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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는 원샷원킬-149화 (150/224)

#151화

니미츠급 항공모함.

백 대가 넘는 함재기와, 그들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수천 명의 운용인원.

그들을 모두 배 안에 태운 채 시속 60km로 움직이는 거대한 슈퍼캐리어(Super Carrier)는, 가히 바다 위의 도시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법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조용한데.”

니미츠급, 그중에서도 네임쉽인 니미츠함의 함교에 올라탄 이안은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조용할 수밖에. 이 거대한 배에 탑승한 건 너와 나 뿐이지 않느냐.]

본디 수천 명의 사람으로 북적여야 할 배에 존재하고 있는 지성체는 오직 이안과 미미르뿐.

말 그대로, 떠다니는 유령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네 분신들도 빼먹으면 곤란한데.”

애오오옹?

이안이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를 가리키자, 놈은 이안을 향해 한 번 울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놈들은 모두 내 통제하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개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다곤 할 수 없다.]

“페르소나로 사람을 구현해낼 순 없으니까, 네가 수고 좀 해 달라고.”

아니, 어차피 원자력 대신 마력으로 움직이는 함선이니 수고랄 것도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이안 뿐이니 식료품이나 식수도 거의 필요 없다.

거기에, 이안의 기억과 상상에 의해 구현된 녀석이니 기계적 결함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단지, 불만이 하나 있다면.

“호위함선들이 없는 게 좀 아쉽단 말이지.”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분명 그 자체로도 강력한 병기이지만, 자체적인 방어무장이 빈약하다는 단점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항공모함의 주변엔 수많은 구축함과 잠수함, 보급함들이 함께하지 않는가.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미미르는 경고했다.

[이 이상 무언가를 구현해낸다면, 네 마력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수준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

마왕의 마석에서 뽑아내는 마력의 양.

그리고 이안이 항공모함과 그 안의 함재기를 유지하는 데 소마하는 마력의 양은 거의 같았다.

여기서 조금만 균형이 무너진다면, 이안의 마력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리리라.

“알아, 안다고. 그냥 아쉬워서 그러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안은 불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바라봤다.

쐐애액-

굉음과 함께, 길게 뻗은 구름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항공모함에 탑재된 수많은 함재기들이었다.

[저게, 네가 말한 그 ‘벌’이겠지?]

“정확힌 말벌이지만.”

F/A-18 호넷.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말벌들의 비행을 지켜보며,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결해야지.’

마력이 유지되는 이상 함재기들이 추락할 일은 없을 테니, 함대의 호위를 전부 전투기에 맡겨버릴 생각이었다.

미미르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소음이 너무 크다. 이 정도 크기의 소음이라면, 주변의 마수들이 알아채지 못할 리 없을 거다.]

메피스토의 말에 의하면, 바다에도 마수들이 살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어지간한 마수들은 이안과 이 거대한 병기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해서 일부러 싸울 이유도 없다.

[이안, 조금이라도 더 조용히 다니는 게 어떠하겠나.]

미미르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쐐애액-

새롭게 하늘로 이륙한 말벌의 소음이 고양이의 주장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뭐, 그래주면 나야 좋지.”

이안의 반응은 미미르의 예상과 달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

주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미르가 되물었다.

“우린 이 바다의 주인을 찾으러 가는 입장이라고.”

이안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대문 앞까지는 도착했으니, 주인한테 내가 왔다는 걸 알리려면 대문을 두드려야 할 거 아냐?”

말을 마친 이안은 팔짱을 끼곤 바다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이안의 설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감지되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봐봐, 내 말이 맞지?”

갑작스런 괴물체의 출현에 미미르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곧.

쏴아아아-

하늘을 뒤덮을 듯 솟아난 물보라와 함께, 바다 밑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문어? 아니, 오징언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매끈한 몸통과, 그 아래에 달린 열 개 가량의 거대한 촉수들.

색을 제외하면, 문어나 오징어 따위의 두족류를 연상케하는 마수였다.

단지.

“더럽게 크네.”

그 크기가 평범한 오징어나 문어와는 궤를 달리할 뿐.

“잡아가면 알자스에서 축제라도 벌일 수 있겠는데?”

농담이 아니라, 저만한 크기면 수천 명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

[마수를 먹다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물론 미미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농담이라고, 농담.”

미미르가 정색하자 이안은 두 손을 내젓고는 상대를 살폈다.

그 순간.

키에에에-

몸통에 틀어박힌, 마차만큼 거대한 상대의 눈이 이안과 마주쳤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주저앉았을 듯한 공포가, 거대한 눈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마주한 이안이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찾았다.’

너무나 쉽게 적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

이안은 옆에서 마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미미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미르, 보이지?”

물론, 미미르가 그 약점을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래, 바로 움직이마.]

미미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저 하늘 위를 떠다니고 있는 말벌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이윽고.

슈우우-

슈우-

하늘을 찢는 굉음이 텅 빈 항공모함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와 함께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녹색의 쇳덩어리들.

쐐애애액-

다섯 개쯤 될까 싶은 쇳덩어리들이 대기를 가르며 마수를 향해 낙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분.

키이이?

마수의 눈을 향해.

콰아아앙-

마수의 눈과 접촉한 정밀유도폭탄, JDAM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1000파운드, 약 500킬로그램의 폭약은 그대로 두족류형 마수의 눈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키이이-

순식간에 눈을 잃어버린 마수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거대한 촉수를 꼬아댔다.

철썩

그 과정에서 일어난 파도가 함교를 덮쳤지만, 이안은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승리를 직감하고 있었다.

‘눈은 모든 생명체의 약점이니까.’

그리고, 상대가 두족류라면.

‘눈 바로 뒤에 뇌가 있겠지.’

그야말로 완벽한 약점.

콰아앙- 콰아앙-

남은 네 발의 JDAM 역시, 정확히 마수의 눈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축구장 한, 두 개는 우습게 날려버릴 폭발력 앞에, 고작해야 생물체일 마수의 뇌가 무사할 리 만무했다.

구구구궁

침몰한다.

생명을 잃은 거대한 마수의 시체가 대양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표현하기에, 침몰만큼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끝났다. 다른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이제는 병기의 위력에 놀라기도 지쳤는지, 미미르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안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쯤 되면 나타나 줄 만도 한데 말이지.”

[넵튠 말이냐?]

“그래.”

그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미르는 잠시 생각해보곤 입을 열었다.

[네 추론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지. 넵튠이 생각만큼 바다에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소란을 피웠으면 나타날 때가 되었단 말이지.”

자신의 영역에 관심이 없는 것과 영역을 침범당해도 가만히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강자의 권리이지만, 후자는 약자의 굴욕.

그리고.

‘넵튠은 강자 중의 강자지.’

집안을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게 정상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깽판을 치는 정체불명의 상대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때.

-네놈은 뭐냐.

이안의 머릿속에,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향해 직접 울려온 목소리.

이안은 직감했다.

‘넵튠이다.’

이 행성의 7할을 차지하는 해양의 지배자.

바다의 신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감히 내 권속을 해한 네놈은 뭐냔 말이다.

[이안, 적이다. 수심 130미터 지점에서 올라오고 있어. 숫자는 셋.]

사내의 굵은 목소리와 동시에, 미미르가 주인을 향해 경고했다.

하지만 이안은 미미르의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

그가 마주해야 할 상대는, 바다 밑의 마수 따위가 아니라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었으니까.

이안은 함교 밖 바다를 바라보며 태평하게 말했다.

“뭐긴 뭐야, 손님이지.”

-손님?

이안의 말을 들은 상대, 넵튠은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두드리면 안내를 해야지 말이야. 댁 권속, 버릇이 영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좀 고쳐줬지.”

-버릇이 없는 건 네놈도 마찬가지로구나.

이안의 말을 들은 넵튠은 노기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쏴아아아-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바다 아래에서 세 마리의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가재, 오징어, 꽃게의 모습을 띤 거대마수.

하나하나가 니미츠급 항공모함과 비슷한 크기인 마수들이 항공모함을 삼면으로 포위했다.

하지만.

“나 혼자 먹기엔 너무 푸짐한데? 이 집 맛집이네.”

해물을 먹은 게 언제더라?

이안은 여전히 태평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것은 미미르였다.

[이안, 이럴 때가 아니다. 바다 밑에서 다른 마수들이 올라오고 있어. 아무리 너라도 바다 속에선 불리하지 않느냐.]

아무리 오러마스터일 지라도 인간이다.

수영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물고기를 이길 수는 없듯, 지상을 무대로 생활하던 인간이 물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우선 네놈을 붙잡아놓고 이야기를 해야겠군. 물 몇 번 먹다 보면 정신을 차리겠지.

키이이-

넵튠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수들이 항공모함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일곱 용.”

이안이 한 마디를 내뱉은 순간.

키이-

마수들은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췄다.

-…네놈도 그 녀석들의 일원이었나? 하지만, 놈들은 그래도 예의를 아는 녀석들이었는데….

이윽고, 넵튠은 조심스럽게 이안을 향해 물었다.

“뭐, 아직은 아닌데.”

그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놈들, 곧 내 것이 될 거거든.”

저 바다 어딘가에 있을 넵튠을 향해, 이안은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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