미미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간단히 설명을 마쳤다.
‘잔해?’
사체도 아니고, 잔해라니.
미미르의 말을 들은 이안의 머릿속에 의문이 커져갔지만.
채 그것을 해소하기도 전에.
팟
이안의 눈앞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마수를 맞아 싸우는 미미르의 분신이 담긴 영상.
그리고, 함께 영상에 찍힌 마수의 정체를 확인한 이안은.
“뭐야, 저게. 저게 왜 여기 있어?”
경악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본부, 은신처, 고향.
일곱 용의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본부를 일컫는 이름은 다양했지만, 그들의 본부가 가진 정식 명칭은 따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공식석상에서 폐기장이란 말을 쓸 순 없잖아?”
그들의 본부 한 켠에 위치한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소녀가 핀잔을 늘어놨다.
그 말에, 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수호자님, 제작자께서 사라지신 지도 벌써 600년입니다. 이제 이름이 바뀔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비서의 말에, 수호자라 불린 소녀는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제작자라고 해봐야, 과거의 망령일 뿐이잖아? 그 제작자가 우리 조직에 한 일을….”
“쉿, 쉿!”
이어진 수호자의 폭탄선언에 당황한 사내는 급히 손으로 소녀의 입을 막았다.
“읍!으읍!”
소녀가 몸부림쳤지만, 비서는 손을 뗄 생각이 없었다.
“제발, 그런 말은 혼자 있을 때만 하시란 말입니다. 잘못 새 나가기라도 하면 저나 수호자님이나 끝장이라고요.”
“읍, 으읍!”
“안 하실 거죠? 뗍니다.”
입이 막힌 소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는 한숨을 내쉬며 상사의 입을 막았던 손을 치웠다.
“으, 짜.”
“제발, 조심 좀 하십쇼. 수호자님을 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그것도 전에 말씀드렸죠?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쳇.”
비서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린 소녀는 다시금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가고 싶다….”
태어나자마자 본부의 수호라는 의무를 짊어진 그녀에게, 바다 너머란 언제나 미지의 세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
그녀의 멍한 표정은 곧, 놀람으로 뒤바뀌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항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배?”
하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배라고 하기엔, 그것은 너무나 거대했으니까.
거대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거대한, 배보다는 섬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멀린.”
하지만 그녀는 수호자.
일곱 용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당장 경보를 울린 다음, 본부로 돌아가서 그걸 가져와.”
풀어져 있던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그녀는 비서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수호자님께선….”
“나는 저 녀석을 막아야 해.”
막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치 않다.
저렇게 거대한 강철의 섬이 본부와 충돌한다면, 이 항구는 대번에 박살나버릴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비서, 멀린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본부를 향해 달려 나갔다.
홀로 남은 그녀는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막대기를 꺼내 들었다.
“분명, 사람의 손이 닿은 물건이야.”
그렇다면, 분명 저 거대한 무언가를 조종하는 자가 있으리라.
“일단 놈을 찾는다.”
우웅
순식간에 계획을 세운 그녀는 길게 뻗은 다리에 마력을 모았다.
하지만.
그녀가 저 거대한 섬 위로 뛰어드는 일은 없었다.
탓
그녀가 뛰어오르기 전, 누군가가 섬 위에서 항구를 향해 날아올랐으니까.
‘적.’
상대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적을 향해 손에 쥔 마력총을 겨눴다.
그러나 그녀가 채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
타아앙
굉음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마력총이 튕겨 나갔다.
“으윽….”
갑작스런 통증이 오른손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허리춤에 꽂혀있던 새로운 마력총을 꺼내 들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타앙
정체불명의 사내가 그녀의 허리춤에 찬 홀스터를 끊어내기 전까진.
“…마력총?”
상대가 쥔 무기의 정체를 깨달은 그녀는 경악했다.
그리고.
“꼬맹이?”
경악한 것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