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신들은 물질계에 대해 직접적인 간섭이 어렵다.
그들이 사는 세계가 물질계와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
신들이 물질계에 간섭하고자 한다면, 어찌되었건 인계의 힘을 빌어야했다.
하지만 바다를 관장하는 신, 넵튠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넵튠은 물질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다. 바다의 모든 마수와 지성체를 자신의 권역 안에 두고 있지.”
굳이 인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물질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신.
하지만 메피스토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수? 마수는 너희들의 소관이 아니었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 마수들은 우리의 통제가 먹혀들지 않는다. 그만큼 넵튠의 힘이 강력하다고 봐야겠지.”
말을 마친 메피스토는 인상을 찡그렸다.
마경에서 가장 강한 자인 자신조차도, 바다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으니까.
이안은 메피스토의 설명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선 한 수 먹고 들어가는, 그런 건가 보네.”
“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지. 바다에서는 말 그대로 신과 같은 존재이니까.”
마왕토벌자의 비유를 들은 메피스토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렇다해서 이안이 상대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거물이야.’
그가 위성영상으로 확인한 대로라면, 이 세계의 해양과 대륙의 비율은 지구와 비슷한 7:3 정도.
사실상, 이 행성의 7할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넵튠이지 않은가.
바다를 건너 일곱 용의 본거지로 향해야 하는 이안에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넵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까도 그렇지만,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것이냐. 네놈들의 신에게 묻는 게 더 빠를 텐데?”
이안의 물음에 메피스토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 말 대로라면, 넵튠은 내가 아는 신들하고는 별 접점이 없을 것 같거든.”
바다를 영역으로 삼는 넵튠에게, 대륙에 위치한 인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터.
그런데, 인계를 주 터전으로 삼는 신들과 가까울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너는 분명, 넵튠을 직접적으로 언급했지. 단순히 신족들과의 협약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거야.”
고작, 한 마디 말일 뿐이다.
그 정도의 단서를 가지고 추론하기엔 근거가 너무 빈약했다.
하지만.
‘이게 맞아.’
이안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왔던 그의 촉이, 추론의 모자란 근거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후우, 네 말이 맞다.”
언제나처럼, 그가 옳았다.
메피스토는 애써 당황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넵튠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실까?”
일곱 용을 손에 넣기 위한 첫 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도 모른다.”
메피스토가 방법을 모를 거란 사실.
“…뭐?”
“우리가 넵튠을 찾아간 게 아니다. 넵튠이 우리에게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지. 당연히, 그를 만나는 방법은 나도 알지 못한다.”
순간, 당황한 이안을 향해 메피스토는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아쉽게 되었군, 마왕토벌자. 원하는 걸 얻지 못하게 되다니.”
이안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메피스토의 가슴에선 왠지 모를 통쾌함이 끓어올랐다. 마왕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마경에서 떠나주어야겠다, 마왕토벌자여.”
스으으-
말을 마친 마왕은 서서히 마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마왕토벌자가 불복하기라도 한다면, 다른 마왕들을 불러내 맞설 생각이었다.
“뭐, 그러지. 모르는 걸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이안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냐?”
그 모습에 정작 놀란 것은 메피스토였다.
설마, 저 마왕들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포악한 자가 자신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줄이야.
“나가 달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무슨 개소리야. 그럼, 나가지 말까?”
“아니, 그건 아니다만….”
“그럼 이만 끝내자고. 난 이거 하나면 되니까.”
이안은 헛소리를 내뱉는 메피스토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아이 머리통만 한 마석을 메피스토의 눈앞에 들어올려 보였다.
마왕의 본체이니만큼 거대한 마석에서는 고농도의 마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지만.
‘뭐, 견딜만 하네.’
영웅급 페르소나의 보호를 받는 이안에겐 조금 따끔거리는 정도일 뿐이었다.
“…알았다.”
메피스토는 마왕 마르바스의 진체인 마석을 보곤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어쩐 일이냐?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건 너답지 않다만.]
이안의 옆에서 미미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이, 그가 봐온 주인의 성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곧, 마르바스의 마석이 보관된 지하에서 빠져나온 이안은 뒤따라 나오는 메피스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만간 다시 보자고.”
“영원히 보지 않길 바란다, 마왕토벌자여.”
“그래, 뭐. 그럴 수 있다면.”
작별 인사를 건넨 이안에게 돌아온 것은 마왕의 축객령이었지만, 그는 맘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편의 절벽으로 향했다.
철썩-
온통 자줏빛 마기로 물든 마경과 달리, 마경의 바로 앞에 위치한 바닷물은 여전히 푸른 빛을 지키고 있었다.
‘최소한, 협약인지 뭔지가 지켜지곤 있나 보네.’
아니면, 넵튠이 가진 신성이 마기를 밀어낼 만큼 강력한 걸지도.
[이안, 정말 이대로 가는 것이냐?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든 마력의 양을 생각하면, 너무 큰 손해인 것 같다만.]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주인을, 미미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과연 그럴까?”
이안은 고양이의 말에 피식 웃고는, 대검을 쥔 미미르의 분신을 마석 앞에 가져다 두었다.
“꽂아.”
애오오옹!
이안의 명령을 들은 고양이는 주저 없이 대검을 마석에 꽂아 넣었다.
카가가각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대검이 머리통만 한 보석 안을 파고들었다.
대검이 빠지지 않을 만큼 깊숙이 파고든 것을 확인한 이안은.
“흡마.”
곧장 흡마의 특성을 불러일으켰다.
스으으-
마석으로부터 빨아들인 마기가 고양이의 몸에서 마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전환된 마력은 그대로 마도위성과 연결된 무형의 선을 타고 위성의 에너지를 충전시켰다.
“이쪽은 끝났고.”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우웅
전력을 다해 체내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파직 파지직
신성이 섞인 막대한 양의 마력이 주변의 마기와 반응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심장 안에 고여있던 막대한 마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우웅
마도위성 아스가르드와 연결된 이상, 이안의 마력은 고갈될 일이 없다.
아스가르드로부터 전송된 대량의 마력은 다시금 이안의 심장을 채워나갔고, 채워진 마력은 이안의 의지에 의해 다시금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바다를 건너려면, 배가 있어야겠지.’
공중을 통하는 방법도 있지만, 고작 그것만으론 임팩트가 부족하다.
일곱 용들을 확실히 이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들과 자신의 격차를 두 눈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기억해내보자.’
이안은 자신이 마주쳤던, 가장 거대한 함선을 떠올렸다.
설계도 따위가 당연히 머릿속에 있을 리는 없지만, 이안은 그 함선을 타고 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다.
‘빈 공간은 상상으로 채운다.’
거대한 함선을 움직이는 것은 어차피 마력일 테니까.
이안은 최선을 다해 함선의 형태를 빚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놀란 것은 옆에 있던 미미르와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메피스토였다.
인간의 몸으로 뿜어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이, 절벽 아래로 펼쳐진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병기를 불러오려는 것이냐….]
꿀꺽
그의 주인이 마력을 유형화하는 것을 바라보던 미미르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가 장담컨대, 이안이 지금까지 이 정도의 마력을 끌어모은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이윽고.
파아앗
이안이 구현해낸 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건….]
배였다.
강철로 만들어졌고, 갑판 위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저 바다를 떠다니는 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배에는 대륙에 존재하는 어떤 배와도 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다.
[크군.]
단순히 그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미미르가 밟고 있는 대지는, 바다로부터 수십 미터 높이에 위치한 절벽 위.
하지만 이안이 구현해낸 배는, 아니 함선의 높이는 이미 절벽을 훌쩍 뛰어넘어있었다.
1급 전열비행함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아니 훨씬 거대한 크기의 함선.
아니, 바다를 떠다니는 도시라고 칭해야 할 물건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도대체, 네 녀석은 어디서 이런 병기의 원전을 떠올린게냐….]
아마도 평생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미미르는 이안이 구현해내는 병기들의 원전을 알고 싶었다.
[제작자와 관련된 것인가? 아니면….]
애오오옹
미미르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의 주인을 바라볼 동안.
“후우.”
이안은 마력을 너무 쏟아내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는 심호흡했다.
그와 위성이 가진 마력은 아직 여유가 넘쳤지만, 그 마력을 컨트롤할 육체와 정신은 이미 지쳐있었다.
물론.
“힘을 쓴 보람은 있지만.”
자신 따위는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함선을 바라보며, 이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무시당하진 않겠지.’
정확히, 그런 의도를 가지고 불러낸 병기였으니까.
일곱 용이 지구의 병기를 다루는 자들이라면, 이 배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모를 리 없을 테니까.
[이 병기는, 비행전열함같은 것인가?]
이안의 곁에 다가온 미미르가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토록 거대한 함선엔 그만한 크기의 마력포가 실려있어야 할 테니까.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비행전열함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방주라기보단, 벌집에 가깝겠지.”
[…벌집이라고? 이게?]
벌집이라니.
이안의 뚱딴지같은 대답을 듣고, 미미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거대한 함선이 고작 벌집의 역할을 한다는 건.
[그럼, 안에 거대한 벌이라도 키운다는 말인 것이냐?]
“오, 웬일로 맞췄네?”
미미르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말벌들이 살고 있는 소굴.
그것이, 이 배의 정체였으니까.